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 백 투미 (같은 하늘 아래) Come Back to Me (Under the Same Sky) 돌아오라, 국경 없는 이름들이여 어머니라는 부름은 어디서나 같으니 이 하늘 저 하늘 하나로 이어져 너의 마지막 숨결이 내 가슴에 닿는다 (돌아오라, 내 아이야) 포화가 멎은 들판 위에 이름을 부른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 내려놓고 온 세상 부모의 품으로 돌아와 다오 늙은 권력자들의 명분 따위는 열아홉 청춘의 목숨보다 무거울 수 없어 우리는 모순으로 가득 찬 이 비극을 목놓아 부르며 울부짖어야 한다 다시는, 다시는 내 자식을 빼앗지 마라 다시는, 다시는 피로 물들게 하지 마라 돌아오라, 국경 없는 이름들이여 어머니라는 부름은 어디서나 같으니 이 하늘 저 하늘 하나로 이어져 너의 마지막 숨결이 내 가슴에 닿는다 (돌아오라, 내 아이야) 포화가 멎은 들판 위에 이름을 부른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 내려놓고 온 세상 부모의 품으로 돌아와 다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이든 당신이 눈물 흘리는 곳이 어디이든 우리
태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똠얌꿍과 팟타이 같은 태국 음식, ‘미소의 나라’, 타이 마사지, 푸껫과 파타야의 아름다운 해변을 떠올릴 것이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동남아의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도 생각날 것이다. 실제로 태국은 독특한 나라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가 동남아를 양분하던 시절에도 독립을 지켰다. 서쪽의 미얀마와 말레이반도는 영국이, 동쪽의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는 프랑스가 차지했지만 그 한가운데 있던 시암, 오늘의 태국은 살아남았다.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완전히 서지 않고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는 태국 외교를 흔히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는 태국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다. 오늘의 태국을 이해하는 데는 세 가지 키워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쿠데타, 왕실과 군부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체제, 그리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민주화다. ■ 첫 번째 키워드, 쿠데타 태국 현대정치의 출발점은 1932년이다. 그해 인민당이 일으킨 무혈혁명으로 짜끄리 왕조의 절대왕정이 끝나고 입헌군주제가 시작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입헌군주제
오늘날 국제질서는 흔히 미국과 중국의 경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이란을 둘러싼 중동의 충돌까지 함께 보면 세계는 단순한 미-중 경쟁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다. 마이클 베클리와 할 브랜즈는 포린어페어지 2026년 7·8월호 "Heartland vs. Rimland"에서 이러한 변화를 20세기 초 매킨더의 '심장부(Heartland)'와 스파이크먼의 '주변부(Rimland)' 이론으로 설명한다. ■ 매킨더와 스파이크먼, 다시 읽는 지정학 영국의 지정학자 핼퍼드 매킨더는 유라시아 내륙을 장악하는 세력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미국의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은 유라시아를 둘러싼 서유럽, 중동, 남아시아, 동아시아의 연안지대, 즉 주변부를 장악하는 세력이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냉전기 미국의 NATO, 한미동맹, 미일동맹은 바로 이 주변부 전략의 산물이었다. 베클리와 브랜즈는 이러한 지정학이 오늘날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했다고 진단한다. ■ 느슨하지만 연결된 새로운 심장부 오늘날의 심장부는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으로 구성된 느슨한 수정주의 연대다.
베트남이 도이머이를 천명한 지 40주년을 맞는 해다. 베트남은 20세기 중후반의 상당 기간을 프랑스, 미국, 크메르 루주 및 중국과의 전쟁과 분쟁 속에서 보냈다. 궁핍의 끝에서 몸부림친 베트남은 개혁 개방을 선언하고 세계에 문을 열었다. 세계은행의 명목 달러 기준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의 1인당 GDP는 1986년 436달러에서 2025년 5,066달러로 약 11.6배 증가했다. 다만 이 비교에는 물가와 환율 변동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눈부신 성장 배경에는 ‘도이머이’ 정책이라는 성공적 실천이 있었다. 1986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제6차 전당대회에서 토지·공장·생산·유통을 국가가 일원적으로 통제하던 기존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여러 경제 부문의 활동을 인정하고, 시장이 상품의 가격과 유통을 일정 부분 조절하도록 허용했다. 베트남은 이 정책을 ‘도이머이’, 즉 ‘쇄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도이머이는 어느 날 갑자기 결정된 정책이 아니었다. 지방과 기업이 생존을 위해 먼저 기존 규정을 우회했고, 일부 지도자들이 그 현실을 중앙에 전달했으며, 쯔엉찡(Trường Chinh)을 비롯한 당 원로들이 자신의 오랜 신념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당의 공식 노선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 중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비행기로 3시간이면 가고 시차도 1시간이다. 10만 명 이상의 우리 국민들이 많이 체류하고 국내 범법자들의 피난처로도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 국민의 피해가 많다. 필리핀 경찰서 내 코리아 데스크가 최초 설치돼 한-필 경찰 공조가 잘 이루어지는 나라로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동남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선도국이었고, 장충체육관도 미국 개발원조로 필리핀 엔지니어들이 건축한 건축물이다. 또한 한국전쟁 시 태국과 함께 동남아에서 참가한 2개국이다. 7,420명이 파견돼 112명이 사망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는 데 기여한 나라이다. 지난해 10월 경주 APEC 계기에 11월 1일 마르코스 주니어(봉봉) 대통령이 현직 필리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식수도 했다. 지금은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이 한국에 많이 온다. 그런데 필리핀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다시 발전하려고 하는 나라다. 한국과 필리핀은 이제 완전 역전되었다. 필리핀이 왜 과거 발전했고 한동안 정체되었는지는 필리핀의 역사를 짚어봐야 한다. 필리핀의 외세 식민지배 및 점령 기간은 380여 년이나 된다.
