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서사 3 ‘인명고(人名考)’ 와타나베, 바다 건너온 도래인의 성
일본인의 성은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일컬어진다. <일본성씨사전>(日本苗字大辞典) 의하면 무려 29만 1531개로 되어 있다. 반면 김소운(金素雲) 편의 <한일사전>에 기재된 한국인 성은 401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일본인의 성 가운데 도래인 계 성은 얼마나 될까?
이전 이야기에서 후지와라노카마타리(藤原鎌足)라는 대화개신(大化改新)의 주역을 소개하면서 ‘카마’도, ‘타리’도 조선어라고 했다. 후지와라(藤原)는 카마타리가 임종할 때 조정에서 내린 문벌 성[姓: 카바네)이고 본래는 나카토미(中臣) 씨이었다. 중세 나카토미 씨는 나라의 제사를 담당하는 세습 가문인데, 그가 도래인의 후손이라는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은 이세신궁의 내궁 황대신궁(皇大神宮)의 세습신관인 아라키다(荒木田) 씨가 나카토미 가문의 일족이기 때문이다. 그 아라키다의 아라키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아라(安羅)에서 왔다는 뜻으로 아라키(安羅来) 또는 아라키(阿羅木)에서 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것은 신라에서 온 도래 계라는 뜻이 시라키(白木)가 시라기키(新羅来)에서 온 것을 표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먼저 일본의 수많은 성 중 와타라이(度会)가 눈길을 끈다. 천황의 조상신을 모시는 이세신궁 외궁인 토요우케대신궁(豊受大神宮)의 세습 신관 가문의 성이 와타라이(度会)이다. 이 와타라이에 대해서 일본의 이름난 소설가이자 고대사 연구가인 마츠모토 세이쵸-(松本淸張)는 저서 <고대에의 탐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와타라이(渡らい)는 와타(조선어 바다=海)에서 온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와타루(渡る)’라는 동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며, 그 중간을 해양이라 하면 배로 와타를 항행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리라. 서로 건너 가는 것이 ‘와타리아우(渡り合う)’라 되고 그것이 ‘와타리’로 된다. 이것은 곧 ‘가타라아이(語ら合い)’가 ‘가타라이(語らい)’로 변화하는 것과 같은 규칙이다. 와타라이란 <고사기>에 ‘모모후네노 와타라이노 아가타(百船の度逢県: 많은 배들이 왔다갔다하는 고을)라고 나와 있는 바와 같이 글 뜻 그대로이다(金達寿, <日本の中の朝鮮文化>, 시리즈 4, 1984, 242, 재인용).
와타라이와 연계된 성으로 와타나베(渡辺) 씨가 있다. ‘와타’가 ‘바다’라는 신라어에서 온 것일 진데 와타나베 씨도 바다를 건넌 도래인의 후손이 된다. 그러나 성씨에 관한 사전을 보면 ‘와타시베(渡し部)’로 되어 있어 배 관리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성으로 보이지만 그 많은 와타나베 씨가 배 관리를 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때문에 역시 바다를 건넌 도래인 부족의 성으로 봐야 합리적이다. 와타나베라는 성은 그 뒤 수많은 도래인들이 일본식으로 개성(改姓)한 역사적 사례의 예외로서 그 한 그루터기로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와타라이 밖에도 도래 계 성이 곳곳에 묻혀 있다. 예컨대 아야(漢) 씨와 하타(秦) 씨의 경우를 살펴보자. 옛 문헌인 <기비군사>(吉備郡史)을 보면 “야마토는 사실상 아야히토의 나라와 같고, 야마시로는 사실상 하타의 나라(大和の如きは事実上漢人の国, 山城は事実上秦の国)”라고 적혀 있다. 여기의 야마토란 아스카(飛鳥) 왕조로 나라 현의 아스카에 들어선 야마토 조정이며 야마시로는 교토부(京都府)로 된 곳이다.
