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애월읍 어음리. 돌담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어음(於音, 소리가 머무는 곳)이라는 이름을 천천히 풀어내듯 마을을 스친다. 자동차 소리도 사람의 말소리도 이곳에서는 묘하게 느려지고, 오래된 시간의 입자가 공기 중에 떠 있는 듯하다. 그 중심에는 350년 동안 묵묵히 그늘을 드리운 팽나무가 있다. 그리고 그 그늘 아래 자리한 어음리사진관. 이름만 보면 단순한 스튜디오 같지만, 실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필름처럼 시간과 관계를 기록해온 살아 있는 아카이브다. 사진관의 셔터 소리는 이 마을의 숨결과 사계절의 온도를 한 겹 한 겹 되살리는 작은 의식처럼 들린다.
팽나무 아래 삼대가 둘러앉아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마치 옛 제주 이야기책 속에서 막 걸어나온 삽화 같다. 저마다의 나이를 품은 손마디, 햇살이 부서지듯 반짝이는 아이의 눈, 그리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의 은빛과 청보리의 생동감이 한 화면에서 스며들며 어음리 고유의 색을 만든다. SNS에서 “꽃말이 ‘고귀함’인 팽나무 아래서 진짜 고귀한 순간을 남겼다”는 후기가 쏟아지는 것도 놀랍지 않다.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그늘 아래에서 찍힌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한 조각을 기념하는 작은 의례가 된다.
방문객들의 후기는 하나같이 "시간이 사라졌다"는 고백에 가깝다. “1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 어느 가족은, 환갑을 맞은 어머니가 NG 한 번 없이 자연스러운 미소를 보여줬다며 감동을 전했다. 애견 동반으로 찾은 제주도민은 작은 연못과 돌창고, 그 틈에서 뛰노는 동물들까지 “찍을 것이 너무 많아 오히려 시간이 모자랐다”고 말했다. 만삭의 여행객은 배를 감싸 쥔 손을 슬며시 내려다보며 “32주 몸으로도 편안했다”며, 오히려 자연 속에서 더 여유를 찾게 되었다는 감상을 남겼다. 그들의 사진 속 제주 바람은 마치 뱃속 아이에게도 속삭이는 듯 부드럽게 흩어져 있다.
마을 전체가 스튜디오, 한 순간의 공기까지 잡아낸 서사
어음리사진관의 진짜 매력은 ‘사진관 울타리’라는 개념을 훌쩍 넘는 데 있다. 300평 정원이 시작점일 뿐, 폐교인 어음분교의 옥상, 돌창고, 유채·보리·메밀밭이 계절마다 이야기의 배경을 바꾸며 이어진다. 빈티지한 ‘어름비카페’를 지나 하귤나무 아래로 이어지는 길목에서는 마을 자체가 하나의 감각적 무대가 된다. 강민우 대표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어음리의 공기와 사람들의 표정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덕분에 어음리사진관에서 찍힌 사진은 단순히 ‘배경이 좋은 제주 사진’이 아니라, 한순간의 공기까지 기록된 서사적 이미지로 남는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는 가족 여행객뿐 아니라 제주국제학교 졸업생들의 우정 스냅, 기업 워크숍의 단체 사진까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모여든다. 가을 억새밭에서 드론으로 포착된 한 커플의 사진은 SNS에서 “제주에서 이런 은빛 물결을 찍을 수 있다니”라는 감탄과 함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스스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주인공처럼 변화한다.
어음리사진관의 시작은 작은 셀프 사진관이었다. 지금은 소니 A7M3 카메라와 전문 조명 세팅, 촬영 후 즉시 보정해 에어드롭으로 전달하는 효율적 시스템까지 갖춘 하나의 완성된 작품 공방이 되었다. 제주스러운 빈티지 톤으로 인화된 사진을 나무 액자에 걸어두면, 집 한 벽면이 순식간에 제주로 연결되는 작은 입구가 된다. 여름방학에 아이들과 촬영한 가족은 “가을이 온 것 같은 분위기로 찍혀서 사계절이 다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고 말했고, 반려동물 촬영을 도운 ‘지슬’의 세심한 케어는 반려인들에게 “이곳만큼 따뜻한 곳은 없다”는 평가를 얻었다.
350년 동안 이 마을을 지켜온 팽나무가 그러했듯, 어음리사진관은 제주가 유난히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품는 장소다. 오늘도 사진관 앞을 스치는 작은 웃음소리와 돌담에 반사된 햇빛, 바람의 결은 다음 세대를 향해 흘러갈 또 하나의 기록이 된다. 제주의 시간을 거꾸로 되감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어음리사진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