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수의 Xin chào
[배양수의 Xin chào26] 식민지 금융권력의 중심, 인도차이나 은행
호찌민시 벤응에 운하의 물결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은회색의 거대한 5층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방크 드 라인도신(Banque de l’Indochine), 즉 인도차이나 은행의 본점이었다. 인도차이나 은행은 1875년 1월 21일 파리에서 설립된 프랑스 민간은행이다.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화폐 발행권과 여러 중요한 금융 서비스를 담당했다. 이 건물은 1924년에 착공하여 1929년에 준공되었으며, 건축가 펠릭스 뒤마이유가 설계했다. 이 건물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오래된 은행 건물이어서가 아니다. 인도차이나 은행은 프랑스 식민지 지배에서 거의 중앙은행과 같은 역할을 맡았던 민간 금융기관이었다. 군대가 점령지를 넓히면 은행 지점이 뒤따랐고, 현지의 다양한 화폐는 점차 인도차이나 피아스터라는 식민지 통화 체계 안으로 편입되었다. 다시 말해 이 은행은 돈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식민지의 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통제하는 장치였다. 건물의 외관에 새겨진 연꽃, 가루다, 나가 문양은 현지 문화의 아름다운 장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작동한 것은 프랑스 금융 권력이었다. 훗날, 이 건물이 남베트남의 국가은행, 다시 통일 베트남의 국가은행으로 바뀐 사실은 더욱 상징적이다. 한때 식민지 화폐 권력의 중심이었던 건물이, 이제는 베트남 국가 금융 주권의 공간으로 다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 서양 고전주의와 현지 상징이 결합된 건축미 이 거대한 건물은 네오클래식 양식과 아르데코 양식을 조화롭게 결합하고 있으며, 동시에 현지 문화의 독특한 장식 요소를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꼭대기 층에 표현된 나가 신(Naga)을 형상화한 부조와 캄보디아 및 남아시아 신앙에서 유래한 장식 문양이다. 이러한 성스러운 상징들은 지붕 가장자리와 꼭대기 층 전면 발코니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탁 트인 공간 속에서 굵직한 기둥들, 정교한 부조 장식, 그리고 막 피어나는 연꽃 봉오리 모양의 아름다운 난간 기둥머리를 볼 수 있다. 5층에 올라간 방문객은 마치 앙코르와트나 신비로운 남아시아 사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5층의 양쪽 끝에는 궁전의 문처럼 설계된 출입문을 갖춘, 높게 돌출된 두 개의 방이 있다. 이 공간들은 서양과 현지의 부조와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두 요소가 매우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있다. 그중 문 위쪽의 박공 부분은 전통적인 그리스 건축에서 볼 수 있는 A자형 삼각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윗부분의 장식 테두리에는 나가 뱀과 연꽃 봉오리 형상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전통 문양인 월계수 가지 모양의 부조가 배치되어 있다. 불교적 상징인 연꽃은 건물 전면의 난간과 출입구, 그리고 내부 일부 공간에도 나타난다. 또한 금빛 금속으로 만든 연꽃 문장은 모든 층의 고전적인 엘리베이터 문에도 부착되어 있다. 건물의 정면은 8개의 반듯하고 곧게 뻗은 사각기둥으로 인해 위엄 있으면서도 시원한 인상을 준다. 이 기둥들은 지상층에서 옥상층까지 수직으로 이어진다. 지상층은 천장이 매우 높으며, 은행의 넓은 거래 공간인 대형 홀로 이어진다. 출입문 위에는 통풍과 채광을 위한 검은색 철제 격자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훌륭한 장식 작품이다. 이 철제 장식에는 연꽃 문양이 새겨져 있고, 중앙에는 팔괘 문양이 더해져 있다. 팔괘는 동아시아 풍수에서 안정과 견고함을 상징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형 홀(Central Hall) 내부다. 이곳은 자연광으로 가득 차 있는데, 천장이 남아메리카 잉카의 피라미드 형태를 연상시키는 여러 단의 돔형 채광창(Coupoles)이 설치되어 있다. 이를 통해 전등 없이도 실내 가득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빛이 쏟아져 내립니다.각각의 유리 단은 흰색 또는 노란색을 띠며 서로 이어져 있어, 장중하면서도 친근한 인상을 준다. 이 아름다운 유리 돔을 떠받치는 것은 네 개의 거대한 기둥 군이다. 이 기둥들은 밤색 대리석 타일로 마감되어 있으며, 마치 보물을 지키는 근엄한 파수병처럼 높이 솟아 있다.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대리석으로 마감된 거래 창구에는 보호 유리가 설치되어 있고, 네 개의 기둥 사이에 닫힌 사각형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창구 바깥쪽에는 넓은 바닥 공간이 펼쳐져 있으며, 그 둘레로는 사무실을 따라 이어지는 복도가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거래 공간 전체의 설계는 세련된 아르데코 양식을 보여 주는 동시에, 은행에 필요한 장엄함, 투명성, 안전성을 드러낸다. 거래 홀의 바깥쪽 공간은 두 층으로 나뉜다. 위층에는 검은색으로 칠한 예술적인 철제 난간이 있으며, 아래층에는 높이가 약 3미터에 이르는 큰 출입문들이 있다. 각 층의 사무실, 회의실, 문서 보관실, 도서실의 출입문들도 이와 비슷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건물 아래에는 돈, 귀금속, 보물 등을 보관하던 지하층이 있다. 건물 뒤쪽에는 양쪽 끝이 둥글게 처리된 두 개의 탑이 있으며, 이는 아르데코 양식의 특징을 보여 준다. 이 부분 역시 건물의 다른 부분과 유사한 설계와 장식을 지니고 있다. 건물 전체는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아도 쾌적한 온도와 공기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는 여러 겹으로 벽돌을 쌓는 기술과 뛰어난 환기 시스템 덕분이었다. 인도차이나 은행 건물 근처, 보반끼엣 거리와 호뚱머우 거리의 모퉁이에는 같은 은회색 계열의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이 건물은 원래 홍콩상하이은행, 즉 HSBC의 본점이었다. 같은 시기에 지어졌으며 규모는 더 작지만, 영국 건축의 독자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 식민지 은행에서 베트남 국가은행으로...금융·은행 지구 상징 인도차이나 은행 건물은 단순히 규모가 큰 건축물이 아니다. 실제로 이 건물은 금융적 측면과 아울러 건축적 측면에서도 하나의 ‘보물창고’라 할 만하다. 이 건물은 프랑스-인도차이나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걸작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더 나아가, 벤응에 운하를 따라 계획되고 카잉호이 항구를 마주 보도록 배치된 사이공 변의 금융·은행 지구를 상징하는 유산이자 대표적 건축물이기도 하다. 국가 건축 유적(National Relic)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1954년 이후 이 건물은 베트남공화국 정부의 중앙은행 청사가 되었다. 1975년 4월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베트남 국가은행 호찌민시 지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베트남의 주요 기관 이름에는 ‘인민(nhân dân)'이라는 말이 많이 들어간다. 경찰은 인민 경찰(công an nhân dân), 법원은 인민 법원(tòa án nhân dân), 검찰은 인민 검찰(viện kiểm sát nhân dân), 군대는 인민 군대(quân đội nhân dân), 지방 행정기관은 인민위원회(ủy ban nhân dân), 지방 의회는 인민의회(hội đồng nhân dân)라고 부른다. 그런데 은행은 인민은행이 아니라 국가은행(ngân hàng nhà nước)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것은 인민의 것이지만, 돈은 국가의 것이다”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