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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일본이야기25] 칠복신앙에 드리운 한반도 그림자

일본인은 누구인가 8. 일본인의 신앙: 칠복신앙(七福信仰)이란?

 

일본인이 받드는 신앙 중 놓칠 수 없는 것이 ‘시치후쿠신고-’(七福信仰, 이하 ‘칠복신앙’)이다. 많은 일본인은 새해 정월 전날 베개 밑에 칠복신을 태운 보물선[다카라부네(宝船)]을 그린 그림을 넣어둔다. 그러면 그 해 첫 길몽을 꿀 수 있다는 것이다.

 

정월의 연중행사에 10일 에비스(戎)나 20일 에비스 등이 있는데, 니시노미야(西宮, 효고현) 등 전국 각지의 에비스(惠比須) 신사나 절에서는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이 참배한다. 상가뿐만 아니라 여느 민가에서도 칠복신에 유래하는 보물선 그림 장식을 챙기는 습속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칠복신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먼저 짚어둘 것은 그들은 토착신이 아니라 이양신(異樣神)이라는 점이다. 이 칠복신 하나하나 짚어보면 이 세상의 복이란 복은 모두 집합시킨 종합 복주머니를 연상케 한다.

 

 

상업번영과 오곡풍년의 신 에비스, 재복 식복의 신 다이코쿠텐(大黑天), 장수의 신 쥬-로쿠진(寿老人), 복덕증진의 신 비샤몬텐(毘沙門天), 장수와 복의 신 후쿠로쿠쥬-(福祿寿), 음악, 재복, 지혜의 여신 벤자이텐(弁財天), 부귀번영의 신 보테이(布袋)가 그들이다.

 

이 신들에 흐르는 특성으로 이양성이 두드러진다. 칠복신앙에 천착해 연구한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수는 “칠복신 중 일본 독자의 신은 에비스신뿐”이라며, “다이코쿠텐, 벤자이텐, 비샤몬텐은 불교의 천상신[天部の神]이며, 후쿠로쿠쥬-, 쥬-로쿠진은 도교의 신이며, 보테이 화상(布袋和尙)은 당나라 말기 걸식 승”이라고(上田正昭, 1996, 69).

 

그런데 이 칠복신앙이 싹튼 근원에는 한반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을 놓칠 수 없다. 그것은 상세라는 곳과 그것을 기조로 하는 ‘상세신앙’에서 엿 볼 수 있다. 다시 우에다 교수의 말.

 

 

이 칠복신앙의 성립 그 자체가 아시아 속의 일본신도의 존재양상을 상징하는 신앙의 구체적 예이었다. 이향(異鄕[도코요])에서 행운이나 복을 가져오는 이신(異神[마레비토])이 내방한다는 신앙은 예부터 존재했다. 예컨대 <고사기>(古事記) 신대권에 스쿠나비고나(少名毘古那) 신이 하늘의 넝쿨선[天の羅摩船]을 타고 내려와 오-쿠니누신(大国主神)과 함께 나라를 만들고 다시 도코요 국(常世の国)으로 돌아간다는 신화가 기록되어 있고 <일본서기> [권일 신대권 상]의 제6의 ‘일서’에 스쿠나노미고토(少彦名命)이 오쿠니누시신과 ‘천하’을 경영하고 창생[민중]과 ‘축산’의 병을 다스리는 방법이나 조수·곤충의 폐해를 제거[禁厭]하는 법을 가리치고 도코요의 나라[鄕]로 물러갔다는 신화를 전하는 것도 이런 신앙을 반영한 신화이었다(위 책, 67~68).

 

■ 도코요, 미스터리 공간 ‘상세’란 어디인가

 

위에서 말한 스쿠나비코나 신이 ‘도코요’에서 오고 ‘도코요’로 돌아간다는 그 곳, 그 도코요(常世, 이하 ‘상세’)가 어디인가? <기기> 신화에는 천황의 조상신 천조대신이 살았다는 다카마가하라(高天原, 이하 ‘고천원’)와 ‘상세’라는 미스터리 공간이 나온다. 먼저 <기기> 신화에 의하면 고원원은 천황 조상신 천조대신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이런 신화 상 허구를 제치고 생각하면 고천원과 상세는 곧 살피겠지만 한반도와의 인연을 제치고는 설명이 안 된다.

