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2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대한민국 이재명 대통령은 또 럼(Tô Lâm)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이 주최한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 내외 환영 국빈만찬에서 양국 관계의 눈부신 발전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800년 전 이용상 왕자(Prince Lý Long Tường, 李龍祥)가 고려에 정착하면서 양국 국민 사이에 뿌려진 우정의 씨앗이 오늘날 울창한 숲으로 자라나, 한·베 양국의 굳건한 우호와 협력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봉화 K-베트남 특구'를 지정했다. 이를 계기로 한·베 공동 역사자산의 사실관계와 계승 구조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한국사회와 베트남 사회의 관심과 주목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이 되고, 더 나아가 양국의 미래세대의 지속적인 관계를 위한 기초적 바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아세안익스프레스에 특별기고를 한다.
2026년은 한국과 베트남이 800년에 이르는 역사적 인연을 기념하는 해다. 800년 전 이용상 왕자의 고려 정착과 몽골 항전, 후손들의 고려-조선 시대 활동, 봉화 충효당의 역사는 서로 다른 시대의 사건이다. 다만 이를 하나의 계보적 흐름으로 연결하되, 각 시대의 시간적 간격과 사료의 성격을 분명히 구분하는 것이 한-베 800년 역사를 올바르게 알리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 왜 지금 800년의 역사 구조를 다시 정리해야 하는가
2026년 봉화 K-베트남 밸리특구가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한국 사회에서 화산이씨(花山 李氏)와 베트남 리(李, Lý) 왕조의 역사적 인연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는 오랜 세월 한국 사회에 뿌리내려 살아온 화산이씨 후손들에게 큰 보람인 동시에, 그 역사를 더욱 정확하고 책임있게 설명해야 할 계기이기도 하다.
역사는 한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베트남 리 왕조의 성립과 발전, 왕조 교체기의 이용상 왕자 고려 이거, 고려에서의 정착과 활동, 이후 후손들의 삶과 충절, 조선시대 봉화에서 이어진 충효의 전통을 시간 순서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이용상 왕자의 몽골 항전과 수백 년 뒤 임진왜란기의 이장발 같은 시대의 인물이나 같은 사건으로 오해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 역사적 사실과 전승을 구분해 설명해야 한다
800년에 이르는 이용상 왕자와 화산이씨의 역사를 정확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 문중의 족보와 기록, 후대에 전해진 전승을 서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베트남 리 왕조(개국황제 이태조 이공온)의 성립과 발전, 왕조 교체라는 역사적 배경, 이용상 왕자의 고려 이거와 화산이씨의 형성, 후손들의 한국 사회 정착과 봉화 세거, 임진왜란 당시 이장발의 활동과 충효당 등은 관련 사료와 문중 기록, 문화유산 자료 및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선 1226년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 왕자는 고려인과 결혼해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몽골의 두 차례 침략 당시, 고려를 도와 큰 공을 세웠다. 그 공로로 ‘백마장군(白馬將軍)’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 업적을 바탕으로 이용상 왕자는 한국의 명문 성씨인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다. 비(非)중국계 귀화 성씨로 800년 전, 두 나라 문화를 잇는 연결고리가 이때 만들어진 셈이다.
특히 이용상 왕자의 몽골군 항전과 관련된 구체적인 전투 과정, 고려 조정의 처우와 책봉, 후손들의 관직과 이동 경로, 세대별 계보 등은 자료마다 표현이나 세대 계산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하나의 기록만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족보·금석문·지역 기록·한국과 베트남의 연구자료를 서로 대조하여 확인해야 한다.
또한 후대에 전해진 문중의 전승 역시 소중한 역사문화유산이다. 다만 전승을 역사적 사실과 동일하게 취급하기보다는 “문중 기록에 따르면”, “족보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후대에 …라고 전해진다”와 같이 자료의 성격을 밝혀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이용상 왕자와 화산이씨의 역사를 축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실과 전승을 명확하게 구분할수록 800년 역사의 학술적 신뢰성과 사회적 설득력은 더욱 높아진다. 따라서 앞으로의 역사 정리는 다음 세 가지 기준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① 사료와 연구를 통해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
② 화산이씨 족보·문중 기록을 통해 전해지는 역사
③ 추가적인 학술 검증이 필요한 전승과 쟁점
오는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국제학술세미나는 바로 이러한 자료들을 한국과 베트남의 학자들이 함께 검토하여, 무엇이 확인된 사실이고 무엇이 문중 기록이며 무엇을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 이용상 왕자 정착지는 황해도 옹진 화산...봉화를 정확히 설명하는 방법
봉화의 가치는 ‘이용상 왕자가 직접 봉화에 정착했다’는 데 있지 않다. 이용상 왕자의 직접 정착지는 ‘황해도 옹진 화산’으로 전해지며, ‘경북 봉화’는 후대 화산이씨가 세거하면서 충효의 역사를 이어온 중요한 지역이다.
