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학에 다닌 사람들 가운데에는 『사이공의 흰옷』이라는 책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낯선 베트남 작가가 쓴, 한 여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었다. 지금처럼 베트남을 여행하거나 베트남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만나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대학가 서점과 독서 모임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책을 사 혼자 읽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누군가 읽던 책을 빌려 보거나 여러 사람이 돌려 가며 읽었다는 기억도 전해진다.
책 속의 베트남 여학생들은 거리로 나가고, 체포되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1980년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대학생들의 현실과 자연스럽게 겹쳤다. 그래서 『사이공의 흰옷』은 단순한 외국 소설로 읽히지 않았다. 한 시대의 청년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었고, 사회에 눈뜨는 과정에서 만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오랫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정이 하나 있었다. 1986년 도서출판 친구에서 나온 『사이공의 흰옷―베트남 여학생의 이야기』는 베트남어 원작을 직접 번역한 책이 아니었다. 영어판과 일본어판을 거쳐 한국어로 옮긴 중역본이었다. 번역자도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도서출판 친구 편집실’ 또는 ‘편집부’로 표시되어 있었다. 한국 대학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베트남 소설이 정작 베트남어 원문에서는 곧바로 건너오지 못하고, 두 개의 다른 언어를 거쳐 우회해서 도착했다.
그로부터 20년이 2006년, 필자는 이 작품을 베트남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해 『하얀 아오자이』라는 제목으로 동녘에서 출간했다. 정식 저작권 계약을 거쳐 나온 원전 완역본이었다. 이미 한 세대의 독자에게 『사이공의 흰옷』이라는 제목으로 깊이 각인된 작품을 다시 번역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번역을 새 번역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한국 독자들이 사랑했던 책의 역사적 의미를 존중하면서도, 그동안 여러 언어를 거치는 과정에서 희미해졌을 수 있는 베트남의 언어와 문화, 시대적 배경을 되살려야 하는 작업이었다.
응웬반봉(1921~2001)이 1972년에 발표한 이 소설의 원제는 『아오 짱(Áo trắng)』이다. 말 그대로 번역하면 ‘흰옷’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작품 속의 흰옷은 추상적인 흰색 옷이 아니다. 당시 베트남 여학생들이 교복으로 입었던 흰색 아오자이다. 따라서 새 번역의 제목을 『하얀 아오자이』로 정한 것은 단순한 표현상의 변화가 아니었다. ‘아오자이’라는 베트남 고유의 문화적 표지를 살려야 소설의 주인공이 어떤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는 인물인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사이공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응웬티프엉은 가난한 농촌 출신의 여학생이다. 프엉은 비엔호아에서 홀어머니를 도와 생선을 팔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면서도 열심히 공부한다. 처음의 프엉은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다. 간호사나 교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성실하고 순박한 학생이다. 베트남산 천으로 만든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사이공의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겠다는 꿈을 품는다.
그러나 학교와 사회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프엉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디엔비엔푸 전투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교사가 체포되고, 교실 안에는 밀고자가 숨어 있다. 학생들은 과밀 학급과 비싼 학비, 강제 징집과 정치적 탄압에 시달린다. 프엉은 친구들의 상처와 희생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오직 공부에만 몰두했던 프엉은 학생회 활동과 토론에 참여하고, 마침내 학비 인하와 베트남어 사용 확대, 강제 징집 반대 등을 요구하는 학생운동에 나선다. 학생들 곁에 남아 조직 활동을 계속하려고 일부러 진급시험에 떨어지는 선택까지 한다. 친구들이 체포되고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개인적인 감정보다 자신이 맡은 책임을 우선한다.
교육부 점거 투쟁 이후 프엉은 결국 비밀경찰에게 체포된다. 감옥에서 그는 굶주림과 구타, 물고문과 전기 고문을 견뎌야 한다. 경찰은 유학과 출세를 약속하며 전향을 요구하고, 동료들이 배신했다는 거짓말로 마음을 흔들려 한다. 그러나 프엉은 동료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고문으로 피와 오물에 더럽혀진 채 갇혀 있으면서도 독방의 벽에 ‘하얀 옷은 영원히 흴 것’이라는 뜻의 글을 새긴다.