 

먼저 고천원은 일본어 훈독으로 ‘다카마가하라(高天原)’라고 읽지만 그 뜻은 문자 그대로 ‘높은’[高] ‘하늘’天]’의 ‘벌’[原] 이다.

 

 

북한의 사화과학원의 김석형 교수는 “이 세 마디 말 중에서 아마=하늘이 알맹이”라면서 이어“일본 고어에 바다를 《하다》라고 한 것도 있지만은 《아마(아메)》라고도 많이 하였다“고 일깨웠다. 그는 이어 “현대 일본말에도 《아마》는 바다이자 하늘이었다”고. “일본 고문헌에 《아마》라고 하는 곳이 현실적으로 하늘같이 멀고 높으며 바다를 건너서야 갈 수 있는 조선을 가리킨다고 주장한 학자가 한둘이 아니다”면서 그 ‘한 례’로 아메노히보코(天日槍)을 풀이한 일본인 학자 나카다 가오루(中田熏, 1956)를 인용했다.

 

《이 아마노히보꼬(天日槍)의 <아마>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우리 천손 민족(이 학자는 일본민족이 천손 민족이라는 데서 매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필자)의 고향을 가리킨 것이지만은 사실은 조선 반도, 이른바(일본 고문헌에서-필자) <가라구니노-시마(韓鄕島)> 특히 <시라기(新羅)>를 가리키고 있음은 의심할 바가 없다(김석형, 1966, 96, 재인용》.

 

이렇듯 고천원이 신라 땅이라면 상세는 어디인가? 일본의 한 종교연구가는 상세는 “민간전승에 의하면 ‘바다 저쪽의 매우 먼 곳(海の向うのきわめて遠い所)’에 있다”고 여겨져 “현실의 세계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다”고 하면서 “뒤에는 불로장생[不老不死]의 신선경(神仙境)으로 생각되었다”(豊嶋泰國, 2010, 52) 고.

 

그렇다면 ‘바다 저쪽의 매우 먼 곳’은 어디 인가? <기기> 신화에 의하면 그곳은 스쿠나비쿠나 신(少彦名命, 少名毘古那神[<고사기>])이 이즈모국(出雲国) 건설에 참여한 뒤 돌아간 곳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바다 저쪽’의 상세, 그곳은 어디일까? <일본서기> 신대권은 스쿠나비쿠나 신이 다가오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오-나무치 신(大己貴神)이 이즈모국(出雲国) 이사사(五十狹狹)의 오하마(小汀)에 이르러 음식을 들려하자 해상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놀라 그 방향을 보았지만 누구도 없었다. 그러자 곧 작은 사나이가 나타났다. 넝쿨 껍질로 작은 배를 만들어 굴뚝새 털로 만든 옷을 입고 조수가 밀려오는 대로 떠 왔다. 오나무치 신이 손으로 만지자 급히 뛰어올라 뺨을 물었다(<일본서기> (一) 권 제1 神代 上 제8단, 106, 坂本太郞 외 교주, 岩波書店, 1994).

 

■ ‘일본서기’에 상세신앙 서술, 오-나무치 신은 신라에서 건너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나무치 신은 누구인가, 그가 이르렀다는 이즈모국 이사사의 오하마가 어디인가, 그가 바라본 방향이 어느 쪽인가이다. 그것은 스쿠나비쿠나 신이 오고 돌아갔다는, 그 방향 쪽에 상세가 있는 곳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방향에 대해서 김석형 교수는 “이즈모 지방에서 바다 건너편에는 우리 나라 동남각(角)밖에는 없다”(김석형, 1966, 119)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뒤에 밝혀지듯이 그곳은 신라가 될 수밖에 없다.

