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의 일이다. 싱가포르에서 저가항공을 타고 미얀마 양곤으로 향하고 있는데, 옆좌석의 젊은 외국인 아가씨가 내 푸른색 여권을 보고 먼저 인사를 건네온 것이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저 지금 케이팝(K-POP)을 듣고 있었어요. 한국 사람을 비행기에서 만날 것이라곤 생각도 못해봤어요." 무료한 비행기에서 친근한 인상의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한참을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샨족 출신의 미얀마인 그녀가 싱가포르에서 한 소규모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창 대학입시를 준비할 고등학생이 나홀로 싱가포르에까지 가서 공부할 일은 없을 테니 대학생인 것은 알겠는데, 그녀의 앳된 얼굴이 나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혹시 나이를 여쭤봐도 되나요?" "물론이에요. 저는 올해로 17살이에요. 내년이면 폴리테크닉(3년제)에서 간호학 학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에요." 1. 왜 미얀마의 정규교육은 10년에 불과할까? 미얀마는 여느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무척이나 젊은 국가다. 2018년 기준으로 평균 나이가 28세에 불과할 정도다. 노동인구도 3000만 명이나 되기 때문에 언제나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들로 넘쳐난다. 이런 구
미얀마의 정치체제는 한국과 비슷한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지만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연방제 성격도 일부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이나 중국과 흡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대통령을 국민이 아닌 의회에서 간접 선출하기 때문에 의원내각제라고 해도 무방한 게 현실이다. 종합적으로 여러 나라의 정치 시스템을 적절하게 섞어놓은 절충형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미얀마의 정치권력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에게 집중되어 있다. 2015년 선거에서 대승한 집권여당 NLD(민주주의 민족동맹)의 지도자인 수치 여사는 외교부-대통령실-교육부 및 에너지부 장관을 겸직하며 ‘스테이트 카운슬러’ (국가고문)이란 직책으로 사실상 내각과 행정부를 장악하고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로 활약 중이다. 1. 미얀마 민주세력의 고민 수치 여사의 권력이 얼마나 확고한 지는 2016년 이후 미얀마의 대통령이 어떻게 결정됐는지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NLD의 첫 대통령은 띤 쩌(74)로 아웅산 수치의 비서를 지냈던 측근 출신이었다. 2년 뒤 교체된 현재의 윈 민 대통령(71)은 직전 하원의장이었다. 오랜 기간 수치 여사와 정치를 함께 한 동지이자 충실한 지지자로 알려졌다. 물론 이 두 대통령을 결정한
싱가포르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응해 ‘왓츠앱’을 통해 관련 속보 서비스를 진행중이다. 왓츠앱은 한국의 카카오톡과 거의 흡사한 서비스로 거대한 카톡 단톡방과 다를바 없다. 한 번 가입이 되면 뉴스를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현재 싱가포르의 바이러스 감염 관련 속보를 매일 수차례나 스마트폰으로 전달되니 시민 입장에서 무척이나 편리한 서비스다. 그런데, 싱가포르가 보여주는 통계는 다른 나라와 확연하게 다르다. 한국의 경우, 지역별 감염과, 해외유입과 국내 발생 정도가 가장 유의미한 분류가 된다. 필자의 왓츠앱으로 전달된 4월 26일자 ‘확진자 통계’ 메시지를 통해 싱가포르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점을 살펴보자. ***4월 26일*** 신규 확진자: 931 해외 입국자: 2 커뮤니티 내 확진자: 18 (싱가포리언/PR: 13, 워크패스:5) 워크퍼밋 소유자: 25 (도미토리 밖 거주자) 워크퍼밋 소유자: 886 (도미토리 거주자) --------------------------------- 현재까지 총 확진자: 13,624 명 인구 600만의 작은 도시에 신규 확진자가 하루 900명이 넘는다면 누구라도 무척이나 심각한 단계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미얀마 양곤에 살고 있는 필자는 약 2주간의 꽤나 엄격한 도심 폐쇄(lockdown) 상황을 겪었다. 시내의 모든 식당이 영업을 멈추고 거의 유일한 식량공급원이던 슈퍼마켓까지 문을 닫으니 별 수 없이 집안에 꼼짝없이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얀마의 락다운(도시폐쇄)이 여느 대도시의 그것과 유별나게 다른 점이라면 사회기반시설의 불안정으로 상당히 빈번한 단전과 인터넷 끊김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이 집에서 전력을 소모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예고 없이 전력이 끊긴 양곤의 어두운 밤을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력이 끊기면 인터넷도, 냉장고도, 컴퓨터와 에어컨도 모두가 멈춘다. 밖에 나돌아 다닐 수도 없는 환경에서, 한번 끊기면 보통 5시간을 넘기는 단전상황을 겪어보니 더이상 시내에 살아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양곤 외곽으로의 이사를 결정했다. 1. 양곤에 도착한 윈난(雲南)성 출신 사업가 유(劉)씨 성을 지닌 중국인 사업가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필자는 2012년에 처음 미얀마 양곤을 취재한 경험이 있었는데, 당시 모 대표님의 제안으로 중국과의 교역으로 한창 활기를 띄던 북쪽의 만달레이에 가
