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곡물 창고에는 곡식이 충분하다는데 밀 가격이 불안하다. 얼핏 모순처럼 들린다. 최근 중앙일보가 세계 식량시장을 분석하면서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역설이다. 현재 세계 곡물 재고 자체가 당장 심각하게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시장에서는 밀을 비롯한 곡물가격 폭등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 배경에는 세 가지 위험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첫째, 끝이 보이지 않는 이란 전쟁과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이다. 둘째, 이제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 기후변화의 ‘디폴트(default)’화다. 셋째,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초래하는 세계 무역질서의 불확실성이다. 문제는 세 위험이 각각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식량 공급망을 흔든다는 점이다. ■ 이란 전쟁, 식량문제가 되는 이유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식량과 떨어진 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대 농업은 에너지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원유가격이 오르면 농기계와 운송비가 오른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질소비료 생산비를 끌어올린다. 중동의 주요 해상교통로가 불안해지면 선박 운임과 보험료까지 상승한다. 결국 전쟁→에너지→비료→농업생산→운송→식량가격이라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아세안(AS
안소니 리드(Anthony Reid)의 ‘동남아시아의 교역의 시대 1450~1680’ 1·2권을 나는 두 번 읽었다. 한 번 읽기도 만만치 않은 책을 다시 읽은 것은 이 책이 15~17세기 동남아 역사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남아사를 바라보는 눈 자체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남아의 근대사를 흔히 유럽인의 등장과 함께 바라본다. 1511년 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진출, 뒤이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가 동남아를 세계경제에 편입시켰다는 시각이다. ■ 리드는 이러한 역사관을 뒤집는다. 첫 번째 부상: 유럽인이 오기 전 이미 세계의 중심이었다 유럽인이 오기 훨씬 전부터 동남아는 중국과 일본, 인도와 중동을 연결하는 거대한 해상교역망의 중심이었다. 후추와 정향, 육두구 등 당시 세계가 탐내던 상품의 주요 생산지이기도 했다. 유럽인이 동남아를 세계경제에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이미 존재하던 아시아 중심의 교역세계에 뒤늦게 들어온 것에 가깝다. 리드가 1450~1680년을 ‘교역의 시대(Age of Commerce)’라고 부른 이유다. 그의 시각에는 프랑스 아날학파와 페르낭 브로델의 영향이 짙다.
태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똠얌꿍과 팟타이 같은 태국 음식, ‘미소의 나라’, 타이 마사지, 푸껫과 파타야의 아름다운 해변을 떠올릴 것이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동남아의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도 생각날 것이다. 실제로 태국은 독특한 나라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가 동남아를 양분하던 시절에도 독립을 지켰다. 서쪽의 미얀마와 말레이반도는 영국이, 동쪽의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는 프랑스가 차지했지만 그 한가운데 있던 시암, 오늘의 태국은 살아남았다.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완전히 서지 않고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는 태국 외교를 흔히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는 태국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다. 오늘의 태국을 이해하는 데는 세 가지 키워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쿠데타, 왕실과 군부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체제, 그리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민주화다. ■ 첫 번째 키워드, 쿠데타 태국 현대정치의 출발점은 1932년이다. 그해 인민당이 일으킨 무혈혁명으로 짜끄리 왕조의 절대왕정이 끝나고 입헌군주제가 시작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입헌군주제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 중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비행기로 3시간이면 가고 시차도 1시간이다. 10만 명 이상의 우리 국민들이 많이 체류하고 국내 범법자들의 피난처로도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 국민의 피해가 많다. 필리핀 경찰서 내 코리아 데스크가 최초 설치돼 한-필 경찰 공조가 잘 이루어지는 나라로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동남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선도국이었고, 장충체육관도 미국 개발원조로 필리핀 엔지니어들이 건축한 건축물이다. 또한 한국전쟁 시 태국과 함께 동남아에서 참가한 2개국이다. 7,420명이 파견돼 112명이 사망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는 데 기여한 나라이다. 지난해 10월 경주 APEC 계기에 11월 1일 마르코스 주니어(봉봉) 대통령이 현직 필리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식수도 했다. 지금은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이 한국에 많이 온다. 그런데 필리핀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다시 발전하려고 하는 나라다. 한국과 필리핀은 이제 완전 역전되었다. 필리핀이 왜 과거 발전했고 한동안 정체되었는지는 필리핀의 역사를 짚어봐야 한다. 필리핀의 외세 식민지배 및 점령 기간은 380여 년이나 된다.
