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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베트남 작가 스엉응웻밍 단편소설 '단풍잎'

베트남 대령 출신 작가, '황무지' ‘열세 번째 나루’ 등으로 명망

 

단풍잎(LÁ PHONG ĐỎ NĂM THÙY)

 

오엽 단풍잎.

 

미엔은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이 붉은색을 어디선가 보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B52 폭격 후에 남겨진 선홍색 바나나꽃이었던가? 여름에 하얀 모래 위로 달려들던 검붉은 구름이었나? 전쟁이 끝나던 날 빛나던 붉은 깃발이었나?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단풍이 행복이었는지, 상실의 아픔이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다.

 

갑자기 센 강 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미엔이 느끼는 무거운 걱정의 흐름을 가로막았다. 그 선홍색에 관한 생각이 순식간에 흘러갔고, 몸소 체험했던 그 어떤 전쟁의 모습을, 오랫동안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아마도 미엔은 호앙과 따뜻하고 고요한 파리의 오후에 평화롭게 걷고 있어서 그 기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단풍잎이 떨어졌다. 바람이 단풍잎을 한곳으로 모았다. 미엔은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샹 드 마르스 공원에 맨발을 디뎠다. 가끔 바람이 모아놓은 단풍 더미를 밟았다. 두 발이 시원했다. 가슴이 시원했다. 아주 편안했다. 전쟁도 없다. 부딪힐 일도 없다. 속일 일도 없다. 입고 먹는 것을 걱정할 일도 없다. 오직 지구 반대편 조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의 사랑만 있었다. 미엔은 귀여운 오엽 단풍잎을 만지작거렸다.

 

호앙이 미엔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미엔이 좋다면 기차 가득 단풍잎을 실어줄 수도 있어.”

 

전쟁 때, 정글에서, 미엔은 화려한 파리에서 화창한 날 사랑하는 남자와 산책하는 일은 상상도 못했었다…. 게다가 손에는 오엽 단풍을 들고서. 러시아 영화 속에서 가을 단풍을 한두 번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특히 포탄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이 없는 전선에서 처녀 시절을 다 보낸 미엔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호앙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은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나는 단풍잎 하나면 충분해. 생에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한 기념으로.”

 

“그렇구나. 그런데 쯔엉선 정글에서 미국의 B52 폭격 후에 살아남았던 선홍색 바나나꽃이 생각나지 않니?”

 

미엔은 몸을 움츠렸다. 붉은색 바나나꽃. 호앙이 무심코 말한 붉은색은 미엔이 가슴에 묻어둔 공포를 일깨웠다. 차가운 기억 속으로 쉽게 흘러가도록, 그녀는 현실적으로 살려고 억지로 그 애매한 빨간색을 찾는 생각을 버리려고 했다.

 

“몰라! 나는 정말 기억이 없어! 행복해서 설레는 마음뿐이야!”

 

호앙이 걸음을 멈추고 미엔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남자의 건강하고 힘 있는 팔이 따뜻했고, 수컷의 땀 냄새가 났다. 그는 그녀의 붉은 입술에 키스했다. 호앙의 마술 같은 혀가 파고들며 점령했다. 애절하면서도 어쩔 줄 몰랐다. 미엔은 마치 그네를 타는 사람처럼 발을 들고 턱을 쳐들며 호앙의 목덜미를 감싸안았다. 이런 일은 미엔의 고향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아주 어색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그녀는 대낮인데도,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웠으며 푹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오늘 밤에 금과 은으로 장식하는 대신에 내가 우리 행복의 방에 단풍잎을 가득 뿌려줄게.”

 

미엔은 황홀해서 몽롱해졌다.

 

“뭐라고? 무슨 말이야?”

 

“내가 전쟁 때의 고생스러운 날들을 보상하기 위해 단풍잎으로 우리 평화의 방을 꾸밀 거야.”

