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값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고 있다. 그래서 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한국 사회에서 ‘금모으기’는 흔히 1997년 외환위기 국면에서의 국민적 연대-가정의 금반지와 목걸이를 내놓아 국가 부채를 갚겠다는 집단적 결단-로 기억된다. 위기는 개인의 삶을 옥죄었지만, 그 위기를 돌파하는 방식은 공동체적이었다. 그러나 이 서사는 한국만의 독점적 경험은 아니다. 베트남은 독립의 문턱에서 이미 ‘금모으기’를 국가 건설의 실천으로 제도화했다. 1945년 가을, 독립 직후의 베트남이 선택한 길은 화폐 정책이나 외채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와 자발적 기여를 동력으로 삼는 ‘황금주간(Tuần lễ vàng)’이었다. ■ 보응웬잡 장군 칙령 '황금주간' 공포...독립 직후의 절박함과 선택 1945년 9월, 베트남은 독립을 선언했지만, 국가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식량난이 심각했고, 북부에는 외국군이 주둔해 있었으며, 무장과 재정은 취약했다. 이때 임시 정부는 구호와 재정의 동시 해법을 모색했다. 하노이 오페라하우스에서 기아 구제 운동을 발족하고, 남부에서 쌀을 북부로 수송하는 조치가 병행되었다. 동시에 정부는 국가 독립을 위한 기금을 제도적으로 마련한다. 19
껀터(Cần Thơ)시는 메콩델타(Mekong Delta)의 심장도시다. 호찌민시에서 남쪽으로 약 170km 떨어진 곳에 있는 메콩델타 지역의 중심 도시다. 100여 년 전에는 서남부 지역의 수도라는 의미로 ‘떠이도(Tây Đô, 西都)’라 불리기도 했다. 껀터는 농산물과 과일, 수산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후는 열대 몬순기후로 연중 고온다습하다. 연평균 기온은 약 28℃, 연간 일조시간은 2,249시간에 이른다. 농업에 매우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우기에는 홍수가 잦아 전에는 시 전체 면적의 절반 가량이 침수되기도 했다. ■ ‘껀터’라는 이름에 담긴 네 가지 이야기 껀터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째는 응웬아잉(응웬 왕조의 태조)이 왕위에 오르기 전, 배에 타고 이 지역에 저녁 무렵 도착했을 때의 일화에서 비롯된 설이다. 강 양쪽에 배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고, 등불 아래에서 노래와 시 낭송 소리가 들려오는 풍경에 감탄하여 이 강을 ‘껌티쟝(Cầm thi giang, 琴詩江)’이라 불렀는데, 이 ‘껌티’가 발음 변화로 ‘껀터’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둘째는 과거 강변에 자우껀(rau cần)과 자우텀(rau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말의 해다. 해마다 반복되는 띠의 순환이지만, 유독 새해를 앞두고 사람들은 자신의 띠, 가족의 띠 그리고 다가올 해의 의미를 다시 떠올린다. 띠는 흔히 ‘전통’ 혹은 ‘미신’으로 가볍게 소비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띠는 한 사회가 인간관계와 삶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장치다. 특히 같은 십이지(十二支) 체계를 공유하는 한국과 베트남은, 유사한 틀 속에서 매우 다른 방식으로 띠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 십이지의 상징, 한국과 베트남서 다르게 작동하는가? 한국과 베트남은 모두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축·인·묘로 이어지는 십이지 체계를 공유한다. 다만 한국의 토끼띠는 베트남에서는 고양이 띠로, 소띠는 물소 띠로 대응하는 등 일부 차이가 존재한다. 그 외의 동물들은 기본적인 대응 관계를 공유하지만, 각 동물에 부여되는 상징과 민속적 해석에서는 문화적 변주가 나타난다. 십이지 체계는 단순한 동물 분류가 아니라, 음력을 기반으로 한 시간 인식 체계이자 자연 질서를 인간 삶에 대응시키는 세계관이다. 해와 달, 계절의 순환, 인간의 생애를 하나의 구조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십이지는 ‘시간
호찌민시 1구 응웬주 거리. 오늘도 이곳, 대한민국 총영사관에는 비자와 민원, 기업 상담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대부분의 방문객은 이 건물이 베트남과 한국을 잇는 공식 외교 공간이라는 사실만을 인식한다. 그러나 이 건물의 과거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한때 베트남 마지막 황후, 남프엉 황후의 가족이 살던 집이었다. ■ 한–베 관계는 한 채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신문 사료를 통한 신시대 국모, 남프엉 황후』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레티빙 여사는 응웬흐우하오(남프엉 황후의 아버지)와 혼인한 이후, 부부는 주로 사이공 응웬주 거리의 저택에서 생활하였다. 이 저택은 훗날 대한민국 외교 공관(현 주호찌민시 대한민국 총영사관) 건물로 사용된 곳이다.” (Lương Hoài Trọng Tính, 2023, p.17) 남프엉 황후가 되기 전, 그녀의 이름은 잔(Jean) 마리엣 응웬티란이었다. 그녀는 황궁이 아니라, 사이공의 한 저택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 집이 바로 오늘날 한국 외교관들이 근무하고 있는 응웬주 거리의 건물이다. 이 집은 황실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당시 사이공 상류 사회의 중심부에 자리
