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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3] 도심 속 '느린' 시간여행, 국립중앙박물관을 걷다

방문객이 잘 찾지않은 박물관 뒷길-용산가족공원-석조정원-거울못
남산 보고 박물관 대동여지도-경천사지10층탑-반가사유상-백자 관람

 

바쁜 도심의 소음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자연과 역사, 예술이 숨 쉬는 공간으로 걸어 들어간다.

 

최근 ‘아트 뉴스페이퍼’ 집계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관람객 651만 명을 기록하며 세계 3위에 올랐다. 루브르(1위)와 바티칸 박물관(2위)에 이은 대기록이다. 대영박물관(4위, 644만 명)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5위, 598만 명)을 나란히 제친 순위다.

 

 

요즘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핫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위 '국중박'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이곳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단순히 전시관 본관만 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박물관의 반쪽만 보는 셈이다.

 

그러니 박물관을 둘러가는 둘레길과 붙어 있는 ‘용산가족공원’을 같이 걸어봐야 한다. 미르폭포에서 용산의 지명 유래를 알아보고, 야외 석조공원에서 국보급 석탑을 감상해보고, 거울못에 비치는 맑은 국중박 그림자에 취해봐야 한다.

 

 

길은 편하다. 그늘도 있고, 꽃길도 있고, 연못이 있다. 두 발로 걷기에 적합한 거의 평지다. 도심에 이런 공간이 국중박을 둘러싸여 있다는 점에 놀란다. 국중박 입구에서 전시실 안쪽 깊숙한 곳까지, 시간에 몸을 맡긴 채 걸었던 그 여정을 발걸음 순서대로 기록한다.

 

Part 1. 자연과 숨 쉬는 야외 산책길 (09:30–11:30)

 

09:30 정문 입구 — 여정의 시작

 

지하철 4호선과 경의중앙선 이촌역 2번 출구에서 ‘박물관 나들길’(무빙워크)로 연결된 끝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나오면 서문이다.

 

멀리 국립중앙박물관, 세계 3위 박물관이라는 무게감이 무색할 만큼 정갈한 하얀 화강암 건물이 반긴다. 웅장한 건물이 먼발치에서 시선을 사로잡으며 본격적인 시간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09:50 모란못 & 보신각종 — 숨은 호젓함과 역사의 울림

 

편의점과 커피숍 통로를 지나 뒷길로 들어서면 자작나무 오솔길을 지나면 건물 뒤편이다.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연꽃이 빛나는 모란못을 보고 꽃담과 작은 전통 문을 통과하면서 호젓한 고색풍경에 설렌다.

 

 

유물과학보존실을 지나면서 "아 여기가 아무도 보지 않은 ‘달의 뒤편’ 아니라 박물관 뒤편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뒷길이 끝나 지점에 보신각종을 만난다. 보물로 지정된 보신각종을 발견하고, 조선 시대 한양의 밤과 아침을 열던 그 울림을 떠올리며 잠시 걸음을 멈춘다.

 

보물 2호 보신각종은 조선 세조 원각사에 걸기 위해 만든 종이다. 절이 없어진 이후 광해군에 보신각으로 옮겨졌다. 오전 4시 33번, 오후 10시에 28번 울려 도성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렸다.

 

1979년 3월 보신각 종이 종신(몸통)에 세로로 약 1.5m 길이의 균열이 발견되었다. 훼손 우려로 1985년까지만(1월 1일 자정) 제야의 종으로 타종되다가 영구적인 보존을 결정했다. 지금 보신각에 걸려 있는 종은 1985년에 국민성금으로 새로 제작한 종이다. 

 

당시 경복궁에 경내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 야외공원으로 이송되었다가 2005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신축 이전으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정원(종각)으로 옮겨졌다.

 

 

10:20 용산가족공원 연결로 — 푸른 자연과의 교감

 

보신각종을 한바퀴를 돌아 다시 나뭇길을 따라가면 용산가족공원이다. 공간과 공간의 경계는 지도에서 표기된 선이 아니라 서로 닿아있는 면이다. 

 

 

국중박과 용산가족공원 담장 아닌 길 하나로 이어진다. 여기는 사실 미군부대의 골프장이었다. 그런데 1991년 미군 골프장이 이전하면서 1992년 29만 7520㎡ 규모의 임시공원으로 개장하였고,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건립되면서 용산가족공원 부지가 8만 9256㎡으로 축소되었다.

