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세계는 두 강대 세력의 경쟁 속에 흔들렸다. 해양 상업국가 신흥 아테네와 군사 중심의 육상 강국 스파르타. 이 둘의 대결은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고, 승패를 떠나 그리스 전체의 쇠퇴를 초래했다. 이 사례는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을 설명하는 비유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남긴 “아테네의 부상과 그로 인한 스파르타의 공포가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통찰은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재해석되며 현대 국제정치 담론의 단골 개념이 되었다. 비유는 단순하다. 아테네는 해상 네트워크와 상업, 동맹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한 개방적 강국이었다. 델로스 동맹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고, 민주정이라는 정치적 정당성을 내세웠다. 반면 스파르타는 육상 군사력과 규율, 전통 질서 수호를 핵심 가치로 삼았다. 폐쇄적이지만 안정된 체제,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패권을 유지하려 했다. 이를 오늘에 대입하면 미국은 해양 패권과 동맹 네트워크, 규범 질서를 기반으로 한 아테네형 강국으로, 중국은 대륙 기반의 국력과 군사 현대화를 통해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스파르타형 신흥 강국으로 비유된다. 미국은 제2차
올해 하반기에도 ASEAN 정상회의가 의장국 필리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한국 대통령도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 의장국은 매년 초, 그해 의장국으로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우선 과제를 제시한다. 의장국의 문제의식과 언어는 한 해 동안 아세안을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지난 2월 6일, 필리핀 외교장관 마리아 테레사 P. 라자로는 싱가포르의 동남아연구소(ISEAS) 강연을 통해 2026년 아세안 의장국으로서의 구상을 공유했다. 전체적인 인상만 보면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연설은 올 한 해 아세안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나침반이라는 점에서 차분히 짚어볼 가치가 있다. 이 글에서는 필리핀 외교장관 연설의 핵심을 정리하고, 여기에 담긴 한국 외교에 대한 함의를 덧붙이고자 한다. 2026년 아세안 의장국을 맡는 필리핀은 결코 편안한 시기에 키를 잡지 않는다. 미·중 전략 경쟁의 장기화,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후 위기와 기술 혁명까지, 오늘의 국제 환경은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일상화된 상태다. 라자로 장관이 현 세계를 ‘3U—격변(Upheaval), 불확실성(Uncertainty), 예측 불가능성(Unp
1492년, 크리스토 콜럼부스(Christopher Columbus)가 대서양을 건넌 이유는 단순한 모험이 아니었다. 배경에는 향신료·비단·도자기로 대표되는 동방 무역에 대한 유럽의 갈망이 있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이후 동지중해 육상 교역로는 사실상 차단되었고, 유럽은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있었다. 콜럼부스는 지구의 둘레를 실제보다 작게 계산했고, 서쪽으로 가면 곧바로 ‘인도’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계산은 틀렸지만, 그 오산이야말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그는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착오’ 덕분에 유럽은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해상 네트워크를 확보했고, 이는 곧 태평양과 동남아로 이어졌다. ■ 서쪽으로 간 길이 연 ‘제1기 세계화’ 콜럼부스 이후 스페인은 멕시코와 페루의 은광을 장악했다. 특히 오늘날 볼리비아에 위치한 포토시 은광은 16세기 세계 최대의 은 생산지였다. 이 은은 멕시코의 아카풀코에서 출항한 갈레온을 통해 필리핀 마닐라로 운송되었다. 이른바 아카풀코–마닐라 갈레온 무역이다.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250년 가까이 지속된 이 항로는 대서양–태평양
동남아 외교를 오래 지켜본 이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ASEAN의 by-default leadership(방임적 리더십)”은 의도적으로 질서를 설계해 끌고 가는 리더십이 아니라, 강대국이 서로 불편해 주도하지 못하는 공간을 결과적으로 아세안이 메우며 회의를 굴려가는 리더십을 뜻한다. 반대로 EU 등 선진 지역기구가 국제무대에서 보여주는 방식은 by-design leadership—처음부터 규범과 제도를 설계하고, 기준을 제시하며, 따르지 않으면 비용이 따르는 리더십이다. 이 두 방식은 겉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작동 원리는 완전히 다르다. ASEAN의 리더십은 ‘의제 설정’이 아니라 ‘판 유지’에 가깝다. 아세안안보포럼(ARF), 아세안+3(APT), 동아시아정상회의(EAS), 확대아세안국방장관회의(ADMM-Plus)같은 협의체에서 아세안의 목표는 늘 같았다. 누구도 불편해서 회의장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성명은 모호하고, 표현은 절제되어 있으며, 합의는 최소공약수에 머문다. 그 대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호주가 같은 테이블에 앉는 구조는 유지된다. ‘아세안중심성(ASEAN Centrality)’는 권위가 아니라, 플랫폼 통제력
