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야기를 되돌아보면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떠있는 조그만 섬 쓰시마가 예로부터 한일 두 나라 간 문물 교류의 가교로서 중요한 몫을 해온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교류라고 하지만 고대 쓰시마는 일본열도가 한반도로부터 문물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창구이었다. 이번 이야기는 쓰시마가 그 이상 문화공동체를 탄생시킨 모태라는 점을 일깨우고자 한다. 재일작가이자 한일고대사 연구가인 김달수는 쓰시마 섬을 두고 ‘반은 조선, 반은 일본’(金達寿, 1986, 229)이라고 말한다. 그 만큼 쓰시마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서 서로 나누는 점이 많은 섬이다. 글쓴이는 이번 이야기에서 이 점을 자세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이 문화공동체는 쓰시마를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와 북 규슈가 형성하는 지형이다. 이 지형에 사는 가야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러 제사를 나누면서 삶을 영위해 나갔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말을 함께 썼다는 점이다. 물론 글쓴이를 포함한 현대인은 고대를 산 적이 없다. 그러나 현대 일본어와 한국어를 견주면 이를 연역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우선 현대 두 나라 언어 사이에는 수많은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예
지난 2년 간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상상할 여지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한반도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주요 이해 당사국들이 함께 지역적 차원에서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한반도 거주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단속(斷續)적이며 단발적인 상황변화에 놓일 수 있는 가변성도 여전히 강력하다. 따라서 분단체제 극복과 새로운 한반도 체제 구성을 위한 분명한 전환의 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즉, 불가역적인 지역 차원의 제도 형성으로 이어져야 하며, 그 방향은 평화경제론에 입각한 ‘지역 제도(들)’과 ‘평화-발전 넥서스에 입각한 거버넌스’의 구축이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동남아 대륙부의 메콩지역에서 지난 30여 년 간 진행되었던 평화-발전의 제도화와 거버넌스 정착의 과정이 한반도의 미래를 상상함에 있어 주요한 참조체계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메콩지역은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냉전시기 동아시아 열전(베트남전쟁과 캄보디아 내전 등)의 전장(battlefields)이었다. 국제하천 메콩은 냉전의 시대 체제 대결의 전선(戰線)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표방했던
이달 20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재선 취임식을 갖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인도네시아에서 2013년 12월 무렵 경험했던 일입니다. 인도네시아 제3의 도시 반둥 남쪽의 한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 틈나는 대로 단지 내 수영장을 방문했습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현지인들이 주로 수영장을 찾았는데, 어느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간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이 없지?” 젊은 여성들조차도 반바지 혹은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물속에 들어갈 만큼 비키니 차림의 여성을 마주하기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히잡(Hijab, 무슬림 여성들이 얼굴 등을 감추기 위해 쓰는 가리개)을 포함해 입던 옷 그대로 물장구를 치는 여성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는 국민의 약 85%인 2억2000여만 명이 이슬람교를 따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거주하는 국가입니다. 비록 국교는 아니지만, 이슬람교가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정-관계 고위직 등에 진출한 비 무슬림이 여전히 손에 꼽을 정도인 점, 경기가 침체되면 전통적으로 상권을 장악해 온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희한한 일이다. 18세기 초엽 쓰시마 번주 소(宗)씨의 한 대조선 외교를 담당했던 유학자가 지금 아베 정권의 대한 외교정책을 꾸짖고 있다. 그가 이 섬에서 활약한, 조선어에 능통했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이다. 카미가이토 겐이치(上垣外憲一)는 “조선과의 평등을 존중하고 힘에 의한 위압을 부정하는 호-슈의 외교사상이 메이지 일본의 국책과는 도저히 상용될 수 없었다” 면서 그 꾸지람을 이렇게 사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때문이야말로 호-슈는 실로 우리시대의 사상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일로전쟁의 승리가 경제전쟁의 승리로 바꿔치기한데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값싼 일본우월감에 우리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지금, 또한 무력을 대신한 금력에 의한 위압외교에 일본이 의존할지도 모르는 위험도 느낄 수 있는 지금, 호-슈 사상의 의의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上垣外憲一, 1989, 8~9). 물론 위에서 든 카미가이토의 저서는 아베정권이 들어서기 훨씬 전 1989년에 나왔다. 그러나 그가 20세기 초엽 메이지 일본이 노일전쟁[1904~5]의 승리에 취한 ‘값싼 일본우월감’에 대한 경고는 지금 아베가 자행한 대한 수출규제, 즉 ‘무력
