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1주년 맞아 긴장고조될 가능성 높다. 야간 통행 가급적인 자제 부탁한다.” 주 미얀마 한국대사관이 11월 8일 총선 1주년이 되는 시점을 맞아 긴급 공지를 올렸다. 지난 9월 7일 국민통합정부(NUG)가 反군부 방어전(defensive war)을 선포한 지 2개월이 되었다. 그 가운데, 사가잉(Sagaing)과 친(Chin) 등 북서부 지역과 까야(Kayah) 지역에서 군부와 시민방위군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긴장이 더욱 고조될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통신업체 Mytel 고위간부가 괴한에 의해 피살되었고, 양곤, 만달레이 등 대도시 내에서 친군부 또는 친군부 행위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와 시설에 대한 표적 공격이 늘어날 것으로 주의를 표했다. 대사관은 향후 정세의 불안정성과 유동성이 계속 클 것으로 보고 교민 및 진출업체 안전을 위한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교민 여러분께서는 관공서 방문 및 야간 통행을 가급적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 특히 군경의 검문검색 시 불필요한 행동으로 안전에 위해가 될 수 있는 행동도 피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주 미얀마 한국대사관 긴급공지 전문] 주미얀마 대한민국대
지난 2월 미얀마에서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육군 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이 이달 말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퇴짜’ 받았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은 군부독재자 민 아웅 흘라잉 대신 미얀마에서 비정치적 대표를 초빙하기로 합의해 미얀마 군부는 아세안에서 점점 ‘왕따’가 되어가고 있다. 아세안 10개국의 의장국인 브루나이는 “미얀마의 비정치 대표단이 이번 달 열릴 아세안 정상회의에 비정치 대표단이 참석한다”고 분명히 했다. 2월 쿠데타 이후 미얀마 전역으로 시위가 확산됐다. 정치범 지원 협회에 따르면 보안군은 잔인한 진압으로 대응하여 1100명 이상이 사망하고 8000명 이상을 구금했다. 이 같은 퇴짜를 당하자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부랴부랴 구금된 민간이 5636명 이상을 석방하겠다고 밝혔다. 흘라잉 사령관이 석방 결정을 한 것은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퇴짜를 받는 등 국제적인 고립이 심화되는 것을 우려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군부는 지난 7월 군사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을 비롯한 2000명 이상의 시위자를 석방했지만 여전히 7300명이상 수감중이다. 이 중에는 지난 5월 24일 체포된 미국인 기자 대니 펜스터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얀마 중앙은행은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를 외환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통화로 추가하고 현지 외환시장에서 위안화와 엔화를 합법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발표했다. 미얀마 중앙은행은 이 통고에서 외환 면허를 보유한 은행과 사설 환전소가 외환 거래에 위안화와 엔화를 사용하고 외환 거래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얀마가 외환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통화는 미국 달러, 유로, 싱가포르 달러, 태국 바트, 말레이시아 링깃의 5개 통화였으며 현재는 위안화와 엔화를 추가해서 7개로 늘어났다. 새로운 정책을 실시한 후 국민들은 은행과 환전소에서 위안화와 엔화를 합법적으로 환전할 수 있다.
