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은 무엇이고, 아세안은 어디로 가고 있나, 그간 우린 아세안 어떻게 접근했나, 그럼 우리는 이런 아세안을 앞으로 어떻게 접근해야하나
1. 아세안은 무엇인가
(용어 구분의 다양성)
우리가 아세안을 다양한 의미로 사용한다. 동남아와 아세안 그리고 동남아 및 아세안 개별 국가들간 섞어 쓰기 때문이다.
동남아는 동북아, 유럽, 중남미, 중동처럼 유럽중심으로 한 지리적 분류이다. 물론 동남아라는 용어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인도로 진출하자 연합군이 이를 막기위해 실론, 지금의 스리랑카에 동남아사령부를 출범한데서 최초 유래했고 그 이후 냉전이 계속되자 동남아 용어가 일반화 되었다. 그전에는 중국에서 남양으로 불리웠다. 동남아는 이런 이름이 있기전에부터 있었고 그 역사는 2천년이 넘는다.
아세안은 동남아국가들이 만든 지역 국제기구다. 1967년 방콕 선언으로 설립되었으니 내년이 60년이다. 유럽국가들의 지역기구 EU의 동남아판이다.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으로 동남아 국가 모두가 아세안 회원국이니 일반적으로 '동남아=아세안'으로 부럴 수 있으나 엄밀하게 말히면 동남아는 지리적 구분이고, 아세안은 국제기구적, 즉 제도적 구분이다.
동남아 및 아세안 개별국가들은 동남아 지역에 있는 국가들과 지역기구로서 아세안 회원국 11개 개별국가를 의미한다.
동남아는 지리적 형태에 따라 구분하면 바다를 끼고 있는 해양 동남아 6개국(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동티모르)와 중국과 인도사이에 낀 대륙 동남아 5개국(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태국)으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
생태계에 비유하면 동남아 및 아세안은 숲, 동남아 및 아세안 11개국은 나무, 해양 동남아와 대륙 동남아는 숲과 나무의 중간격인 군락 정도로 볼 수 있다. 외교적 용어로는 다자, 소다자, 양자로 구분할 수 있다.
(1967년아세안 출범)
아세안 설립과 발전은 당시 역내외 환경과 상호 관련이 있다. 따라서 아세안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역내외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세안은 각 시기마다 지역적 및 글로벌 도전 과제를 극복하며 확장과 통합을 이어갔다.
1967년 아세안은 외교장관간 방콕선언을 통해 냉전 시대의 지역 불안정, 특히 동남아시아 내 공산주의 확산의 우려에 대응하여 설립되었다. 당시 주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지역 내 안정을 촉진하고 미국과 소련 등 외부 강대국의 영향력에 대한 균형을 잡기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전면에 지역 안정과 발전 등 경제적, 사회적 목표를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안보위협이었다. 집단으로 이러한 외부 위협에 대응하자는 의도였다.
당시 소련과 중국의 공산 배후 세력을 둔 당시 베트남발 공산화가 최대 안보위협이었고, 인도네시아 수카르노의 '대인도네시아(Raya Indonesia)' 야망을 제도권내 내부화하려는 내부 의도도 있었다.
좀더 단순하게 말하면, 역외적으로 베트남발 공산화 차단과 역내적으로 '대인도네시아' 제도속 편입이 아세안 출범의 핵심 동인이었다.
(1970년대: 기초 구축과 협력 강화)
미국이 베트남전 패배로 동남아에서 발을 빼자 역내 안보 환경이 변했고, 이에 따라 설립 후 10년만에 열린 1976년 발리 정상회의는 아세안 최초의 정상회의로, 발리 선언을 채택하며 정치, 경제, 사회적 협력을 제도화했다.
발리 선언은 아세안 국가들 간의 상호 의존성을 증대하고 지역 내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 위한 장기적인 협력 의지를 천명했다. 소위 아세안협력선언 I (ASEAN Concord I)가 채택되었다. 이는 아세안 회원국들이 상호 존중과 주권 존중의 원칙을 바탕으로 협력하는 것을 명시했다. 2008년 아세안 헌장이 채택되기전까지 비공식 아세안 헌법 역할을 했다.
