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과 동남아를 생태학적 접근, 문명사적 접근 그리고 지정학적 접근으로 보아야한다.
먼저 "생태학적 접근"이다.
동남아는 아열대에 속하는 덥고 습한 기후대다. 같은 기후대라고 하더라도 대륙 동남아와 해양 동남아에 따라 우기와 건기가 다르다. 이는 산악지대와 해양을 끼고 있는지 여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대륙동남아는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해 해양동남아보다 대륙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주로 농경 문화가 중심이다 보니 해양동남아보다 더 폐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손바닥을 하늘로 보고 펼치면 5개 손가락 사이가 주요 강이 흐르고 손가락 하나 하나가 높은 산맥으로 보면 된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대륙동남아의 인적교류나 문화는 남북으로 이동하였고, 동서로는 산과 강에 막혀 상대적으로 이동이 쉽지 않았다.
해양동남아는 수많은 섬들로 구성돼 바다가 늘 열린 공간이었다. 동서양의 중간 위치와 몬순풍으로 인해 16세기 서양 제국의 동남아 진출 이전 이슬람 상인들이 이곳에 들어와 상업활동을 했다.
동남아 2000년 역사상 당대 제국주의 세력들이 동남아에서만 생산되는 향식료를 독점하기 위해 제국주의적 진출을 한 것도 동남아 생태가 가져다준 이러한 생산물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태적 특성 때문에 주거 형태나 의식주에도 영향를 주었다. 덥고 습하며 짐승의 공격을 막기위해 베트남을 제외하고 고상가옥이 일반적이었다. 옷도 통풍이 잘 되는 헐렁한 옷들 주류를 이루었다. 먹는 음식도 생선류가 주류였으며 젖갈류 문화가 발전했다.
열린 해양 때문에 외부인에 대해 호의적이고 결혼 또한 개방적이었다.
다음은 "문명사적 접근"이다.
동남아의 생태적 특성이 동남아 문명 형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불교 및 힌두 인도 문명, 중국문명, 이슬람 문명및 기독교 문명 등 4대 외래 문명이 쉽게 전파돼 샤머니즘, 애니미즘 등 기존 토착 문화와 상호 교류를 통해 혼종성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동남아 문화는 이런 외래 문화에 흡수 동화되지 않고 독특한 동남아의 문화를 유지 발전시켜왔다.
동남아는 힌두교를 수용했지만 인도 힌두교의 배타적 카스트제도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처럼 창의적 선택이었다. 동남아 이슬람교 대부분이 수니파이지만 그렇다고 중동 수니파와 달리 온건한 편이다. 이에 따라 오늘날 동남아 문화의 혼종성(hybrid)의 모습에 아르렀다.
다음은 "지정학적 접근"이다.
동남아의 이러한 생태학적, 문명사적 특징이 지정학적 접근에도 영향를 주었다.
동남아의 생태계가 가져다준 향신료와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 편리한 위치권력을 가진 동남아는 이슬람 상인은 물론 16세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네덜란드(화란), 영국, 프랑스, 미국 그리고 일본까지 서구세력의 식민지 진출의 동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경쟁,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이 동남아 지배권을 두고 지정학적 경쟁을 벌였다. 결국 제국주의 열강은 세력권 분할을 통해 자국 이익을 가져갔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300여년간 식민지 경영을 했다. 영국과 프랑스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기간 식민 수탈을 했다. 그런 장기간 식민지배에 쌓인 식민지 유산이 아직도 현대 동남아에 남아있다.
이런 동남아가 2차 세계대전 후 대부분 독립하였으나 냉전기간 동안 미소간 양쪽에서 선택을 강요당했고, 대다수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편에 섰다. 특히 냉전 후 소련이 붕괴되고 미국이 유일한 일극체제 국가가 된 이후 미국쪽에 올인하다시피했다.
그러다가 21세기 중국의 부상과 이에 따른 미국의 도전세력으로 부상함에 따라 동남아를 두고 미중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동남아는 1967년 출범한 아세안을 통해 집단적으로 미중에 대해 그 어느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주의를 취하고 있다. 개별국가 차원에서는 친미 국가군, 친중 국가군 그리고 중도 국가군으로 갈라지고 있다.
동남아는 미중의 전략적 경쟁 구도하에서 지역기구로서 아세안과 인도, 일본, EU, 한국 등 제 3국과의 협력을 통해 헷징(hedging) 전략도 병행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아세안과 동남아에 대해 역대 한국 정부는 아세안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해왔는지 살펴 보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아세안을 어떻게 접근할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역대 한국 정부 중 박정희 정부가 지역기구로 ASPAC(아스팍)을 주도해 동남아 국가를 묶어 접근한 것이 최초다.
다음은 1990년대 말 김대중 정부다. 명실상부한 아세안 정책이라고 본다. 지금의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의 선구자로서 동아시아 공동체 비전을 제시했다.
그다음에 노무현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동북아에 함몰되었고, 이명박 정부는 실용외교에 꽂혀 제대로된 아세안과 동남아 정책이 없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가 아세안과 동남아를 4강에 준하게 격상시키겠다는 비전하에 외교 인프라를 구축하고 명실상부한 아세안 및 동남아 정책을 추진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인-태전략의 하부 구조로 아세안을 보아 아세안국가로부터 너무 미국 중심의 외교라는 목멘 소리를 들어야했다.
2025년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실용외교의 기치하에 아세안 중시 외교를 추진하고 있으나 동남아 국가들은 체감 효과는 기대하고 있다.
미국이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따라 전후 80년간의 세계 경찰 역할에서 발을 빼고 있고, 유엔 등 다자외교를 경시하고 있어 세계는 아미타프 아차리아의 말대로 글로벌 멀티플렉스(a global multiplex) 세계로의 이행 중이다.
그는 2040년 세계는 미국과 중국 등 지금의 강대국들도 계속 남아있겠지만 중견국가, 기업, 민간재단, NGO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간의 정치군사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문화 및 이념적 요소도 중요해진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견국가들은 각자의 비교우위에 따라 특정 이슈의 선도자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유사국가간 소다자 협력체 출범도 전망한다.
세계가 이렇게 진전되면 중견국가인 한국이 아세안과의 공조를 통해 특정 이슈에서 공동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아세안과 동남아를 생태학적 접근, 문명사적 접근 및 지정학적 접근을 고루 고려해 입체적으로 아세안 외교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글쓴이=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jisuh0803@gmail.com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 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