1988년 10월 19일 저녁, 우리 일행은 사이공 시내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거리인 동커이 거리로 향했다. 전쟁의 흔적과 식민지 시대의 건축 그리고 막 열리기 시작한 개방의 기운이 뒤섞여 있던 그 거리 끝에 ‘맥심(Maxim)’이라 불리던 레스토랑이 있었다. 지금의 호찌민시 1군을 떠올리면 화려한 도시 이미지가 먼저 연상되지만, 당시만 해도 동커이는 아직 과거와 현재가 조심스럽게 겹치는 공간이었다. 그날 우리는 송용등(호주 교포, 로바나 대표) 씨를 따라 맥심으로 들어섰다. 그는 익숙한 걸음으로 앞장섰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입장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무대 위에서 연주를 이끌던 밴드 마스터가 송용등 씨를 알아보더니, 지휘를 멈추고는 객석을 향해 몸을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한 것이다. 그것은 의례적인 서비스 차원의 인사가 아니었다. 분명히 ‘아는 사람’을 향한, 그리고 존중이 담긴 반응이었다. 이윽고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첫 곡은 ‘아리랑’이었다. 이국의 밤, 베트남의 심장부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의 선율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어서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가요들이 연주되었다. 조용필의 노래가 흘러나왔
베트남을 소개하는 국제 홍보물이나 관광 안내서 또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영상과 광고에서 연꽃은 거의 빠지지 않는 상징물이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베트남의 국화는 연꽃이다”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통념은 사실과 다르다. 베트남 정부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특정 꽃을 ‘국화(國花)’로 법적-제도적으로 지정한 적이 없다. 즉, 연꽃은 ‘정부가 공표한 국화’가 아니라, 국민적 인식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정서적 국화이다. 오히려 베트남은 국화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진행한 적은 있으나, 최종 지정은 이루어지지 않은 유례가 있는 국가다. 그렇다면 왜 베트남 사람들은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연꽃을 “우리나라의 꽃”으로 여길 만큼 강한 애정을 보일까? 여기에는 역사-종교-문학-예술-생활 문화-국가 이미지 전략이 서로 맞물려 만들어낸 총체적 요인이 작동한다. 연꽃은 법적 국화가 아니지만, 베트남 사회의 상징 체계 안에서 이미 국화에 준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 법률적 차원의 ‘부재’가 연꽃의 상징성을 약화하지 않은 이유 우선, 베트남 정부는 법률이나 결정문 등 어느 공식 문서에서도 특정 꽃을 국화로 지정한 적이 없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아세안(ASEAN)은 동남아 10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성원은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대륙의 5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브루나이 등 해양국 5개국이다. 최근 한국과 관련에서 가장 큰 나라가 베트남이다. 삼성전자 등 한국 글로벌이 진출하고, 교민도 급속히 늘어나고, 한국 유학생 중 중국에 이어 가장 큰 나라가 베트남이다. 한국관광객이 가장 찾는 동남아 국가도 베트남이다. 이렇게 급속히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생활 속에서 찾아보는 베트남의 언어, 습속, 그리고 문화 등을 조명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부산외대 교수로서, 그리고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인 배양수 교수의 베트남 시공간 여행을 동반할 수 있다. [편집자] ■ “법적으로 높았던 여성의 지위”라는 통념 베트남 봉건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장은 “베트남 여성의 지위는 동아시아 유교 사회 중 비교적 높았다”라는 평가다. 이 주장의 근거는 주로 15세기 레 왕조(黎朝) 시기에 제정된 홍득법(洪德法), 공식 명칭은 국조형률(國朝刑律, Quốc triều hình luật)에 있다. 이 법전은 여성에게 상속권과 재산
아세안(ASEAN)은 동남아 10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성원은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대륙의 5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브루나이 등 해양국 5개국이다. 최근 한국과 관련에서 가장 큰 나라가 베트남이다. 삼성전자 등 한국 글로벌이 진출하고, 교민도 급속히 늘어나고, 한국 유학생 중 중국에 이어 가장 큰 나라가 베트남이다. 한국관광객이 가장 찾는 동남아 국가도 베트남이다. 이렇게 급속히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생활 속에서 찾아보는 베트남의 언어, 습속, 그리고 문화 등을 조명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부산외대 교수로서, 그리고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인 배양수 교수의 베트남 시공간 여행을 동반할 수 있다. [편집자] --------------------------------- “베트남에는 아직 모계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다.” 베트남을 소개하는 여행 책자나 교양서, 인터넷 칼럼에서 가끔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신화 속 ‘민족의 어머니’ 이야기, 중부고원 지역 소수 종족의 독특한 결혼 풍습, 가족 안에서 강한 어머니의 존재감 같은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베트남은 원래 모계