 

 

그는 이어 구체적으로 “그[스쿠나비쿠나]가 《도꼬요(常世)》의 《구니(나라)》로 다녔다는 것도 결국 조선으로 다녔다는 것”아라며 “《도꼬요》의 나라를 어떤 《일본서기》 주석자는 왜국을 말한다고 했고 어떤 《고사기》 주석자는 《스사노-오노-미꼬도》가 신라에 건너간 전설 등(사실은 신라에서 일본으로 갔는데 일본 사람들은 과거에 많이 이를 거꾸로 말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했다-필자)을 생각하면 이 도꼬요의 나라는 조선을 가리킨 것 같기도 하다”(위 책, 119)라고 니시다 나가오(西田長男)라는 학자의 저서 <고사기 신강>(古事記新講)을 인용했다.

 

위에서 말한 오-나무치 신은 누구인가? 오-나무치는 이즈모대사(出雲大社)의 제신인 오-쿠니누시 신(大国主神)의 별명이다. 스사노오 신(素戔鳴尊)의 자손이라는 오-쿠니 누시는 문자 그대로 ‘큰 나라님’인데, 그밖에 오-나무치노카미(大穴牟遅神), 쿠니즈쿠리오-나무치노미고토(国作大己貴命), 아시하라노시코오노카미(葦原色許男神 [葦原醜男] ), 야치호코노카미(八千矛神), 우츠시쿠니노타마노카미(宇都志国玉神 [顕国玉神] ), 오-모노노누시노카미(大物主神), 오-무타마노카미(大国玉神) 등 별명이 널려 있고, 여러 명의 부인 사이에 자식이 무려 181명을 두었다 한다.

 

다시 김석형 교수는 오-쿠니누시 신에 대해 이즈모 지방의 도래인의 우두머리, 즉 ‘큰 나라님’[大国主]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즈모 《국》의 세력범위가 넓었던 것은 이상에서 보았지마는 《일본서기》의 제 1의 《일서》에는 《스사노-오노-미꼬도》의 5대 손으로 되어 있고 《고사기》에는 6대 손으로 있다. 몇 대 손이건 큰 문제는 아니며 앞서 쓴 바 제6의 《일서》에 실려있는 그의 많은 별명과 함께 《오-구니-누시-》라는 이름도 구체적인 실제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이 나라의 왕자에 대해서 《큰 나라님》으로 불려 왔다는 사실을 전할 뿐이다(김석형, 1966, 120).

 

 

지금까지 서술한 바에서 대국주신은 도래인의 우두머리, 즉 ‘큰 나라님’이요, 상세는 신라 땅인 것은 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 ‘상세신앙’은 무엇인가? <일본서기> 코-교쿠(皇極) 천황 3년 7월 조에 후지 강[富士川] 근방에서 번졌다고 하는 상세신앙에 대한 서술이 있다. “그 신을 신봉하는 남녀무당[巫覡]들의 신어(神語)에서 ‘가난한 사람이 부를 이루고 늙은 사람은 젊어진다는 상세신’을 우러렀다”는 것이다.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는 “이와 같은 신앙에 불로장생의 도교 신앙이 겹쳐져...상세신앙으로 되었다”고. <일본서기>의 서술을 “그대로 사실(史実)라고 일리는 없다”면서도 다른 고문헌을 전거로 들어 “상세신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짚었다.

 

우에다 교수는 불장장생의 도교 신앙과 겹쳤다고 보았지만 나는 그것은 오히려 신라에 발원하는 무교와 습합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글쓴이는 칠복신앙의 근원에는 한반도와의 연고를 부정하고서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자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석형, <초기조일관계연구>, 사회과학원 출판사, 1966

上田正昭, “福神の信仰”, “七福神信仰のなりたち”, <神道と東アジアの世界: 日本の文化とは何か>, 德間書店, 1996

豊嶋泰國, “大国主神,” “少彦名命,” <日本のまつろわぬ神々: 記紀が葬ったの神々>, 新人物往來社, 2010

<일본서기> (一) 권, 坂本太郞 외 교주, 岩波書店, 1994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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