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와 태국을 잇는 ‘우정의 다리’에는 차량만 다니는 게 아닙니다. 열차도 다닙니다. 어제는 라오스 체류비자를 받기 위한 절차로, 비엔티안에서 육로를 이용해 태국에 다녀왔습니다. 비엔티안에서 약 20여분 남짓 가다보면, ‘우정의 다리’라고 이름 붙여진 라오스 비엔티안과 태국 넝카이를 잇는 교량이 나옵니다. 1994년 호주의 무상 원조로 설치된 길이 1170m 다리입니다.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반은 태국이고 반은 라오스입니다. 어제 비자 업무로 우정의 다리를 지나, 태국 국경 출입국 경유하여 라오스로 돌아왔었습니다. 그런데 국경다리 입구를 제복 입은 사람들이 통제하고, 차량들이 줄지어 정차하길래 무슨 일이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검문인가? 생각하던 차에 우측편에서 열차가 달려옵니다. 이거 뭐야? 아하, 열차는 바로 우정의 다리 중앙을 따라 라오스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겁니다. 차량이 다니는 국경다리(우정의 다리)에 웬 기차가? 자세히 보니 다리 중앙에 국경열차 선로가 놓여 있었습니다. 차량과 열차가 동시에 사용하도록 설계된 교량이었습니다. 국경열차는 하루 두 차례 운행한다고 합니다. 열차가 통과할 때는 안전을 위해 차량의 통행을 중지한다고 합니다. 라오스에
1. 30일 무비자...미얀마 가기 쉬워진 시대 2018년부터 미얀마는 한국인과 일부 선진국 국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여행하기 쉬운 국가가 됐다. 30일 체류에 대해서 (특섬지점 종료가 예고된) 한시적이지만 무비자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얀마 땅에 밟기 위해서는 서울 한남동 미얀마 대사관을 방문해 여행비자를 받아야 했다. 2014년부터는 온라인 e-Visa 서비스를 통해 대사관에 방문하지 않고도 비자를 얻을 수 있었지만 50달러(약 5만 9635 원) 정도의 비자수수료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항공권을 사서 가기만 하면 된다. 덕분에 최근 2년간 미얀마의 불교 유적지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관광산업 육성을 통해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켜 보려는 아웅산 수치 정부의 개방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미얀마는 1962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반세기가 넘는기간 동안 '버마식 사회주의'라는 구호 아래 군부가 정권을 독식한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해왔다. 그 사이에 각종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문제와 마약 관련 국제문제 때문에 서구국가들의 경제 제재를 받아야 했다. 미얀마는 북한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
일본 아베 내각의 이인자로 치부되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한국 위안부에 망언을 일삼아 ‘망언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이번에는 단일민족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2020년 1월 13일 후쿠오카에서 열린 국정보고회에서 “2000년의 긴 세월에 걸쳐 하나의 언어, 하나의 민족, 하나의 왕조가 이어지고 있는 나라는 여기[일본]밖에 없으니, 좋은 나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에 망언제조기라는 딱지가 붙었으니 ‘망언’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과연 ‘하나의 언어, 하나의 민족, 하나의 왕조’라는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하나의 언어’가 거짓이라는 것은 이전 이야기 ‘일본어 서사’에서 드러났으며, ‘하나의 왕조’도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글쓴이가 다른 곳[김정기, <일본천황, 그는 누구인가>(2018)]에서 짚었기에 여기서는 ‘하나의 민족’에만 초점을 맞춰보자. 일본 우익 쪽에서 내세우는 ‘하나의 민족’론, 즉 단일민족론은 겉만 보아서는 그 정체를 놓친다. 그 속에는 일본민족 우월론-->타민족 멸시가 깔려있고, 더 나아가 타민족문화 말살-->타민족 살육-->인종청소 같은 검은 음모가 숨겨져 있다. 그런 점에서 나치 독일
미얀마 양곤의 물가를 알아보자 (2) 1. 소속 집단에 따른 물가 차이 전체적인 소비재 가격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부동산' 비용과 '인건비'가 아닐까 싶다.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자영업 비용 구조를 생각해보면 쉬운데, 운영비의 가장 높은 비중을 종업원의 임금과 공간 임대료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재료비나 세금 및 공과금 부담이 없는 것 아니겠지만 이 비율은 전세계 어디를 가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동남아시아 사회의 물가에는 한국에서 고려되지 않는 한 가지가 추가로 고려되어야 하는데 바로 자신이 속한 민족 커뮤니티다. 19세기와 20세기 동남아사회를 연구한 서구학자들이 빼놓지 않고 기술하는 특징이 바로 '다원사회(Plural society)' 라는 개념이다. 여러 민족이 서로 섞이지 않고 그들만의 독자적인 사회를 구성해 나간다는 개념인데, 한국에서는 '다문화 사회'로 번역되곤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쓰는 '다문화'가 일종의 인종-민족-문화적인 측면이 강조된 개념이라면, 애당초 '다원사회'가 제기된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따라 경제적인 활동
