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김정기의 일본이야기11] ‘여우비-새빨간 거짓말’ 한국-일본에 다 있네

일본어 서사 1. 일본 고서에 ‘조선반도 도래인 8할 내지 9할’ 두 나라 언어 근친성

 

지금까지 쓰시마-이키로 번진 일본 이야기를 엮어 보았는데, 지금부터 주제별로 ‘일본 엿보기’를 해볼까 한다. 먼저 일본인이 쓰는 언어, 즉 일본어를 서사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쓰시마-이키는 일본어 서사에도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것은 이 적은 섬에는 일본어의 조어(祖語)를 이룬 한국어의 형적이 적지 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쓰시마’라는 지명부터가 한국어에 유래한다. 그것은 한국어 ‘두 섬’이 ‘쓰시마’로 표기된 것이라고. 즉 ‘쓰’는 ‘둘’에서, ‘시마’는 ‘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일 전문가들이 두루 인정한다. 이것은 ‘섬(島)’-->‘시마(島)’ 또는 ‘절(寺)’-->‘테라(寺)’로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받침 말을 하기 어려운 일본인의 구강구조에서 한 음절이 두 음절로 된 말에 다름이 아니다.

 

또한 이키에는 후레(触)라는 이름을 가진 고장이 99군데나 된다. 이 작은 섬에 그 많은 후레가 있다니, 그것은 섬 전체가 후레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후레에 대해 <나가사키현의 역사산보>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이키의 농촌 단위는 ‘후레(触)’라고 불린다. 이것은 조선어인 푸리=푸루[村]의 뜻인 외래어라는 설과, 또 하나는 에도시대 농지를 구획할 때 행정상 소단위로서 농가를 묶어 후레라고 했다는 것이다(김달수, 1993, 349~350, 재인용).

 

재일 작가이자 한일고대사 연구가인 김달수 씨는 「“조선어인 푸리=푸루[村]란 정확하게는 부리=부루(村)이지만 어쨌든 그것이 에도시대 농지를 구획할 때 행정 상 소단위로서 농가를 묶어 후레라고 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단정하고는 「“왜냐하면 이키에서 그 집락을 부리=부루=후레(触)라고 했던 것은 ‘에도시대’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 옛날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결론적으로 이키의 후레는 서라벌의 ‘벌’이 전와되어 소우루[서울]로 변화하여 남아 있는 것이라고 짚는다(위 책 350).

 

이 후레는 뒤에 살펴보겠지만 다시 북 규슈 쪽으로 옮겨 ‘바루’로 된다. 부리-->부루-->바루로 바뀌어 간 것이 분명하다. 이토(系島) 반도에 있는 여러 ‘바루,’ 즉 마에바루(前原), 가스가바루(春日原), 나카바루(仲原), 히라바루(平原), 토바루(唐原)의 ‘바루’는 한국어 서라벌(徐羅伐), 서나벌(徐那伐), 서벌(徐伐)에서 보듯이 ‘벌’에서 오는 지명이다(金政起, 2018, 85). 그 옛날 가야 사람들이 쓰시마-이키를 거쳐 처음 닿았을 북 규슈 북단에 있는 이 섬에 여기 저기 ‘바루’가 있다는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 한자 많이 쓰는 한-일, 읽기에서 한국=한자에 하나 음, 일본=복수 음절 수두록

 

나는 여기서 한국어의 일본어와의 근친성 또는 친연성(親緣性)에 조명하여 두 언어 사이에 관계를 밝히려 한다. 그에 앞서 먼저 현대 일본어의 몇 가지 특징을 익혀 두자. 그 중 하나가 일본어는 한자를 유난히 많이 쓴다는 점이다. 그 빈도가 40%에 이른다 하니 일본어의 한자 편향은 그 정도가 심하다고 할 만하다. 지금 일본어는 전후 마련한 당용한자를 1981년 1945자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자 사용의 빈도뿐만 아니라 읽는 법도 다양하다. 크게 음독(音読)과 훈독(訓読)으로 갈라지는데, 특히 훈독은 같은 한자를 여러 가지로 읽는다.

 

한국어의 경우 한자는 기본적으로 하나 한자에 하나 음이 원칙이다. 그러나 일본어 훈독은 복수의 음절로 읽는 한자가 수두룩하다. 예컨대 한자 曙는 한국어에서는 ‘서’ 한 음으로 읽지만 일본어 훈독으로 읽으면 네 음절의 ‘아케보노’가 된다. 즉 새해의 여명이라는 뜻이다.

 

또한 하나의 한자를 여러 가지로 음독, 훈독한다. 우리가 잘 아는 月자는 ‘겟츠’, ‘갓츠’, ‘쓰키’와 같이 세 가지로 읽는다. 예컨대 (1)겟츠요비(月曜日), 잇카겟츠(日個月); (2)이치갓츠(一月), 쇼-갓츠(正月); (3)쓰키미(月見, 달구경), 쓰키요(月夜, 달밤)] 등이 그것이다. 같은 음으로 훈독하는 한 가지 뜻이 다른 한자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노력한다’는 보통 쓰토메루(努める)로 적지만 이와 함께 勉める, 力める라고 적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일본인은 승용차를 부리듯 한자를 제 맘대로 부린다고나 할까.

 

일본어의 쓰기는 히라카나(平仮名)와 카타카나(片仮名)로 갈라지는데, 전자는 한자의 초서체에서 생긴 것이며, 후자는 한자의 일부를 사용하는 쓰기법이다. 카나(仮名)란 한자에서 발생한 일본 고유의 음절문자라는 뜻이다. 두 카나 표기는 모두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8세기 말부터 약 400백년간)에 성립된 표기법. 오늘날 카타카나는 의성어, 의태어, 외국어를 표기할 때 쓰인다.

