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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수의 Xin chào21] 메콩강과 구룡강, 그리고 아홉 마리 용

베트남의 생명선이자 역사적 기억과 상징인 이름...식량안보와 수출 경제 떠받쳐


메콩강은 동남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이다. 그러나 베트남 남부에 이르면 이 강은 단순히 ‘메콩강’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 강을 오래전부터 구룡강, 베트남어로 쏭끄우롱(Sông Cửu Long) 또는 끄우롱쟝(Cửu Long Giang, 九龍江)이라 부른다. ‘아홉 마리 용의 강’이라는 뜻이다.

 

이는 메콩강이 베트남 남부 삼각주에 이르러 여러 갈래로 나뉘고, 전통적으로 아홉 개 하구를 통해 바다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룡강이라는 이름에는 베트남 남부의 지리, 산업, 역사, 문화가 함께 담겨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메콩델타’라는 용어는 베트남어로는 구룡강 델타(Đồng bằng sông Cửu Long)이다. 베트남에서 메콩강(sông Mê Công)은 앞의 구룡강이라는 이름과 같이 사용하지만, 메콩델타(Đồng bằng sông Mê Công)라는 용어 대신에 구룡강 델타(Đồng bằng sông Cửu Long)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우리말로 ‘메콩델타’라고 번역한다.

 

구룡강의 첫 번째 얼굴은 생산의 강이다. 흔히 베트남의 ‘쌀 바구니’라고 불린다. 세계은행은 메콩델타가 베트남 쌀 생산의 약 50%, 수산양식 생산의 약 70%를 담당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 지역에는 약 1,8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기후변화와 홍수, 염수 침입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메콩델타는 베트남 쌀 생산의 절반, 쌀 수출의 95%, 농업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핵심 농업 지역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구룡강이 단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아니라, 베트남의 식량안보와 수출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 기반이라는 뜻이다.

 

 

구룡강 유역의 산업적 역할은 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지역은 새우, 메기류, 각종 수산양식, 열대 과일 생산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세계은행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메콩델타는 베트남 농업 GDP의 3분의 1, 쌀과 어류 생산의 절반 이상, 과일 생산과 수산양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구룡강은 베트남 남부의 농민과 어민에게는 생계의 터전이고, 베트남 국가경제에는 수출 경쟁력의 원천이다. 강물이 운반한 퇴적토는 비옥한 논과 과수원을 만들었고, 복잡한 수로망은 물류와 시장, 생활문화를 형성했다. 껀터의 까이랑 수상시장처럼 배 위에서 사고파는 문화도 바로 이 물길 위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구룡강은 풍요의 강이면서 동시에 전쟁의 강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당시 메콩델타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 수많은 강과 운하, 습지와 마을이 얽힌 이 지역은 병력과 물자의 이동로였고, 동시에 게릴라전의 무대였다. 미 해군은 이 지역의 수로를 장악하기 위해 이른바 “브라운 워터 네이비”, 즉 내륙 하천과 얕은 수로에서 작전하는 해군 전력을 운용했다. 미 해군 역사유산사령부 자료에 따르면, “Operation Game Warden”에서 PBR이라는 강 순찰정과 Task Force 116은 남베트남의 주요 강을 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이 장면은 구룡강의 또 다른 의미를 보여준다. 평소에는 쌀과 생선을 실어 나르던 물길이 전쟁 중에는 감시와 교전의 공간이 되었다. 좁은 수로를 따라 순찰정이 움직이고, 강가의 마을과 갈대숲은 언제든 전투 공간으로 바뀔 수 있었다. 미 해군의 전쟁사 자료는 베트남의 강과 운하에서 벌어진 수로전이 단순한 보조 작전이 아니라, 메콩델타 통제와 남베트남 전쟁 수행에 중요한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구룡강은 그래서 베트남 현대사의 고통도 함께 품고 있는 강이다.

 

흥미로운 점은 ‘구룡강’이라는 이름이 오늘날의 지리 현실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는 아홉 개 하구가 있었기 때문에 구룡강이라고 불렸지만, 현재는 실질적으로 일곱 개 하구만 기능한다고 설명된다. 메콩강위원회 관련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으로 들어온 메콩강은 띠엔쟝(前江)과 허우쟝(後(江)으로 나뉘고, 다시 여러 하구를 통해 바다로 흘러갔다. 전통적으로 언급되는 하구는 띠에우(Tiểu), 다이(Đại), 바라이(Ba Lai), 함루옹(Hàm Luông), 꼬찌엔(Cổ Chiên), 꿍허우(Cung Hầu), 딩안(Định An), 쩐대(Trần Đề), 밧탓(Bát Thát) 등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두 하구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기능하지 않게 되었다. 하나는 밧탓(Bát Thát) 하구이다. 이 하구는 퇴적 작용, 즉 강물이 실어 온 토사가 쌓이는 과정 속에서 점차 사라진 것으로 설명된다. 다른 하나는 바라이(Ba La) 하구이다. 이곳에는 염수 침입을 막기 위한 수문이 건설되었다. 건기에는 바닷물이 강 안쪽으로 들어와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위협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인위적인 수리 시설이 설치된 것이다. 그 결과 바라이(Ba Lai)는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가는 하구라기보다, 염분 조절과 담수 관리를 위해 통제되는 수로가 되었다.

