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말의 해다. 해마다 반복되는 띠의 순환이지만, 유독 새해를 앞두고 사람들은 자신의 띠, 가족의 띠 그리고 다가올 해의 의미를 다시 떠올린다. 띠는 흔히 ‘전통’ 혹은 ‘미신’으로 가볍게 소비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띠는 한 사회가 인간관계와 삶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장치다. 특히 같은 십이지(十二支) 체계를 공유하는 한국과 베트남은, 유사한 틀 속에서 매우 다른 방식으로 띠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 십이지의 상징, 한국과 베트남서 다르게 작동하는가?
한국과 베트남은 모두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축·인·묘로 이어지는 십이지 체계를 공유한다. 다만 한국의 토끼띠는 베트남에서는 고양이 띠로, 소띠는 물소 띠로 대응하는 등 일부 차이가 존재한다. 그 외의 동물들은 기본적인 대응 관계를 공유하지만, 각 동물에 부여되는 상징과 민속적 해석에서는 문화적 변주가 나타난다.
십이지 체계는 단순한 동물 분류가 아니라, 음력을 기반으로 한 시간 인식 체계이자 자연 질서를 인간 삶에 대응시키는 세계관이다. 해와 달, 계절의 순환, 인간의 생애를 하나의 구조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십이지는 ‘시간을 말하는 언어’에 가깝다.
병오년의 ‘오(午)’, 즉 말은 두 문화권 모두에서 활동성, 이동성, 에너지, 자유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상징이 실제 삶의 규범과 판단에 적용되는 방식은 동일하지 않다. 또 우리처럼 붉은 말, 파란 용 등과 같은 특별한 해를 상징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냥 말의 해, 용의 해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화의 차이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 띠: 상징으로 남은 한국의 전통
현대 한국 사회에서 띠는 주로 상징적 의미에 머문다. 결혼을 앞두고 “띠 궁합을 한 번쯤 본다”거나, 새해 인사에서 “올해는 무슨 띠의 해”라고 언급하는 정도다. 사 층(子–午, 卯–酉 등)이나 삼합 개념이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혼인이나 삶의 중요한 결정을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혼인이 개인의 선택으로 재구성되어 온 역사적 흐름과 깊이 연결된다. 더 나아가 산업화와 도시화, 법적 혼인 제도의 변화, 과학주의와 합리주의 가치관의 확산 역시 띠의 실천적 영향력을 약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법·제도, 개인의 감정, 성격과 가치관의 조화가 결혼의 핵심 기준이 되면서, 띠는 ‘참고 정보’ 혹은 ‘부모 세대의 정서적 안심 장치’로 기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 한국에서 띠는 행동 규범이라기보다, 전통을 환기하는 문화적 장식물에 가깝다.
■ 띠: 규범으로 작동해 온 베트남의 민속 장치
반면 베트남에서 띠, 특히 띠 궁합은 오랫동안 훨씬 강한 규범적 힘을 지녀왔다. 전통 베트남 사회에서 혼인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었다. 노동력과 재산의 결합, 후손의 재생산, 나아가 마을 공동체의 안정과 직결된 사안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띠 궁합은 단순한 점술이 아니라, 혼인의 실패 가능성을 사전에 관리하기 위한 문화적 ‘불확실성 관리 전략’으로 기능했다.
여기서 띠 궁합은 초자연적 예언이라기보다, 혼인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위험을 미리 서사화하고 조정하는 실천적 장치였다. 베트남의 띠 궁합 담론은 매우 구체적이다. “잘 맞는다 / 안 맞는다”라는 이분법에 그치지 않고,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점은 어디인지, 어느 쪽이 더 양보해야 하는지, 경제적 기반이 있으면, 관계가 유지 가능한지까지 서사적으로 설명한다. 이는 띠 궁합이 사실상 혼인 생활의 행동 지침서 역할을 해 왔음을 의미한다.
특히 베트남의 궁합 담론은 혼인을 성향 조합에 따른 갈등 관리의 문제로 해석하며, 조건부 윤리를 통해 불리한 궁합의 조정 가능성을 열어 둔다는 점에서 매우 실천적이다. 예를 들어, “호랑이띠와 염소띠는 기본적으로 성향 차이가 크다. 그러나 호랑이띠가 염소띠에게 확고한 정신적·현실적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두 사람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라고 보는 것이다.(Mai Uyên, 2018).
■ 성격 유형화와 이상적 가족 모델: 젠더 규범의 차이
베트남 민속에서 각 띠는 일정한 성격 유형과 생활 태도를 부여받는다. 소띠는 성실하고 보수적이며, 말띠는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돼지띠는 관대하고 정서적 안정성이 강하다는 식이다. 이러한 유형화는 개인의 실제 성격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사람을 이해하고 관계를 예측하기 위한 문화적 틀에 가깝다.
더 중요한 점은, 좋은 궁합으로 평가될 때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가치들이다. 정서적 안정, 상호 존중, 경제적 책임, 가정 중심성. 띠 궁합 담론은 결국 “이상적인 부부란 무엇인가?”, “안정적인 가정이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은연중에 교육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 지점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베트남의 띠 궁합 담론에는 전통적 젠더 규범이 깊게 스며 있다. 많은 설명에서 여성 띠의 인내와 순응, 희생이 전제되며, 남성은 가장이자 부양자로 설정된다. 띠 궁합은 이러한 가부장적 질서를 자연의 섭리처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 왔다.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유사한 요소가 존재했으나, 현대에 들어 제도적·담론적 차원에서 이러한 젠더 규범은 상당 부분 약화했다. 띠 궁합이 더 이상 실천 규범이 아니라 상징으로 남게 된 배경에는, 혼인과 성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 역시 크게 작용했다.
■ 병오년, 같은 말 다른 의미 – 상징과 규범
2026년 병오년은 두 사회 모두에서 ‘말의 해’로 불린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병오년이 “활동적이고 변화가 많은 해”라는 상징적 표현으로 소비되는 데 그치지만, 베트남에서는 말띠의 자유성과 독립성이 여전히 혼인 궁합, 가족 관계, 성격 담론 속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해석된다. 같은 동물, 같은 십이지 체계이지만, 그것이 삶에 개입하는 깊이는 분명히 다르다.
전통은 사라지는가, 변형되는가? 오늘날 베트남에서도 도시화와 교육 수준 향상, 개인 선택의 확대와 함께 띠 궁합의 구속력은 분명 약화하고 있다. 그러나 띠는 여전히 부모 세대의 언어 속에, 결혼을 둘러싼 대화의 상징적 표현으로 남아 있다. “맞는다 / 안 맞는다”라는 말은 이제 실제 판단 기준이라기보다, 감정과 불안을 설명하는 문화적 언어로 기능한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띠는 더 이상 삶을 결정하지 않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새해가 오면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내년은 무슨 띠의 해지?”
병오년을 맞아 한국과 베트남의 띠 문화를 비교해 보면, 띠는 미신과 전통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같은 십이지를 공유하면서도, 한 사회에서는 상징으로, 다른 사회에서는 규범으로 기능해 왔다.
이는 띠 자체의 차이가 아니라, 그 사회가 개인과 가족, 공동체를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의 차이다. 병오년의 말이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지금, 우리는 그 말이 어디를 향해 달려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 달려갈 것인지를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배양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