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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의 자카르타톡] 기자 눈에 비친 ‘조꼬위 대통령’ 리더십

SNS에 올린 자바 격언 ‘당신이 강할지라도 상대를 쓰러트리지 말라’ 의미는?

2013년 2월 자카르타에서 대홍수가 발생했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당시 조꼬 위도도(일명 조꼬위) 자카르타 주지사를 만나 수해지원 물품을 전달하고 환담했고, 나는 취재진의 일원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현지 언론을 통해 조꼬위 주지사를 간접적으로 파악하고 있던 터라, 나는 가까이서 그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설렜다. 조꼬위의 첫 인상은 ‘온화’ ’신중’ ‘배려’ ‘겸손’ 등이었다. 행사가 끝날 즈음에 모 기자가 유력한 대권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조꼬위 주지사에게 "차기 대권 도전 의향이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조꼬위 주지사는 잠시 깊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모호한 미소로 답했다. 그는 이날 행사가 끝난 직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20여명의 현지 기자들의 질문에 차분하고 친절하게 대응했다.

 

2018년 9월 조꼬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국빈방문을 했을 때 그는 한국외대에서 재학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이날 나는 좀더 오랜 시간 조꼬위 대통령을 지켜볼 수 있었다. 특강에서 조꼬위 대통령은 “미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직’과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성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자신의 정치철학이다. 특강을 마치고 그는 학생들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스스럼없이 셀카를 찍었다. 이날 조꼬위 대통령에 대한 인상에 '끊임없이 주변을 잘 살피는 사람’과 ‘친절한 사람’이 추가됐다.

 

조꼬위는 1962년 중부자바주 솔로(또는 수라까르따) 시에 있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 명문 가자마다대학교(UGM) 산림학부를 졸업한 후 가구사업을 하던 평범한 중산층 시민이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중부자바 솔로 시장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직접 서민 삶의 현장을 찾아 소통하는 특유의 ‘블루수깐(blusukan·즉흥적 현장 방문)’ 리더십도 펼쳐왔다. 조꼬위는 솔로 시장 시절부터 현장 위주의 친(親)서민 정책과 행정 개혁으로 시민의 지지를 받았다.

 

친 서민 행보로 인기를 모은 그는 2012년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했다. 불시에 지역 빈민촌이나 각종 시설 등을 방문해 점검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의 파격적인 행정을 펼쳤고, 의료보험, 행정개혁, 인프라 개발, 교육 부문에서 현실과 소통하는 정치를 펼쳐 소위 '조꼬위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2014년 인도네시아 최초로 군 출신도 정치명문가 출신도 아닌 진정한 문민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여소야대 정치적인 장벽에 설상가상으로 자당인 투쟁민주당(PDIP)조차 조꼬위를 적절하게 지원하지 않아 집권 초기부터 많은 난제에 직면한다.

 

조꼬위 대통령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라는 전설의 복서였던 무하마드 알리의 명언이 떠오른다. 조꼬위는 강한 인내심을 갖춘 청렴하고 노련하며 설득력이 뛰어난 정치가로 서민 중심의 정책을 고수했다. 수십년간 중단됐거나 답보상태에 있던 자카르타지하철과 자바섬 횡단고속도로, 발전소, 공항,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강력하게 추진해 순차적으로 마무리했다.

 

조꼬위 집권 1기에는 그가 계획했던 부패청산과 정치개혁 목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받고 있으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지난 4월 치러진 대선에서 숙적인 쁘라보워 수비안또 거린드라당 총재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재선됐다.

 

조꼬위는 인도네시아가 2045년에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집권 2기 정부 조직을 축소하고 투자에 장애가 되는 관료주의 병폐를 제거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차기 내각에는 젊은 장관을 대거 기용해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부패청산에 힘을 쏟겠다는 게 그의 의지다.

 

오는 10월부터 시작되는 집권 2기 조꼬위 정부는 여대야소의 유리한 정치상황에서 인도네시아공화국 건국 이후 추진해온 자카르타 수도 이전 계획과 자카르타 대방조제 사업 등 메카톤급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2대 국가 숙원사업은 역대 대통령들이 추진했으나 흐지부지 끝났다. 하지만 조꼬위는 자신이 여러 차례 강조한 바와 같이 국내 정치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집권 2기인 만큼 덜 눈치를 보며 이 사업을 밀어붙일 것으로 관측된다.

 

조꼬위는 지난 7월 14일 서부자바주 보고르 컨벤션센터에서 두 번째 임기 비전에 대해 발표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를 강국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먼저 야당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조꼬위와 쁘라보워 총재는 2014년 대선에 이어 올해 4월 17일 치른 대선에서 다시 맞붙었다. 쁘라보워는 두 차례 모두 고배를 마셔야 했고, 두 사람간 관계는 견원지간이 됐다. 하지만 조꼬위는 끊임없이 슬며시 손을 내민다. 조꼬위와 쁘라보워는 지난 7월 13일 자카르타에 새로 개통한 지하철역에서 만나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지하철을 탄 뒤 점심을 먹었다. 이날 두 사람은 지난 대선 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함께 나서면서 정치적 긴장이 다소 완화되고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 조꼬위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메가와띠 수까르노뿌뜨리 투쟁민주당 총재도 쁘라보워 총재와 만나 정치적 화합의 제스처를 과시했다.

 

자바문화가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32년간 철권통치한 수하르또가 1998년 민주화 시위로 축출된 후 잔여 임기를 승계한 하비비 대통령을 제외하면, 건국 이후 6명의 대통령 모두 자바족 출신이다.

 

당연히 자바식의 리더십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 최근 조꼬위 대통령은 자바 격언 ‘당신이 강할지라도 상대를 쓰러트리지 말라’(자바어: laman sira sekti, aja mateni)라는 격언을 소개하는 게시물을 자신의 공식 계정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제1야당인 그린드라당을 포용해 여당연합에 끌어들여 야당을 최소화하려는 조꼬위 대통령의 의도로 해석된다.

 

서구식 민주주의에서는 야당을 필수적인 요소로 보지만, 자바 스타일 정치철학을 추구하는 조꼬위는 야당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같아 보인다. 문화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1972년에 쓴 ‘자바 문화 속 권력에 대한 생각’이라는 글에 “(자바 철학에서) 권력자는 반목하는 적에 집중하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인도네시아는 제도와 법규정의 개혁과 대규모 인프라 개발을 통해 신규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한 선결 조건이 정치 안정과 야당의 협력이다. 조꼬위 대통령이 집권 2기 5년 동안 쁘라보워를 포함한 반대파들을 포용해 개혁을 이뤄,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인도네시아가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신성철 대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30년간 거주 중이다. 1999년 현지 인터넷매체 ‘데일리인도네시아’를 창간해 20년째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을 밟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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