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인의 아세안 ABC 11] 콜럼부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 등록 2026.02.14 09: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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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어진 ‘제1기 세계화’와 동남아의 부상

 

1492년, 크리스토 콜럼부스(Christopher Columbus)가 대서양을 건넌 이유는 단순한 모험이 아니었다. 배경에는 향신료·비단·도자기로 대표되는 동방 무역에 대한 유럽의 갈망이 있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이후 동지중해 육상 교역로는 사실상 차단되었고, 유럽은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있었다.

 

콜럼부스는 지구의 둘레를 실제보다 작게 계산했고, 서쪽으로 가면 곧바로 ‘인도’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계산은 틀렸지만, 그 오산이야말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그는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착오’ 덕분에 유럽은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해상 네트워크를 확보했고, 이는 곧 태평양과 동남아로 이어졌다.

 

■ 서쪽으로 간 길이 연 ‘제1기 세계화’

 

콜럼부스 이후 스페인은 멕시코와 페루의 은광을 장악했다. 특히 오늘날 볼리비아에 위치한 포토시 은광은 16세기 세계 최대의 은 생산지였다. 이 은은 멕시코의 아카풀코에서 출항한 갈레온을 통해 필리핀 마닐라로 운송되었다.

 

이른바 아카풀코–마닐라 갈레온 무역이다.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250년 가까이 지속된 이 항로는 대서양–태평양–남중국해를 하나의 상업 공간으로 묶었다. 멕시코와 포토시의 은은 중국 명·청 경제에 유입되었고, 중국 상인들은 비단·도자기·차를 마닐라로 실어 와 교환했다. 중국 상품은 다시 아메리카를 거쳐 유럽으로 흘러갔다.

 

이는 사실상 태평양을 매개로 한 초기 글로벌 경제 순환 구조, 즉 ‘제1기 세계화’라 부를 만하다.

 

여기에 더해 ‘콜럼비안 교환(Columbian Exchange)’라 불리는 생태·문명 교환이 전개되었다. 아메리카의 감자·옥수수·토마토·고추는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되었고, 말·밀·가축은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오늘날 동남아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고추 역시 이 교환의 산물이다.

 

콜럼부스의 서행은 단순한 스페인 제국의 확장이 아니라, 아메리카–동남아–중국을 잇는 환태평양 경제권의 탄생을 의미했다. 그가 멕시코로 간 덕분에 스페인은 태평양에 진출했고, 필리핀을 거점으로 중국과 직접 연결되었다.

 

■ 동방 항로와의 차이: 포르투갈의 전략

 

한편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는 1498년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다. 이른바 동방 항로다. 포르투갈은 기존 인도양 상업 네트워크에 무력으로 개입해 거점을 장악하는 ‘해상 거점 통제형 제국’을 구축했다.

 

1511년 말라카를 점령했고, 이후 마카오를 거점으로 중국 무역에 접근했다. 이 전략은 향신료 중심의 상업 패권을 노린 것이었다.

 

이에 비해 스페인의 서방 전략은 성격이 달랐다. 그것은 신대륙을 기반으로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와 연결하는 대륙 횡단형 네트워크였다.

 

•포르투갈: 인도양의 기존 네트워크 장악

•스페인: 아메리카 자원을 매개로 한 새로운 글로벌 순환 구조 창출

 

두 제국은 서로 다른 길을 택했지만, 목적지는 결국 동남아와 중국이었다.

 

 

■ 동남아, ‘주변’이 아니라 ‘연결의 중심’

 

이 과정에서 마닐라는 동아시아의 전초기지가 되었고, 동남아 해역은 세계 경제의 교차로로 부상했다. 은이 중국을 움직이고, 중국 상품이 유럽 소비를 자극하는 구조 속에서 동남아는 단순한 주변이 아니라 연결의 허브였다.

 

16세기 이미 이 지역은 세계 경제의 교차점이었다. 오늘날 미·중 전략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동남아가 다시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른바 위치 권력(locational power)이다.

 

■ 식민지화의 전개와 그 유산

 

유럽 세력은 동남아 진출을 넘어 식민지화를 본격화했다.

 

•포르투갈은 말라카와 마카오를 거점으로 진출했고,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장악했으며,

•영국은 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와 미얀마를,

•프랑스는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를 식민지화했다.

 

1571년 레가스피가 이끄는 스페인은 필리핀을 점령했다. 이후 1898년 미·스페인 전쟁으로 미국이 필리핀을 넘겨받아 약 60여 년간 지배했다. 스페인 330년, 미국 60여 년, 도합 400년 가까운 서구 지배의 유산은 오늘날 필리핀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가톨릭 문화, 스페인식 성(姓), 미국식 제도, 그리고 아시아적 전통이 혼합된 ‘메스티조 문화’—쉽게 말해 짬뽕 문화—는 식민지 경험의 산물이다.

 

■ 다시 읽는 콜럼부스의 의미

 

콜럼부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향신료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훨씬 거대했다. 그의 항해는 대서양을 넘어 태평양과 동남아, 그리고 중국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세계 경제 순환의 출발점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글로벌 공급망, 디지털 네트워크, 해상 교통로라는 이름으로 다시 경험하고 있다. 16세기의 은과 비단이 오늘날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로 바뀌었을 뿐이다.

 

동남아는 다시 한 번 선택의 공간에 서 있다. 그리고 한국 역시 그 교차점에 있다.

 

콜럼부스의 서행은 단순한 항해가 아니라, 대륙과 대륙을 잇는 순환의 시작이었다. 그 순환의 고리 한복판에 동남아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지는 않지만, 연결의 구조는 되풀이된다. 16세기의 ‘제1기 세계화’는 오늘 우리가 마주한 지정학적 현실을 비추는 오래된 거울이다.

 

글쓴이=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jisuh0803@gmail.com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 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박명기 기자 highnoon@aseanex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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