우리는 고분시대 4~5세기 즈음 일본 열도의 주민을 ‘일본인’이라고 불렀지만 6세기까지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은 없었다. 따라서 이는 편의상 부른 이름에 지나지 않고 야마토 왕조의 국호는 ‘왜국’이었으니 ‘왜인’이라 해야 마땅하다. 이 ‘왜인’을 교체해 들어선 것이 퉁구스 계=조선계 정복민족이었다면 그 윗대 조몬 인(繩文人)·야요이 인(弥生人)은 누구인가? 조몬 시대란 기원 전 1만년에서 전 4세기 즈음까지 아득한 옛날이며, 야요이 시대란 기원 전 4세기에서 후 3세기까지 이어진 시기이다. 특히 야요이 시대는 한반도에서 논농사와 함께 금속기가 전래되었다는 점에서 일본문명의 발상 기로, 도래 문물이 상륙한 북 규슈는 야요이 문명의 발상지로 일컬어진다. 대체로 새끼줄 문양의 토기를 만들었다는 조몬 인(繩文人)은 남방계 인으로 알려진 반면 야요이 인은 볼록한 둥근 항아리를 만든 북방 계인으로 일컬어진다. 그 항아리는 1984년 도쿄대학 구내인 혼고(本鄕) 야요이 쵸-(弥生町)의 무코-카오카 패총(向ヶ岡貝塚)에서 발견되었다 해서 ‘야요이식 토기’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먼저 조몬 인에 주목해 보자. 일본의 역사민속박물관 교수 고야마 슈조(小山修三)의 저술 <조
왓푸는 라오스 남부 끝자락 참파삭 주에 위치한 크메르 왕조시대 지어진 사원이다. 이 사원에서 새해 벽두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탁발’을 보았다. 동트는 시간부터 수km에 걸쳐진 탁발의 모습, 그것이 ‘나누는 행복’의 표정이었다. 결코 평생 안 잊힐 탁발은 그 자체로 장엄했다. 평화롭고 감사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 앙코르와트의 모태가 된 사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왓푸는 ‘산에 있는 절’이란 의미다. ‘왓푸’(왓:사원, 푸:산, Vat Phou, Wat Phu)는 동남아시아의 젓줄, 어머니의 강 메콩(매:어머니, 콩:강)에서 8km 떨어진 해발 1416m인 서쪽 푸카오산(푸:산, Phu Kao) 기슭에 자리잡았다. 왓푸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메르제국 시대의 유적이 집중되어 건축된 앙코르와트와는 달리, 5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1000년간 조성된 복합 유적지이다. 처음에는 힌두교 사원이었다. 하지만 15세기에 샴족(아유타야 왕조)이 불교를 전파하면서 불교사원으로 바뀐다. 앙코르와트보다 300여 년 앞서 지어져 앙코르와트의 모태가 되었다. 현재는 ‘미니 앙코르와트’라고도 불리고 있으나 과거에는 앙코르와트에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이슬람 신자인 아세안(ASEAN) 사람이 내게 묻는다. “저는 세 명의 신을 믿습니다. 첫째는 제 아내이고, 둘째는 제가 모시는 대사님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신은 바로 ASEAN입니다. ASEAN 헌장은 성경의 창세기와도 같습니다.” 이 엉뚱한 대답에 ASEAN 사람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외교관의 언어유희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주재국을 신주단지처럼 모셔야 한다는 직업적 소명에서 나온 확신이다. 필자는 과거 자유무역과 세계인권의 수호자인 WTO와 UN 인권이사회를,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희망인 세네갈을 신성시했고, 이제는 자카르타에서 ASEAN 신도로 살아가고 있다. ASEAN을 사랑하고 ASEAN을 이해함에 있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점은 바로 ‘ASEAN’이라는 이름이다. 동남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이라는 의미 때문은 아니다. 바로 동남아인들 스스로가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민족, 국가, 지역도 다 이름이 있지만, 스스로가 아닌 남이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가령 아프리카는 로마인들에게 모래(afar)의 땅으로 불렸던 것에 기원
2019년은 가히 ‘아세안의 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우리 외교에서 아세안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적으로 높아진 한 해였다. 독자들도 방송과 언론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말 부산에서 아세안 정상들과 회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존경하는 형님(kakak yang mulia)’이라고 인사하면서 친분을 보여주는 훈훈한 장면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특별정상회의는 한-아세안 대화관계수립 3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었으며, 푸드스트리트, 카페 아세안, 패션위크, 뷰티 페스티벌, 영화주간 등 40여개의 다양한 행사에서 우리와 아세안 국민들이 어우러져 서로의 문화를 맛보고 즐기는 흥겨운 자리도 만들어졌다. 스타트업, 문화콘텐츠, 5G 등 미래 산업을 주제로 한 전시회도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찬사 속에 개최되었다. 우리 정부는 2017년 11월 자카르타에서 신남방정책을 천명한 이래 아세안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10년 이상 아세안 업무를 해온 필자로서는 이번 특별정상회의를 가능한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아세안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지시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