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수의 Xin chào14] 급속결혼, 죽음을 앞두고 치러지는 혼례

  • 등록 2026.02.16 08: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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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비극’의 인간적 해법...가문과 공동체 뛰어넘는 윤리적 풍경

 

베트남에는 집안에 상을 당하면 결혼을 미루는 관습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부모상을 당했을 때는 특히 엄격하여, 전통적으로는 삼년상(三年喪)에 준하는 장기간의 애도 기간에는 혼인을 비롯한 모든 경사를 삼가는 것이 마땅한 도리로 여겨졌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규범이 아니라, 죽은 이를 충분히 애도하지 않은 채 산 자의 기쁨을 앞세우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사고방식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적 규범은 언제나 현실의 조건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이 관습이 현실과 충돌하는 순간, 그것은 오히려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낸다. 이미 결혼식을 앞둔 청년에게 삼 년에 가까운 시간은 지나치게 길다.

 

특히 혼인이 개인의 선택을 넘어 가문과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결혼의 지연은 개인의 삶 전반을 좌우하는 중대한 사건이 된다. 이 지점에서 베트남 사회가 선택해 온 하나의 우회로가 바로 ‘급속결혼’이다.

 

이 관행은 베트남어로 “cưới chạy tang”(상을 피해 급히 치르는 결혼), 또는 “cưới gấp khi có tang”(상중에 급히 치르는 결혼)과 같이 표현된다. 표현 자체가 말해주듯, 이는 축복된 출발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감행되는 선택에 가깝다.

 

베트남 민속학자 판께빙(Phan Kế Bính)은 『베트남 풍속 Việt Nam phong tục』의 “장례” 편에서 입관(入棺) 이후 일정 기간 자손이 결혼을 허용받을 수 있었음을 기록하며, 이를 “상을 피해 급히 치르는 결혼”이라 명명한다(Phan Kế Bính, 1915/1975). 이는 장례 의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의 한시적 예외 조치로 이해된다.

 

 

■ 상을 피해 급히 치르는 결혼 ― ‘cưới chạy tang’의 논리

 

급속결혼의 실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베트남 소설 『시인, 강을 건너다』(호앙밍뜨엉, 2015년)에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결혼식은 이미 진행 중이다. 자손들은 마당 밖에 천막을 치고 돼지를 잡으며 피로연을 준비하고 있고, 집안은 온통 분주하다. 바로 그때, 집안의 최고 어른인 도카 할머니가 조용히 숨을 거둔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오직 가장인 리푹 씨뿐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울음을 삼키고, 어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은 뒤 가족들에게 조용히 신호를 보낸다. 아무 말도 하지 말 것, 특히 신랑 꾹에게는 절대 알리지 말 것. 이어 점술가는 날짜와 시간이 겹친 죽음은 “아주 좋지 않다”라며, 집안에 큰 화가 닥칠 수 있다고 말한다.

 

리푹 씨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유교적 도리와 가장으로서의 현실적 책임 사이에 서 있다. 소설은 분명히 암시한다. 만약 이번 혼사가 다른 자식의 결혼이었다면, 그는 주저 없이 결혼을 연기하고 장례를 치렀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번 결혼은 장애를 지닌 양자 꾹의 혼사였다. 이 혼인이 무산될 경우, 꾹이 평생 짊어지게 될 낙인과 좌절이 그의 판단을 끊임없이 압박한다.

■ 침묵으로 유지되는 의례 ― 공동체의 묵인

 

결국 리푹 씨는 어머니의 얼굴을 천으로 덮어 마치 깊이 잠든 것처럼 보이게 한 뒤, 직접 밖으로 나가 신부 영접 의례를 지휘한다. 횃불과 호롱불을 든 행렬이 밤길을 걸어 신부를 맞으러 가는 장면은 외형상 축제의 형식을 띠지만, 그 불빛은 동시에 장례의 밤을 비춘다. 생과 사, 기쁨과 애도가 하나의 장면 속에 겹치는 순간이다.

 

이 급속결혼은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지만, 동시에 완전한 비밀은 아니다. 외부에서 온 인물은 이미 집안에 죽음이 발생했음을 감지하고 있다. 그는 “이 결혼식에 꽃을 가져가면 안 된다”라고 말하며, 대신 향과 빈랑을 사 가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이는 폭로가 아니라 협조에 가깝다. 급속결혼은 개인의 거짓말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눈을 감아주는 침묵 위에서 성립한다.

 

이처럼 침묵과 묵인을 통해 유지되는 급속결혼은, 표면적으로는 규범을 어기는 예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규범이 지나치게 엄격해질 때 공동체가 선택해 온 비공식적 조정 장치다. 겉으로는 효와 상례를 존중하는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산 자의 삶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현실적 선택인 것이다.

 

■ 행복은 누구의 것인가 ― 급속결혼이 남긴 상처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신랑 꾹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기쁨에 잠겨 있다. 소설은 담담하게 서술한다. “할머니가 막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문장은 급속결혼이 내포한 윤리적 쟁점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꾹의 행복은 타인의 침묵 위에 세워진 것이다.

 

후반부에서 한 여성 인물은 이 결혼이 단순한 축하의 자리가 아님을 직감한다. 그녀는 젊은 부부의 손을 오래 붙잡고 눈물 흘리며 반지를 건네며 말한다. “머리가 희어지고 이가 빠질 때까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 축복은 순수한 기쁨이라기보다, 말해지지 않은 상실에 대한 일종의 속죄에 가깝다. 급속결혼은 결코 아름다운 풍습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을 숨기고, 누군가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치러지는 고통스러운 선택이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이 관습은 한 사회가 삶과 죽음을 어떻게 조정해 왔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급속결혼은 비극을 제거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비극을 연기하고, 분산시키며, 감내하는 방식이다. 죽음이 삶을 완전히 마비시키지 않게 하려고, 베트남 사회가 선택해 온 하나의 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인 해법인 것이다.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배양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박명기 기자 highnoon@aseanex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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