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한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을 먼 나라의 전쟁이 아닌 ‘우리의 전쟁’으로 받아들이던 시기였다. 해외 파병이 이루어지고 전쟁 소식이 매일 흘러 들어오던 분위기였다.
당시에 출판된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발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이공의 동물원에 가면 커다란 우리 속에 개 한 마리를 구경시키고 있다. 개가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모든 외국 사람에게는 우습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개가 구경거리가 될이만큼 귀한 짐승이 되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역설(逆說)의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야간에 몰래 잠행하기 마련인 게릴라의 행동에 개처럼 방해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게릴라의 비밀 행동대나 그 앞잡이들은 공격 이전에 개를 잡아 죽이기 마련이다. 또는 개를 잡아 죽이라고 마을 사람에게 통고하기도 한다. 그 통고는 바로 그 마을의 습격 예고로 받아들여진다. 어느 마을에서 개 그슬리는 냄새가 나면 그날 밤에는 총성이 잇따르기 마련인 것이다. 이같이 하여 개는 베트남에서 사양 동물(斜陽動物)이 되어 왔다. 二차 대전의 끝이 베트남 게릴라의 시작이고 보면 二 二년간의 기나긴 세월이 베트남 견족(犬族)에게는 정말이었다.
그런 개란 사이공의 어린이들에게는 원숭이보다도 진귀한 짐승이 아니 될 수 없었고 슬프게도 동물원에서의 떳떳한 존재 이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李圭泰. 1967. 아오자이女人. 圖書出版 三中堂. 머리말 중에서)
사이공 동물원 우리 안에 전시된 ‘개 한 마리’가 왜 그토록 특별하게 여겨지는지, 그는 그 이유를 베트남의 게릴라전 방식에서 찾는다. 야간 잠행을 위해 게릴라들이 개를 제거했고, 그 결과 개는 베트남 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동물이 되었으며, 그래서 동물원에까지 전시될 만큼 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 이야기는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한 사회의 문화를 오해하게 만들기 쉽다는 점에서 오늘날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글은 전쟁 피해의 책임을 오롯이 ‘게릴라’에게만 전가하는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검토해 보면, 동물의 대규모 희생은 특정 집단의 행동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전쟁을 수행한 여러 세력—그중에서도 막강한 군사력을 행사한 미군—이 개의 생명과 처우에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이에 관해 필자는 베트남 하노이 사범대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오히려 게릴라가 마을 개들과 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들이 마을에 접근하려고 했다면, 미리 개들과 친교를 가져서 그들이 밤에 마을로 들어올 때 꼬리를 쳤을 것이라고 했다.
1973년 제8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주연 배우 짜쟝 Trà Giang)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작품성과 연기력을 인정받은 작품으로, 뜨허우 누나(Chi Tư Hậu)라는 전쟁 속 남베트남 농촌에서 한 여성이 가족의 상실과 일상의 폭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있다.
그 영화의 실존 인물을 고모로 둔 호찌민 인사대 리 교수(은퇴)가 있다. 그분에게 물어봤다. 그분은 자기 기억에 그런 일(베트콩이 개를 죽인 일)은 없었다고 했다. 그분은 바로 낮에는 남베트남 정부군에게 협력하고 밤에는 베트콩에게 협조하는 마을에 살았다고 했다.
■ 전쟁을 하나의 원인으로 묶어버린 단선적 설명의 한계
우선, “게릴라가 개를 죽였기 때문에 베트남에서 개가 사라졌다.”라는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베트남전 당시의 농촌과 도시 상황은 지역별로 크게 달랐고, 어떤 마을에서는 개가 마을 방어 시스템의 첫 단계로 활용되기도 했다.
반면 폭격이 집중되거나 식량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개 사육이 당연히 어려워졌다. 이는 어느 전쟁터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 특정 정치 세력의 ‘습성’으로 파악할 문제는 아니다.
