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수의 Xin chào13] 베트남에도 ‘춘향전’이 있다

  • 등록 2026.02.10 08: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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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도 전해진 춘향이야기: 변학도의 생일잔치 시 ‘애국적 시’로 전승도

 

한국 고전문학의 대표작 ‘춘향전’이 베트남의 민담 속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쉽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베트남 민속학자 응웬동찌가 수집하여 출판한 『베트남 민담집』에 「춘향낭자전」이 나오면서, 이 놀라운 사실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베트남판 춘향전’은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한–베 문학 교류의 실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한국과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중국 문화를 매개로 한 ‘동문(同文)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한자를 공통의 문자로 사용했고, 유교적 정치 질서와 문학 관념을 공유했다.

 

또한 두 나라는 외세의 침략과 식민 지배라는 비슷한 경험을 겪으며 근대에 진입했다. 이러한 조건은 문학과 사상이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이른바 ‘동문 문화권’은 단순히 한자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전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방식, 문학이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역할, 그리고 서사가 윤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는 인식까지 공유했던 문화적 토대를 가리킨다. 이러한 공통의 인식 위에서 한 나라의 이야기와 시가 다른 나라로 옮겨 가는 일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니었다. 동아시아에서 문학은 늘 국경을 넘는 존재였고, 춘향전 역시 그 흐름 속에 놓여 있었다.

 

 

■ 기록으로 확인된 베트남판 춘향전: 1910년, 한 편의 교재에서 발견되다

 

응웬동찌 교수는 ‘춘향낭자 전’ 말미에 티쏘의 글에서 가져왔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나는 베트남 문학원 응웬반호안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 사회과학도서관에 들어가서 그 책을 찾아냈다. 그 책은 필사본으로, 프랑스인 H. 티쏘가 만든 베트남어 교재 속에 ‘민담 – 춘향낭자’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표지에 1910년이라고 제작 연도가 기록되어 있다.

 

이 교재는 프랑스 총독부 소속 강사가 프랑스인을 대상으로 제작한 학습서였다. 즉, 베트남판 춘향전은 민중의 순수한 구전 설화라기보다는, 이미 정리된 이야기로 기록되어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베트남판 춘향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전승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구전 설화였을 가능성도 있으나, 현존 자료로는 문헌을 통해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티쏘는 창작자가 아니라 기록자였으며, 이미 유통되고 있던 이야기를 교육용 텍스트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판 춘향전의 줄거리는 한국 춘향전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신분을 초월한 사랑, 탐관오리의 횡포, 여주인공의 수난, 그리고 정의의 회복이라는 기본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

 

베트남판 춘향전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똥느라이로 바뀌고, 한국 판본에는 없는 여장(女裝) 설정이 추가되어 똥느라이가 여장을 한 채 춘향에게 접근한다. 이러한 변화는 베트남 전통 서사 양식에 맞게 이루어진 변형으로,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현지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티쏘는 자신의 기록 말미에서 “이 이야기를 번역해 준 사람은 베트남인이며, 이야기를 지은 사람은 알 수 없다”라고 적고 있다. 이는 베트남판 춘향전이 단일한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여러 경로를 거쳐 전달·정리된 서사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이 작품은 특정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이동과 번역, 재서술의 과정을 거친 ‘경계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 어떻게, 그리고 왜 전해졌는가? 한–베 문학 교류가 남긴 흔적

 

그렇다면 춘향전은 어떤 경로로 베트남에 전해졌을까. 20세기 초 동아시아의 인적 이동에 주목한다. 당시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와 청년들은 일본으로 유학(동유운동)을 떠났고, 그곳에서 조선의 지식인·망명객들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동유운동’ 시기, 일본은 한–베 지식인이 만나는 교차점이었다.

 

춘향전은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다. 부패한 권력에 대한 풍자, 민중의 도덕적 우위, 정의의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식민 지배와 억압의 현실을 겪던 베트남 청년들에게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이 변학도의 생일잔치에서 읊은 “金樽美酒 千人血(금준미주 천인혈), 玉盤佳肴 萬姓膏(옥반가효 만성고), 燭淚落時 民淚落(촉루락시 민누락), 歌聲高處 怨聲高(가성고처 원성고)”라는 시는 베트남에서 ‘애국적 시’로 오해되어 전승되기도 했다.

 

당시 베트남 지식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의 ‘출신 국가’가 아니라, 그 서사가 담고 있는 윤리적 메시지였다. 춘향전 속에서 부패한 관리가 처벌받고, 약자의 도덕성이 권력을 이긴다는 구조는 식민지 현실을 살아가던 젊은 세대에게 일종의 상징 언어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춘향전은 한국의 고전이기 이전에, 억압에 맞서는 이야기로 읽혔다.

 

 

‘춘향(春香)’이라는 이름 역시 중요한 단서다. 베트남 민담에서는 보기 드문 한자식 여성 이름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민담에 나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순수 베트남어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베트남에는 이미 18세기 여류 시인 호춘향(胡春香)이라는 사람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춘향’이라는 이름은 이질감 없이 수용될 수 있었고, 이는 이 이야기가 비교적 근대에 유입되었음을 시사한다.

 

베트남판 춘향전은 묻는다. 문학은 어디까지가 한 나라의 것이고, 어디서부터 공유된 유산인가. 이 이야기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베트남의 역사와 정서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이는 동아시아 문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공동의 기억’임을 보여준다.

