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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구 총장 “태국 국왕, 어느때보다 강하다...왕실생존이 1순위”

서강대 동아연구소 ‘월간태국’ 두 번째 강연...‘태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들’

 

 

“지금 태국 국왕은 어느때보다 강하다. 모든 기준은 왕실 생존이 1순위다.”

 

김홍구 전 부산외국어대 총장은 내로라하는 태국 전문가다. 그는 태국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 ‘국왕’을 꼽았다. 5월 총선 이후 혼란과 ‘3당 합당’ 같은 연립정부 구성과 피타 전진당 대표의 ‘총리 선출 좌절’도 어느때보다 강한 왕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10월 20일 서강대학교 다산관 DB에서 서강대 동아연구소의 ‘월간태국’ 두 번째 강연을 했다. 강연자는 김 총장, 주제는 ‘태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들’이었다.

 

이 강연은 9월 22일 서정인 전 아세안 대사의 “탁신 재등장한 태국, 정권-정치 더 불안해졌다”라는 첫 강연을 배턴터치했다. ‘탁신’에 관전포인트를 둔 서 대사에 비해 ‘왕실’에 초점을 맞췄다. 결은 좀 달랐지만 결론은 비슷했다.

 

김 총장은 왕권과 쿠데타, 왕실모독제와 ‘MZ세대’, 비례투표 강화 배경과 피타 현상, 태국투자가 부진한 한국기업, 한국 불법노동자 1위 태국, 한국-태국 상호인식 개선 등을 짚었다.

 

 

“서 대사가 첫 강연에서 ‘노른 자위’를 다뤘다. 그래서 겹치는 부분도 있다. 저는 ‘근본 현상’을 살펴보겠다”며 마이크를 잡은 김 총장. ‘태국전문가’다운 내공을 과시하면서 2시간 내내 좌중을 압도했다.

 

■ “‘왕실’ 언급만해도 ‘모독죄’로 처벌대상...지금 MZ세대들은 바뀌었다“

 

김 총장이 태국을 이해하는 첫 키워드로 ‘국왕’을 꼽았다. 태국 국기 ‘통 뜨라이롱’을 보면 그 이유가 들어있다. 그는 ”붉은색은 국민의 피, 백색은 종교(불교), 청색은 국왕이다. 그 중에서 국왕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1986년 치앙마이대 사회과학대학 초빙교수로 가있을 때 경험을 소개했다. “어떤 이들도 사석이나 술자리에서나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왕실’ 언급만해도 ‘모독죄’로 형법 112조로 처벌 대상이었다. 지금은 바뀌었다. 젊은이들, MZ세대들은 비판한다.”

 

 

푸미폰(1946~2016) 국왕에 이어 와치라롱껀(2016~) 국왕은 태국에서 절대 권위를 갖는 존재다. 소위 ‘탐마라차’라는 10가지 부처의 가르침 덕목으로 ‘테와라차’라는 권위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김 총장은 “이제 왕실은 돈과 친위부대로 더 강해졌다. 태국의 불교는 소승불교다. 개인해탈과 공덕쌓기를 강조한다. 태국에서 노조나 정당, 학생운동의 응집력이 안되는 이유도 ‘개인주의’ 때문이다. 공덕을 쌓으면 나도 ‘총리도 된다’는 윤회사상과 체념주의가 배어있다”고 설명했다.

 

태국의 근대화와 왕실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다. 라마 4세 몽꿋(1815~1868)과 5세 쭐라롱껀 대왕(1868~1910)이 근대화와 ‘개방’을 선도했다. 이 시기에 태국 국왕은 절대 권위로 올라섰다.

 

 

라마 4세는 율 브리너-데버러 카 주연 영화 ‘왕과 나’(The King and I)의 모델이다. 아이들 가정교사 눈으로 본 왕은 괴팍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 때문에 태국에서는 ‘왕실모독’으로 책, 뮤지컬, 영화가 상영금지되었다.

 

■ 왕실 근대화 과정에서 왕실과 군의 ‘일심동체’...군부 쿠데타 '악순환' 

 

태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화 과정서 왕실과 군의 ‘일심동체’ 관계를 알아야 한다.

