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딜리의 프레지덴치 니콜라우 로바투 국제공항. 한국으로 떠나는 동티모르 청년 한 명을 배웅하기 위해 가족 열 명, 때로는 스무 명이 청사 앞을 메웠다. 같은 구도, 다른 표정으로 셔터가 거듭 눌렸다. 청년이 게이트 안으로 사라진 뒤에도 가족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활주로가 보이는 자리에 서서 기체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풍경은 1960~70년대 김포공항을 떠나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 중동 건설 현장으로 향하던 한국 노동자들의 사진과 50년의 시차를 두고 겹쳐졌다. 가족과 국가를 한 사람의 어깨에 실어 보내며 말없이 환송하는 공동체의 정서가, 다른 언어와 다른 피부색을 입고 거기에 있었다. 2008년 한-동티모르 고용허가제(EPS) 양해각서가 체결된 이래, 딜리 공항의 같은 장면은 한 세대의 집단적 초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티모르 해외 노동의 흐름은 크게 영국-한국-호주-포르투갈 네 갈래로 나뉜다.
영국에는 포르투갈 국적 취득권을 활용해 옥스퍼드-피터버러-북아일랜드 던개넌 등의 육류가공-물류 현장으로 진출한 1만 6000~1만 9000명이 머무르며, 던개넌은 인구 대비 동티모르인 밀집도가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다.
한국에는 EPS를 통해 입국한 약 5000명이 어업-제조업-농축산 현장에 분포한다.
호주는 2018년 시작된 장기 고용 스트림(PLS)을 거쳐 2022년 출범한 태평양-호주 노동 이동(PALM) 프로그램의 주요 송출국으로 자리잡았다. 2024년부터는 영주권 비자(PEV) 경로까지 더해졌다.
식민 모국 포르투갈은 1975년 이전 출생자에게 부여되는 국적 취득권을 통해 본토뿐 아니라 EU 노동시장 전체로 향하는 통로 기능을 한다.
인구 134만 명의 소국에서 5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해외에서 노동 중인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경제활동인구의 10분의 1을 상회한다.
이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송금은 동티모르 경제의 숨은 기둥이다. 국제이주기구(IOM)가 집계한 공식 송금 유입액은 2015년 6,200만 달러(약 914억 660만 원)에서 2021년 1억 7,100만 달러(약 2,521억 530만 원)로 6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고, 세계은행 기준 GDP 대비 비중은 2024년 11.8%에 달한다.
비공식 채널까지 포함하면 실제 규모는 훨씬 크다. 역설적인 것은 이 돈이 국가 재정에는 잡히지 않는 '민간의 복지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콘크리트 2층 주택과 지방 마을의 태양광 패널, 조카의 학비와 노모의 병원비에서 송금의 흔적이 발견된다. 정부가 보건과 교육에 투자하지 못하는 공백을, 멀리 떨어진 아들과 딸의 월급이 메우고 있다.
이런 풍요에는 댓가가 따른다. 에르메라와 마우베시 일대 마을에서 가장 흔히 마주치는 풍경은 노부모와 손주만 남은 집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을 영상 통화로 익히고, 5년 가까이 아버지를 보지 못한 채 사춘기를 통과하는 청소년이 적지 않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초국적 가족’이라 부른다. 부모의 장기 부재가 동티모르 아동의 정서적 안정성과 학업 성취에 뚜렷한 영향을 준다는 점은 국제기구의 여러 보고서가 일관되게 지적해 온 바다. 송금으로 지어 올린 새 집들이 늘어가는 동안, 그 집의 밤은 점점 조용해지고 있다.
송금은 석유 고갈시대를 떠받칠 현실적 대안이기도 하다. 가계 보조의 차원을 넘어, 국가 외환 수입을 대체할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EPS 파견 규모를 늘리고, 한국어·영어 연수원을 증설하며, PALM 할당 확대에 매달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농업과 제조업 역량을 키워야 할 청년 인력이 연쇄적으로 빠져나가면, 정작 귀국 이후의 경제는 누가 지탱할 것인가. 언어와 기술을 익혀 돌아온 귀환자를 흡수할 노동시장이 국내에 부재하다면, 송금은 또 다른 출국을 낳는 순환의 시작점이 아닌가.
최근 필자는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 시위 행렬을 보았다. “사고율, 사망률도 3배다.” “직장 바꿀 권리를 보장하라.” 피켓의 구호가 차창 너머로 스쳤다. 2024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발표된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의 보고서는 한국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이 같은 연령대 내국인의 최소 2.3배에서 최대 3.6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사업주 동의 없이는 일터를 바꿀 수 없도록 한 고용허가제의 제약을 그 격차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했다.
딜리 공항의 게이트가 닫힌다. 남겨진 어머니는 긴 그림자를 끌며 돌아선다. 그녀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에는 4년 10개월 뒤 돌아올 아들의 사진이 깔려 있다. 동티모르는 지금 ‘떠나는 자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돌아오지 못하는 자의 나라’이기도 하다.
최창원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hopeseller@gmail.com
▶ 핵심 통계 인포박스
동티모르 총인구: 약 134만 명 (2022년 센서스, 1,340,434명)
해외 체류 노동자 추정 규모: 약 5만 명 내외
한국 내 동티모르인 체류 인원: 약 5천 명 (2024, 외교부·법무부)
영국 체류 동포: 학계 추정 1만 6천~1만 9천 명
던개넌(북아일랜드) 동티모르 출생자: 1,777명 (2021년 영국 센서스)
포르투갈 거주 동티모르 국적자: 1,845명 (2024, 포르투갈 공식 통계, 이중국적자 제외)
공식 송금 유입액:
2015년 6,200만 달러 → 2021년 약 1억 7,100만 달러 (IOM)
GDP 대비 개인 송금 비중: 11.8% (2024, 세계은행)
석유기금 잔고: 수백억 달러, 2030년대 중반 고갈 시나리오 제기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률: 내국인의 최소 2.3배~최대 3.6배 (2024 인권위·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
최창원 프로필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현, 아시아비전포럼 선임연구원
현, 한국스피치웅변협회 동티모르 지부장
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한국학센터장
전, UNDP 아름다운동티모르 만들기 프로젝트 자문관
한글 발전 및 한국어 세계화 공로로 대통령 표창(2025)
『테툼어–한국어 사전』, 『한국어–테툼어 사전』 동티모르 말모이팀 편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