 

그러나 온대지역의 나뭇잎이 땅에 떨어져 있었지만, 호앙이 아니라 미엔은 여전히 따뜻한 온기로 덮은 낭만적인 사랑을 느꼈다. 단풍색 가방 두 개가 열일곱 살 아이와 같은 미친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의 설레는 기쁨과 함께 조용히 프런트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호앙은 미소를 지으며 거울에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비추며, 이리저리 돌아보며 생명력으로 가득 찬 신체의 작은 결점을 찾아보았다. 없다! 두 근육은 개구리 장딴지 같았다. 가슴은 부풀었다. 복근은 네 개였다. 팔뚝 근육이 밧줄처럼 울퉁불퉁했다. 샤워 꼭지가 안개를 뿜어댔다. 작은 물방울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희뿌연 안개가 흩날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호앙은 몸을 떨었다. 먼 기억 속에서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 우윳빛 구름… 그리고 바람이 몰아치고… 그리고 갑자기… 들판에 푸른 잎이 흩날리던 어느날이 다가왔다.

 

샤워 꼭지를 잠그고 나자, 순간 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신체에서 갑자기 팔이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볼록한 흉터가 튀어나오고…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그는 숨을 헐떡였다. 오늘 밤… 모호한 걱정이… 오늘 밤… 다가오는 것 같았다.

 

욕실에서 나와 호앙은 잠옷을 입고 허리띠를 두 번 졸라맸다. 그의 어깨에는 사크레쾨르 대성당과 푸른 잔디밭이 있는 몽마르뜨언덕의 모습이 연하게 인쇄된 수건이 걸쳐있었다. 미엔! 호앙은 마음속에서 기쁨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넓고 깊게 파인 부드러운 잠옷 차림에, 여성스러운 날씬한 허리가 호앙을 놀라게 했다. 그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미엔은 여전히 침대 위와 붉은색 꽃무늬 편백나무바닥에 단풍잎을 뿌리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미엔! 내가 할게!”

 

잎사귀를 하나씩 천장에 던지며 호앙은 콩주머니 던지기 놀이를 하는 열다섯 소년처럼 즐거워했다. 잎사귀가 떨어졌다. 잎사귀가 흩날렸다. 잎사귀가 빙빙 돌았다. 미엔은 가만히 서서 옷장 거울에 등을 기대고, 한 손으로는 허리를 짚고, 공중을 나는 무수한 단풍잎 속으로 사랑하는 이가 빠져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이 낭만적인 따뜻한 모습을 알지 못했다. 하늘과 땅과 신만 알았다. 빨간 단풍이 떨어진 공간, 하얀 침대 시트도 덮었다. 화장대 앞에서 주저했다. 단풍잎이 코르셋을 입지 않은 그녀의 부푼 가슴 속으로 떨어졌다. 얇은 천으로 가려진 두 젖꼭지가 염소 뿔처럼 겨누고 있었다. 수없는 단풍잎 사이에서 그녀는 신성했다. 모든 단풍잎이 내려앉고 방안이 온통 붉은색이 되었을 때 그녀는 비로소 사랑하는 이가 최고의 절정을 맛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행복에 젖은 호앙의 얼굴에 당황함과 어색함이 드러났다. 미엔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호앙은 “촛불잔치”를 준비했다. 이곳에는 촛불 하나, 저곳에는 촛불 두 개를 두었다. 다른 곳에는 여러 개를 두었다. 감정 없는 전기가 밝을수록 낭만적인 촛불도 더 빛이 났다. 양초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양초는 종교와 궁전의 의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인간의 침실을 따뜻하게 비추었다.

 

그는 전등을 껐다. 신비롭고 신성한 촛불만 남았다. 긴 강을 따라 흐르는 달빛과 함께 알레그레토 2악장을 거닐고 있는, 베토벤의 교향곡 ‘달빛 소나타’만이 듣는 이로 하여금 뭔가 격렬하고 폭발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했다. 보티첼리 명화 ‘비너스의 탄생’ 복제화에는 비너스가 조개껍데기 위에 서서 오른손으로는 젖가슴을 가리고 왼손으로는 긴 머리칼을 잡아 중요 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저 밖에서는, 어린 소녀 같은 센 강이 밤에 붉고 노란 단풍이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대낮에 흐르던 파란 강물이 밤에는 쏟아지는 수많은 불빛을 받아 자줏빛으로 변했다. 아침에 근육은 없고 뼈만 남은 모습의 에펠탑은 수도 파리의 하늘에 보일락말락 하는 장년의 남자에게 기대고 있었다. 18세기 왕가로 거슬러 올라가, 그는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전장에서 파리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던 조세핀의 격정의 밤과 같은 신비로운 공간을 미엔에게 가져다주었다. 용상과 같은 모양을 새긴 거북이 다리가 있는 더블 침대, 웨일스 매트리스에 토끼 문양을 수놓은 침대보, 하얀 레이스를 단 연두색의 낭만적인 커튼, 왼손에 지구본을 든 모습의 촛대, 따뜻한 느낌을 주는 페르시아풍의 붉은색 나무 카펫, 그리고 여기저기 떨어진 단풍잎이 있었다.

