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시 벤응에 운하의 물결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은회색의 거대한 5층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방크 드 라인도신(Banque de l’Indochine), 즉 인도차이나 은행의 본점이었다. 인도차이나 은행은 1875년 1월 21일 파리에서 설립된 프랑스 민간은행이다.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화폐 발행권과 여러 중요한 금융 서비스를 담당했다. 이 건물은 1924년에 착공하여 1929년에 준공되었으며, 건축가 펠릭스 뒤마이유가 설계했다. 이 건물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오래된 은행 건물이어서가 아니다. 인도차이나 은행은 프랑스 식민지 지배에서 거의 중앙은행과 같은 역할을 맡았던 민간 금융기관이었다. 군대가 점령지를 넓히면 은행 지점이 뒤따랐고, 현지의 다양한 화폐는 점차 인도차이나 피아스터라는 식민지 통화 체계 안으로 편입되었다. 다시 말해 이 은행은 돈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식민지의 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통제하는 장치였다. 건물의 외관에 새겨진 연꽃, 가루다, 나가 문양은 현지 문화의 아름다운 장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작동한 것은 프랑스 금융 권력이었다. 훗날, 이 건물이 남베트남의 국가은행, 다시 통일 베트남의 국가은행으로 바뀐 사실은 더욱
올해 4월 초 사이공에서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건축물』이라는 책을 펴낸 쩐히우푹띠엔(Trần Hưu Phúc Tiến) 씨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가 “여기 가까운 곳에 한국인이 세운 팔각정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1989년 5월쯤에 그곳을 지나다가 본적이 있었지만, 당시는 아주 낡은 상태였다. 그래서 시간을 내서 다시 찾아갔다. 호찌민시 5구, 훙브엉·스반하잉-응우옌찌타잉 대로가 만나는 지점에는 오래된 공원 하나가 있다. 오늘날 이곳은 호아빙(Hòa Bình, 평화)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공원 안에는 짙은 푸른빛을 띤 낡은 팔각정이 서 있다. 많은 시민이 그 앞을 지나가고, 때로는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한다. 그러나 이 정자가 왜 그 자리에 세워졌는지,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또 그 안에 어떤 시대의 기억이 스며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정자의 이름은 딩호아빙(Đình Hòa Bình)이다. 한자로는 ‘平和亭’, 한국어로는 ‘평화정’이다. 이름 그대로 ‘평화’를 뜻하는 정자다. 하지만, 이 평화라는 말은 단순하지 않다. 이 건축물은 1972년, 베트남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시기에 세워졌다. 당시 사이공시는 전쟁의 긴장 속에 있
베트남 작가 트엉하의 장편소설 『완벽한 위장』이 배양수 번역으로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원제는 『Vỏ bọc hoàn hảo』로, 제목 그대로 인간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완벽한 외피’와 그 아래 감춰진 상처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도서출판 다해, 신국판 320페이지)이다. 작가 트엉하(Thương Hà)는 1981년생으로 현재 하노이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 중이다. 그녀는 “문학은 사랑을 통해 인간을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내는 힘이다.”라고 말한다. 출간 작품으로는, 『한 길』, 『유랑』, 『PTSD의 사람』, 『불온한 변경』, 『NALIS - 운명에 밀려』, 『지우의 어둠』, 『불멸의 원혼들』, 『원한의 사랑』, 『대가』, 『가자 지구의 잔해』 등이 있다. ■ 상처와 침묵, 그리고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에 대하여 이 소설은 겉으로는 성공한 기업인이자 존경받는 인물로 살아가는 부이이엔과, 그의 아들 응이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이이엔은 전쟁과 결핍,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지나오며 사회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삶을 구축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쌓아 올린 명예와 성공은 진정한 치유의 결과라기보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추기 위한 또 다른 장막에 가깝다
“문학은 사랑을 통해 인간을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내는 힘이다.” 베트남 작가 트엉하의 장편소설 『가자 지구의 잔해』가 배양수 번역으로 나왔다. 원제는 『Mảnh vụn Gaza』이다. 이 작품(도서출판 다해, 신국판 179페이지)은 전쟁의 폐허를 배경으로 하지만, 단순한 전쟁소설에 머무르지 않는다. 총성과 폭격의 기록 너머에 남겨진 아이들, 침묵하는 여성들, 잃어버린 가족, 그리고 사랑받고자 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따라가며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상처를 응시한다. 작가 트엉하(Thương Hà)는 1981년생으로 현재 하노이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 중이다. 그녀는 “문학은 사랑을 통해 인간을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내는 힘이다.”라고 말한다. 출간 작품으로는, 『한 길』, 『유랑』, 『PTSD의 사람』, 『불온한 변경』, 『NALIS - 운명에 밀려』, 『지우의 어둠』, 『불멸의 원혼들』, 『원한의 사랑』, 『대가』, 『완벽한 위장』 등이 있다. ■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기억과 온기 소설의 시간은 2077년, 공간은 가자 지구다. 뜨거운 햇볕 아래 폐허가 된 거리를 달리는 오프로드 차량, 무너진 건물과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거리, 그 안에서 임
