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궁(Independence Palace)은 과거 남베트남 대통령의 집무실이었다. 프랑스 식민 시절 인도차이나 총독의 관저로 지어졌다. 프랑스 철수 후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대통령궁’으로 불렸다.
여기도 나의 두 번째 방문이다. 1962년 폭격으로 파괴되어 현대 건축으로 재건축된 이 건물은 1960년대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베트남 최초 로마상 수상 건축가 응오 비엣 투가 설계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길할 길(吉)’자 모양을 띠고 있다. 정면에서 보면 ‘흥할 흥(興)’ ‘중심 중(中)’ 자 등 형상이 나타난다. 동양의 철학과 서양의 모더니즘이 절묘하게 조화된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1975년 통일 이후 ‘통일궁’으로 불린다.
이 건물이 역사적인 장소가 된 것은 1975년 북베트남군의 두 탱크(843호, 390호)가 담장을 밀고 들어가면서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제조된 T59 전차 390호는 1960년대 베트남에 배치되었다. 소련제 T54 전차 843호는 1972년 인도되었다.
이 사건은 베트남 통일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장면이 되었다. ‘사이공 함락’이자 ‘사이공 해방’의 순간이 되었다. 두 대의 탱크 앞에서 서보니 역사적인 순간이 스쳐간다. 나도 역사적인 인물이 되는 것 같았다.
미국은 1955년 11월 1일 전쟁을 시작했다. 미군 철수는 1973년 3월이었고, 종전일(베트남 통일)은 1975년 4월 30일이다. 그래서 이날을 ‘해방기념일’로 부른다.
통일궁은 현재 박물관 및 국가 회의 장소로 쓰인다. 전세계에서 찾아온 방문객으로 항상 북적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가장 많은 이들이 서양인 단체 관광객들이다. 전세버스를 타고 내려 단체적으로 관람한다.
워낙 큰 건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도 큰 문제가 없다. 복도를 따라 가면 대통령 집무실과 연회장의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를 볼 수 있다. 기타 공연 무대와 회의실, 침실이 갖춰 있고, 관람객에게 다 공개하고 있다.
이 건물이 기억하는 상징적인 사건은 헬기승강장에 있는 UH-1 ‘휴이’(Huey) 헬리콥터의 ‘운명’이다.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 당시, 8년간 집권을 하고 있던 남베트남의 응우옌 반 티우(Nguyễn Văn Thiệu) 대통령이 이 헬기를 타고 탈출하려 했다.
하지만 북베트남 편에 섰던 남베트남 공군 조종사 응우옌 타인 쭝(Nguyen Thanh Trung)이 F-5E 전투기를 몰고 와 통일궁을 폭격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휴이 헬리콥터가 전투기의 사격을 받은 곳 등이 표식이 되어있다.
1975년 4월 26일 반 티우는 가까스로 미군의 수송기를 타고 부인 응우옌 티마이와 2명의 자식들과 함께 남베트남으로부터 달아났다. 미국 중앙 정보국의 도움으로 그들은 미국에 정착하기 전에 타이완으로 망명하였다가 영국에서 살았다고 한다.
망명시 약 16톤 금괴를 가지고 나가려는 일화처럼 군 장성-정부요직을 사고 파는 ‘매관매직’와 마약 및 원조 물자와 군수품 횡령, 밀수 거래 배후 의혹 등 극심한 부정부패로 남베트남 몰락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통일궁 관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하 벙커를 찾아보는 것이다. 지하 벙커는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과 군 지도부가 사용했던 실제 작전 지휘소다.
작은 방마다 철제 책상이나 통신시설이 들어서있다. 72.5m 길이의 터널 시스템과 폭탄 공격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구조다. 옛날식 전화기, 무전기, 텔렉스 등 1960~70년대 통신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자와 AI로 수행하는 이란-미국전쟁과 다른 방어다.
뛰어난 건축물인 통일궁은 지하벙커(전시 작전실)부터 옥상 헬기장까지, 단순한 관저를 넘어 전시 지휘소로의 기능을 완벽히 갖춘 ‘요새화된 건축물’로 평가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