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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加坡 통신] 노정객 마하티르는 이제 영영 끝일까 (2)

말레이시아의 '2020 정치위기' 들여다보기...후계자 안와르-라작의 운명 쥐락펴락

말레이시아 정계의 '거인 '인 마하티르가 지난달 26일 퇴진했다. 이 때만해도 안와르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문제가 초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드라마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국왕은  29일 마하티르도 아니고 안와르도 아닌 무히딘 야신(72)을 신임 총리을 임명했다. 마하티르 재신임을 위한 '신의 한수'인 사임 카드가 거센 역풍에 직면했고, 되레 그를 권력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촉매제가 되었다. 마하티르도 큰 충격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정국에 대해 관전자들마저 딱 부러지게 전망하기 어렵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정상적인 야신의 임명절차를 미뤄지고 있다.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어떤 역사 대하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말레이시아의 2020 정치위기 들여다보기'를 시리즈로 준비해보았다. <편집자주>


1. 말레이시아의 양심...30년 전 약속된 '차기지도자'

 

1947년생인 안와르 이브라힘(73).

 

현재 포트딕슨 국회의원이자 말레이시아 인민정의당(PKR) 당수이며 지난 2월 말까지 연립내각 희망연대(파카탄 하라판·PH)의 리더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2018년 5월의 선거승리는 정치범으로 감옥에 맞아야 했으며, 승리한 직후에 열린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마하티르 이후 차기 총리를 전세계 미디어 앞에서 약속받은 인물이도 했다.

 

그의 인생 역경은 전세계 그 어떤 정치인 못지 않게 드라마틱하다.

 

말레이시아 최고의 정치엘리트로 성장한 그는 1983년 불과 36세 나이에 청소년스포츠부 장관에 오른 뒤 이후 4개 부처 장관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1991년 일찌감치 핵심요직인 재정부 장관에 오르며 사실상 마하티르의 후계자로 내정이 된다.

 

인물에 대한 평가가 깐깐한 마하티르로부터 다방면에서 검증받고 정치력까지 인정받은 것은 물론 신실한 이슬람 지도자인 그는 말 그대로 말레이시아의 '차세대 총리감'이었던 셈이다. 그런 마하티르와 안와르의 끈끈한 연대에 훼방을 놓은 것은 다름아닌 1997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IMF 구제금융 시절을 경험한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역사적 대회전’이 이 둘 사이에 벌어지게 된다. 당시 금융정책을 총괄한 안와르는 “이참에 IMF의 개혁안을 받아 말레이시아의 경제를 개방하고 글로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적 가치’의 주창자인 마하티르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단칼에 일축했다. 결국 마하티르는 국가정보원까지 동원해 안와르를 동성애 혐의로 고발하게 된다. 1999년 그는 6년형을 선고받고 차기총리에서 일순간에 정치 야인이 되는 고난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마하티르와 안와르의 이때의 갈등은 훗날 역사가가 판가름하겠지만, 지금 관점에서도 이 둘 모두 각자의 논리와 근거는 충분했다. 전후세대인 안와르의 관점에서 아시아의 문제는 부족한 투명성과 국제화로 여겨졌다. 1925년 생으로 영국의 식민지를 경험했던 마하티르 관점에서 서구세력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수탈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20년이라는 세대차이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실제 마하티르의 말레이시아는 2000년 초반까지 강력한 해외자본 통제과 고정 환율정책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금융위기 극복사례로 한국의 경제학 교과서에도 소개가 되기도 했다. 반면 안와르의 주장대로 IMF의 쓴약을 받아든 한국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서 2000년 후반부터 두각을 드러냈고, 그 차이는 현재 명백한 경제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2. 타락한 후임자들…분노한 마하티르 “차기는 무조건 안와르”

 

2018년 초고령의 정치인 마하티르가 총리로 복귀한 데는 안와르와의 교감이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된 배경은 말레이시아의 복잡한 정치판과 마하티르 이후의 정치의 타락을 살펴야 한다.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에 성공한 말라야연방은 암노(UMNO)라는 말레이계 정치세력이 중심이 되어 정치경제를 이끌었다.