베트남에서 한국식당은 우리의 전통 맛만을 강조하며 모호한 정체성으로 한식의 우수성을 세계화하는데 실패했다. 식당은 단순히 맛만 있으면 되는 곳이 아니다. 음식을 담는 그릇, 분위기, 인테리어, 마케팅, 콘텐츠 등 모든 것들이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 그렇기때문에 한국 사람이 해외에 나와서 성공하는 것은 한국에서의 3배 이상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에다 문화까지 잘 어우러져야 한식당 고유의 특색이 살아날 수 있다. 우리의 음식문화로 가치와 의미를 주어 상품화시키며 미각뿐 아니라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 삼겹살-김치찌개-짜장면 ‘최애 한국음식’ 베트남인의 한식은? ‘한국풍’을 만들어간다는 건 뭘까. 우리 것을 제대로 알고 우리다움을 세계화에 맞게 재해석하여 새로운 것을 그 문화에 맞게 재창조하는 작업이다. 한국적 아이덴티티(동질성)와 미의식은 우리의 독특한 식문화를 상품화할 때 국가 경쟁력까지 뒷받침될 수 있다. 단순한 퓨전스타일의 어설픈 동서양 혼합이 아닌 우리 고유의 색과 정신을 문화화시키고 그것을 상품화하여 식당을 좀 더 풍성하게 한다면 베트남에서의 사업화는 성공으로 이어지리라 본다. 그렇다면 베트남인들이 한식에 대한
“지구촌 최대 섬나라이자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국가는?” 정답은 인도네시아입니다. 최근 한국과의 정서적 거리가 부쩍 가까워지고 있는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중 핵심 멤버인 인도네시아를 묘사하는 특징으로 흔히 다문화가 거론됩니다. 바로 인도네시아가 1만 7000여 개 섬으로 이뤄진 1개 나라에서 300여 개 인종이 700여 개 언어를 사용하는 다인종, 다언어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다양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역으로 자바섬 중부의 족자카르타(Jogjakarta)가 가장 먼저 언급됩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배낭 여행지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족자카르타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나 다름없는 한국의 경주에 비유되는 역사와 문화의 고장입니다. 인구 60여만 명의 족자카르타는 수도 자카르타 및 수마트라섬 북부의 아체와 더불어 인도네시아의 3개 특별 자치구 중 한 곳입니다. 그래서 주지사인 술탄(왕)이 여전히 외교, 국방, 통화 정책 등을 제외한 광범위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항복했던 1945년 8월 술탄이었던 하멩쿠부워노(Hamengkubuwono) 9세가 족
이전 이야기에서 경관이 뛰어난, 쓰시마 상현 아소만의 조선식 산성을 한 대목으로 삼았지만 그 아소만 고후나코시(小船越)란 곳에 유서깊은 절 바이린사(梅林寺, 이하 ‘매림사’)가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이 절이 일본 불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해 이번 이야기는 쓰시마가 일본으로의 불교 전래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 점은 이전 이야기에서 한반도, 특히 신라에서 발원하는 무교가 쓰시마를 통해 일본에 들어갔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상기하면 쓰시마는 일본인의 주식인 쌀의 원조 적미를 전하는 몫을 한데 이어 그들의 정신적 양식으로서 신앙의 토대가 된 무교를 전도하는 무대가 되었다. 우선 <지도의 수첩-이키·쓰시마>라는 책에 매림사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매림사는 백제에서 처음으로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는 도중, 쓰시마의 고후나코시에 불상과 경전을 일시 안치했던 그 터에 세운 절[寺]이라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경내에는 나무로 둘러싸여 차분한 분위기가 감돈다(金達寿, 1986, 234 재인용). 재일작가 김달수는 “한국에서 불교 등 문화가 전해지는 경우 쓰시마가 그 중계지의 하나가 된 것
“인플루언서(nfluencer), 그들이 움직이면 100만 팔로우가 지갑을 연다.” 인플루언서는 유튜브(YouTube), 인스타그램(Instagram)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수십만 명의 구독자(팔로워)를 보유한 ‘SNS 유명인‘을 말합니다. 베트남에서 SNS 마케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베트남 진출 시 로컬 마케팅 전략이 없이 진출하는 것은 큰 위험부담이 생깁니다. 베트남 홍보를 위해서 꼭 잡아야 할 타겟은 Z세대! Z세대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세대로 일명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립니다. 이들은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거치지 않고 바로 스마트폰을 접한 세대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자유자재 많은 것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신기술이나 어플에 민감하며 개인방송을 즐기며 직접 방송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베트남 진출하려는 마케팅 담당자들은 꼭 먼저 이들에 대해 주목해야 하고, 더 깊이 관찰해야 합니다. **베트남 유투버 겸 인플루언서 유귄니(yuu quynh nhi) 1990년으로 광고모델, 페이스북 팔로워 27만명, 인스타그램 팔로우 3만 4000명이다. XS 걸그룹 멤버(2012~2013)로 활약했다.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