 

“미엔! 이리 와!”

 

촛불에 비친 두 눈이 반짝이고, 간청하듯 절박하게 두 손을 뻗어 기다리고 있었다. 미엔은 바람처럼 살포시 달려갔다. 든든한 남자는 미엔을 지구 반 바퀴나 떨어진 모국에서 데려왔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 마치 실을 놓쳐서 허공에 잃어버릴까 두려운 듯.

 

사랑의 밤.

 

 

단풍잎이 널브러진 하얀 매트리스 위에서 아담과 이브가 뜨겁게 이리저리 굴렀다. 붙었다, 떨어졌다, 꼬았다, 풀었다, 털다가 저었다. 단풍잎이 바닥으로 굴렀다. 그는 그녀의 치마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가 벽에 곡선을 그렸다. 그는 몸에 올라 번식을 기다리는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희귀한 황홀감에서 작은 분홍색 손가락으로 검은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숨이 막혔다. 호앙의 살갗이 뜨거웠다.

 

그런데, 오, 이런! 그가 몸을 굽혀 미엔을 침대에 누르는 순간, 그녀는 허벅지 사이를 통해서 백모래 같은 하얀 시트 위에 사람의 피 같은 선홍색을 보았다. 그 순간 미엔의 머릿속이 번쩍했다. 모골이 송연하고 닭살이 돋았다. 호앙이 서두르는 동안 미엔은 입을 크게 벌렸지만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아! 아파! 형체를 알 수 없는 아픔이었다. 두 허벅지 사이의 선홍색 피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번쩍였다. 놀랐다.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고, 체온이 식었다. 몸이 늘어지며, 힘이 빠져나갔다. 신체의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감정 없는 목석같은 사람. 그녀는 차가운 시체처럼 눈을 감았다.

 

“미엔! 미엔! 왜 그래?”

 

침묵했다.

 

미엔은 여전히 정신이 혼미했다. 그녀는 새하얀 백사장을 헐떡이며 달리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한 정찰대원이 그녀와 항생제를 놓는 간호사 등 뒤에서 야전병원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했다. 소름 끼치는 하얀 모래도 모래다. 얼룩무늬 군복이 서두르는 발자국을 따라 모래 위에 흩어졌다. 발가벗은 발정이 난 수컷이 오르내렸다. 그녀는 발가벗은 간호사가 아직도 무력하게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남자의 가슴털이 그녀의 가슴을 눌렀다. 엄마! 가장 힘들 때 나오는 소리는 역시 엄마였다. 그리고 기절하기 전 그녀는 허벅지 사이로 하얀 모래 위에 아른거리는 선홍색 피를 보았다. 호앙은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마치 감춰두었던 불그스레하고 울퉁불퉁한 상처가 새싹이 나오듯 튀어나왔다.

 

“미안해! 미안…!”

 

“아니야! 더 이상 말하지 마!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미엔은 일어나 베개를 끌어안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사랑의 의식”이 중간에 끝났고, 그는 고통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흠, 내 징그러운 몸이 역겹고 겁나게 했지?”

 

“아니야! 더 말하지 마! 호앙에게 말할 수 없는 일이 있어.”

 

호앙은 갑자기 살갗에 여기저기 솟아오른 기이하고 볼록한 흉터를 떠올리며, 미엔을 무섭게 했으리라 생각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호앙은 화난 듯 말했다.

 

“내가 미엔을 무섭게 한 것을 알아.”

 

“아, 아니야! 절대 아니야! 천만 번도 아니야!”

 

“아니라고? 그런데 왜 나에게 냉담하지?”

 

“호앙에게 냉담하다고? 냉담한 데 같이 있고 싶어서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서 호앙을 찾아왔다고? 우리 너무 힘들었어. 화내지 마. 죄라면 내가 여자라는 거야.”

