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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의 아세안 ABC 28] 동남아는 중국과 인도 중 어느쪽이 편한가?

인도를 더 편하게 느낀 이유... “인도는 스며들었고 중국은 밀고 들어왔다”

 

동남아 친구들에게 종종 묻는 질문이 있다. “중국과 인도 중 어느 나라가 더 편한가?”

 

대부분은 외교적 미소를 지으며 “둘 다 중요하다”고 답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세안과 교류하며 느낀 건, 속내는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대체로 인도를 중국보다 덜 부담스럽게 느끼는 분위기가 있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역사로 돌아가야 한다.

 

중국은 오랫동안 자신을 천하의 중심으로 보는 중화질서 속에서 주변국과 관계를 맺었다. 베트남은 약 천 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에도 명청 시대의 베트남, 인도네시아 및 버마 침략의 기억을 남겼다. 오늘날 남중국해 문제까지 겹치며 동남아 일부 국가에는 중국에 대한 역사적 경계심이 여전히 존재한다.

 

반면 인도는 달랐다. 인도 문명은 군대보다 바다를 통해 동남아로 들어왔다. 계절풍을 타고 이동한 상인과 승려들은 힌두교와 불교, 산스크리트 문자, 왕권 개념, 서사시와 상업 문화를 함께 전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문명, 인도네시아 자바와 발리 문화, 태국 왕실 의례 곳곳에는 지금도 인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중요한 건 동남아 국가들이 이를 대체로 강요된 지배보다 선택적 수용으로 기억한다는 점이다. 현지 왕조들이 필요에 따라 인도 문명을 받아들이고 자신들 방식으로 변형했다는 인식이다. 중국식 조공체계와는 결이 달랐다.

 

물론 인도 역시 항상 평화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1세기 남인도의 촐라왕국은 오늘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반도 일대의 해상왕국 스리비자야를 공격했다. 무역로와 해상 패권을 둘러싼 군사 원정이었다. 다만 중국 왕조처럼 장기간 직접 통치를 남긴 사례는 드물었다.

 

오히려 동남아에서 인도에 대한 복합적 감정은 근대 영국 식민지 시기에 더 강하게 형성되었다.

 

영국은 인도를 단순 식민지가 아니라 제국 운영의 핵심 거점처럼 활용했다. 인도는 영국 식민행정의 인력 공급기지 역할을 했고, 버마(현 미얀마), 말라야, 싱가포르로 대규모 인도인 이주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경찰, 철도, 항만 노동, 행정, 금융, 세금 징수 등 식민통치의 실무를 담당했다.

 

특히 버마에서 그 기억은 지금도 민감하다. 당시 영국은 인도계 관리와 금융업자들을 대거 활용했다. 벵골계 금융업자들은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토지를 담보로 잡았고, 타밀계 공무원과 경찰은 식민행정을 집행했다. 버마인들 눈에는 인도인이 단순 이주민이 아니라 “식민 권력의 얼굴”로 비쳤던 것이다.

 

1930년대 버마에서 반인도 폭동이 발생한 배경에도 이런 구조가 있었다. 경제 불평등, 토지 상실, 식민지배에 대한 분노가 인도계 공동체를 향해 폭발한 것이다. 오늘날 미얀마 사회 일각에 남아 있는 외래 상업민족에 대한 경계심에도 이러한 역사적 기억이 깔려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형성되었다. 영국은 말레이인은 농업, 중국계는 상업, 인도계는 플랜테이션 노동이라는 식으로 민족별 역할을 구분하는 분할통치를 실시했다. 특히 남인도 타밀계 노동자들은 고무농장과 철도 건설 현장으로 대거 이주했다.

 

문제는 이러한 식민지 경제 구조가 독립 이후에도 사회적 거리감과 민족 갈등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일부 말레이 민족주의 시각에서는 중국계와 인도계 모두 식민경제의 유산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동남아 다수는 여전히 인도를 중국보다 덜 위협적인 존재로 느낀다. 핵심은 힘을 행사하는 방식의 차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조공질서와 군사력, 최근에는 경제 압박과 남중국해 진출의 기억이 강하다. 반면 인도는 문화, 종교, 상업 네트워크 중심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컸다. 동남아 입장에서는 “인도는 스며들었고 중국은 밀고 들어왔다”는 역사적 인식 차이가 존재하는 셈이다.

 

여기에 현실적 계산도 작용한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의 경제력을 필요로 한다. 동시에 중국 의존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도 우려한다. 그래서 인도를 전략적 균형자 가운데 하나로 본다.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도가 동남아에서 절대적 호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인도의 느린 의사결정 구조, 열세인 인프라 투자 역량, 힌두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 과거 식민행정 협력의 기억 등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된다. 동남아는 어디까지나 철저한 실용주의 공간이다.

 

결국 동남아가 진정 원하는 것은 어느 한 강대국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 인도,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며 살아남는 것이다. 그것이 아세안 외교의 본질이자, 지금도 이어지는 ‘아세안 웨이(ASEAN Way)’의 현실적 모습인지도 모른다.

 

글쓴이=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jisuh0803@gmail.com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 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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