2015년 아세안 공동체가 출범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에게는 ‘먼 이야기’다. 역내 무역과 투자는 늘었고, 정상과 외교장관 회의는 정례화됐지만, 일상에서 “아세안 덕분에 삶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시민은 많지 않다. 아세안이 하나의 공동체라면, 왜 ‘우리(We- feeling)’라는 감각은 이렇게 약할까. 아세안 공동체는 세 개의 축으로 추진돼 왔다. 경제공동체(AEC), 정치안보공동체(APSC), 사회문화공동체(ASCC)다. 성과의 속도와 체감도는 이 순서와 거의 일치한다. AEC는 다국적 기업과 글로벌 가치사슬을 중심으로 가장 빠르게 진전됐다. 역내 교역과 외국인 투자는 확대됐고, 아세안은 ‘하나의 생산기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혜택은 대체로 기업과 투자자에게 먼저 돌아갔고, 일반 국민의 체감은 제한적이었다. 정치안보공동체는 엘리트 중심의 영역이다. 분쟁을 관리하는 대화와 규범의 장으로서 아세안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는 외교관과 안보 전문가의 언어에 가깝다. 합의와 비간섭의 원칙은 안정에는 기여했지만, 국민에게 ‘공동체의 실감’을 주기에는 거리감이 크다. 가장 늦게, 그리고 가장 더디게 움직여 온 축이 사회문화공동체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20세기 초에 제기된 지정학 이론들이 21세기 국제질서에서 다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세 가지 렌즈가 있다. 핼퍼드 매킨더(Halford Mackinder)의 심장지대론(Heartland), 앨프리드 머핸(Alfred Mahan)의 해양력론(Sea Power), 그리고 니콜라스 스파이크만(Nicholas Spykman)의 림랜드 이론(Rimland)이다. 매킨더는 유라시아 대륙의 핵심 내륙, 즉 심장지대를 지배하는 세력이 세계를 좌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심장지대 접근로를 둘러싼 전략적 행동으로 읽힌다. 러시아가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 역시, 방대한 자원과 내륙 연결성이라는 심장지대의 구조적 힘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값싼 에너지와 전략적 완충을 필요로 하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제재를 받는 이란·북한이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며 ‘비서방 축’을 확대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머핸의 해양력론은 미국과 서방의 대응 논리를 설명한다. 금융, 해상교통로, 보험과 결제, 해군력과 동맹 네트워
국제질서는 지금 공위기(interregnum)에 놓여 있다. 팍스아메리카의 균열은 분명해졌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이런 과도기에는 규칙이 느슨해지고 힘의 논리가 전면에 등장한다. 약소국과 중견국이 다수인 아세안에게 이는 가장 불안한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은 과연 원칙과 현실을 함께 반영한 ‘조용한 외교’를 계속할 수 있을까. 아세안 외교는 오랫동안 비간섭, 합의, 점진성을 핵심 원칙으로 하는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중시해 왔다. 요란한 성명이나 공개적 충돌을 피하고, 비공식 접촉과 시간을 통한 해결을 선호했다. 이는 이상주의라기보다 현실주의였다. 체제도, 국력도, 전략적 이해도 다른 국가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최소한의 안정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구조화되고, 국제규범의 구속력은 약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세안의 원칙은 점점 ‘신중함’이 아니라 ‘모호함’, ‘조용함’이 아니라 ‘침묵’으로 읽히고 있다. 남중국해, 미얀마 사태 등에서 반복된 무력감은 아세안 방식 자체에 대한 회의를 키운다. 원칙을 지키려다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주의로 비칠 위험
요즘 나는 아침에 뉴스를 볼 때 동남아 기사뿐 아니라 중남미 뉴스에도 눈길이 간다. 아세안 소식이야 오래된 습관이지만, 중남미까지 챙겨보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12월 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NSS)에서 미국은 중남미가 속한 ‘서반구(Western Hemisphere)’를 최우선 전략 공간으로 명시했다. 국내외 언론은 이를 두고 ‘트럼프판 먼로주의’, 혹은 ‘트럼프식 먼로주의 추론’이라고 해석했다. 19세기 초, 미국이 아직 유럽 열강에 비해 힘이 약하던 시절, 중남미에 발을 들이려는 유럽 식민 강국들에게 “이곳에 오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 먼로주의였다. 이후 미국이 강대국이 된 뒤,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에는 그 경고에 ‘행동’이 더해졌다.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이른바 ‘루즈벨트 추론’이다. 그렇게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backyard)’으로 굳어졌다. 이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1959년 혁명 이후 공산국가가 된 쿠바를 지금까지도 장기간 경제제재해 온 이유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는 제3차 세계대전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으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