 

슬픔이 엄습해 가슴을 짓눌렀고,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몸이 식었고, 후끈한 느낌도 사라졌다. 그는 일어나 스위치를 눌렀고, 전등이 환하게 켜졌다. 촛불과 전등 빛이 섞여서 아른거렸지만 조금 전 경황 없던 순간의 얼굴과 피부 상태를 보기에는 충분했다. 이상했다. 상처가 점점 가라앉다가 사라졌고, 그의 살갗은 매끄럽고, 상처 하나 없었다. 미엔은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선홍색 피를 찾는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보고 경악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떠밀려서 구겨지고 흐트러진 하얀 침대 시트 위에 오엽 빨강 단풍잎만 있었다.

 

호앙은 서둘러 잠옷을 걸치고 허리띠를 맨 다음 단추를 두 개 채웠다. 그는 술병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작은 잔에 술을 따랐다. 생각에 잠겼고, 무력감을 느꼈으며, 텅 빈 것 같았다. 호앙이 10년은 늙어 보였다. 미엔은 잠옷을 걸치고 조용히 문을 열고, 슬며시 발코니로 나갔다.

 

빛과 어둠이 섞인 파리의 밤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길고양이 소리. 야옹… 야옹… 야~옹… 수컷을 부르는 암컷 고양이의 목소리가 널리 울려 퍼졌다. 미엔은 파리 교외의 버려진 고대 성에서 야생 고양이가 무리를 지어 살고, 낮에는 먹이를 찾고 밤에는 사랑을 부르러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이따금 끓어지는 급한 고양이 울음소리는 저 넓은 샹 드 마르스 공원에서 바람을 타고 온 소리이거나 센강 강가에서 잠잘 곳을 찾는 길고양이일 수도 있었다. 밤 고양이 소리는 미엔에게 전쟁 당시 야전병원에서 들었던 고양이 소리를 생각나게 했다. 가슴을 울리는 맑은소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파리 고양이의 마귀 같은 소리가 아니었다. 그 암고양이는 근처 마을에서 잃어버린 것으로, 몇 부상병들이 매일 밥을 주었다. 충분히 돌봐줬지만, 수컷이 없었다. 밤마다 애절하게 수컷을 부르는 소리에 병실 전체가 잠을 못 잤다. 결국 퇴원하던 병사가 데리고 가서, 후방 병참기지에서 돌봤다.

 

 

고양이 소리와 중간에 멈춰버린 사랑의 의식이 미엔의 눈에 파리의 밤이 더 이상 시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했을까? 센 강은 둥근 별들로 가득 찬 마귀 같은 푸른 은하수다. 희미한 빛무리. 자동차가 검은색 잎사귀 아래로 서둘러 달려가고, 전시에 안개등을 켠 것처럼 빛을 따라갔다. 미엔은 무의식적으로 저 어두운 단풍나무들처럼 옛날 어두웠던 밤의 정글이 생각났다. 가로세로 강철로 된 에펠탑은 미엔으로 하여금 발광물질에 오염된 정글 나뭇잎이 바람이 세게 불 때 번쩍번쩍하며 떨어지던 모습, 어두운 밤에 회색으로 말라버린 기둥만 남은 나무를 연상시켰다. 가상의 자연이 미엔을 둘러싸고 있었다. 가까울 때는 만질 수도 있고, 멀어지면 만질 수도 없으며, 옛 공간이 좁아졌다 넓어졌다 뒤죽박죽되고 있었다. 저 밖에서는 파리 사람과 각 인종이 가야 할 곳으로 열심히 가고 있었다. 술집으로 나이트클럽으로, 식당을 나와 집으로, 아니면 단순히 남녀가 샹젤리제 대로에 가서 결혼 예복을 사거나 미엔처럼 먼 곳에서 파리를 잠시 방문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미엔이 행복이 깨지고 커다란 아픔을 가진 여성으로, 전쟁의 기억이 삶에 끼어들어 잠시 왔다가 바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온전치 못한 시체와 피로 가득 찬 전쟁을 겪은 작은 여자, 그녀가 고개를 들고 일어서려고 애쓰고 있었다. 정말 작지 않은가! 넓은 자연 앞에 인간은 너무 작았다. 인간이 인간 앞에서 작아지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전쟁과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는지 셀 수도 없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전쟁하고 헤어지고, 이 사람은 저쪽으로 던져지고, 저 사람은 다른 곳으로 던져지고, 그 사람은 또 다른 곳으로 던져지고, 수평선 저쪽에 떠돈다. 잠시 반평생을 뒤돌아보면 뒤는 상실과 손실이고, 앞은 어둡고 황망하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도 전쟁 때와 다를 바 없이 고달프다.