(1980년대: 경제 협력 강화와 외교적 영향력 확대)
경제 협력: 1984년 브루나이 가입: 아세안의 여섯 번째 회원국으로, 아세안의 경제 협력과 외교적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이 시기 아세안은 경제 성장과 무역 촉진을 위해 무역 장벽을 낮추는 정책을 추진했다. 아세안 회원국 간 자유 무역을 활성화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외교적 영향력: 아세안은 동남아시아 내에서 독립적인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비동맹 정책을 고수했다. 동서 냉전의 갈등 속에서도 외교적 중립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1990년대: 회원국 확대와 경제적 통합(중국의 부상 재도권 편입 실패, 배트남과 인니 제도화 편입은 성공)
회원국 확대: 1995년 아세안의 첫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가입하면서 지역적 범위가 확장되었다. 1997년 라오스와 미얀마 가입, 1999년 캄보디아 가입: 회원국 수가 10개국으로 확대되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다원성이 반영되었다.
경제 협력: 1992년 아세안 자유무역지대 출범: 아세안 회원국 간의 무역 장벽을 제거하고 경제적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출범했다. 이는 역내 경제 협력의 중요한 단계로, 아세안 내 단일 시장을 목표로 했다.
정치 및 안보 협력: 1994년 아세안 지역 포럼(ARF) 출범: 아세안은 ARF를 통해 역내 외교 및 안보 문제에 대한 협의를 확대하고, 다양한 안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이는 아세안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 법적, 제도적 통합의 심화)
아세안 헌장: 2007년 아세안 헌장 채택을 통해 아세안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고 운영 절차를 명확히 한 헌장이 채택되었다. 헌장은 아세안을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직으로 발전시키며, 의사 결정 과정과 행정 구조를 정비했다.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03년 인도네시아에서 개최한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협력선언 II'을 채택하여 아세안 공동체 건설에 합의하였다. 아세안 헌장이 2007년 정상회의에서 채택되었고, 2008년 12월 15일 발효되었다.
(2020년대: 팬데믹 대응과 새로운 도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2021년: 아세안은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위해 회원국 간 협력을 강화하고, *아세안 포괄적 회복 프레임워크(ASEAN Comprehensive Recovery Framework)를 통해 경제 회복과 공중 보건 협력을 촉진했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디지털 전환: 아세안은 2020년대에 디지털 경제, 녹색 경제,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핵심 의제로 삼고 있다. 디지털 경제 협력을 통해 회원국 간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아세안 내 전자상거래, 핀테크 등 신산업 분야에서의 협력을 촉진한다.
(아세안 이해 핵심 키워드 3가지)
첫째 키워드: 다양성 속 통일(unity in diversity)
이러한 동남아 구분의 다양성은 각 그룹별내 정치체제, 이념, 종교, 민족, 존족, 언어가 달라 그 다양성은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공통의 요소를 찾는 노력이 바로 지역기구로서 아세안이 지향하는 슬로건 다양성 속 통일이다.
정체 체제에서 보면 민주주의, 공산주의/사회주의, 권위주의가 섞여있고, 전체적으로 보아 민주주의 적자(deficit in democracy) 지역이다. 쿠데타 후 5년만에 무늬만 민주주의 체제로 등장한 미얀마와 아직도 공산당 유일체제의 베트남과 라오스, 사실상 1당 체제의 캄보디아, 절대군주제의 브루나이와 민주주의 역기어를 넣고 있는 인도네시아 등 과반수 동남아가 비민주적국가이고, 여기에 제도적 권위국가인 싱가폴을 포함하면 민주주주의 국가는 아주 소수다.
두번째 키워드: 아세안 중심성
전통 만달라 세계관의 현대판으로 아세안 주도하는 대화상대국들과의 아세안+1, 3, EAS 및 ARF다. 아세안이 제공하는 플랫폼에 대화상대국들이 모두 와 협의하며 그 중심에 아세안이 있다. 아세안중심성(ASEAN Centrality)다.
