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에서 수업을 마치고 가까운 호텔까지 걸어서 10분 남짓이었다. 적도의 오후 햇살이 비출 때면 그 10분은 만만치 않다. 불과 몇 분을 걸었을 뿐인데 셔츠가 등에 달라붙고,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호텔 로비 카페에서 만나는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는 더욱 강렬했다. 작지만 매혹적인 그 과자를 한 입 베어 물면,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이 혀를 감쌌다. 나는 짧은 꿀맛 같은 간식 시간을 아직 기억한다.
유럽의 남쪽 끝 포르투갈과 아시아의 거인 인도네시아가 이 작은 섬나라의 식탁 위에서 만난다. 포르투갈식 베이커리에서는 달콤한 바닐라와 버터 향이 진동하고, 인도네시아식 식당과 노점상에서는 짭조름한 쇠고기 국물 냄새가 뒤섞인다. 이 기묘한 두 향기의 공존은 두 식민통치국가가 남긴 동티모르인의 삶 속에 역사 그 자체다.
■ 포르투갈 식민지가 남긴 달콤한 유산, '파스텔 드 나타’
여행자들을 매혹하는 첫 번째 맛은 단연 '파스텔 드 나타',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다. 오랜 식민 지배가 남긴 유산이다. 리스본의 제로니모수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남은 노른자로 빚어낸 이 과자는, 19세기 초 수도원의 문이 닫히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식민지를 거쳐 동티모르까지 흘러들어왔다.
딜리의 빵집에서 갓 구워낸 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면, 겹겹이 부서지는 페이스트리의 바삭함과 혀를 감싸는 커스터드 크림의 풍미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여기에 쌉쌀한 티모르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식민지의 아픈 역사는 잠시 달콤한 낭만으로 포장된다. 관공서의 회의나 엘리트들의 파티에서 이 에그타르트는 '문명'의 상징처럼 소비된다.
필자가 자주 찾곤 했던 호텔의 사업주는 포르투갈인이었다. 그곳에서 내놓는 에그타르트는 마치 포르투갈의 향기를 이 작은 열대의 나라에 고스란히 유지시키려는 듯했다. 동티모르가 독립을 회복한 지 23년이 넘었지만 에그타르트 하나에 식민 시절의 미각과 위계가 살아 있었다.
포르투갈의 빵 문화에도 전혀 다른 얼굴이 있다. 동티모르인의 아침 식탁을 채우는 '빠운(Paun)'이다. 텁텁한 밀가루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많은 동티모르인에게 그것이 아침의 전부다. 호텔에서 빠운 한 조각에 1달러(약 1,465.50)를 받지만, 새벽 4시에 문을 여는 도매 빵집에서는 10개에 1달러다. 같은 포르투갈의 유산이되, 에그타르트는 '고급'으로, 빠운은 '생존'으로 소비된다. 식민지가 남긴 빵 문화 안에서조차 계층의 갈림이 선명하다.
■ 점령군의 맛, 그러나 서민의 위로 '박소’
시선을 조금 바꿔 보면 다른 세계가 보인다. 딜리 곳곳의 길가 키오스크와 인도네시아 식당에서 박소(Bakso)를 판다. 박소는 인도네시아가 24년 점령 기간 동안 남겨놓은 미트볼 국수다. 딜리 시내 공원에서 잠시 쉴 때면 길거리 키오스크에서 풍겨오는 짭조름한 국물 향기를 자주 맡을 수 있었다.
딜리에는 인도네시아 식당이 도처에 있고, 어디서든 박소를 판다. 특히 깔끔하게 꾸며진 식당일수록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나는 UNTL(동티모르국립대학교) 학생들과 종종 그런 식당을 찾아 함께 박소를 먹곤 했다. 탱글탱글한 쇠고기 완자와 국수에 소스를 곁들여 땀을 뻑뻑 흘리며 먹게 된다. 어릴 적 동네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시키면 그것만으로 파티처럼 유쾌해지던 기억이 있다면, 딜리에서 학생들과 박소를 나누던 순간이 꼭 그랬다.
박소와 함께 매력적인 선택도 있었다. 아보카도 주스다. 큰 컵에 아보카도 두세 개를 통째로 갈아 넣고 초콜릿을 살짝 얹은 천연 주스가 약 2달러. 한국에서 아보카도 하나에 몇천 원을 내는 것을 떠올리면 놀라울 만큼 저렴하고 신선한 열대의 호사다.