新加坡 통신⑨ 싱가포르 차기 지도자 '헹 스위 킷' <2> 리콴유 비서로 정계 입문 싱가포르의 고위공무원 가운데는 군인 장교출신이 유난히 많다. 현 리셴룽 총리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1965년에 말레시이아 연방에서 독립한 신생독립국인 만큼 국방력 강화가 아주 절실한 국가과제였던 영향이 크다. 그래서 1970~80년대에 아주 많은 인재들이 군대로 유입이 됐고, 이후 성공적으로 행정관료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여타 군부정치와는 사뭇 다른 방식의 엘리트 군인의 활용인 셈이다. 1. 경찰로 커리어 시작한 '글로벌 수재' 헹 스위 킷. (그의 중국식 이름 표기는 왕서걸(王瑞杰)이다. 중국 5대 화교에 속하는 조주인인 탓에 조주어 발음표기인 Heng Swee Keat 으로 불린다. 이 발음은 '헹' 보다는 '헝'에 가깝고, '킷' 보다는 '낏'에 가깝지만, 이미 널리 헹 스위 킷으로 표기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 표기법을 따른다.) 헹 스위 킷은 1984년 경찰(PAP)로 공직 커리어를 시작했다. 내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영국식 통치제도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자연스러운 행보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두각을 보였는지 199
정호재 新加坡 통신⑨ 싱가포르 차기 지도자 '헹 스위 킷' <1> 싱가포르의 정치 체제는 작은 나라임에도 상당히 복잡한 탓에 좁은 지면에 다 서술하기 어렵지만 일부 정치학자들은 그 핵심을 ‘협력적 권위주의(Consultative Authoritarianism)’라는 조금은 모순적인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권위주의는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독재자가 지배하는 형식인데, 이 앞에 붙는 ‘컨설티브’는 아주 사소한 사안이라도 세밀하게 대중에게 설명하고 소통하는 방식의 지배방식을 뜻한다. 나라의 국부격인 리콴유(李顯龍)로부터 시작해 (고촉통(吳作棟) 총리를 거쳐) 아들 리센룽(李顯龍)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정치체제의 장점을 요약한 표현으로, 이 나라의 지도자는 정통성은 물론이고 실력까지 겸비해야 함을 뜻한다. 1. “협력적, 상담 방식의 권위주의(Consultative Authoritarianism)” 실제로 싱가포르에서 살아본 사람은 지도자 리센룽 총리의 아주 세밀한 국정연설을 1년에도 수차례 정기적으로 TV 화면을 통해 접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 방식이 여느 민주주의 체제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보통 민주국가의 지도자는 매스미디어를
지난 3월 18일 한국의 공군수송기 C-130J 두 대가 미얀마 양곤 공항에 긴급 도착한 일이 있다. 이는 바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을 위한 수술용 가운 8만 벌을 급히 한국으로 전달하기 위한 운항이었다. 이 수술용 가운은 곧바로 전국 의료시설에 전달되어 의료진과 환자를 살리기 위한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여기서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흥미를 가질 대목은 "어째서 미얀마에서 수술용 가운을 공수해 왔을까?"하는 점일 것이다. 답은 아주 간단한데, 미얀마의 주력 산업이 바로 봉제와 섬유산업이라는 점이고,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관련 업체만 100여개가 넘고 고용한 인원도 2만 명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미얀마에 위치한 한국계 공장에서 수술가운이 만들어졌고 이를 한국의 공군을 통해 긴급 수송한 것이다. 한국과 미얀마의 봉제산업의 역사는 1990년대 대우와 세계물산이 처음 진출한 이래 꾸준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전세계 봉제산업이 미얀마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방글라데시-미얀마-캄보디아-인도네시아로 이어지는 남아시아의 봉제-섬유 산업 벨트는 한국은 물론 전세계의 섬유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형편이다. 1. 봉제산업, 저개발 미
전세계 주식시장이 신종바이러스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시장이 하나 있다. 바로 미얀마의 주식시장인 '양곤 스톡 익스체인지' 줄임말로 'YSX'가 그 주인공이다. 동남아시아 금융시장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미얀마의 주식시장의 존재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2016년에 본격적인 문을 연,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늦게 태동한 현대적 증권거래소이자 가장 작은 규모의 시장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상장된 기업의 숫자는 5개에 불과하고 전체 시총도 5000억원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다 (인접국 태국의 상장회사는 600여 개에 이른다). 이런 소규모의 미얀마 증권거래소(YSX)가 최근 국제적 관심을 끄는 이유는 오는 3월 20일부터 본격적으로 외국인의 거래 참여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일정 정도의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미얀마에 거주하는 외국인이어야 하고, 외국인 지분은 기업전체 지분의 35%를 넘어설 수가 없도록 정해졌다. 이 외국인 지분에 대한 내용은 개별 회사가 내부 규정에 따라 결정하게 되어 있다. 앞으로 거래를 원하는 외국인은 양곤시내 증권거래소에 가서 계좌