세번째 키워드: 아세안 방식(ASEAN Way)
아세안은 EU와 달리 협의와 합의의 컨선서스 방식을 선호한다.
아세안 방식은 한마디로 다양성이 큰 동남아 국가들이 갈등을 피하며 함께 가기 위해 만든 독특한 협력 문화다.
아세안 방식은 한마디로 다양성이 큰 동남아 국가들이 갈등을 피하며 함께 가기 위해 만든 독특한 협력 문화다.
첫째, 합의(consensus)를 중시하며 다수결보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을 선호한다.
둘째, 상대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비간섭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셋째, 공개 충돌보다 조용한 대화와 비공식 협의를 통해 문제를 푼다.
넷째, 느리더라도 관계와 신뢰를 유지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다섯째, 서구식 강한 제도주의보다 인간관계와 체면, 균형을 중시하는 동남아식 외교 문화다.
2. 아세안은 어디로 가고 있나
아세안은 미중 어느쪽도 지지하지 않는 중립주의를 선호하고 있다. 2019년 이후 실시된 싱가폴의 ISEAS 조사에 따르면 중국이 경제적, 지정학적 영향력에서 미국을 앞서지만, 신뢰 파트너로서는 미국이 앞선다.
아세안은 아세안 스스로 및 EU, 인도. 일본, 한국 등 제 3국을 헷징 대상국으로 선호한다.
어떨 수 없이 미중 선택의 가상 현실에선 미국이 중국을 앞선다.
아세안 경제 구조가 역외 교역이 75%이고 역내 교역은 25%에 불과해 역외 교역 의존도가 높다. 다자 무역질서 약화와 미국 우선주의 등 역외 환경 악화로 역내 교역 투자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아세안 경제공동체를 통해 역내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세안 디지털 경제를 게임 체인저로 보고 아세안 역점 분야로 보고 있다. 현재 협상 중인 아세안디지털기본협정(DEFA)가 금년 상반기 중 타결되면 연 2조불의 경제효과흘 기대하며, 이는 연 아세안 GDP 30~40% 규모에 해당한다.
또한 아세안은 11개국이 몇 그룹으로 분화되고 있다. 싱가폴, 브르나이 등 선진 그룹,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중진국 그룹, 그리고 킴보디이, 라오스, 미얀마 등 후발 아세안 그룹리다 각 그룹의 경쟁력은 각각 상이하다.
3. 그간 우린 아세안을 어찌 접근했는가
늘 강대국의 종속변수와 그들의 시각에서 동남아를 보지 않았나, 이러한 아세안과 동남아에 대해 역대 한국 정부는 아세안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해왔는지 살펴 보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아세안을 어떻게 접근할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역대 한국 정부 중 박정희 정부가 지역기구로 ASPAC(아스팍)을 주도해 동남아 국가를 묶어 접근한 것이 최초다.
다음은 90년대말 김대중 정부다. 명실상부한 아세안 정책이라고 본다. 지금의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의 선구자로서 동아시아 공동체 비전을 제시했다.
그다음에 노무현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동북아에 함몰되었고, 이명박 정부는 실용외교에 꽂혀 제대로된 아세안과 동남아 정책이 없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가 아세안과 동남아를 4강에 준하게 격상시키겠다는 비전하에 외교 인프라를 구축하고 명실상부한 아세안 및 동남아 정책을 추진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인태전략의 하부 구조로 아세안을 보아 아세안국가로부터 너무 미국 중심의 외교라는목맨 소리를 들어야했다.
2025.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실용외교의 기치하에 아세안 중시 외교를 추진하고 있으나 동남아 국가들은 체감 효과는 기대하고 있다.
4.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미국이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따라 전후 80년간의 세계 경찰 역할에서 발을 빼고 있고, 유엔 등 다자외교를 경시하고 있어 세계는 아미타프 아차리아의 말대로 글로벌 멀티플렉스(a global multiplex) 세계로의 이행있다.
