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상상되는, ‘비 오는 오후의 정적’ 같은 시집이 나왔다. 사공 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은 시인이다. 직업이 아닌 사람이 시가 되는 천생시인이다. 그는 인도네시아 전통 문양으로 알려진 바틱(batik) 연구자다. 한세예스24 초청전 등 다수의 전시도 했다. 한 땀 한 땀 시를 쓰는 것처럼 바틱의 문양과 매력은 작품으로 승화된다. 그는 “바틱은 인도네시아 그 자체”다. 옷감을 다양한 색과 문양으로 물들이는 염색의 방식 중 하나가 바틱이다. 바틱은 옷이지만 문화를 온전히 간직하고 유지된다. 그래서 그에게 시를 쓰는 일이란 역사를 감싸는 한 조각의 천을 짜는 일이거나 신 앞에서 헐벗은 마음으로 그리는 바틱 문양과도 같았다. 그는 “바틱 장인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 위에 말람(초)으로 쓰고 덮고 염색하고 다시 삶아내듯, 나 또한 언어로 마음을 새기고 덮고 다시 기도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고 고백한다. 자카르타, 식민의 이름으로는 바타비아. 고통과 식민의 기억, 정치적 폭력, 회복과 기도가 뒤엉켜 있는 도시에서 그는 순례자를 자처했다. 누가 바틱은 인도네시아의 정신이라고 했던가. 인도네시아에는 이미 공식 석상에서 단 한 번도 바틱 의상을 착용한
인도네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채인숙 시인이 등단한 지 8년만에 첫 번째 시집을 발간했다. 시집의 제목은 ‘여름 가고 여름’(민음사, 2023)으로 제목에서부터 후덥한 열대의 기후를 온전히 담고 있다. 시 공간도 시인이 사는 인도네시아다. 시인은 페이스북에 “시집이 나왔다. 첫번째 개인 시집이다. 그냥……..후련하다”고 썼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에는 타국에서 느꼈던 외로움을 버틸 수 있게 한 것이 시라고 고백한다. “스무살부터 지금까지 순정을 잃지 않고 해 온 유일한 일은 시를 쓰는 것이다. 나를 붙들고 점령해 온 유일한 것. 시를 쓰는 내가 있었기에, 모든 소식으로 부터 고립되고 소외되었던 이국의 시간을 나는 짐짓 우아하게 견딜 수 있었다.” 23년간 이국의 땅에서 고립된 시를 써왔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그를 ‘우아하게 견딜 수 있게’한 것은 시에 대한 추억과 열망이었다는 것. 시집 첫 시의 ‘디엥고원’의 첫 문장은 “열대에 찬 바람이 분다”이다. 속절없이 여름이 반복되는 나라에서 부는 열망의 바람이다.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갔다”는 시구처럼 시 안에는 ‘소리를 죽여 혼자 우는 자바의 물소’나 ‘깜보자 꽃송이’, ‘자바의 검은 돌계단’ 같은 인도네시아를 느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