또한 사이공 동물원에 개가 전시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곧 ‘개가 귀해서’ 혹은 ‘베트남이 개를 잃어버려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당시 동물원은 프랑스 식민 시대의 전시 체계를 이어받고 있었고, 동물의 배치는 생태적 희귀성뿐 아니라 식민 행정의 전시 목적, 외래 동물에 대한 상징성, 도시 문화적 필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즉, ‘개 한 마리의 전시’가 곧 ‘베트남 사회의 빈곤함’을 보여주는 증거는 아니다.
이 글은 게릴라가 개를 없앴다는 서사로 전쟁의 잔혹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전쟁의 폭력 구조는 단순히 ‘한 집단의 비인도성’으로 축소된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훨씬 복잡하다. 전쟁은 어느 편에서든 민간인의 생계 기반을 파괴하고, 가축의 수를 급감시키며, 생태계를 무너뜨린다. 폭격, 지뢰 매설, 마을 소개 작전, 강제 이주 등은 개의 사육 환경을 전면적으로 붕괴시키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군과 남베트남 정부군, 그리고 동맹군 역시 피해의 한 축이었다. 그런데 이 글에는 이러한 구조적 폭력의 요소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전쟁의 비정상성을 ‘게릴라의 잔인성’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는 당시 한국 사회가 가진 정치적 시선과 잘 맞물려 ‘편안한 설명’을 제공한다.
그러나 역사의 균형을 위해 우리는 다음 사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작 개를 가장 많이 학대·방치한 것은 미군이었다.
베트남전에서 ‘개’와 관련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실 게릴라가 아니라 미군이 초래한 것이다. 미군은 베트남 전쟁 동안 약 4,000마리의 군견(Military Working Dogs)을 배치했다. 폭발물 탐지, 보초, 야간 경계 등에서 군견은 전쟁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군인들은 “군견이 없었다면 더 많은 병사가 죽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전쟁 말기 미군이 베트남을 떠날 때, 이 충직한 군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 정부는 군견을 장비(equipment)로 분류했기 때문에, 철수와 함께 본국으로 데려오는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 많은 군견이 남베트남군에 ‘인계’되었거나, 또는 현장에서 안락사되었다. 당시 군견과 함께 복무했던 참전 군인들의 증언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 그들은 “전우를 버리고 온 것 같은 죄책감”을 인터뷰에서 털어놓는다. 미국 내에서도 이 문제는 오랫동안 윤리적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즉, 베트남전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개를 희생시킨 주체는 게릴라가 아니라 오히려 미군이었다.
■ 전쟁의 비극을 ‘이야기’로 축소하는 글쓰기의 위험성
앞에 인용한 내용은 문학적 장치를 통해 독자에게 흥미로운 이미지를 남긴다. 우리 속의 개 한 마리가 베트남의 전쟁사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전쟁의 복잡한 원인을 단순화하고, 남의 나라 문화를 피상적으로 재단하며, 갈등의 책임을 특정 집단에게만 돌리는 결과를 낳는다.
전쟁의 비극은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정치적 계산, 군사 전략, 강대국의 개입, 주민의 생존 문제, 생태계의 파괴 등이 얽혀 있다. 그리고 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개 역시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글을 오늘의 기준으로 무조건 비난할 이유는 없지만, 당시 글이 보지 못했던 것들을 오늘 다시 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 개 한 마리가 말해주는 더 넓은 진실
사이공 동물원의 ‘개 한 마리’는 분명 베트남전이라는 시대를 비추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것이 말해주지 않은 사실들—전쟁의 구조적 폭력, 강대국의 책임, 그리고 동물을 희생시킨 군사 체계—도 함께 기억해야만 한다.
전쟁은 인간을 파괴한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전쟁은 동물과 자연도 함께 파괴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흥미로 그 비극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을 정확히 보고, 다시는 같은 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이다. 전쟁의 그늘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 존재들을 회복하는 일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가 되기를 원하는지를 묻는 말과도 맞닿아 있다.
현재 베트남 개는 그 어느 나라 개보다 자유를 누리는 것 같다. 사이공 거리를 다니다 보면 목줄을 한 개는 거의 없다. 아주 가끔 주인과 산책하는 개는 목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주 드물다. 도심 한복판에서 목줄 없이 다닌다고 주인 없는 들개로 보면 안 된다. 다 주인과 집이 있는 개다.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배양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