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하투 부일리쿠(Hatu Builico) 마을에서 손전등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순례자들이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해발 2,963미터. 티모르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조제 하무스-호르타(José Ramos-Horta)는 이 산을 두고 “죽은 자들의 영혼이 모여 천국으로 떠나기 전 머무는 신성한 산이며, 위기가 닥치면 돌아가신 지도자들이 평화로 향하는 길을 찾기 위해 모이는 곳”이라 표현했다.
이 성산(聖山)을 오르기 전,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혼란은 바로 이름이다. 어떤 지도에는 ‘라멜라우(Ramelau)’, 어떤 안내서에는 ‘타타마일라우(Tatamailau)’라 적혀 있기 때문이다. 정답부터 말하면 둘 다 맞지만 의미는 다르다. ‘타타마일라우’는 이 지역 원주민 언어인 맘바이어(Mambai)로 ‘모든 이의 할아버지’라는 뜻이다. 이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수천 년간 불러온 이름으로, 한국인의 백두산과 같은 상징성을 갖는다.
반면 ‘라멜라우’는 이 봉우리가 속한 산맥 전체를 가리키는 지리학적 명칭이다. 독립 이후 동티모르인들은 조상의 언어를 되찾아 ‘포호 타타마일라우(Foho Tatamailau)’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포호’는 테툼어로 ‘산’을 뜻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품은 산으로 향하는 여정은 수도 딜리에서 시작된다. 딜리에서 약 100킬로미터. 직선거리로는 70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험준한 산악도로를 따라 4~5시간이 걸리기에 사륜구동 차량이 필수다. 딜리를 벗어나 고도를 높이면 창밖으로 아타우로(Atauro)섬이 멀어지고, 계단식 논이 산비탈을 수놓는 장관이 펼쳐진다.
험준한 산악도로를 따라 47킬로미터를 달리면 첫 번째 관문인 아일레우(Aileu)에 도착한다. 맘바이어로 ‘굽은 나무’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마다 신선한 채소와 커피가 거래되는 활기찬 재래시장이 열린다. 하지만 이곳은 현대사의 아픔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점령기 당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된 상처가 남아 있으며, 일본군 점령기 학살을 기억하는 기념비도 서 있다. 그러나 아일레우 사람들은 밝은 미소로 여행자를 맞이하며 상처 위에 세운 강인한 일상을 보여준다.
아일레우에서 남쪽으로 30킬로미터를 더 내려가면 해발 1,400미터 고원의 마우비세(Maubisse)가 나타난다. 열대의 나라에서 스웨터가 필요한 서늘한 기후가 반기는 곳이다. 언덕 위 ‘포우자다 드 마우비세(Pousada de Maubisse)’는 20세기 초 포르투갈 식민정부가 세운 휴양소로, 붉은 기와지붕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선사한다. 1960년대부터 이 고원에서 재배된 마우비세 커피를 마시며 즐기는 360도 파노라마 전망은 이곳 여정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마우비세의 서늘한 정취를 뒤로하고 우회전하여 들어서면 드디어 등반의 베이스캠프인 하투 부일리쿠에 닿는다. ‘헐거운 돌’이라는 뜻의 이 마을은 해발 1,917미터에 위치한다. 새벽 등반을 위해 마을 숙소에서 하룻밤 묵는 것이 일반적이며, 정상까지는 약 700미터의 고도 차이를 두고 2~4시간이 소요된다.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을 향해 발을 내딛기 전, 동티모르인들의 독특한 정신 세계인 ‘룰릭(Lulik)’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테툼어로 ‘신성한 것’ 혹은 ‘금기’를 뜻하는 룰릭의 개념에 따라, 타타마일라우는 바로 ‘포호 룰릭(신성한 산)’으로 받들어진다. 인류학자 주디스 보벤시펜(Judith Bovensiepen)의 연구처럼, 주민들은 룰릭의 땅에 들어가기 전 조상과 땅의 영에게 허락을 구한다. 외지인에게 강요되지는 않지만, 진입문 앞에서 잠시 묵념하는 현지 가이드들의 모습에서 이 땅에 대한 예의를 배울 수 있다.
이러한 신성함을 가슴에 품고 다다른 정상에는 1997년 인도네시아 점령기에 설치된 3미터 높이의 성모 마리아상이 우뚝 서 있다. 동티모르인들에게 이 동상은 종교적 상징을 넘어 저항의 희망이었다. 매년 10월 7일(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전후가 되면 수만 명의 순례자가 정상을 찾는다. 어둠을 뚫고 올라가 맞이하는 일출은 산맥을 붉게 타오르게 하며 온 세상을 물들인다. 맑은 날에는 남쪽 해안선까지 한눈에 들어오지만, 정상의 바람이 매우 강하고 추우므로 단단한 대비가 필요하다.
이처럼 타타마일라우는 외국인에게는 아름다운 ‘명소’일지 모르나, 동티모르인에게는 가톨릭 신앙과 전통 ‘룰릭’이 어우러진 조상의 영혼이 깃든 곳이다.
“산에 오를 때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노인의 말처럼, 관광과 순례 사이의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여행자의 예의다. 최근 쓰레기 문제 등이 대두되고 있어 “발자국만 남기고, 사진만 가져가라”는 원칙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여행 정보]
최적 시기:5월~11월(건기). 특히 6~9월이 가장 맑음.
준비물:방한복, 손전등, 물, 간식. 정상의 강한 추위에 대비 필수.
권장 사항:길의 갈림길과 현지 전통 이해를 위해 현지 가이드 고용을 추천함.
최창원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hopeseller@gmail.com
최창원 프로필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현, 아시아비전포럼 선임연구원
현, 한국스피치웅변협회 동티모르 지부장
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한국학센터장
전, UNDP 아름다운동티모르 만들기 프로젝트 자문관
한글 발전 및 한국어 세계화 공로로 대통령 표창(2025)
『테툼어–한국어 사전』, 『한국어–테툼어 사전』 동티모르 말모이팀 편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