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똠얌꿍과 팟타이 같은 태국 음식, ‘미소의 나라’, 타이 마사지, 푸껫과 파타야의 아름다운 해변을 떠올릴 것이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동남아의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도 생각날 것이다. 실제로 태국은 독특한 나라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가 동남아를 양분하던 시절에도 독립을 지켰다. 서쪽의 미얀마와 말레이반도는 영국이, 동쪽의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는 프랑스가 차지했지만 그 한가운데 있던 시암, 오늘의 태국은 살아남았다.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완전히 서지 않고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는 태국 외교를 흔히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는 태국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다. 오늘의 태국을 이해하는 데는 세 가지 키워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쿠데타, 왕실과 군부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체제, 그리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민주화다. ■ 첫 번째 키워드, 쿠데타 태국 현대정치의 출발점은 1932년이다. 그해 인민당이 일으킨 무혈혁명으로 짜끄리 왕조의 절대왕정이 끝나고 입헌군주제가 시작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입헌군주제
오늘날 국제질서는 흔히 미국과 중국의 경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이란을 둘러싼 중동의 충돌까지 함께 보면 세계는 단순한 미-중 경쟁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다. 마이클 베클리와 할 브랜즈는 포린어페어지 2026년 7·8월호 "Heartland vs. Rimland"에서 이러한 변화를 20세기 초 매킨더의 '심장부(Heartland)'와 스파이크먼의 '주변부(Rimland)' 이론으로 설명한다. ■ 매킨더와 스파이크먼, 다시 읽는 지정학 영국의 지정학자 핼퍼드 매킨더는 유라시아 내륙을 장악하는 세력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미국의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은 유라시아를 둘러싼 서유럽, 중동, 남아시아, 동아시아의 연안지대, 즉 주변부를 장악하는 세력이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냉전기 미국의 NATO, 한미동맹, 미일동맹은 바로 이 주변부 전략의 산물이었다. 베클리와 브랜즈는 이러한 지정학이 오늘날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했다고 진단한다. ■ 느슨하지만 연결된 새로운 심장부 오늘날의 심장부는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으로 구성된 느슨한 수정주의 연대다.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 중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비행기로 3시간이면 가고 시차도 1시간이다. 10만 명 이상의 우리 국민들이 많이 체류하고 국내 범법자들의 피난처로도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 국민의 피해가 많다. 필리핀 경찰서 내 코리아 데스크가 최초 설치돼 한-필 경찰 공조가 잘 이루어지는 나라로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동남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선도국이었고, 장충체육관도 미국 개발원조로 필리핀 엔지니어들이 건축한 건축물이다. 또한 한국전쟁 시 태국과 함께 동남아에서 참가한 2개국이다. 7,420명이 파견돼 112명이 사망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는 데 기여한 나라이다. 지난해 10월 경주 APEC 계기에 11월 1일 마르코스 주니어(봉봉) 대통령이 현직 필리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식수도 했다. 지금은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이 한국에 많이 온다. 그런데 필리핀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다시 발전하려고 하는 나라다. 한국과 필리핀은 이제 완전 역전되었다. 필리핀이 왜 과거 발전했고 한동안 정체되었는지는 필리핀의 역사를 짚어봐야 한다. 필리핀의 외세 식민지배 및 점령 기간은 380여 년이나 된다.
