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새벽 바다를 보며 뉴스를 켰다. 미국이 2월 28일 이란을 공습했고, 이스라엘도 미사일 공격을 단행했다. 중동의 화염은 다시 세계 경제의 심장을 흔들기 시작했다. 자카르타에서 아세안 외교현장 시절, 중동 위기가 동남아 시장을 얼마나 빠르게 흔드는지 여러 번 목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다. 세계 해상 원유의 약 20~30%가 통과하는 이 좁은 바다가 막히거나 불안해지면 유가는 즉각 반응한다. 이미 시장과 경제연구소에서는 배럴당 70달러에서 100달러까지 상승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국과 일본처럼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나라뿐 아니라 태국·필리핀·베트남 등 아세안 수입국들도 물가 상승과 환율 불안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에너지 기업 주가가 오르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위기가 1973년 오일쇼크 같은 충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은 셰일 혁명 이후 원유 생산 능력을 갖췄고, 가격 상승 시 생산 확대 카드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도 과거보다 유연해졌다. 하지만 중동산 원유 수입의 70~90%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일본은 원유
세계화는 끝났는가. 미중 경쟁과 공급망 재편의 시대를 바라보며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그러나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수석이코노미스트였던 닐 시어링(Neil Shearing)이 그의 책 The ‘분열의 시대’(Fractured Age)에서 강조하듯, 지금의 변화는 세계화의 종말이 아니라 형태의 변화다. 세계화는 멈춘 적이 없다. 다만 방향과 구조가 달라질 뿐이다. 세계화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기원전 수메르와 인더스 문명 사이의 교역, 한나라 시대의 실크로드, 향신료를 따라 움직인 인도양 네트워크는 모두 초기 세계화였다. 상인과 승려, 병사와 질병이 함께 이동하며 기술과 사상, 종교가 퍼졌다. 동남아는 이 흐름의 중심이었다. 말라카 해협과 자바해, 메콩과 차오프라야 강을 따라 인도·중국·이슬람 문명이 교차하며 앙코르와 보로부두르 같은 혼종 문명을 낳았다. 근대의 세계화는 15세기 말 대항해시대 이후 본격화된다. 유럽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를 잇는 삼각무역, 마닐라 갈레온 무역,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과 프랑스의 동남아 진출은 세계경제를 하나의 체계로 묶었다. 향신료와 은, 노예와 면직물의 이동은 동남아를 다시 세계 교역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현대 세계화는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세계는 두 강대 세력의 경쟁 속에 흔들렸다. 해양 상업국가 신흥 아테네와 군사 중심의 육상 강국 스파르타. 이 둘의 대결은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고, 승패를 떠나 그리스 전체의 쇠퇴를 초래했다. 이 사례는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을 설명하는 비유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남긴 “아테네의 부상과 그로 인한 스파르타의 공포가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통찰은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재해석되며 현대 국제정치 담론의 단골 개념이 되었다. 비유는 단순하다. 아테네는 해상 네트워크와 상업, 동맹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한 개방적 강국이었다. 델로스 동맹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고, 민주정이라는 정치적 정당성을 내세웠다. 반면 스파르타는 육상 군사력과 규율, 전통 질서 수호를 핵심 가치로 삼았다. 폐쇄적이지만 안정된 체제,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패권을 유지하려 했다. 이를 오늘에 대입하면 미국은 해양 패권과 동맹 네트워크, 규범 질서를 기반으로 한 아테네형 강국으로, 중국은 대륙 기반의 국력과 군사 현대화를 통해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스파르타형 신흥 강국으로 비유된다. 미국은 제2차
동남아 외교를 오래 지켜본 이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ASEAN의 by-default leadership(방임적 리더십)”은 의도적으로 질서를 설계해 끌고 가는 리더십이 아니라, 강대국이 서로 불편해 주도하지 못하는 공간을 결과적으로 아세안이 메우며 회의를 굴려가는 리더십을 뜻한다. 반대로 EU 등 선진 지역기구가 국제무대에서 보여주는 방식은 by-design leadership—처음부터 규범과 제도를 설계하고, 기준을 제시하며, 따르지 않으면 비용이 따르는 리더십이다. 이 두 방식은 겉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작동 원리는 완전히 다르다. ASEAN의 리더십은 ‘의제 설정’이 아니라 ‘판 유지’에 가깝다. 아세안안보포럼(ARF), 아세안+3(APT), 동아시아정상회의(EAS), 확대아세안국방장관회의(ADMM-Plus)같은 협의체에서 아세안의 목표는 늘 같았다. 누구도 불편해서 회의장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성명은 모호하고, 표현은 절제되어 있으며, 합의는 최소공약수에 머문다. 그 대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호주가 같은 테이블에 앉는 구조는 유지된다. ‘아세안중심성(ASEAN Centrality)’는 권위가 아니라, 플랫폼 통제력
2015년 아세안 공동체가 출범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에게는 ‘먼 이야기’다. 역내 무역과 투자는 늘었고, 정상과 외교장관 회의는 정례화됐지만, 일상에서 “아세안 덕분에 삶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시민은 많지 않다. 아세안이 하나의 공동체라면, 왜 ‘우리(We- feeling)’라는 감각은 이렇게 약할까. 아세안 공동체는 세 개의 축으로 추진돼 왔다. 경제공동체(AEC), 정치안보공동체(APSC), 사회문화공동체(ASCC)다. 성과의 속도와 체감도는 이 순서와 거의 일치한다. AEC는 다국적 기업과 글로벌 가치사슬을 중심으로 가장 빠르게 진전됐다. 역내 교역과 외국인 투자는 확대됐고, 아세안은 ‘하나의 생산기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혜택은 대체로 기업과 투자자에게 먼저 돌아갔고, 일반 국민의 체감은 제한적이었다. 정치안보공동체는 엘리트 중심의 영역이다. 분쟁을 관리하는 대화와 규범의 장으로서 아세안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는 외교관과 안보 전문가의 언어에 가깝다. 합의와 비간섭의 원칙은 안정에는 기여했지만, 국민에게 ‘공동체의 실감’을 주기에는 거리감이 크다. 가장 늦게, 그리고 가장 더디게 움직여 온 축이 사회문화공동체
국제질서는 지금 공위기(interregnum)에 놓여 있다. 팍스아메리카의 균열은 분명해졌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이런 과도기에는 규칙이 느슨해지고 힘의 논리가 전면에 등장한다. 약소국과 중견국이 다수인 아세안에게 이는 가장 불안한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은 과연 원칙과 현실을 함께 반영한 ‘조용한 외교’를 계속할 수 있을까. 아세안 외교는 오랫동안 비간섭, 합의, 점진성을 핵심 원칙으로 하는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중시해 왔다. 요란한 성명이나 공개적 충돌을 피하고, 비공식 접촉과 시간을 통한 해결을 선호했다. 이는 이상주의라기보다 현실주의였다. 체제도, 국력도, 전략적 이해도 다른 국가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최소한의 안정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구조화되고, 국제규범의 구속력은 약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세안의 원칙은 점점 ‘신중함’이 아니라 ‘모호함’, ‘조용함’이 아니라 ‘침묵’으로 읽히고 있다. 남중국해, 미얀마 사태 등에서 반복된 무력감은 아세안 방식 자체에 대한 회의를 키운다. 원칙을 지키려다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주의로 비칠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