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어느 오후, 딜리의 한 식당. 옆자리 끝에 무심코 놓여 있던 작은 브로셔 하나가 필자의 시선을 잡았다. 표지에 박힌 글자는 단 한 줄이었다. “왜 쿠바의 의료서비스가 강한가?” 발행은 라오 하무툭(La'o Hamutuk). 테툼어로 ‘함께 걷는다’는 뜻을 가진 이 작은 싱크탱크는, 정부와 국제기구의 개발 사업을 가장 매섭게 감시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NGO(비정부 기구, nongovernmental organization)가 ‘사회주의 섬나라의 의료를 왜 강한가’라고 묻고 있었다. 식당 천장 선풍기가 한 박자 늦게 도는 소리를 들으며, 표지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본 기억이 있다. 이 질문의 답을 만나려면, 딜리에서 차로 다섯 시간 떨어진 산 너머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야기는 2003년 2월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시작된다. 비동맹정상회의(NAM)의 한 조용한 회담장에서 사나나 구스마오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의 사절이 마주 앉아 의료 협력의 큰 틀을 합의했다. 그 합의의 결과가 동티모르 산골 마을에 도착한 것은 이듬해 봄이었다. 2004년 4월, 에르메라의 한 마을. 가까운 보건소까지 걸어서 한나절이 걸리던 그곳에 흰 가운을 입은 낯선
딜리(Dili)의 아우디안(Audian) 거리를 처음 걷는 사람은 잠시 헷갈린다. 간판의 한자, 처마에 매달린 붉은 등, 유리창에 덕지덕지 붙은 세일 스티커. 이것이 동티모르의 수도인지, 아니면 중국 남부 어느 소도시의 변두리 골목인지. 선반마다 플라스틱 생활용품이 빼곡히 쌓인 가게 안에서 중국어가 오간다. 주인은 손님에게 테툼어로 가격을 말하고, 돌아서면 동료에게 그들만의 언어인 객가어(중국 광동성 동부·복건성 서부·장시성 남부) 방언으로 속삭인다. 필자가 동티모르에 거주하는 기간내내 해가 갈수록 중국계 가게는 늘었다. 티모르 현지인들의 소규모 상점은 줄었다. 그러던 어느날, 필자가 살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중국인 운영 상가 하나가 불에 탔다. 밤사이 연기가 피어올랐고, 다음날 새벽 검게 그을린 간판만 남아 있었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변에서는 말이 많았다. 현지인과 관계가 나빠진 것이 화근이 됐다는 얘기가 설왕설래했다. 누가 불을 질렀다는 명확한 결론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화재는 내게 단순한 사고 이상의 무언가를 알려 주었다. 상권을 잠식해 가는 중국인을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불편한 시선, 그 눈빛이 연기 속에 스며 있는 것 같았다.
