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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加坡 통신] 노정객 마하티르는 이제 영영 끝일까 (3)

말레이시아의 ‘2020 정치위기’ 들여다보기....안와르 총리 위임약속 '거부' 소용돌이

말레이시아 정계의 '거인' 마하티르가 지난달 26일 퇴진했다. 이 때만해도 안와르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문제가 초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드라마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국왕은  29일 마하티르도 아니고 안와르도 아닌 무히딘 야신(72)을 신임 총리을 임명했다. 마하티르 재신임을 위한 '신의 한수'인 사임 카드가 거센 역풍에 직면했고, 되레 그를 권력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촉매제가 되었다. 마하티르도 큰 충격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정국에 대해 관전자들마저 딱 부러지게 전망하기 어렵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정상적인 야신의 임명절차를 미뤄지고 있다.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어떤 역사 대하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말레이시아의 2020 정치위기 들여다보기'를 시리즈로 준비해보았다. <편집자주>

 


1. 싱가포르가 말레이연방에서 빠진 이유는?

 

싱가포르가 한때 말레이 연방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건 동남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오늘날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는 1965년 싱가포르 독립 이전에는 말레이연방의 총리를 꿈꾸기도 했을 정도였다.

 

싱가포르가 말레이 연방에서 분리된 원인은 바로 이 복잡한 민족갈등 때문이다. 전체민족의 55%를 차지한 말레이계와 35% 이상을 차지한 화교계가 도저히 섞일 수가 없다는 판단 때문에 화교가 밀집한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내쫓는 것으로 말레이시아는 이슬람-말레이계 정권을 확립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 대체적인 해석이다.

 

결과적으로 100만 명을 훌쩍 넘는 싱가포르 화교가 순식간에 연방에서 분리가 됨으로써 말레이계는 말레이시아 정국에서 절대적인 수적 우위를 차지할 수가 있었고, 자연스레 말레이에 거주하는 화교계는 정치적 힘을 상실하고 민주행동당(DAP)라는 이름의 25% 남짓의 지지율에 그치며 만년 야당으로 남아야 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대정파 암노의 최고 엘리트 정치인 안와르가 1999년 야당으로 쫓겨와 민주화 투쟁에 나선 것이다. 자연스럽게 안와르가 이끄는 PKR과 화교계정당 DAP는 이후 의기투합하며 말레이시아 민주화의 절대적인 구심점이 된다.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 양쪽이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한 것이다. 일찌감치 국제화를 주장했던 안와르에게도 ‘부미푸트라’ 정책의 개선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였고, 이 역시 DAP가 간절히 원해온 제1의 목표이기도 했으니 서로 궁합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2.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3월 1일 총리에 취임한 무히딘 야신의 소속정당은 마하티르를 정점으로 암노의 이탈 세력이 만든 버사뚜라는 정당인데, 원래 명칭을 영문으로 표기하면 말레이시안 연합 토착당(Malaysian United Indigenous Party)이 된다. 즉, ‘말레이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민족주의 정당이라는 얘기다. 마하티르의 정치 철학도 원래는 말레이계의 저력을 세계무대에서 입증하고 싶은 욕망에서 출발하고 있다.

 

마하티르나 야신이나 안와르나 거의 모든 말레이계 정치의 출발점은 ‘암노(UMNO)’였다. 그리고 안와르는 1999년 일찌감치 뛰쳐나왔지만 마하티르나 야신은 2015년 라집 총리의 부정부패에 진절머리를 내고 암노에서 갈라져나와 따로 말레이계 정당을 만든 셈이다.

 

체질적으로 이 버사뚜라는 정당은 안와르나 DAP와 근본적인 체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즉 정권교체를 위한 적과의 동침을 감행했던 것이지 근본적으로 이념과 체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과연 "마하티르의 진심은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는 현재 많은 관전자들이 평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2018년 총선을 앞둔 수년 전부터 마하티르는 안와르와 극적인 화해에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92세의 고령자의 총리 취임도 ”사실상 안와르에게 안정적인 권력 이양을 위한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것이다.

 

실제 정권교체 초기 마하티르는 ”차기 총리는 안와르“라고 수차례 공언할 정도였다. 안와르의 국제적 명성과 정치적 식견,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식견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안와르를 빼놓고 정권교체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6개월이면 끝날 것 같았던 총리 위임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급기야 2020년 초 마하티르는 ”올해 연말“을 공언했고, 그 와중에 이를 참지 못한 연립내각의 중진의원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사실상 물거품이 되어버린 셈이 된 것이다.