 

베트남판 춘향전은 문학이 한 번 만들어진 뒤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이동하면서 새로운 맥락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의미를 확장하거나 변주한다. 춘향전이 베트남에서 다시 이야기되었다는 사실은, 한–베 양국이 공유했던 감정과 문제의식이 문학을 매개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베 문학 교류사는 거창한 번역 사업이나 공식 외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학생, 망명객, 통역자 그리고 이름 없는 이야기꾼들이 이야기를 옮겼다.

 

베트남판 춘향전은 그렇게 이동한 문학의 흔적이며, 동아시아가 오래전부터 하나의 문화적 대화를 이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오늘날 한–베 관계를 경제나 외교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이러한 문화적 연결은 쉽게 놓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베트남판 춘향전은 양국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나누어 온 관계였음을 조용히 증언한다. 이 작은 서사는 한–베 문학 교류사가 거창한 제도보다, 사람과 이야기의 이동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배양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티쏘의 춘향전] H.Tissot의 “춘향 낭자전”

 

번역: 배양수

출처: H. Tissot. 1910. Cours Superieur d'Annamite. Thu vien thong tin khoa hoc xa hoi. Ha Noi. pp. 96-98.

 

아주 옛날 북부 지역에 아리따운 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수선화와 같이 싱그러웠고, 그곳 사람들은 그녀를 춘향이라 불렀으며, 어떤 이들은 옥란이라고도 불렀다.

 

어느 날 춘향은 나뭇가지를 잡고 그네를 탔는데, 그날은 단오절이었고, 그곳 풍습에는 처녀라면 누구나 그네를 탔다.

 

그때 똥느라이(Tong Nhu Lai)라는 한 관리의 자제가 있었는데, 이제 막 이팔청춘의 나이로, 항상 학업에 몰두하였는데, 춘향을 본 뒤로는 그녀에게 푹 빠져서 책을 멀리했다. 어디를 보아도 춘향의 모습과 그녀의 쪽 찐 머리, 그리고 나무 사이로 오락가락하는 아름다운 발이 어른거렸다.

 

이에 하인이 똥느라이에게 걱정을 덜게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한편, 또 아버지에게 고자질하겠다고 그를 겁준 다음, 그 하인은 작심하고 “이제 큰돈을 벌 때가 되었어.”라고 말했다.

하인은 똥느라이에게 “도령께서 사천동을 나에게 준다면 춘향 아씨를 만나게 해 주겠소”라고 약속했다.

 

똥느라이는 여자로 변장하여 춘향이와 사귀게 되었고, 그가 춘향의 집으로 찾아가 인사를 할 때도 춘향의 어머니는 전혀 의심치 않았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의자매를 맺었다. 그때 춘향이 “저와 언니에게는 공자의 책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달빛 아래 마당에서 밤이 깊어져 가는 것도 잊고 놀았다.

 

춘향이 "언니가 남자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다. 이에 똥느라이가 "정말로 그렇다면 내가 믿도록 서약서를 써다오"라고 말했다. 춘향은 "여기 있어요."라고 하면서 즉시 서약서를 쓰고 서명하였다. 그녀는 여전히 농담으로 알고 있었다. 갑자기 똥느라이가 여장을 벗고 점잖은 남자로 변해버리자, 그녀는 놀랐다. 그녀는 울면서 “속았어요!”라고 중얼거렸다.

 

똥느라이는 그녀를 달랠 수 없었다. 그녀는 “저를 버리세요. 저는 평민의 자식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차후에 버리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하였고, 그는 써 주었다. 그것을 보고는 “잘 봐요! 이 서약서를 잘 보세요! 이제 만일 당신이 거짓말을 한다면 송사를 걸 것이고, 당신은 죗값을 치러야 해요.”라며 기뻐하며 말했다.

 

그 날밤 두 사람은 합방하였다. 사흘 후, 관리인 똥느라이의 아버지는 왕을 측근에서 돌보기 위하여 수도로 가야 했다. 춘향은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모든 장신구와 옷가지를 상자에 넣어 땅에 묻어두고 가난한 사람처럼 남루한 옷을 입고 살았다. 똥느라이의 마음속에도 그녀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과거를 치러 장원급제하여 높은 자리에 올랐는데, 관리를 감찰하는 암행어사를 맡았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던 지방으로 돌아와 자신과 숙식을 같이했던 사람이 어찌 살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거지 차림을 하고 다녔다.

 

그는 그녀가 여전히 자신에게 수절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안심하였다. 사람들은 그녀를 절대 변하지 않는 대나무로 비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새로 부임한 신임 사또가 그녀를 희롱했지만, 그녀는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다. 유생들은 춘향이 환난을 만났으며, 똥느라이를 개나 돼지 같은 사람이라고 욕했다. 그곳 사람들은 백성의 양곡을 수탈하는 그 사또에 대해 원망이 자자했다.

 

그 사또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춘향에게 앙갚음하기 위하여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그날에 춘향에게 형을 가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암행어사가 출현하였고, 모든 이들은 벌벌 떨었다.

 

사또는 포박을 당했고, 하인들은 춘향을 묶은 밧줄을 이빨로 끊어야 했다. 춘향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몰랐고,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그녀는 기쁜 줄도 모르고 있었으나 그녀의 어머니는 너무나 기뻐했다. 그녀는 “아들은 없지만 이 딸년이 나에게 아들을 얻은 것보다 더 기쁘게 하는구나!”라고 소리쳤다.

 

삼천 년이 지났지만 북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춘향 아씨 얘기를 들을 수 있다. 북부 지역 사람들은 이 얘기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서양을 여행한 트엉썬(Thuong Son)의 비서가 이 얘기를 번역해 주었다. 그러나 이 얘기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

 

1910년 H. Tissot

박명기 기자 highnoon@aseanex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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