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니콜라우 로바토 국제공항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공항 앞을 가득 메운 텐트촌이 시야에 들어왔다.
UNHCR(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천막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뿜어내는 삶의 냄새. 독립한 지 6년이 지났는데 동티모르는 여전히 비상사태로 보였다. 1999년, 전권을 쥐고 이곳을 통치했던 UN의 실험은 대체 무엇을 남긴 걸까.
■ 폐허 위에 세운 나라: 브라질 출신 외교관 세르지우
시계를 1999년 10월로 돌려보자. 인도네시아군과 민병대가 물러가며 휩쓸고 간 자리는 참혹했다. 세계은행 기록에 따르면 인프라의 70%가 파괴됐다.
이 잿더미 위로 UNTAET(유엔 동티모르 과도행정기구)가 들어왔다. UN 안보리 결의안 1272호는 이들에게 입법, 사법, 행정의 전권을 넘겼다. 한 국제기구가 한 영토의 모든 권력을 쥔 것은 유엔 역사에 없던 일이다.
이 과업을 브라질 출신 외교관 세르지우 비에이라 지 멜루가 맡았다. 900일. 이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잿더미 위에서 헌법을 만들고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2002년 5월 20일, 동티모르민주공화국이 UN의 191번째 회원국으로 들어섰다. 유엔이 처음 해낸 일이다.
■ ‘말라이’가 아닌 ‘형제’...흰색 SUV의 두 얼굴
세르지우가 티모르인들 가슴에 남은 까닭은 그가 쥔 권력 때문이 아니었다.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외국인은 으레 ‘말라이(Malae)’, 낯선 이방인이거나 점령자였다.
세르지우는 달랐다. 청소부, 정원사, 운전기사 이름을 하나하나 외워 불렀고, 가족 안부를 물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자기 사무실을 청소하던 여성과 그 네 아이를 관저로 불러 밥을 함께 먹었다.
24년 억압 끝에 마주한 이 푸른 눈의 브라질인은 티모르인들에게 처음으로 ‘존중받는다’는 감각을 일깨워준 사람이었다.
재건의 뒤편에는 어두운 면이 있었다. “유엔, 오산 봇(ONU osan boot)—유엔은 돈이 많아!” UN 직원들의 높은 월급이 물가를 끌어올렸고, 정작 주인이어야 할 사람들은 변두리로 밀려났다.
2000년 12월 UN 직원이 교통사고로 시민을 숨지게 했을 때, 세르지우는 해당 직원의 면책특권 해제를 UN 사무총장에게 요청했다. 사고는 이어졌다. 2011년에도 UN 차량이 시민을 숨지게 하자 분노한 주민들은 돌을 던졌다. 평화의 상징이던 흰색 SUV는 상처의 상징이기도 했다.
■ ‘티모르화’는 왜 실패했나
더 아픈 대목은 ‘티모르화(Timorization)’의 좌절이다. UNTAET 초기 15개 부처 장관직을 모두 UN 국제직원이 맡았다. 동티모르인들은 자문 역할에 머물렀다. 24년간 독립을 위해 싸운 지도자들이 정작 자기 나라 설계에서 빠진 셈이었다.
세르지우는 2000년 중반부터 동티모르인 장관을 임명하며 참여를 늘렸으나 현지인 역량을 키우기엔 기간이 턱없이 짧았다. UN의 선발 및 급여 체계는 물론 국제전문가 우대 관행도 현지인 등용을 가로막았다.
공식 업무 언어는 영어와 포르투갈어였지만, 대다수 티모르인의 일상어는 테툼어였다. 회의장에서 통역을 기다리는 사이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한 현지 공무원이 내게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날마다 큰 격차를 보며 일했습니다. 우리나라인데.” UN이 떠난 뒤 2006년 군 내부 지역 갈등이 유혈 사태로 번졌다. 37명이 숨지고 15만 명이 집을 잃었다. 내가 공항에서 본 텐트촌은 그 상처의 현장이었다.
■ 폭탄테러로 산파의 죽음...딜리는 눈물바다
2003년 8월 19일, 세르지우는 이라크 바그다드 UN 본부에서 폭탄 테러로 숨졌다. 동티모르를 태어나게 한 활동이 지구 반대편에서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소식이 전해지자 딜리는 눈물바다가 됐다. 추모식에서 가장 많이 운 사람은 고위 인사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에 그의 관저에서 밥을 먹었던 그 청소부 여성이었다. “세르지우는 청소부든 국제 직원이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UN의 동티모르 과도행정은 제도적 한계가 뚜렷했다. 이 실험에 빛이 있다면, 세르지우가 동티모르인들과 맺은 관계에서 나왔다. 한국의 국제활동에도 예산, 인력, 관행 등의 제약이 있다. 그 제약이 품은 위험을 어떤 관계로 넘어설 수 있을까.
동티모르인들 기억 속에 세르지우는 UN의 관료가 아니다. 가장 추운 날 함께 밥 먹자고 집으로 불러준 사람이다. 한국이 글로벌 사우스에 어떤 이름으로 남을지, 지금 우리 손에 있다.
글쓴이=최창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hopeseller@gmail.com
최창원 프로필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현, 아시아비전포럼 선임연구원
현, 한국스피치웅변협회 동티모르 지부장
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한국학센터장
전, UNDP 아름다운동티모르 만들기 프로젝트 자문관
한글 발전 및 한국어 세계화 공로로 대통령 표창(2025)
『테툼어–한국어 사전』, 『한국어–테툼어 사전』 동티모르 말모이팀 편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