2014년 중국이 필리핀 해안에서 약 230㎞ 떨어진 스카버러암초(Scarborough Reef, 중국명 황옌다오, 필리핀명 바호 데 마신록)를 점거하고 구단선에 근거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인공섬을 조성했다. 이에 필리핀은 해당 수역이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며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다. 2016년 7월 12일 PCA는 필리핀이 중국을 상대로 제기한 남중국해 중재 사건에서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중국의 '구단선(Nine-Dash Line)'에 근거한 역사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권리 주장도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올해 10주년을 맞아 미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 14개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판결의 의미를 재확인했다. 공동성명은 해양 분쟁의 평화적 해결, 중재판결의 최종성과 법적 구속력,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 보장, 중국의 역사적 권리 주장에 대한 국제법상 근거 부재를 다시 강조했다. ■ 법적지위와 해양 환경 필리핀 섬 인정... 10년이 흘렀지만 끝나지 않은 분쟁 중재판결은 중국의 영유권 주장뿐 아니라 일부 해양지형의 법적 지위와 해양환경 훼
“AI 혁명-미중 경쟁-기후위기-디지털 경제 전환과 아세안 미래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산하 헨더슨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미래를 넘어:2050년 세계를 위한 네 가지 시나리오(Beyond Tomorrow: Four Scenarios for the World of 2050)” 보고서는 단순한 미래예측 보고서가 아니다. 향후 25년간 세계를 흔들 100여 개 메가트렌드를 종합 분석해 인류가 직면할 “AI 풍요, 기후연합, 분열된 진영(두쪽 진영), 디지털 적자생존 네 가지 시나리오” 중심으로 네 가지 미래 질서를 제시한 일종의 전략 지도에 가깝다. 이 보고서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하나의 미래를 단정적으로 예측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반된 네 개의 현실적 시나리오를 동시에 제시하며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국가와 기업, 지역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네 가지 시나리오가 모두 아세안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아세안은 AI 혁명, 공급망 재편, 미중 경쟁, 기후위기, 디지털 경제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교차하는 세계의 전략적 접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사회는 다시 호르무즈 해협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 이후 중동 긴장이 고조되며 국제 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 위기의 진짜 파장은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4월 16일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느리게 진행되는 비극(A slow-motion tragedy)”이라는 사설에서 “호르무즈 봉쇄와 엘니뇨가 겹칠 경우 글로벌 식량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동남아시아는 그 충격의 최전선 가운데 하나다. 많은 사람들은 식량안보를 곧 쌀 부족 문제로 이해한다. 그러나 오늘날 아세안 식량안보의 핵심은 훨씬 복합적이다. 쌀은 아세안 전체로 보면 여전히 자급권이지만, 비료-밀-사료-에너지-물류가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 공급망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우선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원유 수송로가 아니다. 2024년 기준 세계 비료 교역의 최대 30%, LNG의 약 20%, 원유 교역의 약 27%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천연가스는 암모니아-요소 비료 생산의 핵심 원료이고, 걸프 지역 황(sulfur)은 인산비료 생산에 필수적이다. 국제비료협회(IFA)에 따르면 이
주말 해운대 아침 자카리아(Fareed Zakaria)의 GPS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왜 그토록 귀족정(aristocracy)을 경계했을까.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왕정 자체가 아니었다. 부와 출생, 혈통이 권력과 결합해 소수 계층이 국가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토머스 제퍼슨은 이를 “인위적 귀족(aristocracy of wealth and birth)”이라고 불렀고, 대신 재능과 덕성에 기반한 “자연적 귀족(natural aristocracy)”을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을 보면 건국의 이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정권 핵심부에 억만장자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내각"이라는 평가가 나왔고, 일부 핵심 국가안보 및 외교 분야에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보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도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경험 많은 외교관과 공직자들이 사임하거나 주변으로 밀려나는 현상 역시 나타나고 있다. 