 

 

가족공원은 넓은 잔디밭이 있고 태극기공원과 장미공원과 분수가 올라오는 연꽃이 피어나는 연못이 있다. 새싹같은 유치원 학생들이 소풍이 많이 나온다. 공휴일에는 야외결혼식도 이어진다. 편안하게 공원의 울창한 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가 도심의 피로를 씻어낸다.

 

 

10:50 미르폭포 & 야외석조물 공원 — 비경과 석조 유물의 조화

 

다시 박물관 쪽으로 들어가는 문을 만난다. 문을 지나 3분이면 비밀 정원처럼 숨은 미르폭포가 나타난다. 숲에 물줄기가 쏟아지고 연못에는 새 한 마리가 서 있다.

 

 

안내판에는 미르는 용이라는 순수한글이고 용산 이름을 따 ‘미르폭포’라고 붙였다고 한다고 한다. 이 숨겨진 이곳의 벤치는 대나무로 지어졌다. 한적한 이곳에서는 조용히 침묵과 묵상을 만날 수 있는 최적지다.

 

 

미르폭포를 나와 야외에 석조물을 배치해놓은 석주물공원에 들어서면, 세월을 품은 부도와 석탑들이 푸른 잔디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이룬다.

 

이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이 눈길을 끈다. 통일신라 말~고려 초의 승탑 양식을 이으면서도 몸돌에 십자 매듭 무늬를 새긴 독특한 조형이 고려 초기 석조 예술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곳곳에 흩어진 문인석과 부도들, 태실 석함, 부처상 등은 저마다 다른 시대, 다른 절에서 옮겨와 이 정원 하나에 압축된 천 년의 조각사를 이루고 있다. 사실 이 정원 끝은 ‘보신각종’과 잇대어 있는 곳이다.

 

11:20 거울못 & 남산 전망 — 시선이 머무는 풍경

 

국중박 둘레길 야외 산책의 하이라이트는 거울못이다. 본관이 수면에 거울처럼 비치는 모습에 탄성이 나온다. 이 연못을 거울못으로 부르는 이유는 박물관 건물의 모습이 커다란 못에 비춰지게 된 데서 유래한다. 

 

연못 한편에는 쉽게 볼 수 없는 청자지붕의 팔각정 ‘청자정’이 서 있었다. 올해 ‘양이정(養怡亭)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 정자는 2009년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상징물이다. 한국 전통 건축미를 한눈에 보여준다. 양이정에서 작은 목조다리를 건너며 잠시 앉아 쉬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정겹다.

 

 

거울못을 따라 계단길을 지나면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열린마당이다. 마치 허공에 사각 창이 뚫린 것 같은 열린마당에서 한 번, 다시 계단을 밟아 올라와서 남산과 남산타워를 본다. 완전히 색다른 느낌으로 서울 랜드마크 남산을 볼 수 있다.

 

 

Part 2. 천년의 역사를 마주하다 (11:30–15:30)

 

11:30 1층 대동여지도 & 광개토대왕비 & 경천사지 십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은 총 3층이다. 총 7개의 관과 39개실에서 유물 30여만점 중 1만 50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본관에는 가방 소지자와 미 소지자를 구분해 검색대를 통과시킨다. 1층 중앙복도 역사의 길에서는 한국을 상징하는 세 가지 유물을 볼 수 있다.

 

 

우선 지난해 유홍준 박물관장 취임한 이후 실물크기로 벽면에 설치된 대동여지도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조선 후기 김정호가 제작된 지도는 거대한 작품 같다. 드론도 없는데 서울의 경우 마포와 남산이 그대로 그려져 있는 조선 시대 지리학의 정교함을 말없이 증명한다.

 

거기서 좀 더 지나면 수직으로 선 디지털 광개토왕릉비 영상이 시선을 압도한다. 디지털 영상이지만 고구려의 위대한 왕의 스케일에 절로 감탄한다.

 

 

'역사의 길' 끝자락, 높이 솟은 경천사지십층석탑 앞에 멈춘다. 하늘로 솟은 석조 예술이다. 섬세히 조각된 부처와 보살, 화려한 목조건축 양식이 돌에 그대로 구현된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 탑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무단반출되었다가 돌려받아 1960년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이후 국중박으로 왔다.

 

13:30 2층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 —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에스컬레이터로 2층으로 올라와 통로를 역주행하면 두 점의 국보 반가사유상만을 위해 조성된 '사유의 방'이 나온다. 국중박에서 가장 사랑받은 장소이자 관람객이 가장 많은 곳이다.

