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은 더 이상 낯선 나라가 아니다. 수십만 명의 결혼이주민, 노동자, 유학생이 이미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되었다. 베트남은 주요 교역국이자 전략적 협력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도 “베트남을 안다”라는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어딘가 불안정해 보인다. 문제는 무지 그 자체라기보다, 제한된 지식과 체험이 어느새 ‘이해’라는 이름으로 굳어질 때 발생한다.
최근 베트남의 사회-문화를 소개한다는 일부 서적과 교육 자료를 살펴보면, 단순한 사실 착오를 넘어 인식의 틀 자체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이는 개별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국 사회에서 출판물과 교육 자료를 통해 재생산되는 베트남 인식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이러한 문제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 제도와 헌법을 ‘부분 인용’으로 이해하는 방식
― 국가를 가장 쉽게 단순화하는 방법
자주 나타나는 문제 중 하나는 베트남의 정치-법 제도를 일부 조항만 인용해 국가의 성격을 단정하는 서술 방식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 헌법을 한국 헌법과 비교하면서, 베트남에는 ‘국민주권’ 개념이 없고 영토 관련 조항만 강조되어 있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헌법의 전체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해석에 가깝다.
베트남 헌법은 ‘국가가 인민에 의해 구성되고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인민에게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물론 공산당의 영도 조항이 국가 권력 구조를 규정하는 핵심 조항이라는 점은 중요한 특징이다. 하지만, 이것이 곧 국민주권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일부 서술에서는 특정 조항만을 발췌해 “베트남은 권력이 당에서만 나오는 국가”라는 인상을 강조한다.
이처럼 부분 인용에 의존한 제도 설명은 비교 헌법적 분석이라기보다는, 이미 전제된 도식에 맞춰 정보를 배열한 결과에 가깝다. 제도의 복합성과 긴장을 살피기보다는, ‘사회주의 국가=비민주적 국가’라는 익숙한 틀을 다시 확인하는 데 그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독자는 베트남의 실제 제도 구조를 이해하기보다, 단순화된 대비 구도를 반복해서 접하게 된다.
■ 개인적 체험을 사회 전체로 확장하는 일반화
― “내가 본 베트남”의 한계
두 번째 문제는 개인의 경험이나 제한된 관찰을 베트남 사회 전반의 특성으로 확대해 해석하는 경향이다. 호찌민시에서의 체류 경험, 일부 교민과의 인터뷰, 도시 중산층과의 접촉이 곧바로 “베트남 사회는 원래 이런 곳”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지역, 계층, 종족 간 차이가 매우 큰 사회다. 북부와 남부, 도시와 농촌, 낑 족과 소수 종족, 국가 부문과 비공식 경제 영역 사이의 차이는 단순한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조건이다. 특정 지역과 특정 계층에 대한 관찰을 전체 사회로 일반화하는 것은 설명의 범위를 넘어선 해석일 수 있다.
이러한 체험 중심의 일반화는 교재나 강의 내용을 통해 학습자에게 전달될 경우, 특정 사회를 고정된 성격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 현장에서 특히 문제가 된다. 학습자는 “베트남 사람은 대체로 그렇다”라는 문장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가 아니라 고정된 성격을 지닌 집단을 떠올리기 쉽다. 이는 이해라기보다는, 보다 세련된 고정관념에 가까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갈등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인식
― 비가시성을 부재로 오인할 때
세 번째 유형은 갈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갈등의 부재로 해석하는 경우다. 일부 서술에서는 베트남 사회가 국민적 반목이나 공개적 대립이 거의 없는 사회로 묘사되기도 한다. 시위가 많지 않고, 언론을 통해 공개적인 갈등 장면이 자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갈등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회에서 갈등은 다양한 방식으로 관리되고 조정되며, 반드시 공개적인 시위나 충돌의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베트남 사회 역시 토지 수용 문제, 종교 활동에 대한 규제, 환경과 개발을 둘러싼 갈등, 노동 분쟁, 소수 종족 관련 문제 등 여러 쟁점을 안고 있다. 다만 그것이 익숙한 서구적 표현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갈등의 존재 여부를 표현 방식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회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접근이다. 이는 정치적-제도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조용함’을 문화적 특성이나 국민성으로 환원하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지도자와 문화를 신화화하는 서술
― 이해가 숭배로 바뀔 때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국가 지도자와 문화를 도덕적-신화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다. 특히 호찌민에 대한 설명에서 이러한 방식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있다. 일부 서술에서는 그를 독실한 불교 신자이자 도덕적 완성자로 그리며, 베트남 사회의 통합과 갈등의 약화를 그의 정신적 유산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지배적인 해석 중 하나는 호찌민을 개인적 신앙의 차원보다는 정치적-상징적 인물로 이해하는 시각이다. 그는 종교를 개인적 신념의 표현이라기보다, 역사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그의 이미지를 개인의 도덕성이나 신앙으로 환원하는 설명은, 정치적 상징이 형성된 과정을 놓칠 위험이 있다.
지도자에 대한 신화적 서술은 비판적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사회의 문제는 제도와 구조의 산물이 아니라 ‘위대한 인물의 정신’으로 설명되고, 문화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결과가 아니라 고정된 본질처럼 제시된다. 그 결과 베트남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감탄의 대상으로 남게 된다.
■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
우리는 과연 베트남을 잘 알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베트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왔지만, 정작 충분히 질문해 오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떻게 엮고 해석하느냐다. 부분 인용, 체험의 일반화, 비가시성에 대한 오해, 신화적 서술은 모두 이해를 단순화하는 방식이며, 동시에 타자를 편리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베트남 사회와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익숙한 틀로 설명하려는 유혹을 잠시 내려놓는 일일 것이다. 그 사회가 지닌 모순과 갈등, 그리고 변화의 방향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한국 중심적 비교에서 한발 물러서는 데서 비로소 이해는 시작된다.
“우리는 베트남을 잘 알고 있나?”라는 질문은 결국,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만큼 우리 자신의 인식 방식을 되묻게 하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배양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