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공습과 중동의 긴장은 한반도에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워싱턴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군사 행동을 선택하는 장면은 평양에도 하나의 학습 효과를 남겼을 것이다. 체제 생존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정권에게 핵은 협상 카드이자 생존 보험이다. 이런 국제 환경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유인은 더욱 줄어든다.
나는 북핵 문제를 30여 년 동안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북핵 전문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여러 직책을 거치며 북핵 문제의 굴곡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1993년 2월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했을 당시 나는 외교부 국제기구과 사무관이었다. 북한 발표문을 분석하며 그들이 핵 관련 용어를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사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대전 원자력연구소를 찾아 연료봉, 사용후 핵연료 처리, 우라늄과 플루토늄, 원자로, 핵분열 등 기본 개념을 다시 공부했다. 훗날 협상 문안을 영어로 정리하고 조율할 때 그 경험은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2004~2005년 베이징 6자회담 때는 공보과장으로 현장을 오갔다. 합의문 한 문장, 단어 하나에 담긴 전략적 함의를 설명하고 기자단과 정부 사이의 소통을 관리했다. 완전한 해법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협상을 통해 문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살아 있던 시기였다.
핵실험의 순간들은 지금도 또렷하다.
1차 핵실험(2006.10) 당시 나는 동남아과장이었다. 본부 위기 대응 회의에 참여해 역내 반응을 점검하고 대외 설명 논리를 정리했다.
2차 핵실험(2009.5) 때는 주일본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며 한·미·일 공조를 분석·보고했다. 제재와 억지의 균형을 고민했지만 역할은 보조적이었다.
3차 핵실험(2013.2) 때는 본부 남아태 심의관으로 아세안 성명 문안을 챙겼다. 이 역시 북핵을 직접 담당하는 부서가 있었기에 지원 역할이었다.
4차(2016.1), 5차(2016.9), 6차(2017.9) 핵실험 당시에는 주아세안대표부 대사로 재임 중이었다. 이때는 현장 담당자로서 그동안 쌓은 인맥을 활용해 본부 대표단 활동을 지원했다.
2016년 9월 5차 핵실험 직후 ASEAN 외교장관들은 이를 “유엔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으로 규탄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의 필요성을 명시했다. 이어 9월 8일에는 ASEAN과 EAS 차원의 특별 외교장관 성명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다음 날인 9월 9일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했다.
6차 핵실험 당시 나는 아세안 대사 임기를 마치고 본부 기획조정실장으로 귀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해 마닐라 EAS 정상회의 의장성명 문안을 준비하던 자카르타 EAS 대사회의에서 문안 협의에 참여했다.
당시 쉬부(Xu Bu) 중국 대사는 나와 성이 같아 비교적 소통이 원활했다. 아세안 의장국 대사였던 엘리자베스 부엔수세소(Elizabeth Buensuceso)가 문안 협상을 주도하며 강한 표현의 초안을 마련했지만 일부 문항은 합의가 쉽지 않았다. 결국 마닐라 정상회의 현장에서 최종 조율이 이루어졌다. 특히 EAS 의장성명에 CVID가 반영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북핵 관련 문안 협상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세안과의 협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쟁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냐 ‘북한 비핵화’냐의 문제였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이 북한의 핵개발에 있다고 보았지만 북한은 한국도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으므로 ‘한반도 비핵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CVID 전체를 명시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 요소만 반영할 것인가였다. 중국이 동의할 경우 CVID 전체가 가능하지만 다자 성명에서는 보통 ‘complete’나 ‘verifiable’ 같은 일부 표현만 채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2016년 5차 핵실험 직후 ASEAN 성명과 2017년 6차 핵실험 이후 EAS 정상 의장성명에 CVID가 명시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셋째, 북한(DPRK)을 직접 적시할 것인가 아니면 ‘관련 국가들(the parties concerned)’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할 것인가였다. ASEAN은 전통적으로 관련 당사자 모두의 자제를 촉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우리는 명백한 위반 행위의 주체가 북한임을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ASEAN 측은 “그것이 우리의 방식”이라고 답하곤 했다.
수년간 아세안에서 북핵 문제를 다루다 보면 ‘피로감(fatigue)’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된다. 한국 정부가 보수에서 진보로, 다시 진보에서 보수로 바뀌면서 요청의 강도와 어조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홉 차례 정권 교체를 거치는 동안 이러한 변화를 현장에서 설명하고 조율해야 했던 기억은 솔직히 난처하기도 했다.
특히 2017년 한·아세안 정상회의와 EAS 정상회의 의장성명 협상 과정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친중 성향의 라오스 의장국이 성명 발표를 미루는 바람에 회의가 끝난 뒤에도 라오스에 남아 본부와 미국, 일본 등 우방국 대표단과 함께 공동 데마르슈를 진행했던 경험이 있다.
돌이켜보면 북핵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고도화되었다. 진보 정부였던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한 차례, 보수 정부였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두 차례 등 모두 여섯 차례 핵실험이 이루어졌다. 협상의 창은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고 그 사이 기술은 계속 발전했다.
오늘의 현실은 냉정하다. 북한은 사실상의 핵능력을 보유했고 우리는 비대칭 억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핵 개발이 이미 임계점(tipping point)을 지났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억지는 구조여야 한다. 미국의 확장억제를 더욱 정교하게 제도화해야 한다. 말이 아니라 체계로 보여줘야 한다.
둘째, 위험 감축과 오판 방지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 제재와 대화는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병행해야 할 정책 수단이다. 긴장 완화 장치 없는 억지는 불안정하다.
셋째, 양자뿐 아니라 다자 플랫폼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ARF와 EAS는 완전한 해법의 장은 아닐지라도 긴장을 관리하는 최소 공배수의 공간이다. 다자 틀은 갈등을 완화하는 완충지대다.
이란 사태는 또 하나의 교훈을 던진다. 핵을 포기한 국가보다 핵을 보유한 국가가 더 안전하다는 인식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그 잘못된 교훈이 확산되지 않도록 우리는 더 단단한 억지와 더 정교한 외교를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여섯 번의 핵실험을 현장에서 지켜본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억지는 단단히 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그 균형 위에서만 한반도의 평화는 유지될 수 있다.
30년의 경험은 한 가지를 말해준다. 북핵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구호가 아니라 균형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쓴이=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jisuh0803@gmail.com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 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