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질서는 지금 공위기(interregnum)에 놓여 있다. 팍스아메리카의 균열은 분명해졌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이런 과도기에는 규칙이 느슨해지고 힘의 논리가 전면에 등장한다. 약소국과 중견국이 다수인 아세안에게 이는 가장 불안한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은 과연 원칙과 현실을 함께 반영한 ‘조용한 외교’를 계속할 수 있을까. 아세안 외교는 오랫동안 비간섭, 합의, 점진성을 핵심 원칙으로 하는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중시해 왔다. 요란한 성명이나 공개적 충돌을 피하고, 비공식 접촉과 시간을 통한 해결을 선호했다. 이는 이상주의라기보다 현실주의였다. 체제도, 국력도, 전략적 이해도 다른 국가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최소한의 안정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구조화되고, 국제규범의 구속력은 약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세안의 원칙은 점점 ‘신중함’이 아니라 ‘모호함’, ‘조용함’이 아니라 ‘침묵’으로 읽히고 있다. 남중국해, 미얀마 사태 등에서 반복된 무력감은 아세안 방식 자체에 대한 회의를 키운다. 원칙을 지키려다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주의로 비칠 위험
전세계 대부분 지역과 마찬가지로 2021년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2월 말 기준 각각 누적 확진자 수 133만 명, 57만 명을 돌파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지에서도 감염 사례가 연일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나마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태국 등이 속속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열에 합류하는 사실이 위안거리입니다. 이렇듯 일상으로 복귀가 당분간은 쉽지 않아 보이는 아세안을 강타한 소식이 2월의 첫날 들려왔습니다. 바로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의 주도로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간 비상 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이후 군부 독재 체제로 회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미얀마 곳곳에서 펼쳐졌고, 이를 군경이 강경 진압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는 안타까운 외신이 보도됐습니다. 미국과 EU(유럽연합) 등을 중심으로 국제 사회가 군부를 겨냥한 비난과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민주화를 외치는 미얀마 국민들의 목소리 또한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