딜리에서 에너지 전문가들의 토론 자리를 함께하면, 두 개의 진영으로 갈리곤 하는 관점이 있다. ‘그레이터 선라이즈(Greater Sunrise)’를 두고 나오는 다른 어휘들이다. 한쪽은 '주권의 완성'이라 부르고, 다른 쪽은 '승자의 저주'라 부른다. 같은 가스전, 같은 파이프라인을 두고 왜 이렇게 다른 언어가 나오는 것일까? '주권의 완성'이란 논리는 이렇다. 파이프라인이 동티모르 남해안으로 연결되어 육상 LNG 플랜트가 세워진다면, 그것은 거대 인프라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975년 인도네시아에 강점당하고 24년간 점령 아래 신음했던 나라, 2016년 UNCLOS 역사상 최초의 강제조정 절차까지 동원해 호주를 상대로 해양 경계를 되찾은 동티모르가, 마침내 자국 땅에서 자국 자원을 처리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 수익 지분 70%라는 숫자보다 훨씬 큰 이야기가 거기에 담겨 있다. 플랜트 건설 고용, 기술 이전, 관련 산업 클러스터, 젊은 티모르인들의 자국 일자리다. 이것이 진짜 독립 경제의 시작이라는 논리다. 구스망 총리가 수십 년째 이 입장을 꺾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자의 저주'론은 그 논리의 반대편을 파고든다. 티모르 해구, 가스전에서 동
“이것이 동티모르의 살아있는 민주주의 정신이다.” 동티모르에서 “생명연금의 소급 취소를 결정한 규칙은 위헌이 아니다”라는 법원의 판결이 3월 26일나왔다. 라파(rafa) 등 현지 미디어에 따르면 자신타 코레이아 다 코스타 (Jacinta Correia da Costa) 항소법원 주심 판사 등이 서명한 문서에 따르면 “2002년 제1차 국회 입법부가 시작된 이래 생명연금을 만들거나 승인하거나 규제한 모든 법 조항의 최소를 소급 적용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상은 대통령, 총리, 대법원장, 국회의원 및 정부 구성원고 같은 이전 주권 기관의 연금이 포함되었다. 이 판결문은 “2002년 5월 20일부터 시행된 독립 회복일에 해당하는 법은 연재 및 미래의 연금 지급이 즉시 중단될 것”이라고 결정했다. 한편 계약 배정에 대한 보상을 받지 않기로 한 결정은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점을 고려, 일부만 위헌으로 판단했다. 지난해 9월 동티모르 대학생(EUTL)이 주도해 “의원들에게 월 생명 연금을 보장하라는 법을 재검토하라”며 국회앞에서 3일간 격렬한 항의를 했다. 9월 29일 호세 라모스-호르타 대통령은 “2002년 5월 20일 이후 소급이 적용 결정”이라고 정부에 합
동티모르 체류 초기 필자는 동티모르 정부 인사의 통역할 일이 있었다. 동티모르 정부 인사는 생각지 못한 질문을 불쑥 던졌다. "한국의 기술로 그레이터 선라이즈의 가스를 동티모르 쪽으로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그 문장을 통역하면서, 이 나라가 그 가스전에 얼마나 깊이 기대고 있는지를 실감했다. 그레이터 선라이즈는 1974년에 발견됐고 당시 이미 수십 년째 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방 안의 공기는 희망으로 가득했다. 이미 실현된 희망은 바유운단(Bayu-Undan) 가스전이었다. 현지 공무원들은 산유국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럴 만한 근거도 있었다. 석유기금(Petroleum Fund)만큼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제도였다. 2019년 전 세계 64개 국부 펀드 투명성·책임성 평가에서 세계 7위에 올랐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손실을 내지 않은 국부 펀드로 기록됐다. 규모가 아니라 원칙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원칙은 일찍 흔들렸다. 석유기금법이 정한 지속가능인출수준(ESI)은 기금 총자산의 3%였지만, 2008년 이후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2009년부터 연평균 인출 비율은 법정 한도의 1.7배인 5
김재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은 3월 12~15일, 지난해 10월 11번째 아세안 회원국이 된 동티모르를 방문해 동티모르의 한-아세안센터 가입 절차와 한-아세안 협력 방안 등에 대해 협의했다. 방문 기간 중 김 사무총장은 샤나나 구스망 동티모르 총리를 예방하고, 예수이나 페레이라 고메스 외교부 차관, 밀레나 항제우 아세안 담당 차관 및 조르제 소아레스 크리스토방 예술문화청장 등 고위급 인사들을 면담했다. 김 사무총장은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향후 아세안의 발전과 한-아세안 관계 강화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며, 앞으로 동티모르의 역할과 기여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 사무총장은 한-아세안 관계 발전을 위해 센터가 무역투자, 문화관광, 인적교류 등 분야에서 연간 30여 개 이상의 사업을 수행해 오고 있음을 설명했다. 아울러, 센터는 동티모르 아세안 업무 담당 공무원 등 60여 명을 대상으로 별도 설명회를 개최, 센터의 구조 및 활동, 2026년 주요 사업에 대해 소개했다. 동티모르 측 인사들은 “한-아세안 관계 발전을 위한 센터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향후 중소기업 지원을 통한 무역 투자 활성화, 공무원 연수