2014년 중국이 필리핀 해안에서 약 230㎞ 떨어진 스카버러암초(Scarborough Reef, 중국명 황옌다오, 필리핀명 바호 데 마신록)를 점거하고 구단선에 근거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인공섬을 조성했다. 이에 필리핀은 해당 수역이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며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다. 2016년 7월 12일 PCA는 필리핀이 중국을 상대로 제기한 남중국해 중재 사건에서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중국의 '구단선(Nine-Dash Line)'에 근거한 역사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권리 주장도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올해 10주년을 맞아 미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 14개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판결의 의미를 재확인했다. 공동성명은 해양 분쟁의 평화적 해결, 중재판결의 최종성과 법적 구속력,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 보장, 중국의 역사적 권리 주장에 대한 국제법상 근거 부재를 다시 강조했다. ■ 법적지위와 해양 환경 필리핀 섬 인정... 10년이 흘렀지만 끝나지 않은 분쟁 중재판결은 중국의 영유권 주장뿐 아니라 일부 해양지형의 법적 지위와 해양환경 훼
1998년 5월. 인도네시아를 32년간 통치했던 수하르토 대통령이 결국 권좌에서 내려왔다. 당시 나는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에서 정치와 교민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연일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와 폭력 사태 속에서 우리 교민 4,800여 명의 철수를 지원했던 기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최근 인도네시아를 다시 찾았을 때 묘한 데자뷔를 느꼈다. 달러당 18,000루피아. 환율이 1998년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은 완전히 같지는 않다. 당시에는 달러당 2,000루피아 수준에서 불과 몇 달 만에 18,000루피아까지 폭락했던 전례 없는 금융위기였다. 지금은 그만큼의 급격한 붕괴는 아니다. 그럼에도 루피아 약세, 증시 하락, 금리 인상이라는 모습은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뛰고, 이를 잡기 위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린다.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커지고 증시는 약세를 보인다. 이런 흐름은 경제학 교과서 그대로다. 그렇다면 지금 인도네시아 경제는 왜 흔들리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이다. 투자자들은 경제성장률보다 정부를 더 본다. 특히 정부가 재정을 얼마나 책
“AI 혁명-미중 경쟁-기후위기-디지털 경제 전환과 아세안 미래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산하 헨더슨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미래를 넘어:2050년 세계를 위한 네 가지 시나리오(Beyond Tomorrow: Four Scenarios for the World of 2050)” 보고서는 단순한 미래예측 보고서가 아니다. 향후 25년간 세계를 흔들 100여 개 메가트렌드를 종합 분석해 인류가 직면할 “AI 풍요, 기후연합, 분열된 진영(두쪽 진영), 디지털 적자생존 네 가지 시나리오” 중심으로 네 가지 미래 질서를 제시한 일종의 전략 지도에 가깝다. 이 보고서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하나의 미래를 단정적으로 예측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반된 네 개의 현실적 시나리오를 동시에 제시하며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국가와 기업, 지역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네 가지 시나리오가 모두 아세안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아세안은 AI 혁명, 공급망 재편, 미중 경쟁, 기후위기, 디지털 경제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교차하는 세계의 전략적 접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사회는 다시 호르무즈 해협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 이후 중동 긴장이 고조되며 국제 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 위기의 진짜 파장은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4월 16일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느리게 진행되는 비극(A slow-motion tragedy)”이라는 사설에서 “호르무즈 봉쇄와 엘니뇨가 겹칠 경우 글로벌 식량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동남아시아는 그 충격의 최전선 가운데 하나다. 많은 사람들은 식량안보를 곧 쌀 부족 문제로 이해한다. 그러나 오늘날 아세안 식량안보의 핵심은 훨씬 복합적이다. 쌀은 아세안 전체로 보면 여전히 자급권이지만, 비료-밀-사료-에너지-물류가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 공급망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우선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원유 수송로가 아니다. 2024년 기준 세계 비료 교역의 최대 30%, LNG의 약 20%, 원유 교역의 약 27%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천연가스는 암모니아-요소 비료 생산의 핵심 원료이고, 걸프 지역 황(sulfur)은 인산비료 생산에 필수적이다. 국제비료협회(IFA)에 따르면 이
주말 해운대 아침 자카리아(Fareed Zakaria)의 GPS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왜 그토록 귀족정(aristocracy)을 경계했을까.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왕정 자체가 아니었다. 부와 출생, 혈통이 권력과 결합해 소수 계층이 국가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토머스 제퍼슨은 이를 “인위적 귀족(aristocracy of wealth and birth)”이라고 불렀고, 대신 재능과 덕성에 기반한 “자연적 귀족(natural aristocracy)”을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을 보면 건국의 이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정권 핵심부에 억만장자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내각"이라는 평가가 나왔고, 일부 핵심 국가안보 및 외교 분야에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보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도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경험 많은 외교관과 공직자들이 사임하거나 주변으로 밀려나는 현상 역시 나타나고 있다.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