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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加坡 통신③ 말 트고 싶으면 손목시계 칭찬해줘라

온라인 장터서 배운 로컬 접근방법과 시계 거래의 매력

 

1. 싱가포르 사람들은 다 어디 숨었을까?


필자는 아시아와 동남아를 직접 만나기 위해 싱가포르에 왔는데, 막상 도서관에만 처박혀있으니 상당기간은 답답한 시간이 지속됐다. 정보를 사람이 아닌 책과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일은 참 쉽게 적응이 안되는 일이었다. 만나는 사람들도 주로 유럽에서 온 학생들이거나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태반이었다. 우선적으로 궁금한 이들이 싱가포르 사람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 가장 만나기 힘든 분들이됐다.

 

기존에 알던 싱가포르인 친구가 몇 있기도 했지만, 원래 잘 아는 사람에게 갑자기 진지한 질문을 하기 어려운 법이다. 싱가포르에 대한 여러 궁금한 점들을 싱가포르인들에게 직접 듣지 못하고 한동안 한국인들에게 간접적으로 전해듣는 상황은 무척이나 어색했다.

 

학교에서도 미국이나 유럽 얘들이 태반이었고, 아무리 찾아봐도 학부대학생으로 변신하지 않는한 싱가포르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물론 한인교회나 테니스 모임에는 한국인들 천지였고. 아, 이렇게 당혹스러울 수가 없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다 어디 숨었을까? 현지인들의 솔직한 느낌을 어떻게 하면 들을 수가 있을까?


우선 내 주위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로컬 사람들은 식당 주인들, 이발소 아줌마, 동네공공도서관 관리인, 부동산 아저씨 아줌마 등이었다. 이 가운데도 의외로 현지 사람이 적었다. 콘도 경비원은 인근 말레이시아에서 새벽에 오토바이로 출근을 하는 분, 옆집 가정부는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에서 해외파견 근로자 분들이었다. 물론 동네 아파트 1층에는 엄청나게 많은 할아버지들이 할일 없이 시간을 무료히 보내고 계셨지만, 필자의 부족한 중국어나 싱글리시로 접근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2. 아, 싱가포르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구나


싱가포르에 여행을 가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화려하고 자연과의 조화가 근사한 빌딩을 주로 감상하고 오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해외여행이 건축물과 음식 감상이기 마련이지만, 싱가포르는 워낙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서 싱가포르 사람이 잘 가늠이 안된다.

 

지하철이나 버스 정도를 타면 마주치긴 하지만, 패키지로 오신 분들은 싱가포르 사람 하나 못만나고 돌아갈 확률이 높다. 대충 호텔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젊은 노동자들은 외국인이라고 보면 되고, 심지어 이 가운데는 한국인도 상당수다. 특히 거리에는 사람 하나 없기 일쑤다. 너무 더운 탓도 있다.

 

싱가포르에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깨치는 대목이 있다. 아, 싱가포르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구나. 관광객이 지상에 있을 때, 그들은 지하에 있고, 외국인이 정문을 통해 빙~둘러가면, 현지인은 묘한 쪽문과 지름길을 통해 순식간에 건물과 건물틈을 종횡무진 이동하는 식이다.

 

한번 생각을 해보시라. 수십년 동안 서울만한 비좁은 공간에서 살아온 국민들이다. 어떻게든 최적의 솔루션과 고효율의 전혀 다른 현지룰을 자기들끼리만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적응이 끝나고, 알뜰한 싱가포르 사람들의 생활 전략을 벤치마킹해, 본격적으로 중고거래에 나서봤다. 그런데, 이게 엄청난 마력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3.싱가포르 버전의 중고나라...모두가 협상의 귀재 실감


싱가포르는 서울만한 면적에 600만 시민이 산다. 작고 좁은 커뮤니티다. 이끝 저끝 1시간 반이면 이동한다. 기본적으로 부자이지만, 돈 100원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짠돌이들이다.

 

세금내는 건 싫고 여러 상품을 써보고 싶고...이런 생활습관이 만나 탄생한 게 벼룩시장이다. 주로 "캐로셀 (sg.carousell.com)"이라는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이뤄지는데, 거의 모든 싱가포르 사람들이 이 온라인 장터에 참여한다. 일종의 싱가포르 버전의 중고나라인 셈이다.

 

내가 시계중고거래의 매력을 깨우친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는데, 무료하고 심심한 싱가포르에서 자유인으로 살다보니 시계가 너무 절실해졌고, 중고시계를 몇 개 사려고 나서보니, 정말 거대한 싱가폴 세컨 핸드 시계시장과 마주쳤던 것이다. 알고보니 항구도시는 백여년 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뱃사람들 탓에 중고시계 거래가 무척이나 활발했다고 한다.

 

게다가 싱가포르인들은 기본적으로 상인들이다. 네고시에이션(협상)의 귀재들이다. 10만 원짜리 중고시계 하나를 놓고 차 두 잔씩 나눠마시며, 진지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가격 차이를 좁혀가는 식이다. 당연하게 그들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점에 놀라고, 한국인이라는 점에 더더 놀랐다. 이내 자신이 즐겨온 한류 콘텐츠를 내게 고백을 하고, 북한에 대한 질문도 하고, 본인의 시계 수집 역사와 싱가포르 삶의 얘기를 풀어내는 식이다.

 

이것을 몇번 해보니, 평범한 싱가포르 사람을 만나는데 이것만큼 유용한 방법이 없구나 싶었다. 비싼 시계를 사면 물론 아주 부자 주인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싱가포르에는 엄청나게 많은 시계 마니아와 수집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심심한 사회의 하나의 적응 방식이다 싶었다.

 

4. 낯선 남자 사람과 대화를 트고 싶다면 손목시계 칭찬을 해줘라


물론 이 방법은 필자가 외국인인 탓에 효과적이었던 측면이 있을 듯도 싶다. 그리고 시계수집이란 취미는 미술품 수집과 비슷해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동질감이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가 적당히 맞장구쳐주면. 거의 대부분의 싱가포르 판매자들은 나를 식사에 초대도 하고, 자신이 만든 수백여개 시계 콜렉션을 자랑하기도 하더라.

 

물론 나도 맞장구를 치기 위해 유튜브로 한동안 시계공부해야 했다. 그래서 적잖은 시계브랜드의 역사와 전통, 가격에 대해 공부도 했다. 그 덕에 싱가포르 사람들의 삶과 평범한 꿈에 대한 얘기를 살짝 들을 기회가 좀 있었다. 혹시나, 해외에서 현지인 접촉에 대한 탈출구가 필요하신 분이 있을까봐 개인적 노하우를 공유해봤다.

 

Ps.

1. 중국 화교를 만나고 싶다면 일단 뭐라도 거래를 해야 한다.

2. 혹시 낯선 남자 사람과 대화를 트고 싶다면, 그 남자의 손목시계 칭찬을 해줘라. 100 % 통한다. 날씨 얘기보다는 더 잘 통할 것이다. 남자들은 기계 얘기 좋아한다.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의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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