야마시로는 하타 씨가 번영을 누린 곳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분명하다. 일본의 국보1호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교토의 우주마사(太秦)의 광륜사(広隆寺)에 본존으로 안치되어 있는데, 이 미륵보살상이 신라에서 온 도래불상이라는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불상을 성덕태자로부터 받은 신라 도래인의 우두머리 하타노카와가츠(秦河勝)가 광륜사의 전신인 하치오카데라(蜂岡寺)를 지었다고 나와 있다. 하타 씨는 광륜사를 우지테라(氏寺: 조상의 위패를 모신 절)로 삼고 있다. 하타 씨가 신라 계 도래인이라는 것은 히라노쿠니오(平野邦雄)의 <하타씨의 연구>(秦氏の研究)라든가 우에다마사아키(上田正昭)의 <귀화인>(帰化人)에서 분명히 밝혀지고 있다. 특히 우에다 교수는 ‘하타’를 신라어 ‘바다’에 온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타 씨족은 기나이(畿內)의 야마시로 뿐만 아니라 후젠국(豊前国, 현재 후쿠오카 현)에도 번지고 있다. 다이호(大宝) 2년[702)에 만들어진 호적대장에 의하면 당시 후젠에 사는 자 중 거의 신라 계 도래 씨족이었던 하타 씨와 그 방계가 차지하는 수치가 8.5 할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하리마(播磨, 현재 효고 현) 등 하타 씨족이 번성했던 곳 등 여러 고장에 이르고 있다.
야마토가 ‘사실상 아야히토의 나라’라는 그 아야(漢) 씨족은 어떤가? 이 씨족도 도래 계라는 것은 옛날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라는 학자는 그의 <잡교>(雑攷)나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의 <귀화인>에서 그것은 한반도 남부의 소국 아야(安耶, 安羅라고도 씀)에서 온 백제 계 도래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도래인 들의 개성(改姓) 러시
하타 씨나 아야 씨도 중국의 한자로 성을 표기했지만 그밖에 8세기 초 도래 계 씨족은 일본 성 풍으로 개성한 것에서도 도래 계 성이 얼마나 많았든가 짐작케 한다. 당시 일본은 통일 신라에 대응하여 중앙집권 국가를 필요가 대두되었지만 현실적으로 고구려 계, 백제 계, 신라 계의 호족 세력들이 아직 정립하고 있었다.
일본의 문명사가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의 말을 빌리면 “즉 중앙정권을 잡으려 싸우는 사람들은 일본을 통일하여 수장이 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코마[고구려]나 구다라[백제]나, 시라기[신라] 사람이 아니라 일본인이 될 필요가 있었다. 또한 각각 수장이 소속한 신하들도 일본도래 전의 고국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코마신사 마츠리의 피리(高麗神社の祭の笛)’ <安吾新日本地理>)고.
이렇게 도래인들의 일본인이 될 필요에서 개성 기사가 나라·헤이안 시대 편찬된 ‘육국사(六国史)’ 특히 <쇼쿠니혼기>(続日本紀, 이하 ‘<속일본기>’)나 <니혼고-기>(日本後紀, 이하 ‘일본후기>’)에 여기저기 보인다. 예컨대 <속일본기> 텐뵤진고(天平神頀) 2년[766] 조에는 코-즈케노쿠니(上野国, 群馬県)에 있었던 신라인 193인이 요시이노무라지(吉井連)가 되었다고 적혀 있는가 하면, <일본후기> 엔랴쿠(延曆) 18년[799] 조에는 카이노쿠니(甲斐国)에 있었던 백제인 190인이 이시카와·히로이시노(石川·広石野)로 되었다고 한다. 한편 시나노(信濃)에는 수많은 고구려 계 도래인의 개성 기사가 보인다.
다시 이야기를 이세신궁의 세습신관 성씨 쪽으로 돌려 보자. 위에서 본대로 이세신궁 내궁인 황대신궁(皇大神)의 세습신관인 아라키다(荒木田) 씨도, 외궁인 토요우케대신궁(豊受大神宮)의 신관 와타라이(度会) 씨도 도래 계 가문이다. 이세신궁은 내궁과 외궁을 본체로 하지만 그 밖에 이소궁이라든가 쓰키요미궁 같은 별궁이 14개 사나 있고 섭사·말사까지 합치면 114개사에 이르는 거대한 신궁이다.
