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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원의 동티모르 워치 7] 동티모르선 어떤 언어로 대화해야 하나?

2002년 테툼어 공용어 지정, ‘4개 언어지도’ 속 테툼어 70.1%-영어 15.3%
학교선 포르투갈어 배우지만 젊은이 일상언어는 테툼어...2013년 한국학센터

 

2025년 10월, 한국과 동티모르 사이에 두 개의 다리가 놓였다. 10월 9일 한글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원이 한국어-테툼어 사전을 출간했다. 고려대 사전학센터와 동티모르국립대 집필진이 함께 완성한 두 번째 사전이다. 17일 뒤, 동티모르는 아세안의 11번째 정회원국으로 승인됐다. 제도의 다리와 언어의 다리가 같은 달에 완성된 셈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은 동티모르에서 어떤 언어로 말해야 할까?

 

동티모르 딜리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들은 곧 하나의 벽과 마주친다. 현지인과의 소통이다. 회의실에서 영어로 합의한 내용이 현장에 가면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중국인들은 이미 테툼어로 농담까지 주고받고, 미국대사는 부임 전 테툼어 연수를 마치고 동티모르인들과 직접 소통한다. 한국인은 의례 영어 통역사에 기댄다. 그러는 사이 업무 실행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다.

 

우리는 동티모르가 조금씩 더 깊은 동반자가 되고 있다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한다. 2024년 동티모르 중앙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노동자들의 송금액은 2억 4,480만 달러(약 3,612억 240만 원)로 비석유 GDP의 12~13%를 차지한다.

 

한국발 송금은 전체의 22%인 5,380만 달러(약 793억 8,190만 원)다. 이는 동티모르의 전통적 수출품인 커피 수출액 1,780만 달러(약 262억 6,390만 원)를 훌쩍 넘는 규모다. 하강세 영국(52%)에 이은 2위 송금국이며, 안정세 호주(21%)를 넘어 상승세를 보인다. 경제적 연결은 깊어지지만, 정작 서로를 아는 깊이는 얕다.

 

202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동티모르 5세 이상 인구 중 테툼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비율은 70.1%다. 영어는 15.3%에 머문다. 전체 인구의 71.4%가 사는 농촌에서 격차가 더 벌어진다. 네 개 언어(테툼어, 포르투갈어, 인도네시아어,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도시에선 21.4%지만 농촌에선 8.8%로 크게 줄어든다. 절대다수가 테툼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15%만 이해하는 영어로만 소통하는 것은 현장 이해하는 데 한계가 크다.

 

역사는 언어 속에 현존한다. 450년간 포르투갈이, 24년간 인도네시아가 지배했고, 독립한 지 23년이 흘렀다. 1975~1999년 인도네시아 통치기에 학교를 다닌 세대는 지금 정부와 기업의 주류를 이룬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어에 익숙하다. 동티모르의 중위연령은 남성 20.0세, 여성 21.0세로 매우 젊은 나라다.

 

이 젊은이들에게 일상언어는 테툼어다. 학교에서 포르투갈어를 배워도 집과 거리에선 역시 테툼어다. 동티모르는 독립회복 전인 2001년, 게릴라전과 외교전에 바빴던 시기에 국립언어원을 설립했다. 2002년 테툼어는 공용어가 되었고, 2004년부터 공식 문서에 사용하도록 했다. 그들은 언어 주권을 실현했다.

 

2013년 동티모르국립대학(UNTL)에 한국학센터가 활동을 시작했다. 국가 단위 연구소로는 최초였다. 지난해 초 세종학당도 개설됐다. 중국은 2019년 사립대 IOB대학에 공자학당을 열더니 지난해 UNTL 공자학원으로 확대했다. 일본도 지난해 일본학센터를 UNTL 정관에 그 이름을 올렸다. 12년간 홀로 운영된 한국학센터는 이제 한중일 경쟁 구도에 놓였다.

 

딜리에서 택시를 탈 때 영어로 인사하면 기사는 묵묵히 목적지를 향하곤 했다. “본디아 마운(안녕하세요 형님)”이라고 테툼어로 시작하면 차 안이 대화의 장이 된다. 가족 안부부터 마을 소식, 최근 정치 상황까지. 회의실에선 들을 수 없는 현지의 생생한 목소리가 쏟아진다. 관광객이든 사업가든, 동티모르를 찾는 모든 한국인은 이미 외교관이다. 한 사람이 건네는 서툰 몇 마디 테툼어 인사가 그들이 품을 한국 이미지를 바꾼다.

 

202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까지 4년 남았다. 동티모르와의 협력이 한-아세안 CSP 모범 사례가 되려면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한다. 한국인이 테툼어로 소통하면 현장 파악과 성과가 개선되고, 연간 5,380만 달러를 송금하는 동티모르에게 동반자 정신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 한-아세안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완성에는 회원국 특성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며, 동티모르에게는 테툼어가 그 디딤돌이다.

 

글쓴이=최창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hopeseller@gmail.com

 

 

최창원 프로필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현, 아시아비전포럼 선임연구원

현, 한국스피치웅변협회 동티모르 지부장

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한국학센터장

전, UNDP 아름다운동티모르 만들기 프로젝트 자문관

한글 발전 및 한국어 세계화 공로로 대통령 표창(2025)

『테툼어–한국어 사전』, 『한국어–테툼어 사전』 동티모르 말모이팀 편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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