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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원의 동티모르워치 26] 모든 정부는 ‘구스망’으로 통한다?

독립영웅 구스망 ‘샤나나 매직’의 문법...동티모르 헌법이 열어둔 통로

 

“과반을 만드는 자가 정부를 갖는다.”

 

2007년 8월 8일, 동티모르 수도 딜리의 대통령궁에서 샤나나 구스망이 총리로 취임했다. 그해 6월 30일 총선에서 그의 정당은 1위를 하지 못했다. 원내 1당은 21석을 얻은 프레틸린(FRETILIN)이었다. 그해 3월 급히 창당한 구스망의 동티모르저항협의회(CNRT)는 18석으로 2위였다.

 

그런데 CNRT는 곧바로 민주당(PD), ASDT-PSD 연합과 손을 잡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의회다수연합(AMP)'은 65석 중 37석을 확보했다. 동티모르 정부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하무스-오르타 대통령은 8월 3일 이 연합에 정부 구성을 요청했고 닷새 뒤 구스망이 총리로 취임했다. 프레틸린은 최다 득표 정당에 우선권이 있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으나, 동티모르 헌법은 원내 1당에게 정부 구성의 선행권을 주지 않는다.

 

1위를 하고도 야당이 되는 일. 한국 정치의 문법으로는 낯설지만 동티모르에서는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딜리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이런 장면을 가리키는 현지의 표현을 수없이 들었다. '샤나나 매직(Xanana Magic)'이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구스망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기어이 상황을 뒤집어온 과정을 그렇게 불렀다. 처음 이 표현을 들었을 때 나는 정치적 냉소이거나 과장된 부분도 있으리라 짐작했다. 지내보니 둘 다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예측에 가까웠다. 정국이 막힐 때마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매직이 일어나리라 기대하는 듯했고, 실제로 여러 차례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에서 왔는가. 조항을 읽어내는 기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헌법이 통로를 열어두었다 해도, 그 통로를 지나가려면 사람들이 그를 따라야 한다. 필자가 현지에서 이해한 바로는, 매직의 뿌리는 두 곳에 있었다.

 

하나는 독립운동의 서사다. 구스망은 1975년 인도네시아 침공 이후 산으로 들어갔다. 1981년에는 동티모르민족해방군(FALINTIL) 총사령관이 되었다. 동티모르 정부의 공식 약력에 따르면 그는 1992년 11월 20일 딜리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자카르타의 치핑안 교도소에서도 저항 지도자의 역할을 이어갔다. 1999년 2월에는 가택연금으로 전환됐다. 그해 9월 7일 석방된 뒤 건국 과정을 주도했다. 동티모르에서 그의 지지는 저항의 정통성과 결부됐다. 루악도 FALINTIL 지휘관 출신이었다. 두 인물의 저항 경력은 정치적 신뢰의 중요한 기반이었다.

 

다른 하나는 2007년 그 자체다. 저항 영웅이라는 상징이 실제로 정부를 만들어내는 데 쓰인 첫 사례가 그해였다. 그 이전까지 구스망은 존경받는 초대 대통령이었으나, 2007년 이후 그는 정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1당을 제치고 연합을 조립해 총리가 된 사건은 '이 사람은 궁지에서도 뒤집는다'는 기대를 만들었고, 그 기대 자체가 다음 매직의 자원이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관찰이다. 2012년에 유권자들이 1차 투표 2위였던 루악에게 표를 몰아준 데에는, 구스망이 이미 그런 일을 해낸 사람이라는 사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요컨대 2007년은 매직의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매직의 기원에 가깝다.

 

■ 1당이 아니면서 정부를 만든다...유력하지 않던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다

 

내 눈에 각별히 남은 매직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방금 본 2007년의 장면, 즉 1당이 아니면서 정부를 만드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유력하지 않던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다만 두 유형의 빈도는 크게 다르다.

