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1 : 아이들은 조잘거리며 엄마·아빠와 영어로 얘기하고, 아이의 부모와 할머니는 인도네시아어로 대화한다. 정작 아이들은 모국어인 인도네시아어를 잘 못해 할머니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 장면2 : 20대로 보이는 여성들이 수다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가 인도네시아어로 말을 바꾼다. 절묘하게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를 7:3으로 섞어서 의사소통을 한다. # 장면3 : 종업원이 영어로 말을 건네며 주문을 받으려 하자, 한국인으로 보이는 손님이 인도네시아어로 주문을 한다. 이 같은 풍경은 자카르타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공공장소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2억 6000만명이 넘는 세계 4위 인구 대국, 세계 최대 섬 나라이며 300여 종족과 500여 지방어가 공존하는 특성상 국가통합을 위해 인도네시아어 교육을 강화해왔다. 특히, 32년 간 인도네시아를 철권 통치한 수하르토 정권 때는 모든 표기를 인도네시아어로 하도록 강제했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로 촉발된 민주화운동으로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지고 개혁시대를 맞이하면서 정치, 경제와 사회·문화 등 전반적으로 큰 변화를 맞는다. 1999년 개혁시대를 연 압두라만 와힛(일명 구스두르) 대통령
민정 이양 여부에 관심이 쏠렸던 태국 총선과 더불어 2019년 상반기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서 가장 주목받은 정치 이슈였던 인도네시아 대선이 막을 내렸습니다. 4월 17일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초로 총선 및 지방 선거와 나란히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조코 위도도(조코위) 현 대통령은 야권의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인도네시아운동당 총재를 물리치고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5년 중임제의 대통령제를 도입한 인도네시아에서 이번 선거는 2014년에 맞붙었던 대통령 후보들간 재대결 구도가 형성됐다는 점에서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여론 조사기관들의 표본개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조코위 대통령은 지난 대선의 6.3%를 웃도는 9~10% 득표율 차이로 재선이 확실시됩니다. 프라보워 후보 진영에서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불복 의사도 내비치고 있지만, 5월 중 예정된 공식 개표결과 발표에서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국내외 언론과 싱크탱크 등에서는 조코위 대통령이 1억 9000만여명 유권자들의 재신임을 받은 배경을 꼽느라 분주한 것 같습니다. 우선 조코위 대통령이 2014년 10월 취임한 이래 지난해까지 인도네시아 경제가 연평균 5%의
베트남이 뜨겁다. 지난 10년간 평균 경제성장률 6%로 달리더니 지난해에는 7%를 넘어섰고, 최근 S&P는 베트남의 국가 신용도를 9년만에 한단계 상향조정했다. 과거 한국의 성장시대를 보는듯하다. 특히 일부 산업분야 즉, 우버그랩으로 대표되는 차량공유 산업이나 각종 페이 사용은 한국보다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트남은 2차 3차산업이 성숙할 사이없이 곧바로 4차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는 파괴할 기존 산업들이 존재하지 않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개발 한국과 2020년대 IT한국이 공존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소비재, 원부자재 및 산업기계의 70%가 중국으로부터 넘어온다. 자체적으로 밸류체인을 완성시킬 내부적인 유인이 적은 이유이다. 그러하기에 한국의 한계산업 분야들이 베트남에서 다시 살아나서 제2의 각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우리 같은 50, 60대들에게는 산업화를 압축적으로 이끌어낸 빛나는 경험이 있다. 시대가 바뀌어 점점 퇴색되어가는 전문가로서의 이력에 새로운 활기를 베트남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50플러스’ 플랜을 만들어갈 만한 곳이다. 나이를 따지지않는 수평문화와 한국에서 배우고자하는 열의가 큰 그
[전충헌의 콘텐츠 한류] 아세안 콘텐츠 한류의 배경과 전망 아세안 국가를 중심으로 지난 20년 여 동안 가열차게 불어온 한류 열풍은 K-POP 만이 아니었다. 필자는 한류를 청계천, 양재천의 작은 지류가 아닌 한강의 스케일과 힘찬 흐름을 한류라고 본다. 이러한 한강과 같은 스케일로 아세안 글로벌 한류 열풍이 불어 왔다. 그럼 이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하는 점이다. 식민지와 한국전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이미지로 각인되던 나라에서, 선진국의 식량 원조를 받아야만 국민들의 보리고개를 넘을 수 있던 나라에서 어떻게 한류가 가능했는가 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 문화적으로 일본의 영향권에서 여전히 머물러 있던 나라가 어떻게 2000년 전후 갑자기 ‘한류’라고 하는 명칭을 얻기까지 되었는가? (한류라는 명칭 자체가 외국에서 그러한 뉘앙스로 시작하였음. ) 아세안 국가 등 전 세계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한류 현상을 특별한 현상으로 바라보고, 심층적으로 연구하게 된다. 아세안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자국의 원조를 받았던 나라, IMF 경제금융위기까지 겪었던 나라가 “문화콘텐츠 발신국가”가 되며 젊은이들의 로망이 되는 나라가 되었는가 하는 “연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