 

미엔은 다시 “사랑의 의식”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눈앞에는 영화 필름 속의 마귀가 어른거렸다. 호앙은 루이 14세의 초상화가 새겨진 금색 훈장 상표가 붙은 마르텔 VSOP 메데일론 술병을 거꾸로 기울이며 졸고 있었다. 입을 닫지 못하고, 술이 입술을 타고 넘쳤다. 계속 이렇게 마시면 죽을 수 있었다. 술이 호앙의 간을 태우고, 위장을 터뜨릴 것이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강박관념과 헤어지기 전에, 사람들과 이별할 것이다. 미엔이 달려가서 그의 손에서 술병을 뺏었다. 그녀도 한 모금을 마시고는 냉장고에 넣었다.

 

눈을 질끈 감고 숨을 헐떡이며 호앙은 사람이 그립고 다가가고 싶고, 안고 싶은 것을 거절당한 어린아이 느낌으로 빠져들었다. 미엔은 그를 침대로 이끌었다. 그가 원한다면 못 할 일은 없었다. 여러 나쁜 것 중에서 그와 함께 살기 위해 가장 덜 나쁜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미엔은 전혀 자신이 무기력한 투항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이는 그녀가 선택에 시간을 끌고, 상처가 아물어 새살이 돋아날 기회를 허락지 않았다. 능동적인 사람은 항상 감정을 지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을 가져다준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는 그녀와 호앙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싶어 했다.

 

호앙의 잠옷을 벗기고 그녀는 그를 뒤집어엎었다. 연인의 옆구리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하얀 엉덩이는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살과 살이 맞닿았다. 깊은 곳으로부터 그 무엇인가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작은 손으로 부드럽게 남자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분홍색을 띤 하얀 손가락이 등으로 미끄러지고 허리 양쪽으로 돌면서 관능적인 엉덩이에서 갑자기 멈추었다. 남자에게 이런 마사지를 해본 적이 없었지만, 직업적 본능과 성적 본능은 그녀에게 연인에게 자신 있게 감정을 전할 수 있도록 했다.

 

호앙은 조용히 누워서 눈을 감고 갑자기 찾아온 기분 좋은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미엔이 스스로 가슴에 안길 거라는 상상을 하지도 못했으며, 이처럼 화려한 이국땅에서 뜨거운 사랑의 밤을 누릴 거라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점점 달아올랐다. 몸이 차가운데 육체가 흥분하는 사람이 있을까?

 

“미엔! 내가 무섭지 않니?”

 

“왜 무서워? 나 지금 행복해!”

 

그녀는 그의 몸으로 미끄러졌다. 뜨겁고 부푼 가슴이 그의 등을 눌렀다. 호앙은 두 팔을 뒤로해서 그녀의 엉덩이를 쥐었다. 미엔은 연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혀끝을 호앙의 귓불에 살짝 갖다 댔다. 그녀는 목덜미에 키스하고, 어깨에 키스하고, 연인의 등에 키스했다. 그녀는 그의 등에 붉게 솟아오른 볼록한 상처에 혀를 내밀었다. 그녀는 몸을 살짝 굴려 그의 등에 밀착시켰다. 그의 등에 있는 볼록한 흉터가 뜨거워지면서 그녀의 매끄러운 하얀 피부에 열기를 전했다. 그녀는 자기장이 아니라 그의 몸에서 자기 피부로 흐르는 작은 전류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몸을 옆으로 젖히면서 그의 몸을 뒤집었다. 호앙은 발정기가 한창인 수컷 멧돼지처럼 헉헉거리며 미쳐 날뛰었다. 그녀는 부풀어 오른 가슴골에 얼굴을 대고 그의 털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얼굴에 그의 가슴털이 뺨과 입가에 닿았다.

 

갑자기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덥수룩한 남자의 털이 젖가슴을 누르는 느낌이 옛날 백사장에의 기억을 불러왔다. 흑백의 표범 무늬 군복과 젖가슴 형상이 다시 떠올랐다. 몸이 움츠러들었고, 땀이 나고, 살결이 식어갔다. 두 손이 풀렸다. 무기력해졌다. 마치 차가운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것 같았다.

