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쟁의 핵심은 관세가 아니라 ‘초크포인트’를 누가 장악하느냐에 있다 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 2026년 5·6월호에 에드워드 피시먼(Edward Fishman) 미국외교협회(CFR) 지경학센터 선임연구원이 "How to Fight an Economic War: A Field Manual for a Ruptured World"라는 글을 실었다. 피시먼은 "Chokepoints: American Power in the Age of Economic Warfare"의 저자이기도 하다. 제목 그대로 그의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세계는 자유무역과 상호의존을 통해 함께 번영하는 시대에서 경제적 상호의존 자체가 무기가 되는 ‘경제전쟁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초크포인트(chokepoint)다. ■ ‘전략적 무기’ 초크포인트란 무엇인가...높은 시장점유율-대체제 부재-무기화 모든 경제적 의존이 초크포인트는 아니다. 피시먼은 진정한 초크포인트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 특정 국가 또는 긴밀한 동맹국들이 압도적으로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져야 한다. 둘째, 단기간에 대체재를 찾기 어려
세계 곡물 창고에는 곡식이 충분하다는데 밀 가격이 불안하다. 얼핏 모순처럼 들린다. 최근 중앙일보가 세계 식량시장을 분석하면서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역설이다. 현재 세계 곡물 재고 자체가 당장 심각하게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시장에서는 밀을 비롯한 곡물가격 폭등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 배경에는 세 가지 위험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첫째, 끝이 보이지 않는 이란 전쟁과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이다. 둘째, 이제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 기후변화의 ‘디폴트(default)’화다. 셋째,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초래하는 세계 무역질서의 불확실성이다. 문제는 세 위험이 각각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식량 공급망을 흔든다는 점이다. ■ 이란 전쟁, 식량문제가 되는 이유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식량과 떨어진 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대 농업은 에너지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원유가격이 오르면 농기계와 운송비가 오른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질소비료 생산비를 끌어올린다. 중동의 주요 해상교통로가 불안해지면 선박 운임과 보험료까지 상승한다. 결국 전쟁→에너지→비료→농업생산→운송→식량가격이라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아세안(AS
안소니 리드(Anthony Reid)의 ‘동남아시아의 교역의 시대 1450~1680’ 1·2권을 나는 두 번 읽었다. 한 번 읽기도 만만치 않은 책을 다시 읽은 것은 이 책이 15~17세기 동남아 역사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남아사를 바라보는 눈 자체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남아의 근대사를 흔히 유럽인의 등장과 함께 바라본다. 1511년 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진출, 뒤이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가 동남아를 세계경제에 편입시켰다는 시각이다. ■ 리드는 이러한 역사관을 뒤집는다. 첫 번째 부상: 유럽인이 오기 전 이미 세계의 중심이었다 유럽인이 오기 훨씬 전부터 동남아는 중국과 일본, 인도와 중동을 연결하는 거대한 해상교역망의 중심이었다. 후추와 정향, 육두구 등 당시 세계가 탐내던 상품의 주요 생산지이기도 했다. 유럽인이 동남아를 세계경제에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이미 존재하던 아시아 중심의 교역세계에 뒤늦게 들어온 것에 가깝다. 리드가 1450~1680년을 ‘교역의 시대(Age of Commerce)’라고 부른 이유다. 그의 시각에는 프랑스 아날학파와 페르낭 브로델의 영향이 짙다.