 

 

먼저 총리직을 보자. 1당이 아닌데도 정부를 만든 사례는 2007년 한 번뿐이다. 이후 CNRT는 2012년 총선에서 30석(36.66%)으로 1당이 되어 구스망이 총리를 이어갔고, 2023년에도 31석(41%)으로 1당이 되어 민주당과 연정을 꾸려 총리로 복귀했다. 두 경우 모두 1당이 집권한 것이므로 역전이라 부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희소성이 2007년의 무게를 깎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단 한 번이었기에 그것은 사례가 아니라 기원이 되었다. 그해에 증명된 것, 즉 저항의 권위로 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이후 20년간 그의 정치적 자산으로 남았다.

 

2018년의 사례는 다른 각도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CNRT는 인민해방당(PLP), 훈토(KHUNTO)와 변화진보동맹(AMP)을 구성했다. AMP는 65석 중 34석을 얻어 원내 과반을 확보했다. 공동정부는 구스망이 이끌었다. 그러나 총리직은 PLP 지도자 타우르 마탄 루악에게 돌아갔다. 구스망은 총리에 취임하지 않았지만 연합 내 영향력을 유지했다. AIIA의 수 잉그램은 루악 정부가 구스망의 영향력 아래 운영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두 번째 유형, 즉 대통령을 만드는 일은 어떤가. 여기서는 한 사례를 다른 사례들과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2012년 3월 17일 대선 1차 투표에서 프레틸린의 프란시스코 구테레스(별칭 '루올로')가 28.76%로 1위를 차지했다. 무소속 타우르 마탄 루악은 25.71%로 2위였다. 현직 대통령 하무스-오르타는 17.48%로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CNRT는 루악을 지지했고, 구스망도 그의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4월 16일 결선에서 루악은 61.23%를 얻어 당선됐다. 1차에서 3.05%포인트 뒤졌던 후보가 결선에서 22.46%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필자가 본 매직 가운데 가장 선명한 장면이었다.

 

다만 정확을 기하자면, 구스망이 지지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 일은 이 밖에도 여러 차례 있었으나 그 성격은 저마다 달랐다. 2007년 대선에서 하무스-오르타는 1차 투표 2위(21.81%)로 결선에 올라 69%로 당선되었는데, 그는 구스망뿐 아니라 1차에서 탈락한 다른 후보 여러 명의 지지도 함께 받았다. 2017년 대선에서 구스망은 오랜 경쟁자였던 프레틸린의 루올로를 지지했고 루올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 결선 없이 당선되었는데, 루올로는 원내 1당의 후보였다. 2022년 대선에서 하무스-오르타는 1차 투표에서 이미 46%를 얻어 22%에 그친 루올로를 크게 앞섰고 결선에서 62.09%로 당선되었다. 애초에 열세인 후보가 아니었다.

 

따라서 '유력하지 않던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례로 엄밀히 꼽을 수 있는 것은 2012년이다. 나머지는 그가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사실만 확인될 뿐, 그 지지가 결과를 만들었는지까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반복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2007년부터 2022년까지 네 차례의 대선에서 그가 지지한 후보는 모두 당선되었다. 호주 로위연구소는 2017년 분석에서 구스망이 2007년과 2012년에 이어 다시 한번 대통령을 사실상 지명하는 힘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국제 매체가 그를 '킹메이커'라 부른 데에는 근거가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1당이 아니면서 정부를 만든 것은 스무 해에 한 번이었고, 열세 후보를 대통령으로 뒤집은 것도 한 번이었다. 매직이라 불린 일들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그러나 드물기에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았고, 그가 누구를 지지하는지가 늘 정치의 변수로 작동했다. 그리고 2018년에는 그 영향력이 자기 자신을 총리 자리에서 비켜서게 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다만 매직에도 분명한 한계는 있었다. 2017년 총선에서 CNRT는 22석으로 2위에 그쳤는데, 이번에는 연정 구성에 실패해 야당이 되었다. 구스망은 당 대표직 사퇴를 선언하기까지 했다. 매직은 언제나 통하는 주술이 아니라, 연합을 조립해내는 정치력이 성공했을 때 사후에 붙는 이름이었다.