 

“미엔! 미엔! 왜 그래?”

 

여전히 “사랑의 의식”의 밤에 호앙이 처음 물었던 그 말이었다. 점점 뜨거워지는 따뜻한 바다의 높은 파도 꼭대기에서 흥분과 열기로 이글거리고 있던 그의 몸이 갑자기 차가운 바다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완전히 가라앉았다. 무기력했고, 절망했다…

 

밖에서는 길고양이 울부짖는 소리가…. 야옹… 야옹… 점점 가까이 들렸다. 미엔은 가슴에 차가운 얼음덩어리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등을 돌리니 호앙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 있었다. 안타까워! 미엔은 속으로 외쳤다. 애틋한 모습의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볼 수도, 껴안고 애무할 수도 없는 그녀는 몸을 돌려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한참 흘렀다. 미엔은 몽유 상태에 빠졌다. 연기가 자욱한 은회색의 메 강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옛날의 간호사가 가끔 나타났다.

 

“그래서 호앙이 언니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거지?”

 

“반대로, 바로 언니가 호앙을 기쁘게 할 수 없는 사람이지. 우리 정말 힘들지?”

 

“남자가 더 고생이지. 우리 같은 여자보다 그들에게 기다림은 더 힘들 거야. 유감스럽게도 언니의 모든 노력이 실패했어.”

 

“두 사람 전쟁 때부터 사랑했잖아. 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서 만났지. 이제는 헤어지지 마.”

 

“세미나는 끝났고, 언니 비자가 석 달이 남았어. 호앙이 언니에게 파리에서 같이 지내자고 하잖아. 그가 언니 감정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어.”

 

간호사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안개는 여전했다. 간호사는 안개 속에서 슬픔에 젖은 눈을 바라보았다.

 

길고양이가 짝을 부르는 울음소리가 더 들렸을 때 거의 아침이 되었다. 간호사를 볼 수 없었고, 메 강도 볼 수 없었다. 오직 낯선 파리에 있는 단풍이 흩어져 있는 방뿐이었다. 어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엔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 채 계속 중얼거렸다.

 

호앙은 일어난 지 오래됐다. 그는 조용히 무언가를 썼다. 옆에는 본국에 관한 투자계약서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반쯤 비워진 마르텔 술병이 있었다. 이 광경이 미엔에게 정신을 추스르게 했다. 미엔은 호앙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반평생을 불행하기 살아온 여자는 연인의 글 속에 흐르는 고통스러운 시를 발견했다.

 

타국에서 너의 손을 잡았다

붉은 단풍이 가을을 붉게 물들이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았지만, 함께 가지 못하고

 

센 강이 흐느끼는 밤

예나 다리 밑 길고양이 소리

진정한 남자가 되지 못한 굴욕

운명의 장난처럼

조물주의 장난처럼…

 

너무 안타까워! 미엔은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길고양이 소리만을 들었고, 무성한 남성들의 가슴털에, 겁에 질려 가까이 못 하고, 붉은 단풍잎이 피로 보였다.

 

갑자기 호앙은 고개를 들고, 가슴이 미어지는 애틋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는 몸을 돌려 미엔의 품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머리를 품에 안았고, 검고 긴 머리칼을 누나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처럼 그의 이마에 늘어뜨렸다.

 

번역: 배양수/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

 

베트남 작가 스엉응웻밍(Sương Nguyệt Minh)은?

 

 

스엉응웻밍은 1958년 9월 15일생이다. 본명은 응웬응옥썬이다. 닝빙성이 고향이며, 군 출신 작가다. 1992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대령으로 예편했다. 6권의 단편집을 집필했고, 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소설 ‘열세 번째 나루’는 2003~2004년 문예지 단편 문학상을 받았다. 전쟁의 고통, 전후, 여성의 지위를 다뤘다. 2014년에 발표한 캄보디아 전쟁과 관련된 황무지(Miền hoang)라는 장편소설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현재 하노이에 살고 있다.

 

여성 감독 당타이후옌 이 소설을 각색한 비디오 영화 ‘열세 개의 두부’로 6개의 황금 연꽃상을 수상했다.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 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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