그는 2040년 세계는 미국과 중국 등 지금의 강대국들도 계속 남아있겠지만 중견국가, 기업, 민간재단, NGO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간의 정치군사경제적 요인 뿐 아니라 문화 및 이념적 요소도 중요해 진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견국가들은 각자의 비교우위에 따라 특정 이슈의 선도자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유사국가간 소다자 협력체 출범도 전망한다.
세계가 이렇게 진전되면 중견국가인 한국이 아세안과의 공조를 통해 특정 이슈에서 공동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양한 관점의 입체적 접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아세안과 동남아를 생태학적 접근, 문명사적 접근 및 지정학적 접근을 고루 고려해 입체적으로 아세안 외교를 해나야 한다는 말이다.
첫째, 생태학적 접근이다.
동남아는 아열대에 속하는 덥고 습한 기후대이다.
같은 기후대라고 하더라도 대륙 동남아와 해양 동남아에 따라 우기와 건기가 다르다. 이는 산악지대와 해양을 끼고 있는지 여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대륙동남아는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해 해양동남아보다 대륙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주로 농경 문화가 중심이다 보니 해양동남아 보다 더 폐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손바닥을 하늘로 보고 펼치면 5개 손가락 사이가 주요 강이 흐르고 손가락 하나 하나가 높은 산맥으로 보면 된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대륙동남아의 인적교류나 문화는 남북으로 이동하였고, 동서로는 산과 강에 막혀 상대적으로 이동이 쉽지 않았다.
해양동남아는 수많은 섬들로 구성돼 바다가 늘 열린 공간이었다. 동서양의 중간 위치와 몬순풍으로 인해 16세기 서양 제국의 동남아 진출 이전 이슬람 상인들이 이곳에 들어와 상업활동을 했다.
동남아 2천년 역사상 당대 제국주의 세력들이 동남아에서만 생산되는 향식료를 독점하기 위해 제국주의적 진출을 한 것도 동남아 생태가 가져다준 이러한 생산물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태적 특성 때문에 주거 형태나 의식주에도 영향를 주었다. 덥고 습하며 짐슴의 공격을 막기위해 베트남을 제외하고 고상가옥이 일반적이었다. 옷도 통풍이 잘 되는 헐렁한 옷들 주류를 이루었다. 먹는 음식도 생선류가 주류였으며 젖갈류 문화가 발전했다.
열린 해양 때문에 외부인에 대해 호의적이고 결혼 또한 개방적이었다.
둘째, 문명사적 접근이다.
동남아의 생태적 특성이 동남아 문명 형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불교 및 힌두 인도 문명, 중국문명, 이슬람 문명및 기독교 문명 등 4대 외래 문명이 쉽게 전파돼 샤마니즘, 에니미즘 등 기존 토착 문화와 상호 교류를 통해 혼종성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동남아 문화는 이런 외래 문화에 흡수 동화되지 않고 독특한 동남아의 문화를 유지 발전시켜왔다.
동남아는 힌두교를 수용했지만 인도 힌두교의 배타적 카스트제도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처럼 창의적 선택이었다. 동남아 이슬람교 대부분이 수니파이지만 그렇다고 중동 수니파와 달리 온건한 편이다. 이에 따라 오늘날 동남아 문화의 혼종성(hybrid)의 모습에 아르렀다.
셋째, 지정학적 접근이다.
동남아의 이러한 생태학적, 문명사적 특징이 지정학적 접근에도 영향를 주었다.
동남아의 생태계가 가져다준 향신료와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 편리한 위치권력을 가진 동남아는 이슬람 상인은 물론 16세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화란, 영국, 프랑스, 미국 그리고 일본까지 서구세력의 식민지 진출의 동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포르투갈과 화란의 경쟁,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이 동남아 지배권을 두고 지정학적 경쟁을 벌였다. 결국 제국주의 열강은 세력권 분할을 통해 자국 이익을 가져갔다. 화란은 인도네시아를 300여년간 식민지 경영을 하였으며 영국과 프랑스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기간 식민 수탈을 했다. 그런 장기간 식민지배에 쌓인 식민지 유산이 아직도 현대 동남아에 남아있다.
글쓴이=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jisuh0803@gmail.com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 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