미얀마 짯(Kyat)의 환율이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 환율과 함께 고공행진을 계속하던 금 가격 역시 동반 하락했다. 지난 10월 6일 기준 금 1티칼(Tical, 16.6g)당 거래가격이 지난 9월 28일 보다 10%나 하락했다. 9월 말 급락한 미얀마 짯은 10월 4일 이후 반등세로 접어들었다. 일시적으로 1달러 당 3000짯(Kyat)까지 하락했으나 6일에는 약 2200~2300짯까지 회복했다. 미얀마 중앙은행은 수출대금 외화매각 등의 규제강화 조치로 하락에 제동이 걸렸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경제혼란 등으로 장기간 하락기조였던 미얀마 짯은 9월 들어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9워 28일 오후 시중 환전상 환율이 월초 대비 70% 하락한 1달러 당 3000짯까지 폭락했으나 10월 4일부터 1달러 당 2200~2300짯으로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미얀마 중앙은행은 수출대금으로 미얀마 국내 계좌에 입금된 외화를 30일 이내에 미얀마 짯으로 환전하도록 금융기관에 통보했으며, 짯 환전 기간을 기존 4개월에서 대폭 단축시켰다. 미얀마 중앙은행은 해당 조치를 통해 통화공급량을 늘려 달러 대비 짯 환율을 안정시켰으며 11월 이후에도 수출대금이 미얀
미얀마에서 군부쿠데타 이후 ‘비무장’ 시민과 정치인 1146명이 사망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1일 미얀마 시민불복종항쟁(CDM)이 정치범지원협회(AAPP)의 발표 내용을 보면 지난 2월 군부쿠데타 이후 9월 말까지 군인이나 시민방위대가 아닌 ‘비무장’ 시민과 정치인 1146명이 사망했다. 정치범지원협회는 9월 30일 기준으로 1146명이 사망했고, 특히 9월 중-하순 이후 쿠데타군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들에 대해 설명했다. 미얀마에서는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과도정부’를 선언했다. 흘라잉 총사령관은 총리직 ‘셀프 취임’으로 국제사회 비난을 받았다. 군부는 지난 2월 수치 여사를 구금했을 당시 비상통치 기간을 당초 1년이라고 약속했지만, 총선은 군부가 약속했던 일정보다 1년 6개월 더 연장됐다. 총선 시기도 2023년 8월 내에 치러질지도 불투명하다. 수치가 소속된 미얀마 전국민주연맹 소속 의원 중심의 민주진영은 4월 16일 국민통합정부(NUG)를 출범했다. 군부로부터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인민방위군' 창설을 발표했다. NUG은 지난 9월 7일 ‘무장 투쟁 선언’(화요선언)을 하기도 했다.
아세안(동남아 국가연합)의 에리완 유소프 미얀마 특사( 브루나이 외교부장관)가 미얀마 군부에 4개월 휴전을 제안해 받아들였다고 5일 밝혔다. 에리완 특사는 교도 통신과 인터뷰에서 지난달 31일 미얀마 군정 외교장관인 운나 마웅 르윈과 화상 회의를 했다면서, 이 자리에서 올 연말까지 휴전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정치적 휴전이 아니라, 인도적 지원에 나서는 관계자들이 미얀마 국민에게 지원품을 나눠줄 때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휴전"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군부는 자신의 제안을 수용했으며, 반군부 진영에도 이 제안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르면 이달 중순 아세안 차원의 첫 인도주의적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면서, “지원품은 코로나19 중증 환자들을 돕기 위한 산소발생기나 보호장구 등 의료 기구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미얀마 쿠데타 이후 정치범이 최소 110명 구금 중 사망했다고 집계되었다. 현지 매체 미얀마 나우는 30일 미얀마 인권상황을 감시하는 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 자료를 인용, 이같이 전했다. 110여명 중 최소 77명은 체포된 지 24시간 이내에 숨졌으며, 다수는 고문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고 매체는 보도했다. 쿠데타 이후 군부 폭력에 의한 사망자는 30일 현재 1038명으로 1000명을 넘어섰다. 또 7600명 이상이 쿠데타 이후 군부에 의해 체포-구금됐다. 이 중 6000명 이상이 여전히 자유를 속박당한 상태다. AAPP는 지난 30일 ‘국제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을 맞아 성명을 냈다. “6000여 명 중 82%는 구금된 장소도 모르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눈엣가시 유엔대사 그대로 둘 수 없다. 암살하라.” 2월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를 감행한 이후 이를 비난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촉구해온 초 모 툰 유엔 주재 미얀마 대사를 상대로 한 암살 시도가 사전 적발되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남부지검과 연방수사국(FBI) 뉴욕지부, 뉴욕경찰은 합동으로 뉴욕에 거주하는 미얀마인 표 하잉 투(28)와 예 하잉 조(20)를 체포했다. 이들의 혐의는 초 모 툰 대사를 중상을 입히거나 살해하려고 공모다. 투는 미얀마 군부에 무기를 판매하는 태국의 무기 거래상과 접촉, 대사를 공격할 청부업자들을 고용하기로 했다. 무기상은 대사가 물러나지 않으면 살해를 청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후 조는 투에게 약 4000달러를 착수금조로 송금했다. 둘은 범행에 추가로 필요한 1000달러를 조달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외국 정부 당국자에 대한 공격 공모 혐의엔 최대 5년의 실형이 선고될 수 있다. 이와 관련 미얀마 현지 미디어 미얀마 나우는 툿이 미얀마의 악명높은 독재였던 탄 슈웨 장군의 손자와 사진을 찍은 것으로 전했다. 또한 자금 전달역인 조는 퇴역 군부 관리의 아들로 미국에 오기 전까지 양곤에서 살았다고 전했다. 다른 소식통