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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의 緬甸 통신<13>] 열여섯살 대학생 가능한 미얀마 교육 숙제

10년제 교육 제도를 국제 표준 '12년제로 개혁에 나선 수치 정부...코로나로 '덜컹'?

 

지난 연말의 일이다. 싱가포르에서 저가항공을 타고 미얀마 양곤으로 향하고 있는데, 옆좌석의 젊은 외국인 아가씨가 내 푸른색 여권을 보고 먼저 인사를 건네온 것이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저 지금 케이팝(K-POP)을 듣고 있었어요. 한국 사람을 비행기에서 만날 것이라곤 생각도 못해봤어요."

 

무료한 비행기에서 친근한 인상의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한참을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샨족 출신의 미얀마인 그녀가 싱가포르에서 한 소규모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창 대학입시를 준비할 고등학생이 나홀로 싱가포르에까지 가서 공부할 일은 없을 테니 대학생인 것은 알겠는데, 그녀의 앳된 얼굴이 나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혹시 나이를 여쭤봐도 되나요?"

 

"물론이에요. 저는 올해로 17살이에요. 내년이면 폴리테크닉(3년제)에서 간호학 학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에요."

 

1. 왜 미얀마의 정규교육은 10년에 불과할까?

 

미얀마는 여느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무척이나 젊은 국가다. 2018년 기준으로 평균 나이가 28세에 불과할 정도다. 노동인구도 3000만 명이나 되기 때문에 언제나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들로 넘쳐난다.

 

이런 구직자들은 전문대학이든 통신대학(한국의 방송통신대학 개념)이든 일반 4년제 대학 학사학위를 학부의 종류를 불문하고 대학 졸업자들의 나이가 보통 20살, 21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정규대학보다 1년에 10일만 등교하면 학력이 인정되는 통신대학도 많아 대부분 17살부터 취업전성에 뛰어든 학생들을 빈번히 접할 수 있다. 

 

앞선 사례는 조금 극단적이지만 이렇게 조기 대학 졸업자가 양산되는 이유는 미얀마의 아주 독특한 5+5=10년제 교육 제도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6+3+3과 같은 12년제 시스템을 갖고 있다면, 미얀마는 7살에 학교를 들어가 초등학교 4년과 중고등학교 6년이면 대학입학 자격을 얻게 된다. 

 

적어도 17살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빠르면 20살이면 학사학위까지 얻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다보니 개혁과 개방이 본격화된 2010년 이후에는 갖가지 해프닝이 적잖이 발생했다고 한다.

 

해외 유학을 간 미얀마 학생들이 자신들의 학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시험을 보거나 대졸자라고 해도 학부과정을 다시 다녀야 하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대학교육의 질도 그리 높다고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국가발전에 저해가 됐던 것은 물론이다. 

 

물론 처음부터 미얀마가 10년제 교육제도와 빈약한 고등교육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62년 군부가 집권하기 이전까지는 영국의 교육제도를 받아들이고, 자체적으로 발전시켜 세계표준과 근접했음은 물론이고 영어를 이중언어 수준에서 교육해왔다. 또 양곤대학을 비롯한 국립대학의 수준도 동남아에서 손꼽히는 수준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군부독재가 본격화되면서 점차 외세의 영향을 배격하고 정부가 교육에 대한 전권을 휘두르기 시작하면서 교육의 품질이 사회주의화의 길을 걷게되면서 상황이 뒤바뀐다.

 

특히 1988년 이후 대학생들과 신군부의 대결이 본격화되자 아예 정부는 고등교육을 해체하는 수준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민주화 시위의 핵심 역할을 했던 양곤대학과 만달레이 대학을 2015년까지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나아가 정규교육은 10년으로 줄이고 대학설립을 억제하다보니 국제사회로부터 ‘우민화 정책'이라는 비난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군부가 미얀마 국민을 ‘우민화’로 내몬 게 의도적인 지 여부에 대한 논란도 있다. 폐쇄적인 경제운용과 미국 등 서방세계의 금수조치로 인해 국가경제가 피폐해진데다 군부의 예산이 한때 국가예산의 30%까지 육박하자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지출을 줄이면서 벌어진 결과라는 해석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교육의 양과 질을 떨어뜨려 군부의 장기독재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2. 아웅산 수치 정부의 '교육개혁' 올해부터 본격화? 

 

2016년 집권에 성공한 NLD(민주주의민족동맹)와 아웅산 수치 정부의 기본적인 정책 방향은 크게 평화정착과 경제개발을 위한 개혁개방으로 요약된다. 멀지만 반드시 가야하는 이 길을 위해서는 국제수준에 걸맞은 교육개혁이 반드시 요구된다.

 

취임 전부터 아웅산 수치 여사는 교육에 대한 부분을 여러차례 강조했지만 부족한 국가 재정으로 인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정규 교육과정을 10년에서 12년으로 늘리고 고등교육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가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선생님과 교실의 절대량이 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과정의 전체적인 조정과 교보재 개발도 필수적이다. 올해 미얀마 정부의 국가 총예산은 30조원 정도로 작은 것도 문제지만, 현재 국가예산의 쓰임새는 전기와 도로 건설 등 인프라 시설에 집중되는 것도 교육개혁에 걸림돌이 된다.   

 

한동안 이를 시정하기 위한 계획들이 적잖이 제기됐지만 올해초에서야 비로서 아웅산 수치 정권은이를 개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고 나섰다. 

 

우 뚠 마웅 미얀마 정규교육과정 담당 부국장은 "미얀마의 교육시스템은 국제수준에서 한참 뒤쳐져 있다. 올해 안에 10년제 시스템을 12년제 시스템으로 바꿔서 국제적인 표준에 부합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새로운 교제배포와 학사일정 재조정 및 교사재교육 등의 일련의 교육개혁 프로그램을 올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이란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 이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미얀마 교육계도 전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 위협에 따라 6월 1일까지는 전면적인 휴교 상태에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절대 수입이 부족한 선생님들은 사교육으로 수입을 보충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을 즐긴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음달 학교가 문을 연다고 해도 정부가 학제개편을 뚝심있게 밀어붙있을 수 있을지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12년제로 개혁을 밀어붙여 성공한다면 NLD 정부의 능력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얀마의 정규교육과정 학생수는 700만 명에 달한다. 본격적인 민주화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젊은이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고 사회로 배출하는 게 장기적인 미얀마 발전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바로 눈앞에 닥친 위기들이 장기적인 개혁과 투자에 인색하게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보인다.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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