남서쪽 끝자락, 국경 도시 수아이(Suai)의 공기는 유난히 묵직했다. 그 덥고 습한 바람을 맞으며 들어선 마을에서 나는 잊을 수 없는 장면과 마주했다. 조상신이 머무는 신성한 집, ‘우마 루릭(Uma Lulik)’ 앞이었다. 뾰족하게 솟은 전통 가옥의 문앞에 으레 악귀를 쫓는 무시무시한 수호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예수였다. 놀라웠던 건 그 표정이다. 창을 든 전사도, 심판자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는 세상 모든 풍파를 다 품어줄 듯 더없이 인자한 미소로 그 토속적인 우마 루릭의 문 앞에 양쪽 기둥에 서 있었다.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그 모습.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들에게 가톨릭은 바티칸에서 건너온 딱딱한 교리만은 분명 아니었다. 척박한 땅과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가장 강력하고 따뜻한 ‘루릭(Lulik, 신성한 힘)’ 그 자체였다. 바티칸 시티라는 특수한 도시국가를 제외하고 동티모르는 종교자유가 있는 국가들 중에 사실상 가장 높은 비율의 가톨릭 신앙을 보이고 있다. 2022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무려 97.6%가 신자다. 딜리(Dili)에도 모스크 돔이 있긴 하다. 하지만 동티
동티모르에서 수업을 마치고 가까운 호텔까지 걸어서 10분 남짓이었다. 적도의 오후 햇살이 비출 때면 그 10분은 만만치 않다. 불과 몇 분을 걸었을 뿐인데 셔츠가 등에 달라붙고,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호텔 로비 카페에서 만나는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는 더욱 강렬했다. 작지만 매혹적인 그 과자를 한 입 베어 물면,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이 혀를 감쌌다. 나는 짧은 꿀맛 같은 간식 시간을 아직 기억한다. 유럽의 남쪽 끝 포르투갈과 아시아의 거인 인도네시아가 이 작은 섬나라의 식탁 위에서 만난다. 포르투갈식 베이커리에서는 달콤한 바닐라와 버터 향이 진동하고, 인도네시아식 식당과 노점상에서는 짭조름한 쇠고기 국물 냄새가 뒤섞인다. 이 기묘한 두 향기의 공존은 두 식민통치국가가 남긴 동티모르인의 삶 속에 역사 그 자체다. ■ 포르투갈 식민지가 남긴 달콤한 유산, '파스텔 드 나타’ 여행자들을 매혹하는 첫 번째 맛은 단연 '파스텔 드 나타',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다. 오랜 식민 지배가 남긴 유산이다. 리스본의 제로니모수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남은 노른자로 빚어낸 이 과자는, 19세기 초
2025년 10월, 한국과 동티모르 사이에 두 개의 다리가 놓였다. 10월 9일 한글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원이 한국어-테툼어 사전을 출간했다. 고려대 사전학센터와 동티모르국립대 집필진이 함께 완성한 두 번째 사전이다. 17일 뒤, 동티모르는 아세안의 11번째 정회원국으로 승인됐다. 제도의 다리와 언어의 다리가 같은 달에 완성된 셈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은 동티모르에서 어떤 언어로 말해야 할까? 동티모르 딜리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들은 곧 하나의 벽과 마주친다. 현지인과의 소통이다. 회의실에서 영어로 합의한 내용이 현장에 가면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중국인들은 이미 테툼어로 농담까지 주고받고, 미국대사는 부임 전 테툼어 연수를 마치고 동티모르인들과 직접 소통한다. 한국인은 의례 영어 통역사에 기댄다. 그러는 사이 업무 실행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다. 우리는 동티모르가 조금씩 더 깊은 동반자가 되고 있다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한다. 2024년 동티모르 중앙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노동자들의 송금액은 2억 4,480만 달러(약 3,612억 240만 원)로 비석유 GDP의 12~13%를 차지한다. 한국발 송금은 전체의 22%인 5,380