3월 12일자로 미얀마 정부도 인접국 태국과 베트남의 선례를 따라 이탈리아, 이란 및 한국인의 관광객 입국 불허한다는 결정을 내렸다(3월 7일부터 대구경북 거주자에 대한 입국은 제한이 되어 왔었다). 코로나19로부터 감염이 안됐다는 의료증명서를 지참하면 입국이 허가는 되지만, 그같은 절차를 감내하면서까지 관광비자를 받을 사람은 없기 때문에 사실상 관광목적의 입국은 불허가 된 셈이다. 아웅 조 잔 미얀마 법무부 사무국장은 "한국을 포함한 3개국 대사관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사전에 잘 설명했다. 다만 항공편은 차질없이 운행이 지속될 것이다"고 미얀마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에 따라 한국인 입국자에 대한 조치는 크게 두 대목인데, 다음과 같다. Anyone who departed from South Korea must submit a medical certificate to prove that they are not infected with COVID-19 at designated medical centers (as of Mar 12): 3월 12일 이후 한국에서 오는 사람은 '코로나 음성진단서'를 첨부해야 한다 Anyone who is a resident or
미얀마는 한반도와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미얀마가 중국과 국경을 맞댄 14개 국가 중 하나라는 점이다. 무려 2100km의 국경을 중국의 윈난성과 공유한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인 1334km보다 1.5배 가량 긴 셈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미얀마에게 커다란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했다. 당연히 화려한 중국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도 했지만, 반대로 최고의 불교문명을 일구던 바간 왕국이 몽골의 침략으로 무너지기도 했고, 명나라의 황족이 만주족의 공격에 쫓겨 도달한 곳이 미얀마이기도 했다. 가까이는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밀린 국민당 군대 일파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도주로가 버마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상당수 중국인이 국경 오지에서 양귀비를 키우며 생존을 모색하기도 했고, 많은 패잔병들은 결국 대만을 최종 목적지로 삼아 되돌아가기도 했다. 지난 30년간 중국은 미얀마 폐쇄경제 유지의 가장 중요한 생명줄이 되어왔다. 미얀마는 중국과의 활발한 국경무역을 통해 부족한 생필품을 보충하고 미얀마의 주요 생산품인 천연가스와 목재 광석 등을 몰래 수출하면서 서구사회의 경제제재로부터 버틸 수가 있었다. 금수
현대 미얀마의 상징 "아웅산 수치"와 개헌 그리고 2020 총선 미얀마에서 가장 유명한 세계적 인물은 다름아닌 '아웅산 수치' 여사다. 미얀마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그녀의 이름과 민주주의를 향한 고귀한 행적은 글로벌 상식으로 통한다. 1945년생인 그녀는 올해로 75세가 됐다. 영어로는 Aung San Suu Kyi라고 쓰고 '수치 여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는 행정부 정식 명칭인 "스테이트 카운셀러(일종의 총리직)"로 표기하며, 미얀마 국민들은 그냥 "아메 수(엄마 수)"로 부를 정도로 친근한 실질적인 지도자로 통용된다. 실제로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미얀마는 여느 아세안 국가들 처럼 대통령이 온 것이 아니라 수치 여사가 방문했다. 2015년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그는 2016년부터 '외교부' '교육부' '에너지 전력부' '대통령실 장관' 등 4개 부처의 장관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실질적인 권한은 물론 나라의 상징성까지 두루 갖춘 미얀마라는 국가의 최고 책임자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자연스레 "대통령이나 총리는 어디 가고?"란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 애매모호한 직함을 갖게 된 것인지
지난해 11월을 마지막으로 양곤에는 비 한방울 내리지 않고 있다. 미얀마 현대사의 중심이자 경제의 중심인 '양곤'이 여느 동남아 국가와 다른 점은 적지 않겠지만, 필자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날씨"에 있다고 느낀다. 동남아 기후가 겨울과 여름이 아닌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필자가 경험해본 양곤의 날씨는 직선거리로 불과 500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태국의 방콕과도 크게 다르다. 태국이나 캄보디아는 적어도 건기라도 비가 완전히 없는 게 아니라 가끔 스콜성 소나기가 간간이 내린다. 그런데 양곤은 오히려 인도남부와 기후가 비슷해 건기에는 비가 전혀 없다. 적어도 5월은 되어야 비가 시작될 것이고, 우기가 본격화되면 10월까지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식이다. 이렇게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 도로엔 먼지가 많아지고 당연히 해충의 독성도 세지기 마련이다. 1. 모기와의 전쟁이 매일의 일상 미얀마에서 사실 가장 불편한 점은 교통편도 음식도 아니고 '모기'라는 게 적지 않은 외국인 거주자들의 체험담이다. 모기가 얼마나 많냐면 창문이나 방문을 너무 오래 열어 놓으면 적어도 10마리 정도는 1시간 안에 잡을 정도로 몰려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