1980년대 대학에 다닌 사람들 가운데에는 『사이공의 흰옷』이라는 책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낯선 베트남 작가가 쓴, 한 여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었다. 지금처럼 베트남을 여행하거나 베트남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만나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대학가 서점과 독서 모임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책을 사 혼자 읽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누군가 읽던 책을 빌려 보거나 여러 사람이 돌려 가며 읽었다는 기억도 전해진다. 책 속의 베트남 여학생들은 거리로 나가고, 체포되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1980년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대학생들의 현실과 자연스럽게 겹쳤다. 그래서 『사이공의 흰옷』은 단순한 외국 소설로 읽히지 않았다. 한 시대의 청년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었고, 사회에 눈뜨는 과정에서 만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오랫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정이 하나 있었다. 1986년 도서출판 친구에서 나온 『사이공의 흰옷―베트남 여학생의 이야기』는 베트남어 원작을 직접 번역한 책이 아니었다. 영어판과 일본어판을 거쳐 한국어로 옮긴 중역본이었다. 번
“트엉하의 세 번째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습니다.” 베트남 저명 소설가 트엉하의 장편소설 『표류』가 산지니에서 출간되었다. 『가자 지구의 잔해』와 『완벽한 위장』에 이어, 트엉하의 세 번째 한국어 번역본으로 배양수가 번역했다. 이 소설은 전쟁과 망각의 경계에서 떠도는 이름 없는 영혼들의 목소리를 불러내는 작품이다. 소설은 베트남 달랏의 소나무 언덕에서 글을 쓰는 여성 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람은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숲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현실과 저승의 경계처럼 보이는 기이한 공간, 검은 목면화가 끝없이 떨어지는 절벽과 마주한다. 그리고 바다의 신으로부터 자신이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인간 세상에 전하는 ‘전언자’라는 말을 듣는다. 람이 기록하게 되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가 아니라 여러 시대와 나라를 지나온 영혼들의 기억이다. 윤회의 문을 찾는 베트남 청년 훙, 중국–베트남 국경 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인 왕 씨, 베트남전쟁의 격랑 속에서 살아간 남베트남 군인 닷, 전쟁과 난민의 비극을 짊어진 모하메드, 권력과 국가의 논리를 대변했던 리처드 등은 검은 목면 나무 아래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들은 국
“과반을 만드는 자가 정부를 갖는다.” 2007년 8월 8일, 동티모르 수도 딜리의 대통령궁에서 샤나나 구스망이 총리로 취임했다. 그해 6월 30일 총선에서 그의 정당은 1위를 하지 못했다. 원내 1당은 21석을 얻은 프레틸린(FRETILIN)이었다. 그해 3월 급히 창당한 구스망의 동티모르저항협의회(CNRT)는 18석으로 2위였다. 그런데 CNRT는 곧바로 민주당(PD), ASDT-PSD 연합과 손을 잡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의회다수연합(AMP)'은 65석 중 37석을 확보했다. 동티모르 정부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하무스-오르타 대통령은 8월 3일 이 연합에 정부 구성을 요청했고 닷새 뒤 구스망이 총리로 취임했다. 프레틸린은 최다 득표 정당에 우선권이 있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으나, 동티모르 헌법은 원내 1당에게 정부 구성의 선행권을 주지 않는다. 1위를 하고도 야당이 되는 일. 한국 정치의 문법으로는 낯설지만 동티모르에서는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딜리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이런 장면을 가리키는 현지의 표현을 수없이 들었다. '샤나나 매직(Xanana Magic)'이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구스망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기어이 상황을 뒤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