 

 

두 반가사유상은 모두 왼쪽다리를 내려놓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린 반가부좌(半跏趺坐) 자세다. 오른손 손가락을 볼에 가볍게 대고 사유의 순간을 포착한 6~7세기 불상이다.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많이 다르다. 화려함과 담백함, 왼쪽 국보 제78호(6세기 중후반 백제작품 추정)는 화려한 탑 모양 보관과 정교한 장식이 돋보이는 반면, 오른쪽의 국보 제83호(7세기 초반 신라 작품 추정)는 세 봉우리 모양의 간결한 삼산관을 쓰고 장식을 덜어낸 대신 통통한 가슴과 꼼지락거리는 듯한 발가락 표현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웃고 있는 조각상, 서로 다른 두 미감이 나란히 마주 앉아 은은한 조명 아래 옅은 ‘미소를 띤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반가사유상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해탈을 순간이 느껴져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14:30 3층 백자 & 청자실 — 고려와 조선의 맑은 빛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도자공예실의 백자와 청자를 본다. 한 발 한 발 좀체로 발을 떼기 쉽지 않다. 오랫동안 한 점 한 점 감상해도 될 것 같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의 순간들이다.

 

 

“지평선 위에 항아리가 둥그렇게 앉아 있었다. 굽이 좁다 못해 둥실 떠 있다. 둥근 하늘과 둥근 항아리와 푸른 하늘과 흰 항아리와 틀림없이 한 쌍이다. 똑 닭이 알을 낳듯이 사람의 손에서 쏙 빠진 항아리다.”-김환기의 ‘이조 항아리’에서

 

 

절제된 미학의 조선백자와 달항아리는 한국 문화의 절정을 보여준다. 또한 비색이 영롱한 고려청자의 곡선미 또한 한국 도자의 최고 예술성, 흙과 불이 빚어낸 예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청자실에서 재미난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안내인이 다가와 이중섭의 어린이 스케치나 소 그림 모습을 검색해 그 모습들이 청자에 있는 무늬와 같다고 너무 비슷하다고 알려주어서다. 실제 이중섭의 그림에는 우리 도자기에 있는 그림들이 유사한 작품들이 발견된다는 설명이 쉽게 이해가 된다. 

 

Part 3. 여운을 품고 돌아가는 길 (15:30–16:00)

 

15:30 뮷즈(MU:DS) 샵과 — 감동을 일상으로

 

뮤지엄과 국즈의 합성어인 뮷즈(MU:DS).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부터 실물크기의 백제금동대향로, 고려청자 문양 생활용품까지, 전통 유물을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상품들 사이에서 오늘의 감동을 간직할 소품 하나를 고른다.

 

 

뮷즈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랩몬스터, 본명 김남준)가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다. 한때 품절사태를 맞기도 했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은 넷플릭스 전세계 1위에 오른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소개된 이후 한국뿐만이 아니라 글로벌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특히 호랑이 캐릭터 ‘더피’와 까치 캐릭터 ‘서씨’에 영감을 준 전통 민화 ‘작호도(鵲虎圖)’ 그림으로 만든 배지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방문러시와 함께 연일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품절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제 박물관은 자체로 '관광명소'가 되었다. 정부는 전시-관람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18년간 이어진 국립중앙박물관 무료 관람정책을 손질하고 유료화를 추진하고 있다. 

 

전세계 박물관 관람객 3위에 오른 국립중앙박물관 올해 1~8월 누적 관람객은 525만 4884명.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1% 늘었다.  외국인 관람객은 두 배(29만 1460명)로 늘었다. 전체 관람객의 약 5.6%다. 

 

 

국중박을 돌아보고 나오는 발걸음은 처음보다 훨씬 가볍다. 자연 속을 걸으며 머리를 비우고, 세계 3위라는 숫자가 과장이 아님을 증명하는 유물들 앞에서 마음을 채웠다.

 

또한 국중박은 숙제 해결하듯 한 번 보고 말 도장을 찍는 장소가 아니라 "보면 볼수록 다시 보고 싶은 진국"의 장소였다. 

 

타임슬립(time slip)이라고 했던가. 도심 한복판에서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서로 연결된 타임라인을 갖는 일. 이 특별한 타임슬립은 지친 일상에 깊은 휴식과 영감을 남긴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둘러본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의 새 매력에 저절로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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