호찌민시 4군 응웬떳타잉 거리 1번지, 벤응에 운하 건너편에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3층 건물이 서 있다. 오늘날 이곳은 ‘호찌민 박물관 호찌민시 지부’(Ho Chi Minh Museum – Ho Chi Minh City Branch)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건물을 ‘냐종’(Nhà Rồng)이라고 불렀다. 베트남어로 ‘용의 집’(드래곤 하우스)이라는 뜻이다. 이름만 들으면 오래된 사당이나 궁궐을 떠올릴 수 있지만, 냐종은 원래 프랑스 식민지 시기 국제 해운회사의 본사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이처럼 냐종은 식민지 근대, 항구도시 사이공의 성장, 베트남 전통 상징, 그리고 호찌민 주석의 역사적 출발이 겹쳐 있는 복합적인 장소다. ■ 식민지 해운망 속에서 태어난 건물 냐종은 1862년 무렵 착공되어 1863년에 완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식민 세력은 사이공을 점령한 뒤 이곳에 프랑스 해운회사 메사주리 앵페리알(Messageries Impériales)의 본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1870년 메사주리 마리팀(Messageries Maritimes)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 교통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이공은
호찌민시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시장은 대개 벤타잉(벤탄 시장, Ben Thanh) 시장이다. 1군 중심부에 자리한 벤타잉 시장은 시계탑, 기념품 가게, 먹거리 좌판, 관광객의 흥정 소리로 가득하다. 하노이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북부 최대 도매시장으로 알려진 동쑤언 시장(Chợ Đồng Xuân)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베트남의 시장 문화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호찌민시 서쪽 쩔런( ) 지역에 있는 빙떠이(Bình Thạnh)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벤타잉 시장이 사이공 관광의 얼굴이고, 동쑤언 시장이 하노이 구시가지 상업의 중심이라면, 빙떠이 시장은 남부 베트남 화교 상업 문화의 심장에 가깝다. 이곳은 관광객에게 보기 좋게 정돈된 시장이라기보다, 실제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며 도시의 생활 경제를 움직이는 시장이다. 그래서 빙떠이 시장을 걷는 일은 단순한 시장 구경이 아니라, 호찌민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장사를 통해 성장해 왔는지를 읽는 일에 가깝다. ■ 쩔런(큰 시장) 그리고 그 심장부... '남부 베트남 거대한 도매 유통거점' 빙떠이 시장은 호찌민시 6군, 차이나타운으로 불리는 쩔런 지역에 있다. 쩔런(Chợ Lớn)은 베트남어로
호찌민시 중심부를 걷다 보면, 오토바이와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현대적 풍경 사이에서 문득 시간이 멈춘 듯한 회색 건물 하나를 만나게 된다. 오늘날 호찌민시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 남부 지역의 권력과 행정을 상징하던 공간이었다. 1890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처음에는 남부 지역의 산물과 상업적 성과를 전시하기 위한 상업박물관으로 계획되었으나, 완공 이후 인도차이나 총독부 부총독 관저로 사용되었고, 1911년부터는 남부 총독(Dinh Thống đốc Nam Kì) 관저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바오다이 정권 시기에는 자롱궁(Dinh Gia Long)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특히 응오딩지엠 정권 때 일어난 쿠데타(1963년 11월) 때 이 건물과 외부로 연결된 지하 터널로 지엠 대통령과 동생 응오딩뉴가 피신했던 일로 유명하다.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에는 다시 박물관 기능을 회복해 현재의 호찌민시 박물관이 되었다. 이처럼 이 건물은 단순한 관광명소가 아니라, 프랑스 식민 지배와 전쟁, 정권 교체와 통일 그리고 현대 도시의 일상까지 겹겹이 품고 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이 건물의 첫 인상은 매우 아름답다. 회색 외벽(초기에는 흰색), 균형
메콩강은 동남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이다. 그러나 베트남 남부에 이르면 이 강은 단순히 ‘메콩강’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 강을 오래전부터 구룡강, 베트남어로 쏭끄우롱(Sông Cửu Long) 또는 끄우롱쟝(Cửu Long Giang, 九龍江)이라 부른다. ‘아홉 마리 용의 강’이라는 뜻이다. 이는 메콩강이 베트남 남부 삼각주에 이르러 여러 갈래로 나뉘고, 전통적으로 아홉 개 하구를 통해 바다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룡강이라는 이름에는 베트남 남부의 지리, 산업, 역사, 문화가 함께 담겨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메콩델타’라는 용어는 베트남어로는 구룡강 델타(Đồng bằng sông Cửu Long)이다. 베트남에서 메콩강(sông Mê Công)은 앞의 구룡강이라는 이름과 같이 사용하지만, 메콩델타(Đồng bằng sông Mê Công)라는 용어 대신에 구룡강 델타(Đồng bằng sông Cửu Long)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우리말로 ‘메콩델타’라고 번역한다. 구룡강의 첫 번째 얼굴은 생산의 강이다. 흔히 베트남의 ‘쌀 바구니’라고 불린다. 세계은행은 메콩델타가 베트남 쌀 생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