이 구분을 정확히 할수록 봉화의 역사적 정통성은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관련 연구는 이용상의 둘째 아들 이일청 계열 후손들의 활동권역을 안동부, 오늘날 봉화 일대와 연결하여 검토하고 있다. 성씨 관련 기록도 이일청이 안동부사를 지내고 안동 내성면 토곡리에 정착했다는 문중 전승을 소개한다. 다만 보도자료에서는 이를 ‘확정된 국가사 기록’으로 단정하기보다 자료의 성격을 함께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용상 왕자가 고려에 정착한 뒤 그 후손들은 여러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넓혀갔다. 봉화는 그 후손들이 세거하며 충효의 전통을 이어온 한국 이남에 남아 있는 대표적 지역이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이장발과 그를 기리는 충효당 등 중요한 역사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 이용상 왕자의 시대와 이장발의 시대를 반드시 분리한다
이용상 왕자의 고려 이거와 몽골 침입 방어는 13세기의 역사다. 이장발의 임진왜란 참전은 1592년의 역사다. 두 인물 사이에는 수백 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
따라서 두 이야기를 바로 이어붙여 ‘이용상 왕자와 후손들이 몽골과 왜적에 맞서 싸웠다’고만 서술하면 독자가 같은 시대의 연속된 전쟁사로 오해할 수 있다.
보도자료와 전시·관광 해설에서는 ‘13세기 이용상 왕자의 고려 정착과 충절 → 고려 말·조선 초 후손들의 절의 전승 → 16세기 이장발의 임진왜란 참전 → 후대 충효당을 통한 기억과 계승’처럼 시대 표지를 분명하게 두어야 한다.
■ 베트남 ‘리 왕조’를 출발점으로 놓아야 하는 이유
화산이씨의 역사를 한국에서 시작하면 이용상 왕자의 망명과 정착만 남고, 그가 어떤 역사적 뿌리를 가진 인물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체 구조의 첫머리에는 리 태조가 세운 베트남 리 왕조와 그 시대의 역사적 의미가 놓여야 한다.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은 리 왕조를 1009년에 시작된 왕조로 소개하며, 리 태조의 탕롱 천도와 국가·문화·교육 발전을 중요한 성과로 설명한다.
그 위에서 이용상 왕자의 ‘고려 이거’를 바라볼 때, 이야기는 ‘외국에서 온 한 인물’의 서사가 아니라 ‘베트남 리 왕조의 한 혈맥이 고려 사회에 정착하고, 후손들이 한국 역사 속에서 살아온 800년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적 교류와 문화적 공존, 가치의 공유라는 흐름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동아시아외교사’에 드문 사례로 평가하고 그 시야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 오늘의 의미 - 한국 화산이씨와 베트남 Lý Family가 함께 바라보는 역사
2026년의 의미는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봉화 K-베트남 밸리와 화산이씨 역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고, 베트남에서는 리 왕조의 후손들이 서로의 뿌리와 역사적 연대를 확인하며 발대식에 이어 Lý Family 종친회가 곧 결성된다.