 

김 총장은 “1870년 라마 5세는 왕자, 고위 귀족 자제로 유럽식 군대를 조직했다. 이후 왕실에서 왕이나 공주가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한다. 1905년 군 총사령관이 왕세자(후일 라마 6세)였다. 대부분 고위직 장교는 왕자들이었다. 1946년 정당이 생겼으니 19세기만 먼저 조직과 체계화를 가진 것이 왕실인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왕실과 군은 일심동체다. 군부는 1932년 입헌군주제 이후 22번 쿠데타를 했다. 13번 성공하고 9번은 실패했지만 하나같이 ‘왕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삼았다.

 

 

특히 왕실은 정치를 개입하지 않았던 룰이 1957년 ‘싸릿쿠데타’로 무너졌다. 왕실과 정권과의 줄다리기에서 왕실이 제몫을 찾아 ‘승리’했다. 왕실은 재산을 회수했고 ‘쿠데타 후 정당성 부여 기능(세례)’을 갖게 되었다.

 

그는 “1973년 태국에서 한국의 4.19 같은 일이 있었다. 그때는 왕이 학생편을 들었다. 3년 뒤인 1976년에는 ‘대학살’ 사태에서는 군대편을 편을 들었다. 결국 왕이 판단하는 기준은 ‘왕실의 안위, 생존이었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태국에서는 4년에 한 번씩 쿠데타가 일어났다. 민간정부와 군부정권이 세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태국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도 시민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을 정도다. 특히 2004년 옐로와 레드로 갈라져 극심한 혼란이 생기자 육군참모총장이 쿠데타를 했다. 바로 10년간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 전 총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왕실을 대변하는 한 인사는 육사의 연설에서 “왕은 말의 주인, 총리는 기수다. 총리는 늘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해 “줄 잘서라”는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 2001년 총선과 탁신 정권...다당제-임명총리-쿠데타-국왕 중재역할

 

옐로셔츠(Yellow Shirts)와 레드셔츠(Red Shirts)는 태국 정치를 상징하는 핫키워드 중 하나다.

 

옐로셔츠는 왕실과 군부, 기업가, 중산층 이상 기득권 세력, 방콕과 중앙부-남부에서 강세다. 레드셔츠는 소위 ‘탁신’을 지지하는 농부, 도시 빈민층, 동북부와 북부 지지자들로부터 강력하게 지지를 받고 있다.

 

김 총장은 “1996~2003년 시기는 ‘다당제’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극심한 다당제로 총리를 국회서 임명했다. 그런데 60%를 차지하는 ‘괴물정당’이 등장하고 탁신 정권이 생겼다. 나눠먹기와 독식이 없으니 왕실은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왕실을 위해’ 군부가 쿠데타를 하고 왕실이 중재를 하는 것처럼 승인하는 일이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탁신 계열이 계속 선거에서 1위를 하자 국왕-재계-가신그룹 등 보수동맹은 이를 반발하고 저지하기 위해 ‘비례투표’를 도입했다. 레드와 옐로셔츠만 선택해야 했던 유권자에게 ‘오렌지’라는 새 선택지가 주어진 셈이다.

 

김 총장은 “2019년 총선에서 전진당의 전신인 아나콧마이당(Future Forward Party)이 등장했다. 아나콧마이당은 지역 31석, 비례 50석이라는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기득권으로부터 ‘이지매(집단 따돌림)’ 당하면서 강제해산당했다”고 소개했다.

 

 

■ ‘비례투표제’가 만든, 뜻하지 않은 슈퍼스타 탄생...피타 대표 ‘1당 돌풍’과 좌절

 

2023년 5월 총선은 전진당(까우끌라이당, Move Forward Party)과 피타 림짜른랏이라는 걸출한 ‘슈퍼스타’가 등장했다. 전진당은 피타의 인기를 바탕으로 제1당이 되었다. 피타는 아나콧마이당에서는 ‘비례대표’로 의원이 된 인물이었다.

 

김 총장은 “피타는 비례투표가 만든 뜻하지 않은 슈퍼스타다. 하버드와 MIT 출신으로 미남자이자 아이를 홀로 키우는 모습 등으로 MZ세대로부터 열렬히 지지를 받았다. 특히 표현을 제한하는 ‘왕실모독제’를 폐지를 내세워 전진당을 제1당으로 만들어냈다. 한국식으로면 ‘강남좌파’의 등장이었다”고 소개했다.