 

■ 매직은 규칙을 지켰다...헌법이 열어둔 통로를 정확히 읽어낸 결과

 

그렇다면 이 매직은 규칙을 어기고 이루어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헌법이 열어둔 통로를 정확히 읽어낸 결과에 가깝다. 그 통로를 이해하려면 동티모르의 통치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동티모르는 포르투갈어권 헌정 전통의 영향을 받은 준대통령제를 채택했다. 대통령과 국회는 각각 국민의 직접 선거에서 정통성을 얻는다. 대통령은 정당들과 협의한 뒤 총리를 임명한다. 총리 후보는 최다득표 정당이나 의회 과반 연합이 지명할 수 있다. 따라서 최다득표 정당에 정부 구성의 독점적 우선권은 없다. 어느 정당도 단독 과반인 33석을 얻기 어려운 다당제다. 이 구조에서는 연합을 구성하는 능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대통령 직선제도 개인의 권위가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되는 통로를 제공한다.

 

규칙이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대목도 분명히 있다. 헌법 제88조가 그렇다. 대통령은 국회가 보낸 법률을 받은 뒤 30일 안에 공포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다만 국회가 90일 이내에 재적 의원 절대다수로 원안을 다시 확인하면, 대통령은 8일 안에 그 법을 공포해야 한다. 재량이 아니라 의무다. 헌법 제95조가 정한 일부 중요 사안에 대해서만 출석 의원 3분의 2라는 더 높은 문턱이 적용된다.

 

2012년 3월 하무스-오르타 대통령은 토지 관련 법안 세 건을 거부했다. 대상은 토지법, 수용법, 부동산기금법이었다. 대통령은 수용 요건과 보상 체계의 문제를 지적했다. 국회는 당시 회기 안에 법안을 재의결하지 못했다. 해당 법안들은 회기 종료와 함께 효력을 잃었다. 이후 토지 제도에 관한 별도의 입법 과정이 진행됐다. 국회는 2017년 새로운 토지법 묶음을 가결했다. 2017년 입법은 2012년 법안의 단순한 재의결이 아니었다.

 

여기에도 조건은 붙는다. 국회가 절대다수를 실제로 모을 수 있어야 대통령이 진다. 재의결이 정족수에 못 미치면 법안은 그대로 폐기된다. 대통령의 거부가 단순한 지연으로 끝날지 법안의 최종 폐기로 이어질지는 헌법 조문이 아니라 그 시점 의회의 결속 정도가 결정한다. 국회가 아니라 정부가 만든 법령을 거부하는 경우는 또 다르다. 헌법은 정부가 이 거부를 뒤집을 절차를 두지 않았다. 스탠퍼드 로스쿨과 아시아재단이 펴낸 동티모르 헌법 교재는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정부에 남는 선택지는 대통령의 지적에 맞춰 법령을 고쳐 다시 올리거나 그 입법을 포기하는 것이다.

 

■ 영웅의 정치와 헌법의 정치가 아직 함께 굴러가고 있는 나라

 

2017년 7월 총선 결과,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프레틸린이 23석, CNRT가 22석을 얻어 어느 쪽도 과반인 33석에 이르지 못했다. 익숙한 구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매직이 작동하지 않았다. 프레틸린이 민주당(PD, 7석)과 손잡고 정부를 꾸렸는데, 둘을 합쳐도 30석으로 과반에 세 석이 모자랐다. 독립 이후 처음 등장한 소수정부였다. 야당이 된 CNRT는 인민해방당(PLP, 8석), 훈토(KHUNTO, 5석)와 힘을 합치면 35석으로 다수였다. 야당 연합은 정부의 시정연설과 예산안을 잇달아 부결시켰고, 정부는 아무것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상태에 놓였다.

 

이때 대통령은 프란시스코 구테레스, 저항운동 시절의 별칭 '루올로'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프레틸린 소속이었다. 즉 대통령과 소수여당이 같은 당이고, 국회 다수는 야당이 쥔 형국이었다. 루올로 대통령은 과반을 확보한 야당 연합에 정부 구성 권한을 넘기는 대신, 2018년 1월 26일 대통령령 제5/2018호로 국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정부 발표문은 이를 "현재의 제도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그해 5월 12일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야권 3당 연합은 65석 중 34석을 얻어 과반을 확보했고, 인민해방당의 타우르 마탄 루악이 총리가 되었다.