한국 제2도시 부산에는 베트남 교민만 1만 4000명이 거주한다. 외국인 중 최다다. 지난 8월 13일 주부산 베트남총영사관이 개설된 이유다. 방한 중이었던 베트남 서열 1위 또럼(Tô Lâm) 당 서기장도 100여명과 함께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부산을 방문한 바 있다. 2일 주부산 베트남 총영사관는 도안프엉란 총영사 주재로 부산 롯데호텔에서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베트남 독립 8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주 한국 베트남대사인 부호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부산은 이제 베트남과 한국을 잇는 또 하나의 다리로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됐다. 1992년 한국-베트남 수교 이후 33년 만의 주부산 베트남 총영사관 출범과 부산서 처음 열린 베트남독립 80주년이라서 큰 의미가 컸다. 아리랑을 부르는 베트남 유학생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정해관 대구광역시 국제분야 부시장, 조규일 진주시장, 안병길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 박성호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청장, 양재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중국-러시아-일본-카자흐스탄 총영사, 배양수-김태규 부산외대 베트남어 교수, 최 다니엘 목사, 서정인 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전 아세안대사) 등 200여명이 참석해 축하해주었다.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
생명이 가뭇없이 스러지는 전쟁 속에서 사랑이 피어나고 생명이 태어난다. 베트남 작가 스엉응웻밍(Sương Nguyệt Minh)의 단편소설집 ‘랑하의 밤’(도서출판 b)이 한국 최초 베트남 유학생이자 1호 박사인 전 부산외대 베트어과 배양수 교수에 의해 번역 출판했다. 군 대령 출신 작가인 스엉응웻밍의 13편의 단편 모음인 이 작품집에는 전쟁터로 떠난 군인,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 그리고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랑하의 밤’에서는 전쟁에서 돌아온 한 남자가 고향에서 마주하는 사랑과 상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녀의 강’에서는 아버지를 찾아 떠난 딸의 여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인물들의 삶, 사랑, 고통, 그리고 희망을 그려냈다. 각 단편은 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서로 다른 시선에서 전쟁과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강렬한 울림을 전한다. 베트남전이 끝난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한국 독자는 베트남인의 시각으로 베트남전을 볼 기회가 없다. 이 책은 그런 부족함을 채워주고 있다. 스엉응웻밍은 작가의 말에서 “전쟁은 끔찍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지만, 사랑은
“역시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학생들이다.” 부산외국어대학교(총장 장순흥)는 12월 12일 베트남 뚜오이째(TUOI TRE)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내가 본 베트남 퍼’라는 주제의 글쓰기 대회에서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학생 4명이 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우선 1학년 김남주는 ‘다른 두 가지 맛’이라는 글로 2등(상금 1000만 동), 4학년 장미경 ‘냐짱에서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3등(상금 500만 동) 그리고 1학년 박라경 ‘퍼에 대한 기억’으로, 1학년 박진희 ‘엄마의 퍼와 퍼 단체급식’으로‘장려상(상금 300만 동)을 받았다. 여기에다 부산외대 일반대학원 한베번역학과에 유학 중인 베트남 학생 응웬하안(가장 맛있는 퍼)이 장려상을, 판티투후옌 학생(퍼는 우정이다)은 장려상과 함께 4편을 글을 올려서 다작 상을 받았다. 베트남 뚜오이째 신문사는 매년 12월 12일을 베트남 퍼의 날로 지정하고 퍼를 베트남과 세계에 알리는 행사를 해오고 있다. 이 글쓰기 대회는 ’2024 퍼 축제‘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행사로, 지난 9월부터 인터넷으로 공모하여 이날 결과를 발표하였다. 특히 올해는 지난 10월 초에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이틀에 걸쳐 베트남 퍼를 소개하는 행사를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 교수는 유학 1세대다. 한국 최초 베트남 유학생, 1호 박사로 유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유학을 성사했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베트남인이 아닌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그는 도이머이(Đổi mới: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 이후 1992년 9월부터 하노이사범대학교(베트남 어문학 석-박사)에서 유학을 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12월 22일 공식적인 수교를 맺었다. 지난해에는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을 맞아 2022년 두 나라 전문가가 모인 ‘현인그룹’ 멤버로 참여했다. 보응웬 지압 장군이 처제를 지도교수를 두어서 장군의 인터뷰에 통역을 하는 등 내로라하는 베트남 인사들과도 교류를 해왔다. 또한 부산외대 베트남어과를 명실상부 한국 최고 학과로 키워냈다. 배양수 교수는 다음달 24일 동문선후배과 함께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진다. 30년을 꼭 채우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한-베트남 관계의 가교를 해온 배 교수를 아세안익스프레스가 부산외대 캠퍼스에서 만나봤다. ■ “한-베트남 미수교 시절 한국 유학생 1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