이 대목에서 하얀 아오자이는 더 이상 여학생의 교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폭력과 공포 속에서도 훼손되지 않는 양심이며, 사람이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존엄과 신념이다. 작품 후반부에서 프엉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 긴 머리를 자르고 화장하며 화려한 옷을 입어야 한다. 더 이상 겉으로 하얀 아오자이를 입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것은 언제나 흰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과 환경에서도 ‘정갈한 마음’을 지키는 일임을 깨닫는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이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프엉은 처음부터 위대한 영웅이 아니었다. 가족을 돕고 공부를 잘해 좋은 직업을 얻고 싶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가 사회적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은 거창한 이념을 먼저 배워서가 아니었다. 존경하던 교사가 체포되고, 친구가 고통받고, 가난한 학생들이 교육의 기회를 빼앗기는 모습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의 젊은 독자들은 프엉의 변화 속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베트남 학생들이 독재정권과 외세, 불평등한 교육제도에 맞서는 이야기는 당시 한국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 경험과 겹쳐 읽혔다. 이 책이 『전태일 평전』이나 『노동의 새벽』과 같은 현실 참여적 독서물과 함께 읽힌 것도 그런 이유였다. 『사이공의 흰옷』은 일반 문학 시장의 베스트셀러와는 다른 방식으로 널리 퍼졌다.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과 학생운동의 인적 네트워크, 독서 모임을 통해 유통되었고, 금서 또는 불온서적으로 분류되면서 오히려 더 강한 상징성을 얻었다.
중역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1986년 판이 수행한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책은 한국 독자들에게 베트남 문학을 알렸고, 한 베트남 여학생의 삶을 통해 청년의 양심과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게 했다. 원작의 문체나 문화적 맥락이 일부 달라지거나 축약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한국의 청년 독자들과 만나 커다란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필자는 2006년 『하얀 아오자이』를 출간했고, 이후 2007년 8월에 사이공에서 이 소설의 실제 모델이 된 응우옌티쩌우 여사 부부를 만났다. 소설 속 인물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한 시대를 살아 낸 사람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작품을 바라보는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번역하는 동안 문장으로만 접했던 역사의 한 인물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쩌우 여사는 1960년대 사이공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고 재판을 받은 실존 인물이다. 소설 속 프엉이 쩌우 여사의 삶을 그대로 복사한 인물은 아니지만, 프엉의 체포와 수감, 고문과 저항의 경험에는 그의 삶이 깊이 스며 있다. 따라서 쩌우 여사 부부와의 만남은 한 번역가가 소설의 모델을 만난 특별한 경험을 넘어, 문학 속에 기록된 역사와 그 역사를 실제로 살아 낸 사람을 연결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2022년, 필자는 15년 만에 쩌우 여사 부부를 다시 만났다. 2007년의 첫 만남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도 크게 달라졌다. 수많은 한국인이 베트남을 방문하고, 두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의 부조리 앞에서 청년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는 소설의 질문은 여전히 낡지 않았다.
두 번의 만남을 생각하면 번역은 단지 한 언어의 문장을 다른 언어로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번역은 사람의 경험을 다른 사회로 전달하는 일이며, 한 시대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새로운 언어 속에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번역할 때 번역자는 등장인물의 고통과 선택을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소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 문장 뒤에 실제로 살아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이공의 흰옷』과 『하얀 아오자이』는 같은 작품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맡은 역할은 서로 달랐다. 1986년 판은 영어와 일본어를 거쳐 들어온 중역본이었지만 민주화 운동기의 한국 대학생들에게 저항과 연대의 감정을 전했다. 2006년 판은 베트남어 원전을 직접 옮김으로써 작품의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더 충실하게 전달하고, 한국의 베트남 문학 수용을 새롭게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두 판본의 관계를 ‘잘못된 번역’과 ‘올바른 번역’이라는 단순한 대립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중역본은 원전과 일정한 거리를 만들었지만, 1980년대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강력한 독서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직접 번역본은 그동안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던 베트남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 역사적 맥락을 복원했다. 『사이공의 흰옷』이 한국 독자들이 이 작품을 처음 만나게 한 번역이라면, 『하얀 아오자이』는 독자들을 다시 원작과 베트남의 역사로 이끈 번역이었다.
198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낡은 책장을 넘기던 청년들, 2006년 원전 번역을 통해 작품을 새롭게 만난 독자들, 그리고 2007년과 2022년에 만난 쩌우 여사 부부 사이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하나로 이어 주는 것은 하얀 아오자이에 담긴 정신이다.
흰옷은 쉽게 더러워진다.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도 언제나 깨끗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두려움과 타협, 좌절과 침묵이 우리를 흔든다. 그러나 『하얀 아오자이』가 말하는 흰색은 한 번도 더럽혀지지 않은 순진함이 아니다. 고통과 폭력을 통과한 뒤에도 다시 지키려는 양심의 색이다.
한 베트남 여학생의 하얀 아오자이는 영어와 일본어를 거쳐 1980년대의 한국에 도착했고, 20년 뒤에는 베트남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되어 다시 한국 독자를 만났다. 그리고 소설의 실제 모델과 번역자의 두 차례 만남을 통해 문학의 세계에서 현실의 기억으로 되돌아왔다.
그 긴 여정을 생각하면, 한 권의 번역서는 단순히 외국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시대와 사회를 연결하고, 한 사람의 기억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기억으로 확장하는 통로다. 『하얀 아오자이』의 흰옷이 지금도 빛을 잃지 않는 이유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글쓴이=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