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입주기업만 있고, 실제로는 불이 꺼져 있습니다. 시민 세금이 들어가는데 이렇게 관리하면 또 ‘먹튀’가 나옵니다.”
서선란 순천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향·매곡·삼산·저전·중앙)은 지난 10월 30일 시정질문에서 순천시의 애니메이션 클러스터 조성사업의 실태를 정조준했다. 서 의원은 “자료와 현장이 다르다”며 직접 촬영한 사진과 표를 제시하며, 시가 보고한 ‘입주 완료 기업’과 실제 가동률의 괴리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서 의원에 따르면, 순천시는 원도심의 공실을 리모델링해 21곳이 입주 완료됐다고 밝혔지만, 실제 가동 중인 곳은 14곳 안팎에 불과했다. 일부 건물은 1·2층이 모두 비어 있음에도 ‘입주 완료’로 처리됐다. 서 의원은 “1년에 3억 원이 넘는 임대료가 예산에서 지출되고 있다”며 “이런 식이면 시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서류 행정’에 그칠 뿐”이라고 비판했다.
논의는 순천만국가정원 습지센터 내 방송국 입주 문제로 이어졌다. 서 의원은 “국가정원은 시민 모두의 공간이다. 도시관리계획까지 바꿔가며 공원 부지에 스튜디오를 짓겠다는 건 1호 국가정원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근에는 유휴 부지도 많은데 왜 굳이 공원 안을 택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방송국이 원도심으로 들어와도 시내 어디서나 접근이 가능하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원도심이 산다”고 강조했다.
노관규 시장은 “외부 메이저 기업들이 요구하는 조건이 많아 시가 리뉴얼을 해줘야 한다”고 답했으나, 서 의원은 “그렇다면 더더욱 투명해야 한다”며 입지 선정과 지원 조건의 공론화를 촉구했다.
논란의 핵심은 여수MBC의 입주 문제다. 순천시는 습지센터 2개 층 중 절반을 여수MBC, 나머지를 애니메이션 제작사 로커스에 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노 시장은 “방송시장 다변화에 따른 기업의 자율적 판단이며, 클러스터 활성화의 계기”라고 설명했지만, 여수MBC는 애니메이션 제작·유통 실적이 거의 없는 방송사다. 더구나 임대 조건이 ‘기업 요청’이라는 이유로 비공개되어 ‘공공건축물 특혜’ 논란을 불렀다.
서 의원은 “시가 공공건축물을 특정 민간기업에 장기·저가로 내주면 시민이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는 지역 언론과 행정 사이에 불필요한 오해와 권언유착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서울의 주요 방송사들도 대부분 사무공간과 스튜디오를 분리 운영한다”며, 공간 제약이 있다면 원도심 사무공간 분리 배치를 제안했다.
앵커기업으로 예정된 로커스의 재무구조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조계원 의원(더불어민주당·여수을)은 국정감사에서 “로커스의 2024년 영업이익은 1677만 원, 순자본은 62억 원에 불과한 회사”라며 “이 회사가 순천에 1600억 원을 투자한다는 건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로커스는 김건희 특검 수사 대상인 컴투스 관계사의 투자를 받고 있으며, 컴투스는 김건희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 콘텐츠’에 협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서 의원은 “국가정원 부지의 공공성을 고려하면 기업 선정 과정이 더욱 엄격했어야 한다”며 “인근 다른 부지를 두고 굳이 공원 안을 택한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방송국이 원도심으로 들어와도 시내 접근성이 충분하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원도심이 산다”며 기존 입장을 거듭 밝혔다.
전문가들도 이번 사안을 ‘공공자원의 비공개 임대’ 문제로 본다. 통상 다른 지자체는 공공건축물을 민간에 제공할 때 임대조건 공개와 공공기여 협약을 맺지만, 순천시는 이 절차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원도심 콘텐츠 기업 유치를 통한 활성화”라는 사업의 본래 취지가 “국가정원 내 특정 기업 지원”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수MBC의 순천 이전은 여수와 순천 간 미묘한 지역감정도 건드리고 있다. 여수 측에서는 “순천시가 먼저 제안해 데려간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 순천 시민들 사이에서는 “얻는 실익에 비해 갈등이 더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 의원은 “여수MBC의 순천 입주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클러스터가 지역 전체의 미래산업을 위한 공간이라면 첫 입주 사례가 논란을 키우는 방식이어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보여주기식 행정에서 벗어나 시민이 체감하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한 원도심 주민의 말을 전했다.
그 주민은 “입주 기업 직원들에게 김치를 여러 번 담가줬는데, 다른 기업들도 빨리 들어와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 의원은 “사람이 없는 클러스터는 실패한 행정으로 남는다”며 입주기업 관리·감독 강화, 동일대표자 중복입주 제한, 임대료 및 지원조건 전면 재점검을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