 

총선결과는 선거 당일까지도 예상못한 진보세력의 압승이었다. 특히 피타가 이끈 전진당은 5월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해 1당이 되었다. 이후 피타는 반군부 세력과 힘을 합쳐 단독 후보로 추대되었지만 총리 선출 가능한 376석 득표에 못미치는 310석만 확보했다.

 

김 총장은 “특히 군부가 임명한 상원 250석을 끌어오지 못해 총리 선출이 좌절되었다. 피타는 국회의 총리 표결 실패와 헌법재판소의 피타 의원 직무정지 판결로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만약 피타가 전략적으로 만약 ‘형법 112조(왕실모독죄)’를 바꾸겠다고 밝혔다면 상원의 지지를 끌어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쉬운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제 2당인 탁신파 ‘프아타이당’은 전진당을 뺀 군부세력을 포함한 11개 정당과의 새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한국으로 보면 제2당이 ‘3당합당’식으로 군부와 손잡고 연립정부를 세웠다.

 

태국 제 30대 총리는 탁신의 대리인으로 불리는 프아타이당 스레타 타비신이 선출되었다. 그는 선거때 총리 후보 인준 과정에서 부동산개발회장으로 불법거래한 혐의를 받았다. 그런데 총리와 재무부 장관을 겸임하고 있다.

 

■ “태국에서 성공한 한국기업이 없다 왜?” “태국을 몰라서”

 

김 총장은 태국을 이해하는 키워들 중 사회-문화 분야에서 “왜 태국에서는 성공한 한국 기업이 없나”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소개했다.

 

 

그는 한국인으로 태국에서 성공한 교민이 대기업에서 특강할 때 이 질문을 받았다는 질문을 소개했다. 김 총장은 “답은 하나다. 태국을 몰라서다. 태국 사람과 문화를 잘 몰라서다”라고 답했다.

 

태국 사회-문화에 대해서는 그는 “느슨하게 구조화된 사회, 권위주의, 탐분, 남짜이, 마이뻰라이, 끄렝 짜이, 짜이옌, 쾀싸눅 키워드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의 인류학자 엠브리의 “태국인은 집단의식이 부족하다. 개인주의 성향의 상좌불교와 풍요로운 자연환경에서 기인한다”는 언급을 소개했다.

 

“왕은 신과 같은 지위에 있다는 권위주의 의식, 공덕쌓기 ‘탐분’(tham bun), 인정(人情)으로 번역되는 ‘남짜이’, 불행한 일 당할 때 빠른 체념 ‘마이뻰라이’, 간섭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감정을 억제하는 ‘짜이 옌’, 직접 불만을 내색하지 않은 ‘끄렝짜이’, 즐기는 일 ‘쾀싸눅’을 이해하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가령 영화 등에서 군과 왕실 소재는 “아버지를 욕할 수 없다”는, 한국식으로 장유유서(長幼有序, 어른과 아이들은 서열이 있다) 의식을 반영되어 제한을 받는다.

 

 

■ 블랙핑크 리사와 2PM의 닉쿤 등 한류 영향...태국 불법노동자 14만 명 문제도

 

 역사적으로 보면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가장 먼저 파병을 선언한 국가가 바로 태국이다. 1958년 한국의 9째 수교국이 되었다. 블랙핑크 리사와 2PM의 닉쿤, 여자아이들 민니 등 K-POP 아이돌 중에 가장 많은 외국인 멤버를 배출해 낸 국가도 태국이다.  또한 한국에 거주하는 동남아시아인 중 베트남 다음 두 번째로 많은 이주민이 태국인이다.

 

2022년 아세안 방문객의 한국 방문현황(한-아세안센터)을 보면 태국이 베트남에 이어 2위다. 3위는 필리핀이다. 한국인 아세안방문은 필리핀-베트남-태국 순이다.

 

 

한국과 태국이 이렇게 가까워지고 있지만 두 나라간 해결할 문제도 있다. 김 총장은 “태국은 아세안 10개국 중에서 국력은 인도네시아에 이어 2위다. 이처럼 태국 시장의 중요성과 문화적, 인적 교류에 비해 한-태 양국의 경제교류는 상대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다. 한국과 태국의 무역량과 투자는 적다. 투자의 경우 라오스나 브루나이를 앞선 정도”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최근 쟁점을 떠오르는 ‘불법노동자’ 문제에 대해 “2022년 태국인이 14만 명으로 전체 35%를 차지했다. 베트남 4만 명(19%)에 비해서도 많다. 소위 ‘비자런’ 문제가 있다. 하지만 ‘전자여권 K-ETA’는 없어야 한다. 외교부와 문화부는 입장이 다르지만 비자가 거부 당하면 일본으로 간다”고 진단했다.