이 두 흐름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역사를 흡수하거나 정치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서로 다른 사회에서 살아온 후손들이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며 다시 연결되는 과정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역사 정리는 ‘뿌리에 대한 인식’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베트남 리 왕조라는 뿌리, 이용상 왕자의 고려 정착이라는 줄기, 한국 사회에서 이어진 화산이씨 후손들의 삶과 충절이라는 가지, 그리고 오늘날 양국 국민 교류라는 열매를 함께 바라보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 11월 하노이 국제학술세미나가 해야 할 일
올해 11월 하노이에서 예정된 국제학술세미나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확인하는 행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료와 전승을 학문적으로 검토하여 ‘확인된 사실·문중 전승·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을 구분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 베트남 리 왕조와 이용상 왕자의 계보 및 1226년 이거 배경
• 이용상 왕자의 고려 정착지와 화산군 책봉·몽골 항전 관련 사료 검토
• 화산이씨 족보의 편찬 과정과 1자·2자 계열 후손의 이동·세거
• 고려 말 후손들의 충절 전승과 두문동 관련 기록의 사료적 검토
• 이장발의 임진왜란 참전, 봉화 충효당의 건립과 추념 과정
• 1990년대 이후 귀향과 한·베 관계 속 화산이씨의 가교 역할
• 봉화 K-베트남 밸리 및 미래세대 교육·문화관광 콘텐츠의 역사 서술 기준
■ 한-베 800년 인연, 역사적 맥락을 생략된 ‘보도 오류’ 정정 필요
역사적인 맥락이 생략이 된 잘못되거나 오류가 있는 표현을 바로잡는 목적은 특정 언론이나 지역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봉화 K-베트남 밸리의 사회적 의미가 커진 지금, 작은 오류가 반복 인용되어 ‘공식 역사’처럼 굳어지는 것을 예방하고, 한국 사회가 800년의 인연을 더욱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앞으로 관련 보도에서는 ① 시대를 분리하고, ② 직접 확인되는 사실과 문중 전승을 구분하며, ③ 베트남 리 왕조에서 출발해 이용상 왕자와 후손들의 한국 정착사로 이어지는 전체 구조를 유지하고, ④ 한국 화산이씨와 베트남 Lý Family 어느 한쪽의 정치적·지역적 관점에 치우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정확한 역사 정리는 과거를 위한 일이 아니라, 800년 동안 받아온 한국 사회의 포용과 인연에 감사하고 미래세대에 올바른 기록을 돌려주는 일이다.”
참고·검증 자료
•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 『The Ly Dynasty (1009-1226)』 소개 자료.
최상수 서울대 역사학 교수 『한국과 월남과의 관계 1965』
• 응웬 티 타이 린 『한국-베트남 교류와 화산 이씨의 활동연구2021년2월』
• 박순교, 「Vietnam(大越) 황자 ‘李龍祥 Lý Long Tường’에 관한 연구(3) - 화산 이씨의 혈맥과 동향에 대한 추적을 중심으로」, 『인문연구』 82, 2018.
• 박순교, 「이장발(李長發)의 임란 참전과 『충효당 유집』 발행의 시말」, 『대구경북연구』 18(3), 2019.
• 국가유산포털, 「봉화충효당(奉化忠孝堂)」.
• 봉화군,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 관련 군정자료.
• Korea.net, 봉화 K-베트남 밸리 및 리 왕조·화산이씨 관련 소개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문동 관련 인물 자료(이맹운 포함 기록의 교차검토 참고).
• 화산이씨 족보·세보 및 문중 기록: 계보·관직·전승의 1차 검토 자료로 활용하되, 국제학술세미나에서 다른 사료와 교차검증 필요.
※ 주의: 이장발의 세대 표기는 공개 자료에서 13세손·14세손 등 차이가 확인된다. 이 자료에는 특정 세수를 단정하지 않았다. 두문동 72현 역시 명단과 전승 형성 과정에 학술적 쟁점이 있어 국제학술 세미나의 검증 과제로 제시하였다.
글쓴이=자료 정리: 이창근/이용상 왕자 26대손 vnlyxuongcan@gmail.com
이창근 주한 베트남 관광대사는?
이창근 주한 베트남관광대사는 2017년부터 2029년까지 베트남 관광대사직을 3대에 걸쳐 연임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 국가의 중요한 정치 전방위 조직인 조국전선위원회 중앙의원 2031년까지 3대 연임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1992년 12월 한–베 재수교되면서 당시 초대 주한 베트남 대사의 안내로 한국에 살고 있는 이씨 왕조의 후손으로 최초로 1994년 이태조 근거지인 덴도, 박닌성을 방문하여 이태조 역사적 사실을 확인한다.
그 이후 한국에 거주하던 리 왕조 후손들을 이끌고 ‘769년 만에 조상의 땅 방문’ 행사를 추진하였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사연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화산이씨’ 시조인 이용상 왕자 얘기를 처음 들은 건 1967년 10살 때였다. 이후 한국일보 등 한국 신문에 후손을 다룬 기사를 보고나서였다. 어렸을 때 잘 몰랐지만 성장하면서 큰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틈틈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 32세에 베트남을 찾아 “꿈에서도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이용상 왕자의 염원을 800년만에 이뤘다. 그는 베트남 이름 ‘리 쓰엉 깐(Lý Xuong Căn)’을 얻었다. 한–베 이중국적 1호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최초의 주한 베트남 관광대사로 임명돼 베트남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한편, 두 나라가 공유해 온 오랜 역사적 인연을 널리 소개해 왔다.
베트남 조국전선위원회 중앙의원
베트남 관광대사
베트남 해외동포연락협회 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