 

결국 구룡강의 ‘아홉 용’은 지리적으로 고정된 숫자라기보다, 메콩델타가 지닌 역사적 기억과 상징에 가깝다. 자연적인 퇴적, 염수 침입, 수문 건설, 상류 댐, 모래 채취, 지하수 이용 등은 모두 삼각주의 물길을 바꾸고 있다. 세계은행도 메콩델타가 해수면 상승, 지반 침하, 염수 침입, 홍수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다. 구룡강의 하구가 아홉에서 일곱으로 줄어든 것은 단순한 지명상의 변화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 활동이 함께 만들어낸 환경 변화의 결과이다.

 

그래서 구룡강을 바라볼 때 우리는 세 가지 얼굴을 함께 보아야 한다. 첫째, 구룡강은 베트남의 쌀과 수산물, 과일을 길러내는 산업의 강이다. 둘째, 베트남전쟁의 수로전이 벌어진 역사의 강이다. 셋째, 아홉 하구가 일곱 하구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 기후변화와 개발의 압력을 보여주는 변화의 강이다. ‘구룡강’이라는 이름은 사라진 두 물길까지 기억한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베트남 남부가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마주할 미래를 함께 품은 말이다.

 

 

끝으로 구룡강의 역사를 읊은 응웬홍(Nguyên Hồng, 1918-1982) 시인의 시를 소개한다. 베트남 국어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시다.

 

우리 구룡강이여! Cửu Long Giang ta ơi!

 

옛날 내가 학교 다닐 적

열 살 때 가을바람 소리를 들었고

눈을 들어 빛나는 지도를 보았다

마치 꽃 무리가 갑자기 꿈을 만난 듯이.

 

지도로 새롭고, 회칠한 벽도 새로웠다.

선생님이 커지고, 지시봉도 커져서

신선의 지팡이와 도사의 손으로

우리를 아름다운 강산으로 이끌었다.

 

가슴이 뛰었지만, 혼은 어려 이해하지 못한 것은

광활한 메콩강이 이천 킬로미터가 넘는다는 것

만리장성이 있는 중국에서부터

히말라야산맥, 동정호, 서유기, 수호지를 거쳐

메콩강은 흐른다

야생 난, 파인애플, 송진 향이 퍼지고

한여름 정오의 찌는 듯한 쯔엉선산맥

코끼리가 여유롭게 거닐고

콘 폭포는 새하얗게 웃는다

숲이 넓은 라오스

사람도 친절하네.

찹쌀밥, 찬물도 배고픈 친구와 기꺼이 나누네.

 

나는 가지만 지도는 나를 보지 못하고

아침 해가 작아지고 나비는 푸른 하늘을 난다

신선한 대나무, 가지 위의 두견, 반짝이는 이슬

옷을 벗고 강물을 헤치며 나는 노래한다.

메콩강은 흐르고, 메콩강은 노래한다.

숲을 멀리하고

평평한 땅 숨을 고르고

강물은 흰 돛을 달고 수평선으로 나간다.

 

남부

남부

메콩의 아홉 줄기는 충적토를 만들고

메콩의 논은 벼를 다 심을 수도 없구나.

메콩 나루터는 새우와 생선으로 배가 넘치고

 

두리안 향은 투비엔 땅을 덮는다.

시원한 하천은 농익은 코코넛 속에 머문다.

 

메콩은

금 같은 아홉 줄기를 낳았고

남부 농민은 땅을 베개 삼아 이슬 위에 누워

땀 흘려 수렁을 논으로 바꾸었으니

지명만 들어도 눈물이 고인다.

하띠엔, 쟈딩, 롱쩌우

고꽁, 고법, 동탑, 까마우

그 땅에는

우리 조상이 묻혔으니

자손들의 배가 결코 떨어질 수 없구나.

 

나는 장성했고

선생님은 돌아가셨다

커다란 지휘봉은 이제 깃대가 되었고

그 지명들도 이제는 옛날 얘기가 되었네

얼마나 많은 불사의 붉은 피였던가!

밍카이, 하후이떱, 레홍퐁, 쩐푸

민족의 영웅 꽃이 되었네

이팔청춘의 나이에

어린 두옥은 적의 탄약고에서 자신을 태웠고

보티사우는 혀를 깨물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충정을 지켰지

적의 탄약은 어린 죽순의 가슴에 구멍 냈지만

붉은 피는 웃었다

안녕, 호 아저씨와 불멸의 베트남

 

오늘 밤

구룡강은 여전히 파도 소리 울리고

늦은 밤, 별이 반짝인다.

어부의 등불은 노랫소리와 함께 날을 지새운다.

먼 동탑에서 어머니의 자장가가 들리고

호 아저씨는 노랫말 되어 널리 퍼졌다.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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