물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와 한국동남아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라운드테이블 “격동의 국제질서와 동남아 정치경제”가 6월 19일(금) 15:00–17:00 서강대 다산관 209B서 열린다. 최근 국제정세 변화와 에너지·안보 위기 속에서 동남아 각국의 대응과 정치경제적 함의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다.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사회를 맡는다. 발표자는 김형종(서울대) 「전략적 모호성의 정치경제: 미중 경쟁 속 말레이시아의 4중 딜레마」, 문기홍(부경대) 「새 정부, 오래된 위기: 관리된 전환 이후 미얀마의 경제·사회 동향」을 맡는다. 또한 양창원(부산대) 「필리핀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이란 전쟁발 유가 충격과 마르코스 정부의 대응」, 오하나(서울시립대) 「호르무즈가 막혀도 고속도로는 뚫는다?: 에너지 위기 속 성장 목표를 밀어붙이는 베트남」를 발표한다. ■ 주제 「격동의 국제질서와 동남아 정치경제」 ■ 일시:2026년 6월 19일(금) 15:00–17:00 ■ 장소: 서강대학교 다산관 209B ■ 사회: 서정인 (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 · 전 주아세안대사) ■ 발표 김형종(서울대) 「전략적 모호성의 정치경제: 미중 경쟁 속 말레이시아의 4중 딜레마」 문기홍(부경대) 「새 정부
동남아를 한마디로 설명하라면 나는 늘 “다양성(diversity)의 세계”라고 말한다. 동남아를 오래 들여다볼수록 느끼는 것은 이 지역이 단순히 여러 나라가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서로 다른 문명과 종교, 언어와 사람들이 끊임없이 만나고 섞이며 만들어낸 거대한 문화의 용광로라는 점이다. 동북아가 상대적으로 단일 문명권의 영향 속에서 질서와 체계를 중시하며 발전해 왔다면, 동남아는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되 자기식으로 변형하고 융합하는 데 훨씬 능숙했다. 그래서 동남아 문화는 대체로 유연하고 부드럽다. 개방성(openness)과 혼종성(hybridity)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대표적으로 태국과 한국 모두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태국은 오랜 세월 인도 문화와 불교, 힌두적 세계관이 함께 스며들었다. 그 결과 사회 분위기와 인간관계, 종교 문화와 예술 표현 방식에서도 보다 유연한 색채가 나타난다. 이는 동남아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 다양성 속 통일 역사: 언어에도 남겨진 다양한 문명의 파도 ‘흔적’ 동남아의 다양성은 언어에서도 드러난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은 남도 해양어군(Austronesian),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아세안은 무엇이고, 아세안은 어디로 가고 있나, 그간 우린 아세안 어떻게 접근했나, 그럼 우리는 이런 아세안을 앞으로 어떻게 접근해야하나 1. 아세안은 무엇인가 (용어 구분의 다양성) 우리가 아세안을 다양한 의미로 사용한다. 동남아와 아세안 그리고 동남아 및 아세안 개별 국가들간 섞어 쓰기 때문이다. 동남아는 동북아, 유럽, 중남미, 중동처럼 유럽중심으로 한 지리적 분류이다. 물론 동남아라는 용어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인도로 진출하자 연합군이 이를 막기위해 실론, 지금의 스리랑카에 동남아사령부를 출범한데서 최초 유래했고 그 이후 냉전이 계속되자 동남아 용어가 일반화 되었다. 그전에는 중국에서 남양으로 불리웠다. 동남아는 이런 이름이 있기전에부터 있었고 그 역사는 2천년이 넘는다. 아세안은 동남아국가들이 만든 지역 국제기구다. 1967년 방콕 선언으로 설립되었으니 내년이 60년이다. 유럽국가들의 지역기구 EU의 동남아판이다.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으로 동남아 국가 모두가 아세안 회원국이니 일반적으로 '동남아=아세안'으로 부럴 수 있으나 엄밀하게 말히면 동남아는 지리적 구분이고, 아세안은 국제기구적, 즉 제도적 구분이다. 동남아 및 아세안 개별국가들은 동남
동남아 친구들에게 종종 묻는 질문이 있다. “중국과 인도 중 어느 나라가 더 편한가?” 대부분은 외교적 미소를 지으며 “둘 다 중요하다”고 답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세안과 교류하며 느낀 건, 속내는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대체로 인도를 중국보다 덜 부담스럽게 느끼는 분위기가 있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역사로 돌아가야 한다. 중국은 오랫동안 자신을 천하의 중심으로 보는 중화질서 속에서 주변국과 관계를 맺었다. 베트남은 약 천 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에도 명청 시대의 베트남, 인도네시아 및 버마 침략의 기억을 남겼다. 오늘날 남중국해 문제까지 겹치며 동남아 일부 국가에는 중국에 대한 역사적 경계심이 여전히 존재한다. 반면 인도는 달랐다. 인도 문명은 군대보다 바다를 통해 동남아로 들어왔다. 계절풍을 타고 이동한 상인과 승려들은 힌두교와 불교, 산스크리트 문자, 왕권 개념, 서사시와 상업 문화를 함께 전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문명, 인도네시아 자바와 발리 문화, 태국 왕실 의례 곳곳에는 지금도 인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중요한 건 동남아 국가들이 이를 대체로 강요된 지배보다 선택적 수용으로 기억한다는 점이다. 현지 왕조들이 필요에 따라 인도 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