딜리(Dili)의 태양은 뜨겁고,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동티모르국립대학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바닷가에는 푸른 바다를 뒤로 한 채 그냥 서 있는 청년들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었다. 활기 넘쳐야 할 청년기, 하지만 그저 서 있는 모습. 어딘가에 막힌 활기, 가슴에 자리한 막막함의 상징이다. 동티모르 정치는 1975년 인도네시아 침공에 맞서 정글로 들어갔던 이른바 ‘75세대’가 여전히 이끌고 있다. 샤나나 구스망, 마리 알카티리, 조제 하무스-오르타. 이 이름들은 정치인이라기보다 살아있는 신화에 가깝다. 그들이 권좌에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24년간의 무장 저항과 독립 쟁취라는 역사적 정당성, 국민 대다수가 부여하는 신뢰, 그리고 아직 그 무게를 대체할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후속 세대의 현실이 맞물려 있다. 다만 영웅들의 시대가 너무 길어질 때, 국가가 도약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현지에서 통용되는 ‘마운 보트(Maun Boot)’ 문화가 이 상황을 설명해준다. 테툼어로 ‘큰 형님’을 뜻하는 이 단어는 전쟁 시기에는 생존을 위한 위계와 존경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이 문화는 사회적 결속의 기제로 작동하는 한편, 세대 간 권력 이동을 더
2025년 10월 26일, 동티모르는 아세안의 11번째 정회원국으로 공식 승인되었다.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지 14년 만이다. 동티모르 국민들은 이를 “제2의 독립”이라 부르며 환호했다. 인구 142만 명의 이 섬나라는 한국에도 낯익은 국가다. 아세안익스프레스는 2026년 병오년(붉은 말의 해)을 맞아 안토니오 데 사 베네비데스 대사를 만났다.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이 갖는 의미와 국가 비전을 들어보았다. 안토니오 대사는 “우리는 아세안이다”라는 새로운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동티모르 독립을 지원한 한국 상록수 부대 장병들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헌신을 기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내 동티모르 유학생과 근로자들이 존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대사관이 힘쓰겠다고도 했다. ■ ‘낯설지 않은 형제의 나라’ Q (최창원 교수): 한국에 부임하신 건 언제입니까?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A (안토니오 대사): 2024년 10월 8일에 부임하여 이재명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저의 인상은 ‘낯설지 않은 형제의 나라’였습니다. 부임 전부터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동티모르 호텔 노보 투리스모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최 교수
2025년 10월 26일, 제47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동티모르가 아세안의 11번째 정회원국으로 공식 승인됐다. 가입 신청 후 무려 14년만의 승인이었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과 호주 북부 다윈 사이에 위치한, 강원도 크기의의 동티모르(수도 딜리Dili)는 인구 142만명의 동남아시아 최연소 국가다. 동티모르는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일에 싸여있는 나라 중 하나다. 과연 어떤 나라이고, 어떻게 아세안에 가입할 수 있었을까? 왜 이렇게 가입에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 아세안익스프레스는 2008년부터 14년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를 역임한 최창원 교수를 특별 칼럼니스트로 초빙한다. 그는 앞으로 동티모르의 역사와,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쉽게 술술 풀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주] ----------------------------------------------- 돌이켜보면 2008년 아세안 헌장(ASEAN Charter)이 발효된 이후, 그동안 한 국가도 정식 가입 절차를 통해 회원이 된 적이 없었다. 기존 10개국은 헌장 체제 이전에 합류한 국가였다. 지난 10월 26일, 인구 142만 명의 작은 나라가 아세안 헌장 체제 최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