서라벌의 무녀:
위에서 본대로 이세신궁의 내궁의 신관도, 외궁의 신관도 도래 계 성을 지녔다면 그들이 모시는, 천황의 조상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 이하 ‘천조대신’)은 어떤가? 미야자키 슈지로(宮崎修二朗) 씨는 그의 저서 <난기·이세·시마·요시노>(紀南·伊勢·志摩·吉野)에서 “아마테라스오미카미[천조대신]의 별명은 오히루메무치인데, ‘무치’란 무녀의 최고 칭호이므로 원래는 사제직에 있었던 여성이었다”고. 오히루메무치 밖에도 ‘세오리츠히메(瀨織津媛)’란 또 하나의 별명이 있다. 나카지마토시이치로(中島利一郞)는 <일본지명학연구>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와세(早稲)의 어원학적 고찰을 시도했는데 그것이 조선어에 관계된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 그리고 실은 그것이 일본신화와 벼와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천조대신이 비로소 다카마가하라(高天原)의 볍씨를 보내주신 걸로 되어 있지만 천조대신은 당시 어디 계셨는가, 이것이 문제가 된다.
천조대신의 아라미타마(荒魂)를 세오리츠히메라고 이세황대신궁에서 일컫고 있는 바, 이 세오리츠히메란 것은 신라어로도 지금의 조선어로도 ‘소우루츠히메(都つ媛)’ ‘세오리쓰히메(京つ媛)’의 뜻이다. 또 일본어의 ‘소호리(添)’도 ‘소우루(都)’의 뜻이며 천조대신 자신은 신라의 수도에 계셨다는 것이 <일본서기>의 츄아이(仲哀) 천황기, 신공황후기(神功皇后紀)’에 명기되어있다(金達寿, 위 책, 244).
여기서 말하는 천조대신의 별명 ‘소우루츠히메(都つ媛)’나 ‘세오리쓰히메(京つ媛)’는 모두 조선어라면 그 뜻은 ‘서라벌의 여인’으로 모아 진다. 풀이하면 서라벌-->서벌-->소우루=세오리-->서울로 진화한 말이다. 즉 ‘소우루’는 ‘서라벌’, ‘츠’는 ‘의’, ‘히메’는 ‘여인’임으로 ‘소우루츠히메’는 ‘서라벌의 여인’이 된다.
재일작가이자 고대사 연구가인 김달수 씨는 <일본 속의 조선문화> 시리즈를 집필하기 위해 일본 곳곳의 신사를 방문한 기록을 담고 있다. 그가 북 규슈의 우사(宇佐) 신사의 신관 가라시마(辛島) 씨의 가라시마향(辛島鄕)을 방문했을 때 그곳을 안내해 주던 우사시 교육위원희의 나가노 마사오미(長野雅臣) 씨가 들려 준 귀 뜀을 적고 있다.
“이 주변 주민들은 옛날부터 거의 변동없이 살아 왔기 때문에 이 마을 50~ 60호 중 반수 이상이 가라시마 성입니다. 그리고 와타라이(度会)·와타라이(渡来) 성도 4, 5호나 됩니다.”
김달수 씨는 “이때 비로서 이세의 와타라이(度会)도 와타라이(渡来) 즉 ‘도래’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金達寿, 위 책, 243)고.
우리는 이전 쓰시마 이야기에서 이 한반도를 마주하는 이 섬에 아마테루(阿麻氐留) 신사가 들어서 있음을 주목한 적이 있다. 아마테루(阿麻氐留)는 아마테루(天照)의 아테지(当て字: 뜻과 상관없이 쓰는 한자)이기에 천조대신을 모시는 신사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소우루츠히메’라는 천조대신의 별명과 아울러 생각할 때 천조대신의 고향은 일본신화가 전하는 하늘나라 다카마가하라(高天原)이 아니라 신라의 옛 도읍 서라벌이 아닐까. 천황의 조상신 천조대신은 서라벌의 무녀가 아닐까.
참고문헌
김달수(金達寿), <日本の中の朝鮮文化>, 시리즈 4, 講談社, 1984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高麗神社の祭の笛,” <安吾新日本地理>, 河出書房新社, 1952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