 

■ 2000년대 한류 접한 태국인 72.8% “한국 이미지 긍정적으로 변화”

 

태국 사람들의 한국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섞여있다.

 

1980년대 중후반 태국사람들은 소위 ‘마초근성과 군대식 문화’와 ‘보신관광과 밤문화’으로 대표된 이미지다. 한국인들의 투자 초기 노동집약적 공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노사분규와 태국 관광초기의 한국인들의 행태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김 총장은 “2000년대 들어서 한류가 태국사회에 중요한 사회적인 현상으로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눈에 띄게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한류의 확산은 ‘한국은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다’ ‘호감이 가는 나라다’ 등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확 바꾸었다”고 말했다.

 

특히 태국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접한 이후 한국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2.8%이었다. 태국에서 한국에 대한 연상 이미지도 ‘K-POP’이 18.3%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그 다음은 ‘한류 스타’, ‘뷰티’, ‘드라마’, ‘한국 음식’ 순으로 높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18 해외한류실태조사』)

 

김 총장이 2018년 시행한 설문조사 ‘한-태 비즈니스 문화 상호인식’(태국인→한국인)에 따르면 “한국인은 성실하다. 업무 의욕이 강하다. 팀워크가 좋다. 성격이 급하다. 일할 때 자주 야단을 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 태국인을 무시한다” 등이 담겼다.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 근면성과 성실성 등에 문제가 있다. 태국인은 대체적으로 책임감이 없으며 수동적이다. 태국인들의 정확한 의중을 알기 어렵다. 미팅시간에 자주 늦는다. 책임을 회피한다. 잘못이 있어도 사과나 인정을 하지 않는다.”

 

 

■ 현지화된 성공한 한인들의 인식 “한국인-태국인 서로 큰 차이가 없다”

 

김 총장은 “이질적인 문화적 차이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한인들일수록 이른바 현지화가 많이 된 경우다. 이들은 사회-문화적 실천에 상당히 성공한 한인들로서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성공한 한 한국 사업가(남, 69)는 “한국 사람이나 태국 사람이나 그리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에 대해 “배려가 없다. 목표지향적이며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갑질이 심하다. 빨리빨리가 장점이지만 사건 사고가 많이 난다. 직설적이다. 눈치가 빠르다”라고 진단했다.

 

이에 반해 태국인은 “간접적이다. 자기 입장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한국과 달리 축구로 치면 오프사이드 (off-side)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남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는다. 태국사람 보고 게으르다고 하지만 게으름은 인간의 본성 아니겠냐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전쟁의 폐허속에서 살아남고자 빨리빨리 습성이 굳어진 것 같다. 남을 속이는 것은 한국이나 태국이나 똑 같다. 태국사람은 눈치가 빠르지 못해서 발각이 되기 쉽다. 또 암산이 늦다”고 매조지했다.

 

한편 서강대 동아연구소의 ‘한-태국 수교 65주년 초청 강연’ 시리즈 <월간 태국>은 서정인 고려대학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2023년 9월 22일), 김홍구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10월 20일), 김소연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12월 22일), 채현정 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 전공 조교수(2024년 2월 2일) 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홍구 총장은?

 

태국의 치앙마이대학교 사회과학대학과 까쎗쌋 대학교 인문대학 초빙교수를 지냈다. 마하쭐라롱껀(불교)대학교 한국캠퍼스 명예학장으로 한국과 태국 간 교육과 문화교류 증진에 기여했다.

 

한국에서의 동남아시아 지역학과 태국학의 발전을 도모하며 국제지역학회 회장,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한국태국학회 회장, 사단법인 한국동남아연구소 소장, 태국한국문화원 자문위원, 국회 한-아세안 포럼 자문위원,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한-태 소사이어티 상임대표, 외교부장관 지역협력특사로도 활동 중이다. 2021년에는 청조근정훈장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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