 

 

2년 뒤에는 그렇게 만들어진 과반 연합이 안에서부터 무너졌다. 2020년 1월, 연합의 최대 정당인 CNRT가 자기가 속한 정부의 예산안 표결에서 기권했다. 정부는 명목상 과반을 가지고도 예산을 통과시키지 못했고, 국가는 전년도 예산의 12분의 1씩을 매달 집행하는 잠정 예산 제도로 되돌아갔다. 배경에는 2018년부터 이어진 또 다른 대치가 있었다. 루올로 대통령이 사법 조사 등을 이유로 여당 연합이 제청한 장관 후보자 여러 명의 임명을 거부하면서, 정부는 여러 부처를 공석으로 둔 채 운영되고 있었다. 이 교착은 2020년 5월 연정이 재편되면서 정리되었다.

 

2017년 이후 이어진 교착에서 주목할 대목은 빈도가 아니라 출구다. 모두 헌법이 정한 절차를 통해 빠져나왔다. 국회 해산과 조기 총선, 예산 부결과 연정 재편, 거부권과 재의결이 그 통로였다. 군이 개입하지 않았고, 헌법이 정지되지 않았으며, 결과에 불복한 세력이 거리에서 정권을 뒤집지도 않았다. 다만 2018년 대통령의 국회 해산을 두고 "의회 다수를 우회했다"는 강한 비판이 학계와 논평가들 사이에서 제기되었다는 점은 함께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그 비판 역시 헌법 해석의 언어로 이루어졌고, 논쟁의 무대는 법정과 의회와 선거였다.

 

 

한국 독자에게 이 구조는 낯설면서도 익숙할 듯 하다. 우리도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가 재의결로 맞서는 장면을 최근 여러 차례 지켜보았다. 문턱의 높이는 다르다. 한국 헌법은 재의결에 재적 과반 출석과 출석 3분의 2 찬성을 요구하고, 동티모르는 국회 법률에 대해 재적 절대다수를 요구한다. 그러나 질문은 같다. 직선 대통령과 직선 국회가 서로 다른 민의를 내세울 때, 무엇이 그 충돌을 파국이 아닌 절차로 만드는가.

 

토지 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2012년 대통령의 거부로 끝나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는 이후 후속 법안을 마련했다. 새로운 토지법은 2017년에 제정됐다. 두 입법은 법적으로 동일한 법안의 연속이 아니다. 그러나 토지 권리와 공익 수용을 둘러싼 갈등은 이어졌다. 이 과정은 거부권이 정책 논의를 끝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통령의 거부와 후속 입법이 서로 다른 헌법적 단계에서 작동한 사례다.

 

딜리에서 사람들이 매직을 이야기할 때, 나는 그 말이 결국 규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1당에게 우선권을 주지 않는 조항이 없었다면 2007년의 연정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지 않았다면 2012년의 역전도 없었을 것이다. 매직은 규칙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규칙을 읽어내서 가능했다.

 

그러나 규칙만으로도 부족하다. 같은 조항은 모두에게 열려 있었지만, 그 통로를 지나간 사람은 한 명이었다. 통로를 여는 것이 헌법이라면, 그 통로를 지나갈 표를 모아준 것은 산에서 보낸 17년과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이어진 구금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권위가 실제로 정권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처음 증명한 것이 2007년이었다.

 

여기에 이 나라의 다음 질문이 있다. 헌법 조항은 문서로 남아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그러나 저항의 서사에서 나온 권위는 상속되지 않는다. 구스망은 1946년생이고, 그가 지지해 당선된 대통령들도 대부분 같은 세대다. 그들이 무대에서 내려간 뒤에도 과반을 만들어내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다만 그때는 매직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영웅의 정치와 헌법의 정치가 아직 함께 굴러가고 있는 나라, 그것이 지금의 동티모르다.

 

글쓴이=최창원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hopeseller@gmail.com

 

 

 

최창원 프로필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현, 아시아비전포럼 선임연구원

현, 한국스피치웅변협회 동티모르 이사장

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한국학센터장

전, UNDP 아름다운동티모르 만들기 프로젝트 자문관

한글 발전 및 한국어 세계화 공로로 대통령 표창(2025)

『테툼어–한국어 사전』, 『한국어–테툼어 사전』 동티모르 말모이팀 편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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