 

역사적으로 말레이라는 민족과 왕국은 수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주로 작은 왕국들을 지칭할 뿐, 현재와 같은 중앙집권 민족 국가는 뚜렷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때문에 영토의 국경선도 애매했고 영토 크기에 비해 인구가 적어 17세기 이후 몰려든 유럽 제국들은 주로 중국인과 인도인들을 데려와 식민지를 경영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독립 당시 인구 비율이 원주민 말레이계가 위협을 받게 되고, 경제력은 아예 중국 이민자 그룹인 화교들이 장악하는 묘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식민지 후반기인 1940~1950년대 말레이시아의 인구가 1000만 명에 살짝 미치지 못했는데, 말레이계가 500만 몇에 불과하고 화교계가 350만 명을 넘어섰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인구구조상 화교 비중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었고, 정확히 표현하면 말레이시아는 원주민 말레이계와 화교의 융합국가에 가까운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편중된 경제비중이었다. 영국식민지 관료들은 적극적으로 중국계를 상업활동에 참여시키고 인도계 역시 관료와 군인으로 고용했다. 원주민 말레이계는 주로 자신의 터전에서 농업활동에 종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국이 물러나고 보니, 국가전체 경제권을 인구가 적은 화교가 80% 이상 장악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정치권력은 말레이계에 있고, 경제권은 화교가 장악하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펼쳐진 것이다.

 

이에 말레이계 암노 정권은 1960년 후반기 이후 거의 인권탄압 수준에 가까운 '말레이계 우대 정책'을 펼치게 된다. 고위공무원과 명문학교는 물론이고 관급공사나 정부지원금까지 말레이계에게 싹쓸이로 몰아주는 특혜를 수십년간 지속한 것.

 

‘부미푸트라(원주민 우대)’로 불리던 이 정책은 여러 논란 속에서도 적어도 2000년까지는 이유와 근거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민족간 경제력 격차를 정부가 보이는 손으로 조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60년 이상 지속되면서 말레이 정치가 부패하고 국가 경쟁력까지 좀먹는 역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3. 금수저 출신 ‘나집 라작’ 총리의 부정부패

 

그 폐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전직 총리인 라집 나작(67)의 어이없는 행태들이다.

 

나라의 국부 격인 2대 총리이자 마하티르의 정치적 스승인 압둘 라작의 아들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08년 총리에 오르며 2016년 총선에 패배할 때까지 9년이 넘게 아시아 부정부패의 새로운 상징이 된다.

 

사실 여기에 마하티르도 책임질 부분이 적지 않다. 그 역시도 70년 집권세력 암노의 주요 원로로서 라작의 총리 발탁에 기꺼이 동의한 인물 가운데 속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만고만한 당내 파벌갈등으로 경제개혁이 지지부진해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통성을 가진 금수저 출신 2세 정치인에게 화끈하게 권력을 집중시켜 본 것이다.

 

 

나집 라작의 9년 임기 동안 사실 '부정부패'로 국가경쟁력이 좀먹은 사실보다 더 큰 문제는 ‘부미푸트라 특혜’가 개선되기는커녕 되레 강화가 됐다는 데 있다. 마하티르가 퇴임하던 무렵 2003년 말레이시아의 시대정신은 더 이상 “말레이족만이 아닌 모두의 말레이시아“라는 통합의 국가비전이었다. 민족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이제는 하나의 말레이시아로의 정체성을 갖고 함께 평등하게 손잡고 나아가자는 의미였다. 라집 정권이 흥청망청 무려 5조 원을 빼돌린 국부펀드 '1MDB'의 작명도 ”하나의 말레이시아“란 비전에서 나온 이름이다.

 

보통 부패한 정권이 저지르는 다음 행보는 뻔하다. 한껏 헤쳐먹은 게 들킬 게 두려우니 무조건 선거에 이겨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국민통합’이란 비전은 엿장수에게 맡기고 선거에 이길 수 있는 정략적 궁리에만 몰두하는 식이다.

 

속이 뻔히 보이는 게리멘더링으로 선거구를 여당에게 유리하게 뒤바꾸고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야당정치인을 탄압하는 것이 1차원적 행보라면, 라집 정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실 그가 사상 최악으로 불리는 이유는 '부미푸트라 정책의 강화'라는 국가분열책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어차피 산토끼는 잡을 확률이 없으니 인구의 60%를 구성한 집토끼 말레이계에게 다시 한번 각종 혜택과 지원금을 싸그리 몰아주는 방식으로 2010년대의 국가 비전을 팔아먹은 것이다.

 

당연히 나라는 두 개로 쪼개졌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이런 행태에 격분한 마하티르와 안와르가 2018년 역사적 선거연대를 통해 ”70년 집권 부패세력 암노를 이참에 부숴버리자“는 의기투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두 노회한 정객들의 화해에 감동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마하티르+안와르+화교정당“ 연합에 121석을 몰아주어, 79석에 그친 암노를 역사상 최초로 야당의 자리로 밀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자민당처럼 70년 집권세력 암노의 내공은 만만치 않다는 게 이번 사태를 통해서 입증되고 있다. 안와르의 차기 총리 내정자에 대한 반발이 조금씩 거세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2월에 폭발해버리고 만다. 

 

마하티르 안와르의 연립정권을 화교계 정당(DAP)과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 된 것이다. 

 

시리즈 1편

[新加坡 통신] 말레이시아 마하티르는 이제 영영 끝일까 (1)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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