박소의 기본 가격은 미화 1달러. 두부나 미트볼을 추가하면 1달러 50센트, 2달러짜리는 이미 프리미엄급이다.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게 박소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동티모르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군대의 총칼은 증오했으나, 그들이 가져온 박소 국물만큼은 사랑했다. "위장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은 이곳에서 생존의 언어다.
■ 불편한 진실: 에그타르트가 박소보다 비싼 이유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에그타르트 하나에 1달러 50센트에서 2달러 50센트. 박소 한 그릇은 1달러에서 2달러. 숫자만 놓고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손바닥 절반 크기의 과자와 국물에 면과 미트볼이 가득 담긴 그릇의 부피를 떠올리면 체감 가격은 전혀 다르다. 포르투갈이 남긴 과자는 '고급'으로, 인도네시아가 남긴 국수는 '서민'으로 소비된다. 식민 역사의 위계가 가격표에 남았다.
이 가격의 불균형과 동티모르의 식탁이 다채로운 퓨전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결핍' 문제를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UNICEF·WHO·세계은행의 공동 아동영양 추정(JME, 2024년판)에 따르면, 동티모르의 5세 미만 아동 발육부진(Stunting)율은 약 45%에 달한다(2024년 추정 45.4%). 과거 47%대에서 거의 개선되지 않은 수치다. 세계은행은 2024년 초 보고서에서 "동티모르 5세 미만 아동의 거의 절반이 발육부진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며, 2030년까지 25% 미만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영양 투자 확대를 촉구했다.
에그타르트가 식민지의 유산이고 박소가 점령의 유산이라면, 바타르 다안(Batar Da'an)은 이 땅 자체의 음식이다. 옥수수와 호박, 녹두를 넣고 끓인 이 소박한 스튜는 동티모르에서 몇 안 되는 순수한 토착 요리다. 그러나 녹두를 하룻밤 불리고 호박을 썰어 끓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도시의 일과를 따라가지 못한다. 키오스크에서 1달러면 바로 받아 드는 박소 한 그릇이 점심시간의 현실이다. 결국 바타르 다안만으로는 아이들의 성장을 지탱하기 버겁다. 나는 점심시간마다 더 저렴한 대학의 매점에서 박소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는 학생들의 모습을 숱하게 보았다. 결국, 저렴하고 열량 높은 인도네시아식 인스턴트와 박소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식민지의 유산인 빵과 점령의 유산인 국수가 한 상에 오르는 풍경은 평화로운 '화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의 영향력도 실존한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
■ 새벽 4시의 빵집, 저녁까지 불 켜진 키오스크
흔히 외국인들은 동티모르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평하곤 한다, 반면 상반되는 장면도 있다. 빠운을 파는 도매 빵집은 새벽 4시에 문을 열었다. 공원의 박소 키오스크는 저녁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불을 켜고 손님을 맞았다.
왜 이 상인들은 부지런할까. 큰 수익은 아니더라도, 노력한 만큼 수익이 돌아오는 삶의 맥락 속에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한 나라의 국민이 게으르다, 부지런하다는 손쉬운 평가보다, 그들이 어떤 삶의 맥락 속에 놓여 있는가를 볼 필요가 있겠다. 빠운 10개에 1달러를 벌기 위해 새벽잠을 깨는 빵집 주인과, 박소 한 그릇 1달러를 위해 저녁까지 국물을 끓이는 키오스크 상인. 그들의 부지런함은 동티모르의 또 다른 진실이다.
딜리의 노을 아래서 누군가는 에그타르트를 베어 물고, 누군가는 박소 국물을 들이킨다. 통계는 이 나라의 결핍을 말하지만, 새벽 어둠 속에서 빵 반죽을 치대는 손과 저녁까지 국물을 지키는 손은 다른 희망을 담고 있다. 그 부지런함이야말로 동티모르의 숨겨진 가능성이 자리한 곳이다.
글쓴이=최창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hopeseller@gmail.com
최창원 프로필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현, 아시아비전포럼 선임연구원
현, 한국스피치웅변협회 동티모르 지부장
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한국학센터장
전, UNDP 아름다운동티모르 만들기 프로젝트 자문관
한글 발전 및 한국어 세계화 공로로 대통령 표창(2025)
『테툼어–한국어 사전』, 『한국어–테툼어 사전』 동티모르 말모이팀 편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