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인의 아세안 ABC 8] 지정학으로 읽는 ‘림랜드’ 아세안 선택은?

  • 등록 2026.01.24 07: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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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지정학 이론으로 읽는 세상 읽기...전략적 요충으로 떠오른 아세안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20세기 초에 제기된 지정학 이론들이 21세기 국제질서에서 다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세 가지 렌즈가 있다.

 

핼퍼드 매킨더(Halford Mackinder)의 심장지대론(Heartland), 앨프리드 머핸(Alfred Mahan)의 해양력론(Sea Power), 그리고 니콜라스 스파이크만(Nicholas Spykman)의 림랜드 이론(Rimland)이다.

 

매킨더는 유라시아 대륙의 핵심 내륙, 즉 심장지대를 지배하는 세력이 세계를 좌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심장지대 접근로를 둘러싼 전략적 행동으로 읽힌다. 러시아가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 역시, 방대한 자원과 내륙 연결성이라는 심장지대의 구조적 힘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값싼 에너지와 전략적 완충을 필요로 하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제재를 받는 이란·북한이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며 ‘비서방 축’을 확대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머핸의 해양력론은 미국과 서방의 대응 논리를 설명한다. 금융, 해상교통로, 보험과 결제, 해군력과 동맹 네트워크를 통해 바다를 지배하는 것이 곧 세계질서의 주도권이라는 관점이다. 대러 제재의 핵심이 금융과 해상 운송에 집중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오늘의 국제질서는 대륙의 버팀력과 해양의 차단력이 충돌하는 장이다.

 

여기서 결정적 공간이 스파이크만이 말한 림랜드(주변지대)다. 유라시아 대륙의 연안과 반연안, 즉 동남아, 인도양 연안, 중동, 동유럽이 여기에 해당한다. 림랜드를 누가 관리하느냐에 따라 심장지대의 팽창도, 해양세력의 봉쇄도 성패가 갈린다. 동남아가 오늘날 전략적 요충으로 부상한 이유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는 어느 한 진영에 속하기보다, 실용적 다중정렬을 택하고 있다.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에너지는 러시아와 거래하는 식이다. 최근 BRICS 확대와 ‘파트너 국가’ 제도 역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선택지를 넓히는 수단에 가깝다. 이들은 새로운 패권을 만들기보다, 기존 패권 간 경쟁을 지렛대로 삼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이 지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외교 전략은 중요한 시험대에 오른다.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확대는 구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핵심은 실용 패키지 외교다.

 

제조업 공급망, 디지털 전환, AI(인공지능)와 녹색 전환을 결합한 협력 모델을 제시하고, 개발금융·민관투자·인력양성을 연계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글로벌 사우스에는 비강압·상호이익·현지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이는 가치외교와 실용외교를 이분법으로 나누기보다, 사안별 연합을 설계하는 접근이다.

 

아세안과 동남아의 선택도 여기에 있다. 인도네시아의 BRICS 정회원 가입, 말레이시아와 태국의 BRICS 참여는 아세안이 서방을 떠난다는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보험에 가깝다. 아세안은 림랜드로서의 전략적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 글로벌 공급망과 해저 케이블, 핵심 광물은 모두 아세안의 ‘가격표’다.

 

따라서 아세안의 기본 노선은 분명하다. 아세안 중심성 유지, 다중정렬, 그리고 전략적 자율성 확보다. 어느 진영에도 완전히 편입되지 않으면서, 경쟁하는 강대국 모두로부터 이익을 끌어내는 것이다. 한국이 아세안과 협력하고자 한다면, 선택을 강요하는 파트너가 아니라 신뢰 가능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21세기 국제정치는 여전히 20세기 지정학의 그림자 속에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심장지대와 해양, 그리고 림랜드가 교차하는 지금, 아세안과 한국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진영이 아니라 전략적 상상력과 실용적 선택이다.

 

글쓴이=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jisuh0803@gmail.com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 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박명기 기자 highnoon@aseanex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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