 

■ 두 언어의 근친성: 고서에 조선반도에서 온 도래인 8할 내지 9할

 

한국어와 일본어와의 근친성으로 돌아가 두 언어를 견주어 보면 의외로 친근한 말이 많은 것에 놀란다. 일본의 한 저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견주는 한 대중저서에서 일본어 ‘하나’[端]를 들면서 한국어 하나와 음에서도 뜻에서도 일치한다고 짚는다(大野敏明, 2002, 3).

 

“한국어에서는 ‘하나(一)’, ‘일’, ‘한가지’ ‘최초’, ‘처음’을 의미한다. 일본어에서도 「처음부터 믿지 않다」[하나카라신지나이(はなから信じない)]라든가, 「처음부터 시작하지요」[하나카라하지메요-(はなから始めよう)]라고 사용하지요”라고. 또 다른 예로 ‘카마’라고.

 

‘카마’는 어떻습니까. 풀을 베는 카마(鎌), 도지기를 굽는 카마(窯), 밥[ご飯]을 짓는 카마(釜). 일본어에서는 모두 ‘카마’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한국어에서도 모두 ‘카마’입니다(위 책, 3).

 

저자인 오노토시아키라는 저널리스트 출신인데, 그에 의하면 ‘카마(鎌)’는 “한국어에서 옛날에는 ‘카마’, 현재는 ‘낫’이라한다”고. 낫은 ‘나타(鉈)’ 즉 손도끼에 연원하다고도 말한다. 오노는 카마와 관련해 한 인물의 이름과 관련지은 흥미 깊은 이야기를 엮는다. 그 이름이 후지와라노카마타리(藤原鎌足)로 645년 나카오에(中大兄) 황자를 도와 당시 집권자 소가(蘇我) 씨를 멸해

권력을 잡고 이른바 대화(大化) 개혁을 단행한 주인공. 오노가 주목한 것은 카마타리의 타리(足)이 숨어있는 한국어라는 것. 足은 오(吳) 음으로는 ‘소쿠’인데 한국어로는 ‘족’. 일본어 훈독으로 읽으면 ‘아시’ ‘타루’ ‘타리루’ ‘타스’ ‘타시’라고 읽는다고. 그런데 한국의 고유어는 ‘다리’이며, 또한 ‘다리’는 교(橋), 교각(橋脚)을 의미한다. 오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카마타리(鎌足)는 ‘카마’도 ‘타리’도 한국어라는 것으로 되고 맙니다. 카마타리는 자기 이름의 유래를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현대 우리들은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에서 카마타리의 실상[足元]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위 책, 34).

 

한국어의 ‘새빨간 거짓말’은 일본어의 ‘맛카나우소(真っ赤なうそ)’와 서로 통한다. 거짓말에 색깔이 있을 리가 없지만 한국어도 일본어도 거짓말에 ‘새빨간’을 덧칠한다. 햇빛이 비치면서 오는 ‘여우비’를 일본어에서는 “여우가 시집간다”[狐の嫁入り]고 하는데 이는 한국어에서도 마찬가지.

 

개별단어의 이런 친연성을 갖는 말은 그밖에도 많이 보인다. 예컨대 한국어 ‘곰’-->일본어 쿠마(熊), 거미-->쿠모(蜘蛛), ‘고을’-->‘코우리(郡있)’, 밭-->하타(畑), 마을-->무라(村)등등.

 

‘끼리’의 경우는 독특하게 한국어나 일본어 모두 중요한 고유어로서 공통적으로 쓰인다. 일본어의 경우 “두 사람끼리 걷다”는 “후타리끼리아루쿠(二人きり歩く)”가 된다. 또한 “외독자만의 집지키기(ひとりっきり留守番)”라고도 쓰인다. 한국어 ‘우리끼리’의 ‘끼리’와 같이 ‘만’의 뜻으로 쓰이며, 일본어 다케(だけ, 만)와 뜻이 통한다.

 

한국어 까치의 경우 일본어로는 카사사기(鵲)인데, 별칭으로 ‘까치가라스’이다. 이 까지가라스는 일본에서 권위를 자랑하는 고지엔(広辞苑)사전에도 그대로 나온다. 오사카 지방의 방언으로 ‘오이도’는 ‘엉덩이’인데 그 음이 유사하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한일 두 언어의 근친성에 의심은 거둘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어가 전적으로 한국어에 파생되었다고 단정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도대체 두 언어의 근친성은 어디서 나왔을까. 글쓴이는 일본의 고서 <쇼쿠니혼키>(続日本紀)에서 시사적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8세기 야마토 국의 다케치군 아스카(高市飛鳥) 지방 인구 중 ‘귀화인’이 8할 내지 9할을 차지했다고. 물론 여기에 ‘귀화인’이란 조선반도에서 온 도래인. 그렇다면 도래인은 현대 일본인의 선조가 되는 셈이며, 그들에 언어를 가르친 선생님이 아닌가.

 

참고문헌

金政起, “古代北九州と朝鮮半島との共同文化圈について”, <Review of Asian and Pacific Studies>, Center for Asian and Pacific Studies (成蹊大学アジア太平洋硏究センタ), No. 43, 2018

大野敏明, <日本語と韓国語>, 文藝春秋, 2002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관련기사

포토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