 

이를 놓고, 마하티르의 노욕이 부른 참사라는 해석과 후임 안와르를 위해 판을 제대로 깔기 위해 무리하다가 잠시 넘어질 뿐이라는 해석이 엇갈린다. 물론 안와르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마하티르에 인간적 배신감을 느낀다“는 솔직한 감정을 토로했다.

 

 

3. 신세대 정치인들의 반란? 혹은 예고된 파행?

 

2018년 연립내각 ‘희망연대’는 선거승리 직후 8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1년도 채 안되서 지지율은 50% 밑으로 급추락했다. 2019년 치러진 3차례의 보궐선거에서는 모두 암노에게 패하며 정치적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도 애당초 과반수를 뛰어넘는 121석을 얻었기 때문에 5년 집권에는 큰 걸림돌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했다.

 

근본적 문제는 70년 장기집권한 정권이 바뀌었는데 유권자들은 불과 1년 만에 성과를 내놓으라는 조급증이었다. 이 시점에서 마하티르가 안와르에게 연립내각의 수장을 물려주고 명예롭게 퇴진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마하티르는 자신의 정치적 구상을 다시 앞세우는 선택을 했고, 이는 많은 말레이계 정치인들, 특히 50대에 접어든 1960년대생 정치인들에게 커다란 위기감으로 작용하게 된다.

 

마하티르의 2인자격이 야신이 첫 번째 배신자였다면, 의외로 강고할 것 같던 안와르의 PKR에서도 배신자가 등장했다. 아즈민 알리(55) 전 슬랑오르 주지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안와르의 비서로 정치를 시작한 인물로 정치이력 내내 안와르와 ‘사제관계’로 불리던 관계였지만, 무슨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야신 및 암노와 손잡과 기존의 희망연대를 무너뜨리는 물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의 정치력이나 인품이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연립내각의 허리역할을 맡은 주요 인물의 이탈이었고, 그의 몸짓이 실제 내각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적지 않다.

 

당초 아즈민 알리를 비롯한 탈당파들은 ”안와르에게 연립내각 이탈을 통한 집권을 제안했다“고 주장하지만 안와르가 이를 거부했다는 변명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즉 화교계 정당와 결별을 제안했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의견이 비단 PKR 내부에서만 나왔을 리 없다. 마하티르가 이끄는 버사뚜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안을 받고 비슷한 시기 이탈자들이 나왔고, 결국 차기 총리직은 마하티르도 안와르도 아닌 조금은 생뚱맞은 "무히딘 야신"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4개의 서로 다른 인종과 9개의 서로다른 왕국이 10개 정당의 여야로 나뉘어 122석 연립내각 구성을 놓고 싸우는 와중에서 진실은 하나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변함없는 대목은 앞서 설명했던 대로 ‘부미푸트라 정책’의 폐기를 놓고 벌어진 여야 정치인들의 입장차이가 가장 크게 작용했으며, 보다 결정적으로 1990년대에 이뤄졌어야 할 마하티르와 안와르 사이의 정권교체가 20년 이상 지체된 2020년에 진행된다는 점에 대한 젊은 정치인들의 반란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초고령의 마하티르가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면 안와르의 시대가 펼쳐질 수 있었을까? 혹은 마하티르가 일찍 결심했다고 해도, 결국 ‘말레이 퍼스트’라는 강한 원심력에 이끌려 연립내각은 어쩔 수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태국 방콕에 본거지를 사회과학연구소 아시아 센터의 제임스 고메즈 소장은 ”여러 관전 포인트가 있지만, 그럼에도 말레이계 정치인들이 절대로 중국계 세력에 정권을 넘겨 주지 않겠다라는 의지로 읽힐 수 있다"고 말한다. 안와르와 DAP간의 강고한 연대와 부미푸트라 정책의 폐기에 대한 말레이계 의원들의 위기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3월 1일 출범한 무히딘 야신 내각은 늦어진 코로나 대응을 위해 국경봉쇄라는 초강수를 택했다. 25일 현재 말레이시자의 확진자는 1800여명, 사망자는 19명이다. 물론 잠재적 감염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과연, 말레이시아 정치는 무시딘 야신으로 남은 3년 임기를 채우게 될 것인가? 혹은 이제 본격화된 본격적인 인종과 세대 갈등의 서막이 될까? 또 안와르의 꿈은 이대로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일까? 그리고 코로나로 자가격리에 거인 마하티르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는 여전히 칼을 갈고 있지만 시대의 벽은 꽤나 높아만 보인다. 

 

시리즈 1편

[新加坡 통신] 말레이시아 마하티르는 이제 영영 끝일까 (1)

 

시리즈 2편

[新加坡 통신] 노정객 마하티르는 이제 영영 끝일까 (2)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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