태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똠얌꿍과 팟타이 같은 태국 음식, ‘미소의 나라’, 타이 마사지, 푸껫과 파타야의 아름다운 해변을 떠올릴 것이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동남아의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도 생각날 것이다. 실제로 태국은 독특한 나라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가 동남아를 양분하던 시절에도 독립을 지켰다. 서쪽의 미얀마와 말레이반도는 영국이, 동쪽의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는 프랑스가 차지했지만 그 한가운데 있던 시암, 오늘의 태국은 살아남았다.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완전히 서지 않고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는 태국 외교를 흔히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는 태국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다. 오늘의 태국을 이해하는 데는 세 가지 키워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쿠데타, 왕실과 군부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체제, 그리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민주화다. ■ 첫 번째 키워드, 쿠데타 태국 현대정치의 출발점은 1932년이다. 그해 인민당이 일으킨 무혈혁명으로 짜끄리 왕조의 절대왕정이 끝나고 입헌군주제가 시작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입헌군주제
오늘날 국제질서는 흔히 미국과 중국의 경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이란을 둘러싼 중동의 충돌까지 함께 보면 세계는 단순한 미-중 경쟁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다. 마이클 베클리와 할 브랜즈는 포린어페어지 2026년 7·8월호 "Heartland vs. Rimland"에서 이러한 변화를 20세기 초 매킨더의 '심장부(Heartland)'와 스파이크먼의 '주변부(Rimland)' 이론으로 설명한다. ■ 매킨더와 스파이크먼, 다시 읽는 지정학 영국의 지정학자 핼퍼드 매킨더는 유라시아 내륙을 장악하는 세력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미국의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은 유라시아를 둘러싼 서유럽, 중동, 남아시아, 동아시아의 연안지대, 즉 주변부를 장악하는 세력이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냉전기 미국의 NATO, 한미동맹, 미일동맹은 바로 이 주변부 전략의 산물이었다. 베클리와 브랜즈는 이러한 지정학이 오늘날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했다고 진단한다. ■ 느슨하지만 연결된 새로운 심장부 오늘날의 심장부는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으로 구성된 느슨한 수정주의 연대다.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 중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비행기로 3시간이면 가고 시차도 1시간이다. 10만 명 이상의 우리 국민들이 많이 체류하고 국내 범법자들의 피난처로도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 국민의 피해가 많다. 필리핀 경찰서 내 코리아 데스크가 최초 설치돼 한-필 경찰 공조가 잘 이루어지는 나라로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동남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선도국이었고, 장충체육관도 미국 개발원조로 필리핀 엔지니어들이 건축한 건축물이다. 또한 한국전쟁 시 태국과 함께 동남아에서 참가한 2개국이다. 7,420명이 파견돼 112명이 사망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는 데 기여한 나라이다. 지난해 10월 경주 APEC 계기에 11월 1일 마르코스 주니어(봉봉) 대통령이 현직 필리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식수도 했다. 지금은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이 한국에 많이 온다. 그런데 필리핀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다시 발전하려고 하는 나라다. 한국과 필리핀은 이제 완전 역전되었다. 필리핀이 왜 과거 발전했고 한동안 정체되었는지는 필리핀의 역사를 짚어봐야 한다. 필리핀의 외세 식민지배 및 점령 기간은 380여 년이나 된다.
2014년 중국이 필리핀 해안에서 약 230㎞ 떨어진 스카버러암초(Scarborough Reef, 중국명 황옌다오, 필리핀명 바호 데 마신록)를 점거하고 구단선에 근거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인공섬을 조성했다. 이에 필리핀은 해당 수역이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며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다. 2016년 7월 12일 PCA는 필리핀이 중국을 상대로 제기한 남중국해 중재 사건에서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중국의 '구단선(Nine-Dash Line)'에 근거한 역사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권리 주장도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올해 10주년을 맞아 미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 14개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판결의 의미를 재확인했다. 공동성명은 해양 분쟁의 평화적 해결, 중재판결의 최종성과 법적 구속력,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 보장, 중국의 역사적 권리 주장에 대한 국제법상 근거 부재를 다시 강조했다. ■ 법적지위와 해양 환경 필리핀 섬 인정... 10년이 흘렀지만 끝나지 않은 분쟁 중재판결은 중국의 영유권 주장뿐 아니라 일부 해양지형의 법적 지위와 해양환경 훼
1998년 5월. 인도네시아를 32년간 통치했던 수하르토 대통령이 결국 권좌에서 내려왔다. 당시 나는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에서 정치와 교민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연일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와 폭력 사태 속에서 우리 교민 4,800여 명의 철수를 지원했던 기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최근 인도네시아를 다시 찾았을 때 묘한 데자뷔를 느꼈다. 달러당 18,000루피아. 환율이 1998년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은 완전히 같지는 않다. 당시에는 달러당 2,000루피아 수준에서 불과 몇 달 만에 18,000루피아까지 폭락했던 전례 없는 금융위기였다. 지금은 그만큼의 급격한 붕괴는 아니다. 그럼에도 루피아 약세, 증시 하락, 금리 인상이라는 모습은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뛰고, 이를 잡기 위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린다.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커지고 증시는 약세를 보인다. 이런 흐름은 경제학 교과서 그대로다. 그렇다면 지금 인도네시아 경제는 왜 흔들리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이다. 투자자들은 경제성장률보다 정부를 더 본다. 특히 정부가 재정을 얼마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